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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카파로 가자-85화 (85/107)

85화

천천히 차를 몰아 지도에 표시된 지점들을 둘러보던 은준은 창문을 내리고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즐거워하는 야를 보며 자신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짐을 느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너무 과민하게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조용하네?’

인적이 뜸한 곳에 가면 당장이라도 야생동물 천지에 맹수의 습격을 받을 것 같았던 애초의 걱정과 달리, 오히려 그가 몰고온 차량 때문에 몸을 피했는지 좀처럼 보이지 않는 동물 때문에 조금은 심심할 지경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벤시몽에서 뉴카파에 왔다갔다 할 때도 별 일 없었지?’

벤시몽은 가장 가까운 도시인 뉴카파로부터도 멀리 떨어진 곳이다. 얼마나 떨어졌냐면 차를 타고도 네다섯 시간은 달려야 할 정도로, 그 사이의 도로 상태가 좋지 않음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오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인 것이다.

‘사람이 들어와 살면 그곳을 사람의 영역으로 인식해 동물들도 안보인다고 언젠가 들었던 것 같은데, 그 때문인가?’

은준은 문득 벤시몽에 처음 왔을 때 보았던 그 표범을 떠올렸다.

‘어쩌면 전 주인이 죽고 난 뒤로 이 일대의 주인은 그 표범이 아니었을까?’

은준은 차를 조심히 몰았다. 언제 어디서 갑자기 토사가 무너진 곳이나 절벽이 있는 지대가 튀어나올지 몰랐다. 그가 탐사를 나온 이 근방은 차가 다니던 곳이 아니었고, 그도 잘 모르는 지역이었다. 한눈 팔고 운전을 하다가는 크게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또 실제로도 평지인데도 지반이 솟구치거나 혹은 내려앉은 것 같은 지형을 한 곳이 있어서 그곳에는 지도에 빨간색 형광펜으로 표시를 해두었다.

그의 지도에는 곳곳에 이런 빨간 형광색 테두리가 그어진 곳이 보였는데, 모두 바오밥나무와 같은 큰 나무나 우기에는 물이 고일 것 같은 커다란 웅덩이 등, 농기계로 작업을 하기에 어려운 곳들이었다.

차를 탔다고는 하지만 한번에 쭉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조금 가다가 멈춰 살피고 가다 멈춰 살피며 지도에 표시를 하며 다녀야 했기 때문에 이 작업은 며칠간 계속되었다.

그가 준비한 위성 사진은 이 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는데, 실제로 사진상에 주변과 다른 색깔을 하거나 하는 곳들은 대부분 나무가 있거나 또는 지형의 요동이 심해 농기계를 이용하려면 농지정리가 필요한 곳들이었다. 물론 그렇지 아니하고 단순히 풀이 나고 안나고 한 곳에 따른 색의 차이 때문인 곳도 있었다.

벤시몽 저택에서 은준은 커다란 탁자에 지도를 펼쳐놓고는 고심에 빠졌다. 기존의 옥수수밭과 다르게 장애물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도처에 흩어져 있어 농기계를 이용해 광범위하게 농사를 지으려면 이것들을 제거할 것인지 아니면 그것들을 피해 돌아서 운용을 해야 할지 정해야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결론을 내린바가 있었기 때문에 은준은 다시, 그렇다면 이 흘터져있는 장애물들을 어떻게 묶어 분류를 할 것인가를 정해야만 했다.

단순히 바오밥나무와 같은 장애물이 먼 거리를 두고 띄엄띄엄 존재했다면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주변으로 몇 평 정도 테두리를 두르듯 공간을 두고 농기계를 운용하면 되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이유가, 그렇게 서로 떨어져 있는가하면, 어떤 것은 몇 미터, 혹은 십수미터 간격을 두고 불규칙적으로 흩어져있어 한 개체마다 각각 공간을 부여해서는 오히려 그 사이에 낀 땅 때문에 일의 능률이 비효율적이게 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은준이 결정을 내리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미 큰 욕심 내지 않기로 했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사실상 바오밥 나무들을 베어내지 않고 보존하기로 결정한 순간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

이미 기존에 있는 옥수수밭 만으로도, 아니 지난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수익 만으로도 은준으로서는 평생 먹고 살 만큼 벌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가 살아온 생활수준대로 앞으로도 살아간다면 말이다.

그의 손에 들린 펜이 거침없이 붉은 선을 그어나갔다. 바오밥나무가 자라는 곳을 한데 묶어 붉은 선으로 테두리를 나눴고, 조금 애매하다 싶은 것도 대범하게 선을 넓혀 포함시켰다.

“여기는 웅덩이가 있던 자리였지?”

제법 큰 물웅덩이였다. 비록 겨울이 되어 물이 말라 밑바닥에 조금 고여 있는 수준이었지만, 다시 우기가 되면 그 웅덩이에 물이 가득 차고 야생의 동물이 물을 찾아 모일 터였다.

