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카파로 가자-89화 (89/107)

89화

벤시몽 저택의 관리서부터 농번기에는 소토어에 익숙치 않은 은준의 밑으로 원주민들과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였던 퉁야는 은준에게 고용된 이후로 벤시몽 저택의 1층에 있는 방 하나를 사용해왔다.

하지만 아무리 1층과 2층으로 나뉘어진 집이고, 주거공간이 다르다 할지라도 응접실과 주방이 1층에 있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겹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또한 무엇보다도 남성성이 강한 은준에게 자신의 영역 안에 또 다른 남성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로인해 자유로워야 할 그의 성생활이 방해받는다고 생각되었고, 실제로 퉁야를 의식한 야가 애써 소리를 참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시간과 공간 역시 제약 받아왔다. 일반적이라면 행위중의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싶은 생각은 없을 것이고, 그것은 은준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저택과 떨어진 곳에 새로 집을 짓고, 겨울 휴가를 받아 짐바브웨에 살고 있는 부인과 아들을 데릴러 갔던 퉁야였다. 그 퉁야가 마침내 은준에게 전화를 해왔던 것이다.

그가 전화한 이유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벤시몽이 가장 가깝다고 하는 도시 뉴카파로부터도 차를 달려 네다섯 시간을 가야 하는 오지였기 때문에 휴가를 갈 때와 마찬가지로 올 때 역시 누군가 차로 태워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출발할 때야 함께 출발하면 되었기 때문에 문제 없었지만, 올 때는 벤시몽 쪽에서 마중을 나가야 했기 때문에 날짜와 시간을 맞추는 것이 필수였다. 걸어서 뉴카파로부터 벤시몽까지 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때문에 유일하게 벤시몽에서 전화를 가지고 있는 은준에게 연락을 하였던 것이다.

통화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퉁야도 은준이 주말마다 뉴카파에 나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시간 약속이라기 보다는 며칟날 자신이 도착할 것 같다고 사전 보고하는 성격이 강했다. 은준 역시 이미 한 번 지난 겨울에 이 같은 경험을 했기에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돌아오는 주말. 은준과 야는 평소와 같은 시간에 그의 랭글러 모파를 타고 벤시몽을 떠났다. 하지만 인 날은 평소와 다르게 그의 뒤를 따르는 차량이 한 대 더 있었다. 운전석에 보이는 낯익은 얼굴, 쉬사네였다.

평소에는 한 대의 차량만 운행했겠지만, 이번에는 돌아오는 길에 태워와야 할 인원이 세명이나 되었기 때문. 퉁야네 가족이 짐을 얼마나 가져올지 모르지만 은준의 랭글러 모파 만으로는 자리가 비좁을게 분명했기에 쉬사네의 콧구멍에도 바람좀 집어 넣을겸 은준이 쉬사네에게 트럭을 맡기고 그가 퉁야들을 마중 나가도록 하였던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은준의 배려도 섞여 있었다. 짐바브웨에서 뉴카파로 오는 방법은 프리토리아 행 버스를 타고 오다가 중간에 내려 갈아타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물론 비행기를 타면 훨씬 빠르고 편하게 올 수 있겠지만, 비용적인 문제로 인해 불가능한 방법이었고.

거기에 이쪽의 장거리 버스라는게 우리나라처럼 고속도로를 광광버스를 타고 논스톱으로 쭉 이동하는게 아니라, 중간중간 블랙마켓에서 기름을 사 넣고 국경도 넘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그 거리도 서울에서 부산간 거리보다 더 기니 7살 사내아이까지 포함한 일행이 짐까지 챙겨들고 오려면 얼마나 힘들 것인가.

그러니 평소와 다르게 은준이 직접 나눔자리 성당에 볼 일이 있었던 은준은 자신 대신 쉬사네로 하여금 퉁야의 가족들과 만나면 곧장 벤시몽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차를 준비하였던 것이다.

“그럼 쉬사네는 여기서 있다가 퉁야들과 만나면 기다리지 말고 먼저 돌아가도록 해.”

“알겠습니다. 보스.”

여전히 보스라는 말이 익숙해지지 않는 은준이었지만, 이들이 말하는 보스가 한국에서 생각하던 마피아 따위의 보스가 아니라 사장님 정도의 호칭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미사에 참석해야하는 야를 먼저 나눔자리 성당에 내려준 은준은 곧장 쇼핑에 나섰다. 뉴카파는 번화한 도시였다. 표장된 도로는 넓고 현대식 건물들이 도로 양쪽으로 줄지어 서 있었다.

아프리카에 한 번도 와보지 못하였던 한국에 있을 때 은준은 아프리카라고 하면 동물의 왕국이나 오지 탐험 프로에 나오는 온 몸에 문신을 그리고 목창을 들고 사냥을 나서며, 아랫도리만 가리고 돌아다니는 여자들이 사는 그런 이미지를 생각했었다.

물론 월드컵도 유치하였고 케이프타운, 프리토리아 등 유명한 도시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었지만, 그런 도시는 몇 안되리라 생각했었으나 아프리카에 와서 직접 본 현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원체 넓은 땅인 탓에 여전히 개발되지 않은 곳이 더 많긴 했지만, 그렇게 따진다면 미국도 만만치 않다. 땅이 워낙 넓은 탓에 슈퍼에 한 번 가려면 두시간씩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는 말도 있는 미국 역시 도로만 있고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땅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로 여전히 원주민 부족들이 개척되지 않은 곳에 살고 있지만, 도시에는 큰 병원과 대학교도 있고 자동차 매장, 대형 슈퍼, 카페 등등 있을만한 것은 전부 있었던 것이다. 다만 역시나 넓은 땅 탓인지 건물의 높이가 그리 높지 않고, 건물들 간의 간격이 띄엄띄엄 있다는 것이 한국과는 달랐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린 은준은 바로 앞 마트에 들어가 카트를 끌고 쇼핑을 시작했다. 애초에 생각했었던 연필도 다스(dozen)채로 집어넣었고, 공책과 지우개는 물론 조그만 연필깍이도 인원수만큼 챙겼다.

