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벤시몽이 또 다시 낯선 이들로 복작였다.
지난번 창고를 건설하던 때와 같이 어려 인부들과 큰 중장비가 트럭에 실려 속속 모여들었다. 거기엔 각종 자재도 포함되어 있었다.
벤시몽의 아이들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호기심이 들었는지 우루루 떼를 지어 다니며 이쪽에 붙었다, 다시 저쪽에 붙었다 하며 어른들을 성가시게 했다. 결국 자기 몸뚱이 만한 바퀴에 손을 데어보려던 아이가 위험하다 싶었는지 그의 엄마가 그를 안아들고 돌아가고, 그것을 시작으로 모두들 자기 어머니의 손에 붙들려 돌아가서야 조금은 한적해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벤시몽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았다. 은준으로부터 돌돌 말린 지폐 뭉치를 받아든 이가 장비와 인부들 그리고 자재를 실은 트럭을 인솔하여 벤시몽 서쪽으로 떠난 것이다.
퉁야의 가족이 벤시몽에 돌아오자 은준은 퉁야와 쉬사네를 불러 함께 지도를 펼쳐놓고 자신이 생각한 바를 그들에게 설명했다. 바오밥나무 군락지와, 지층이 드러날 정도로 고저가 확연해 흙을 밀어내거나 메꿔 밭으로 만들 수 없는 지역 등을 확인하여, 실질적인 농장의 주인인 은준과 고용인인 원주민들 사이에 혼란이 없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서쪽 끝에 있는 강의 물을 옥수수 밭으로 끌어오는 공사건에 대해서도 이들과 상의하였는데, 그 결과가 바로 벤시몽을 찾은 중장비들이었던 것이다.
“앞으로는 퉁야하고 쉬사네가 번갈아가면서, 혹은 같이 저들을 잘 지켜보도록해요. 계약한 대로 자재를 충분히 써서 수로를 파는지, 설계도면과 다른건 없는지. 수로의 폭이나 깊이 이런것들을, 무슨 말인지 알겠죠?”
“예, 알겠습니다. 보스.”
“물론 나도 종종 나와서 확인할 테지만, 그래도 누군가 공사기간 동안에는 쭉 지켜봐야 할 거에요. 어차피 밤이 되면 더는 작업하지 않을테니 그땐 돌아오도록 하고요. 또 뭐가 있으려나... 음. 아! 그리고 그 사람들이 쓸데없이 악어를 사냥하거나 하지 못하도록 잘 감시하고요. 그것 때문에 수로 위치를 조금 북쪽으로 이동시킨 거니까.”
원래는 강에 서식하는 악어 무리를 싹 잡아들여 고기는 원주민들과 나눠먹고 가죽은 존에게 팔려고 했던 은준이었다. 실제로 몇 차례에 걸친 사냥으로 거둔 악어 가죽이 그렇게 존을 통해 팔려나갔었다.
하지만 얼마전 있었던 바오밥나무 사건으로 인해 생각에 변화가 생긴 은준은 그 범위가 악어들에게 까지 미쳤다. 어차피 강 상류서부터 하루 끝까지 전 지역에 걸쳐 서식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것들을 전부 잡을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하게된 것이다. 옥수수 농장을 강가에서 일정 거리 떨어진 곳까지만 개간하기로 한 것과 같은 맥락의 결정이었다.
그런 상황인데 엄하게 번외 수입을 올리겠다며 공사장 인부들에 의해 악어들이 죽어나가면 은준으로서는 헛수고를 하게된 셈이 것이다.
그러는 동안 은준도 마냥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한국에서 공수해온 wii 게임기를 가지고 야와 함께 게임을 빙자한 부비적질도 하였으나 벤시몽 저택 내부를 청결히 유지하고 은준이 이곳에서 먹는 모든 것을 책임지는 야로서는 은준의 장단에 맞춰 놀기만 할 수는 없었다.
“하아, 하아. 이제 그만해야겠어요.”
은근히 몸을 많이 써야하는 게임기의 특성상 촉촉이 베어나온 땀 때문에 이마를 따라 몇 가닥 달라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뒤로 한데 묶으며 야가 부엌으로 돌아가버리자 은준도 사실은 이미 지쳤는지 철푸덕 쇼파에 쓰러지듯 앉으며 축 처진 빨래처럼 그 위에 널부러졌다.
“아, 나도 조금만 쉬다가 나가봐야지.”
잠시후 밖으로 나온 은준이 한 일은 울타리를 만드는 일이었다.