“물웅덩이가 있다면 여기만 조금 남겨둬서는 의미가 없지 않을까?”

어쩌면 초식 동물들은 물을 마시러 왔다가 옥수수밭을 전부 해먹을지도 몰랐다. 또 그런 초식 동물을 노린 맹수가 옥수수밭에 숨어있다가 인명 피해가 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또 어차피 이동을 시작하면 다 밟고 갈 수도 있고. 애써 키워 남 좋은 일 시키는 꼴이 될 수도 있지. 아예 이 위쪽으로는 싹 남겨두자! 북쪽으로 갈수록 땅이 굴곡이 심해 일이다 싶었는데, 차라리 그대로 놔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그렇게 마음을 정하니 한결 지도가 깔끔해졌다. 사실상 기존의 옥수수밭과 벤시몽 저택 북쪽으로의 은준의 땅은 사백 헥타르 정도였는데, 그중 이백 헥타르를 포기한 셈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은준은 문득 ‘이백 헥타르면 손실이 얼마일까...’하는 상념을 떠올리다가 이내 고개를 저어 흩어버렸다. 이미 결정된 내용을 가지고 붙들고 있어봤자 속만 쓰릴 뿐이었다.

기존에 있는 옥수수밭이 오백 헥타르에 그의 집인 벤시몽 저택과 원주민 마을을 포함한 일대가 약 백 헥타르, 그리고 이번에 물웅덩이 근방으로 하여 북쪽으로 아예 포기해버린 땅이 이백 헥타르.

그리고 남은 땅이, 저택 북동쪽으로 이백 헥타르 남동쪽으로 다시 이백 헥타르, 다시 서쪽으로만 무려 팔백 헥타르가 정리가 되었다. 이중 서쪽의 팔백 헥타르 안에는 바오밥나무니 뭐니 하는 사유로 뭉텅뭉텅 구멍이 뚫려 있었으나 작은 지도에 표시해두고 보니 보기보다 얼마 안되는 땅이었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해버리는게 속 편하지. 괜히 조금이라도 더 심어보겠다고 기계가 못들어가는 곳엔 사람 시켜서 일일이 심고 갈고 거두고 해봤자 얼마나 되겠어. 신경만 쓰이지. 차라리 그곳에다가는 휴식 공간을 만들까? 작업 하다보면 사람들도 쉬고, 중간에 옥수수 모아놓을 곳도 필요할테고. 그럼 한결 낫겠지.”

은준은 생각해보니 그게 낫겠다 싶었다. 큰 나무도 있으니 그 밑에 나무 그늘이 생기면 좋은 휴식처가 될 터였다.

“아차! 서쪽 강가가 문제구나. 전에는 그냥 악어를 다 잡아버릴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생각하니 해선 안 될 일이었어. 악어들도 애초부터 이곳에 살아온 생물인데 그걸 밀어내고 전부 옥수수밭을 만들 생각을 했으니...”

그는 이번 바오밥나무 건을 계기로 크게 깨닳은게 있었다. 이곳 아프리카에 오기 전에는 그도 텔레비전에서 하는 자연 다큐나 환경 다큐 프로그램을 보면서 농장주들이 자연을 파괴해가면서 돈을 버는 모습에 조금만 욕심을 덜 부리고 자연과 공존하며 개발을 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는데, 이곳에 와서 옥수수 농장을 키워 큰 돈을 벌다보니 어느새 그런것쯤은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니 악어의 문제도 크게 신경쓸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그 악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강 속에서 살거나 때때로 강변에 올라와 몸을 데우는게 전부, 옥수수 농장을 강에서 조금만 물리면 악어가 옥수수밭이 있는 곳까지 멀리 나올 일이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은준은 머리가 개운해지는 것을 느꼈다. 고민되었던 문제는 모두 그가 조금만 욕심을 내려놓음으로서 전부 해결되었다. 그러자 그는 새삼스럽게 새로운 상념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서 어디에 쓰려고 하는 것일까?”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지금껏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애초에 아프리카에 올 때는 작은 땅을 일궈 천천히 늘려나갈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이처럼 큰 돈을 벌었을 때에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선 생각해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당장은 큰 침대, 수영장, 게임기와 대형 TV와 같은 소소한 것들을 사는데 일부를 사용했지만, 대부분의 돈은 그대로 통장에 잠들어있는 채였다.

하지만 이 순간 작게 깨닫고 욕심을 덜어내자 은준은 자신에게 그 큰 돈이 묶여있다는 것에 어느정도 책임감과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갈랑입니다.

언제나 제 글을 기다려주시는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선추코 또한 감사드립니다.

사실 요즘 계절을 타는지 영 손이 안가고 있습니다.

허무하고 무의미하고...가슴은 울렁울렁.. 아무것도 안하고 바람부는 언덕에 올라 앉아 아래를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싶은 그런... 마음입니다 ㅜ쓸쓸한 총각의 가슴을 채워줄 그런 여우가 필요합니다 흙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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