스케치북, 색연필은 물론 아이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공과 여아들을 위한 장난감에 사탕도 봉지채로 몇 봉지나 챙겼다.

“그래, 애들한테 주는건데 역시 먹을게 빠지면 안되지.”

물론 공책과 연필도 좋은 선물이 될 테지만, 과자와 사탕이 있다면 금상첨화! 이런 것들을 약 스무명 분량으로 준비하고 나니 라면박스 같은 종이 상자 네 개로 자동차 뒷좌석이 가득 찼다.

두어시간 가까이 이어진 미사가 끝나고, 성당 문이 열리자 검은 피부의 사람들이 문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차에 기대어 서있던 은준은 언제나 야가 나올까 싶어 그들을 유심히 살폈으나 나오는 사람이 뜸해질 때까지 야나 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야와 일행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그 다음이었다.

하얀 옷을 입은 신부와 수녀 모두 피부는 검었다. 은준이 그들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덥지 않나?’ 하는 거였다. 수녀는 얇은 반팔의 하얀 수녀복을 입었지만, 신부는 방금 미사를 드리고 나와서인지 치렁치렁한 몇 겹의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명의 신부와 한 명의 수녀. 나란히 서서 눈으론 내 쪽을 보며 옆에 선 신부와 수녀에게 뭐라 말을 전하는 야와 얌. 그리고 그 뒤로 어지럽게 뛰어다니는 아이들. 머리가 조금 굵은 아이들은 그래도 차분히 신부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빨간색 테두리가 들어간 긴 흰 옷을 입고 있었는데 고아원의 아이이면서 청년 미사 복사단의 일원인 이였다.

마침내 은준은 신부 일행과 마주보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은준의 예상 밖으로 인사는 평범했다. 교회나 성당 절에 다니는 사람과는 만난적이 있지만, 목사나 신부 같은 사람과의 만남은 군대에 있을 때 종교활동중 멀리서 본 것이 전부였던 터라 어떻게 인사를 해야할지 몰라 약간은 걱정을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야로부터 들어서 알기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격식을 따지지 않는 것인지 신부와 수녀는 별다른 인사말 없이 일반 다른 사람들끼리 인사하듯 그렇게 입을 열었다.

“이쪽은 크리스핀 오네코 신부님이세요. 이쪽은 오딜 수녀님이세요. 그리고 여긴 제 보스인 은준 킴 이세요.”

야의 소개에 은준을 포함한 셋은 다시 한번 슬쩍 고개를 마주 숙이며 재차 인사를 나눴다.

크리스핀 오네코라는 이름의 신부는 52세의 나이 때문인지 안경을 쓰고 있었고, 뭉툭한 코는 큼직했고 살집이 조금 있었으나 뚱뚱하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어서 은준은 그를 보고 풍채가 좋다고 생각했다.

그 옆의 오딜 수녀도 안경을 꼈는데, 풍채 좋은 신부 옆에 서서 그런지 마른 몸이 더 말라보였지만 캬라멜색 피부에 넓은 이마는 햇빛에 반짝여 건강해보이는 사람이었다.

야를 통해 서로 통성명을 하고 간단히 인사를 나눈 일행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그들이 향한 곳은 성당이 아닌 그 옆과 뒤쪽에 있는 고아원 건물의 사무실이었다. 그중 아이들의 숙소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성당의 뒤쪽에 있었다.

신부는 풍채 만큼이나 유쾌해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사실 은준은 그의 얼굴 때문에 속으로 웃음을 참느라 고생을 해야만 했다. 옆은 바짝 깎은 머리에 위에만 까만 머리가 역시 짧았고, 주먹코에 옆으로 볼이 빵빵해 마치 만화영화에 나오는 짱구의 얼굴이 연상되었기 때문이었다.

‘머리라도 길면 좀 덜 할텐데, 머리 윗부분은 작고, 아래에 볼 부분만 빵빵하니...’

그런 것과 별개로 기부에 대한 이야기는 간단히 끝났다. 금액은 100달러 정도였지만, 이것이 그렇다고 큰 금액이 아니라 대단한 사업을 할 만한 수준도 아니었고, 은준의 요구도 성당쪽 보다는 고아원 아이들의 생활비로 쓰였으면 하는 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이었다.

대신 이들은 주로 야와 얌 자매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워낙 어려서부터 보아온 신부였기 때문에 그가 알고 있는 에피소드가 많았던 것이다. 덕분에 자리가 자리인지라 불편해하던 은준도 그가 몰랐던 야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고, 돌아가기 전에 다시 한번 그가 준비해온 선물을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작은 행사를 가졌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은준의 손에 들린 것은 100달러 짜리 기부금 영수증이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근데 일일연재를 했더니 댓글이 줄어드는 역효과가..ㅜㅜ벤시몽의 원주민 마을의 교육은 얌의 몫인 겁니다!! 나중에 얌 대려와서 선생시키고 매일 매일 3p.... 읭?!

원래는 신부들과 대화장면을 넣으려다가, 중요인물도 아니고 해서 가차없이 싹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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