기존에 있던 주차장 겸용이었던 창고를 허물고 수영장을 만들었던 탓에, 다른켠에 주차장을 새로 만들어야 했는데, 이때 뒤로 공간을 깊게 만들어 이전 창고에 있던 물건들을 선별해 일부 옮겨둔 곳이 있었다.
그곳에 들어온 은준은 장갑과 보안경을 끼고 선반에 달린 스위치를 올리자 전자식 모터 소리와 함께 선반에 붙어있던 톱날이 ‘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은준은 바로 옆에 있던 목재를 하나 집어들곤 조금은 익숙하게 톱날로 목재를 밀어넣기 시작했다. 순간 톱날 뒤로 톱밥이 튀며 목재에 선이 그러지다가 곧 목재는 은준이 밀어내는 것과 동시에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그것중 토막은 바닥의 톱밥이 쌓인 곳에 던져넣고, 반대쪽에 들고 있던 기다란 목재는 다시 옆의 한켠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그곳엔 이미 방금 잘라낸 것과 똑같은 목재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진작에 이런걸 하나 샀으면 좋았을걸. 이렇게 편하잖아!”
은준은 다시 새로운 목재를 집어들고 전동 톱으로 짜투리를 잘라내며 흥얼거렸다. 그는 새삼스럽게 처음 벤시몽에 왔을 적 소 울타리를 만들겠다며 퉁야와 함께 톱을 들고 종일 톱질을 하며 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벤시몽 앞마당에 작은 울타리를 만드는데 돈 조금 아끼겠다며 목공소에 주문 제작도 하지 않고 직접 목재만 끊어다가 울타리를 제작했었는데, 이번엔 그때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전동 톱날이 달린 테이블쇼table saw를 하나 구입했던 것이다.
은준은 이 테이블쇼를 한 번 써보고 그 효과에 반하고 말았다.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나무를 손에 잡고 쭉쭉 밀어내기만 하면 원하느대로 잘렸던 것이다. 게다가 테이블쇼 자체에 조기대가 있어 일일이 길이를 재고 표시를 하지 않아도, 조기대를 설정해두고 목재를 거기에 맞추기만 하면 일정한 길이로 자르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는 은준이었다.
다만 그런 편리함 만큼이나 수동톱과 비교가 안되는 가격적인 문제가 있어 이 테이블쇼 하나를 구입하기 위해 한화로 30만원을 약간 초과하는 돈이 들어가긴 했지만, 처음 벤시몽에 왔을때와 다르게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지금에 와서는 그에게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물론 가장 편한 방법은 완제품을 목공소에서 주문하는 것이겠지만,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놀고 먹기 민망해 일을 만들어서 하는중이라나 뭐라나...
“그런데 진짜 언제 다 만들지? 바오밥나무 서식지 일대를 전부 울타리로 두루려면 엄청 많아야 할 텐데. ...뭐 어차피 그쪽 밭에 옥수수를 심는건 수로가 완성되고 난 다음일 테니 아직 시간은 넉넉하려나.”
“별 일 없으시죠, 아버지?”
“그래. 한국은 별 일 없다. 넌 어떻게 잘 지내고 있고?”
“저야 뭐 항상 잘 지내고 있죠. 하하하. 저녁은 드셨어요? 어머니는요.”
“집에 와서 네 엄마랑 같이 먹었지. 너도 밥 잘 챙겨먹고?”
“네, 걱정 마세요. 전 집에서 밥 해주는 사람도 따로 있어요.”
“그래. 그래도 한국 음식이 생각날텐데 멀어서 가져다 주지도 못해서 미안하다.”
“뭘요. 제가 먹고 싶으면 여기서도 얼마든지 사다가 먹을 수 있어요. 요즘 시대가 어느때인데요.”
은준은 한국의 저녁 시간에 맞춰 집에 안부 전화를 했다. 그의 아버지는 피곤한듯한 목소리였지만, 아픈신 것 같지는 않아보여 마음이 놓이는 은준이였다.
둘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소소한 것들을 챙겨가며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순간 자연스럽게 이번에 있었던 은준의 성당 고아원의 기부건으로 이야기가 옮겨갔다.
“그래, 참 잘했다. 돈을 벌었으면 쓰기도 해야지. 돈은 한 곳에 고여있으면 썩는 법이야. 돈이 썩으면 그것보다 고약한게 없어!”
그러던중 문득 은준은 그의 어린시절 기억에 남아있던 유니세프에서 집으로 왔던 책자와 고지서 이야기를 꺼냈다.
“그땐 나도 하곤 했지. 그땐 젊었을 때니까. 지금은 나도 안 한지 꽤 됐지?”
