소설리스트

뉴카파로 가자-92화 (92/107)

92화

날이 밝자 퉁야가 벤시몽 저택을 방문했다. 그도 밤새 있었던 소란에 그의 고용주가 무사한지 확인하러 온 것이다.

그 모습을 위에서 창문을 통해 보고 있던 은준도 계단을 내려가 문을 열어주었다.

“무사하셨군요!”

“퉁야도 별 일 없었지? 가족들은?”

“저흰 괜찮습니다. 하지만 마을쪽에선 밤새 안좋은 일이 있었더군요.”

퉁야는 은준과 안부를 물으면서도 중간에 그의 목소리를 듣고 방에서 나온 야를 보고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나눴다.

“밤에 총소리가 나서 자다가 깼는데, 대체 무슨 일인거야? 마을은 이제 괜찮고?”

“그게... 상황은 정리된 것 같은데 몇 사람이 죽었습니다. 분위기가 무척 안좋아요. 한 번 가보시죠?”

“그래야지. 그래도 이웃에 사는 사람들인데 무슨 일인지 보고 위로라도 해줘야지.”

벤시몽 저택에 들르기 전에 먼저 마을에 다녀온 퉁야로부터 사건이 종료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은준은 마지막 조금 남아있던 긴장을 풀며 퉁야와 함께 마을로 향했다.

사건은 늦은 밤과 새벽 사이에 일어났었기 때문에 사람은 죽었지만, 새벽녘 음산하게 은준의 귀를 괴롭히던 울음 소리도 잦아들어 어느정도 정리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에 도착한 은준이 처음 본 것은 손이 묶인채 뒤섞여 쓰러져있는 세 명의 남성의 시체였다.

“...저들이 어제 그 소란의 원흉인가?”

“네. 밤중에 마을에 숨어들어와 먹을 것을 훔쳐먹고는 여자를 납치하려다 걸린 모양이더군요. 여자가 비명을 지르자 끌고 가려는걸 마을사람들이 막으려하자 총을 쏘고 도망가려다가 마을 남자가 총을 가지고 나오는걸 보고 주민들을 향해 쐈다고 하더군요.”

“그럼 총을 가지고 나오던 남자가 죽은 건가? 마을 사람은 몇이나 죽은거지?”

“그게, ...총을 들고 나왔던 남자는 살았고, 더 옆쪽에 있던 남자가 죽은 모양이더라구요.”

“...가까이 서있다가 변을 당했군. 쯧쯧.”

“가까이라고 하기엔 한 다섯 걸음도 더 떨어져있었으니 억울하기도 하겠던데요.”

“다섯걸음? 하!”

은준은 어처구니가 없어 콧방귀가 절로 나왔다. 죽은 사람의 시체보다 조준한 사람보다 다섯 걸음이나 떨어져있는 사람이 총에 맞았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 사실 은준으로서는 이 곳에 온 뒤로 커다란 소를 도축하는 모습이나 다른 가축의 가죽을 벗기고 피를 빼고 토막내는 등의 모습을 몇 번이나 봐왔던 터라, 오히려 외형상 별다른 손상의 흔적이 없는 사람의 시체를 봤음에도 그리 충격적이지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총을 가지고 나온 남자가 더 잘 쐈나보더라구요. 저중 둘은 그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다른 한 놈은 앞에 놈들이 먼저 맞아 안죽었는데, 다음에 달려든 마을 사람들에게 붙잡혀서는 두들겨맞아 죽었답니다.”

“대체 뭐하는 놈들이었는지 알 수가 없군.”

시체는 하의만 입은 상태였고 그마저도 흔히 볼 수 있는 바지였기 때문에 외양만 봐서는 정체를 알아보는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답은 퉁야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먼저 마을 상황을 보러 왔던 그가 그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온 것이다.

“한 놈은 SANANC, 나머지 둘은 탈영병이라는 것 같은데 떠돌아다니며 도둑질이나 강도질을 해서 먹고사는 놈들이었습니다.”

“SANANC?”

은준은 뜻밖에 어느 단체의 이름같은 소속이 나오자 의아하면서도 혹여 큰 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싶어 걱정부터 되었다.

“그런데 죽은놈들 보니까 별로 나이도 많지 않아보이는게 그것도 믿긴 어렵죠. 말로야 뭐라고 못하겠습니까. 어디에 써있는것도 아니고.”

퉁야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은준의 마음은 그게 아닌거라, 퉁야가 그에대해 조금 아는듯하자 그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SANANC. 즉, 남아프리카원주민민족회의. 약 한 세기 전에 있었던 흑인 중심의 정당 이름이다.