“그럼 언제 그만두신거에요?”
“너희들 고등학교 들어갈때쯤일거다.”
은준은 그의 아버지가 별다른 설명을 한 것은 아니지만, 어째서 그맘때쯤 기부하던 것을 중단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들 둘에 딸 하나. 삼남매 학교를 보내는 것이 쉬웠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라면도 명수대로 끓이는게 아니라 국수를 섞어 삶아먹었던 집이었으니 그 살림에 그때까지라도 기부를 해왔다는 것에 은준은 내심 감탄했다.
“사실 고지서 날아올 때마다 하지도 않았다. 여유가 되면 하고 아닐땐 못했지.”
그 말에도 은준은 실망하지 않았다. 그나마 만원이라도 있으면 당장 치킨을 사먹었을 그가 아니었던가. 자신의 나이에 이미 큰 형을 낳고 자신도 있었을 그의 아버지를 생각하면 은준은 스스로 아직도 철없는 어린애 같아 보이기만 했다.
“그런데 네 가까운 이웃에 사는 원주민 부족도 있다며 그들은 어쩌고 고아원에 먼저 기부를 할 생각을 했냐?”
“음, 제 생각에 그 사람들에겐 딱히 제가 더 이상 도움을 줄 만한게 없는거 같더라구요. 고아원 아이들이야 그 아이들이 제 밥벌이를 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여기 마을 사람들은 사실 제가 고용하면서 임금을 주고 있는데 거기에 공짜로 뭘 해주기도 그렇고. 팔다리가 없어서 밥벌이를 못한다면 모를까, 자기네들 농사도 짓고 소나 염소도 키우고, 어디처럼 흙탕물을 떠다가 가라앉혀 마시는것도 아니고 그것도 제가 다 샘까지 파놔서 거기서 깨끗한 물을 쓰고 있거든요. 또 제가 준 돈 모아서 옷도 사입고 콜라 같은것도 사다 마시는 상황인데 그런 사람들에게 제가 기부를 해버리면 그건좀 아닌거 같아서요. 전 이정도면 제가 할 만큼은 했다고 생각해요.”
“그래 네 말도 맞다. 오히려 자신의 수고없이, 아무 이유 없이 지원을 받게 되면 그것도 그 사람들을 망치는 길이 될 수도 있겠다. 언제까지 네가 그들을 책임질 것도 아닐텐데.”
“그렇죠? 제가 그 말이라니까요. 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쳐라. 제 생각이 그거죠!”
“그래. 그래도 그들에게 뭔가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을 일을 하는건 나쁘지 않을거 같다. 네가 그들에게 일자리를 준 것처럼, 교육과 같은 것을 통해 그들에게 있어서 앞으로 자신이 할 수 있을 일을 선택할 폭을 넓혀주는 것도 괜찮겠지.”
“...학교 같은거요?”
“난 그냥 예를 들었을 뿐이다.”
“...네, 생각해볼께요.”
은준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생각해보겠다고 말은 하였지만, 그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던게 있었다.
야를 통해 얌이 선생님이 꿈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도 얌에게 이곳 원주민 마을에 학교를 세우는 것을 생각했었다. 그러고나서 그 뒤에 은준 자신과 얌의 사이가 그런 관계가 된 이후로 그의 계획은 좀 더 구체적이 되었다.
얌이 사범대를 나와 선생님으로서의 자격을 갖추면 그녀를 벤시몽으로 불러들여 학교를 세우는 것. 하지만 얌은 아직 중등 과정을 다니고 있었고, 대학교를 졸업하기 까지는 아직도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때까지 학교는 미뤄두어야 할까? 아니면 먼저 다른 선생님을 구해야 할까. 하지만 지금으로선 학교가 있어도 배울만한 아이가 열 명 정도밖에 안 될텐데 학교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은준이 걱정하는 것은 얌과의 관계도 있었지만, 학교에 다닐 나이때의 아이들의 수 역시도 생각해야할 일이었다. 지금처럼 얌이 방학때마다 글자를 가르치는 정도라면 모를까, 정식으로 학교를 설립하려면 정부의 인허가도 필요할 터, 은준의 생각은 더욱 깊어만 갔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선추코 감사합니다~
좀비림은 조아라에서 연재하는 것은 아니고요, 저~ 옆에, 달동네에서 연재하고 있습니다. 자매품 폴라이트테일즈도 있답니다~ ㅋㅋㅋ 이건 질문에 대한 답일뿐, 광고가 아닙니다! 설마 게시판 회수같은일은 없겠죠? 무섭무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