“그러니까 이놈들이 진짜 거기 소속이라면 백 살도 더 먹었다는 이야기인데 말도 안되죠. 그냥 어디서 주워들은 이름을 가지고 소속입네 하며 떠벌이고 다닌 놈들일겁니다.”

퉁야의 설명은 그랬다. 그 이후에 조직된 ANC가 시작된 것도 벌써 60년전 일로, PAC와 함께 인종차별에 저항하며 게릴라전을 벌인 단체였다. 이 단체의 지도자가 바로 그 유명한 남아공의 지도자 넬슨 만델라다.

하지만 이미 1990년대에 각종 인종차별법이 폐지되고, 흑인과 백인이 동참한 총선이 실시되었으며 2005년도엔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했다. 즉, SANANC도 아닌 ANC가 무장 게릴라 전을 끝낸지도 오래인데 이들이 SANANC 소속이라는 것은 터무니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의 설명을 듣자 은준도 조금 간이 쫄아들었던 것이 다시 펴지는 듯했다.

“그리고 나머지 탈영병이라는 것들은 어디 부족 소속 전사들이었다가 도망친 놈들이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가끔 이런 녀석들이 생기긴 하는데, 어차피 자기들도 도망자 신세니 죽었다고 돌봐줄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퉁야의 표정이 어두웠지만, 은준은 거기에 대해 묻지 않았다.

사실상 아프리카의 내전은 내전으로 유명한 콩고나 소말리아 시에라리온 등이 있지만, 오직 몇몇 나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유럽의 식민 통치 이후 현재의 국경선이 그어진 뒤로 수 없이 많은 내전과 분규가 끊이지 않았고, 현재까지도 소소한 부족간의 갈등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 그러니 큰 내전을 겪은 짐바브웨 출신의 퉁야도 어쩌면 내전의 피해자일 수 있었던 것이다.

다친 사람은 몇 있지만 사망자는 다행히도 한 명이었는데, 장례식은 오는 목요일에 치러졌다. 그 날은 은준과 야 그리고 퉁야의 가족들도 장례식에 참석했다. 비록 장례식이었지만, 은준은 이 낯선 행사에 호기심이 먼저 들었다.

아프리카는 오랜 세월 유럽 국가들의 식민 통치를 받아왔다. 말과 글은 자신들의 것이 아닌 식민통치 당시의 것을 여전히 사용하는 나라가 많았고, 특히 종교의 경우엔 은준이 살고 있는 리소테 왕국이 속해있는 남아공의 국교가 기독교일 정도로 기독교 천주교 등의 비율이 높은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 단위로 들어가다보면 여전히 수많은 토속신앙이 난립한 상태이기도 했다. 특히 은준과 이웃한 부족이 바로 그런 경우였는데, 그 때문에 장례식에 참석한 은준이 흥미로워하며 지켜보는 이유였다.

낮엔 축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화려하게 치장한 남자들이 나서서 목창을 들고 서로 용력을 겨뤘다. 한참을 남자들이 순번을 돌아가며 목창을 부딪힌 다음에야 해가 질 무렵이 되어 주술사의 인도로 사람들이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물론 장례를 치를 시신도 함께였다.

큰 모닥불이 피워졌고, 타닥타닥 하는 소리와 함께 뿌연 연기 속으로 빨간 불꽃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 뒤로 커다란 바오밥나무가 앞에 모인 사람들을 내려보고 있었으며 모닥불과 바오밥나무 사이에 선 주술사는 사방을 가리키며 중얼거리기도 하고, 모닥불을 향해 무언가를 던지기도 했다.

“저 사람이 대체 뭐라고 하는거지?”

은준은 옆에 서있던 퉁야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퉁야도 그 주술사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에 은준과 퉁야는 반대편에 서있던 야에게로 저절로 고개가 돌아갔으나 그녀 역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모르겠어요. 아마 주술사가 주문을 외우는걸거에요.”

은준은 주술사의 주문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동물의 피를 뿌리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자막 없는 영화를 보는 심경으로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마침내 죽은이의 시신이 바오밥나무 아랫 부분의 갈라진 틈으로 넣어졌고, 그가 살아있을적 사용했던 활을 주술사가 받아 바오밥나무의 기둥에 건 뒤, 다시금 한 참을 주문을 외우는 주술사의 의식이 끝나고서야 장례도 끝이나 모두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 그 세 명의 시신은?”

“그들은 벌써 들판에 버려졌습니다. 월요일도, 목요일도 아닌 날에 장례식도 없이 던져졌으니 신에게 가지 못할겁니다.”

은준은 그의 말에서 이들이 목요일인 오늘 장례를 치른 것이 이들 문화에 어떤 의미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오늘은 특별 이벤트! 아침에 일어나서 댓글 30개가 넘어있으면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핳핳핳!

선추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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