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카파로 가자-84화 (84/107)

84화

차가 준비되자 은준은 자신 소유의 땅을 돌아보러 나가기로 했다. 일전에도 처음 이곳 벤시몽 저택에 왔을 당시 이미 돌아본 바가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소유한 땅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알아보기 위해 땅의 경계만을 돌아본 것이었으니, 그 안을 속속들이 아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본격적으로 미개간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먼저 생각한 바와 같이, 지도에는 나와있지 않은 지형지물들을 파악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 도시에 나가 구글 위성 지도에 찍혀있는 항공 사진을 출력해 온 것이었다. 참고 자료로서 말이다.

은준은 집을 떠나기 전 짐을 챙겼다. 그의 소유의 땅을 붉고 굵은 펜으로 표시해둔 보통의 지도와 지형지물을 대략적으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해상도인 위성 사진 지도. 그리고 길도 이정표도 없는 아프리카의 땅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려줄 GPS기기. 물, 약간의 먹을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야생에서 자신을 지켜줄 라이플까지.

이런 것들을 하나씩 차 안에 챙겨넣던 은준은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그가 불의의 습격을 당했을시 야생 동물을 쫓아내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을땐 사살하는데 가장 중요한 라이플이었다.

“이거 너무 길은데?”

문제가 되는 것은 라이플의 길이였다. 1미터가 훌쩍 넘는 길이 때문에 만약 사자와 같은 동물이 창문에 바짝 붙어 위협한다면 라이플로는 쏘아서 쫓아내는 것이 불가능해보였던 것이다. 그나마 보조석 쪽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운전석 쪽에서는 방도가 없었다.

게다가 벤시몽 저택의 전 주인이 사용하던 이 사냥용 라이플은 대부분의 저격총이나 사냥용 라이플에 많이 쓰이는 볼트액션 방식으로, 쏠 때마다 매번 당겨 장전을 해줘야 했기 때문에 연사도 어려웠다. 멀리서, 그리고 안전한 곳에서 한발 한발 쏘는 것이라면 무리가 없겠지만, 동물이라고는 동물원에나 가야 볼 수 있었던 도시에 살던 은준으로서는 야생동물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그의 머릿속 상상에는 육식 동물이 차에 엉겨 크고 긴 발톱을 창살틈으로 집어넣어 휘젓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군용 소총 같은거라도 하나 사야하나? 돈은 있고, 여기서라면 못 구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그에게는 초반 벤시몽에 정착할 때부터 그가 필요로 하는 이것 저것들을 대신 구해다 주었던 중개상인 존이 있었다. 게다가 그가 은밀하게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도 아닌, 너무나 자연스럽게 은준에게 총기가 필요하면 구해줄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을 생각하면 필시 불가능한 일이 아님에 분명했다.

“K-2나 M-16같은 소총이 익숙하기는 한데, 길이가 어느정도였더라? 한 이정도였나?”

은준은 군대에 있을 때 사용했던 총을 떠올리며 양 손을 벌려 길이를 가늠해 보았다.

“어어, 이것도 생각보다 길었네. 이정도쯤 짧은 건가?”

그는 라이플에서 약 한 뼘 정도 짧아진 모습을 생각하며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정도면 줄어드나 마나 아냐?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직접 보면 또 틀리려나.”

은준은 아주 일반적인 보병 소총수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가 총을 들고 사격 자세를 취해보는 것은 사격훈련장이나 혹은 초소 등에서가 전부였고, 차 안에서 창문 밖을 향하는 일 따위는 결코 없었다. 총을 소지한체 이동한다는 것은 육공트럭 뒤에 타는 것이지, 보조석은 간부의 자리였다.

“차라리 기관단총이 짧고 가벼운게 좋긴 하겠는데, 그런걸 구하다가는 알게모르게 어딘가에 알려지는거 아닌가 몰라? 막 한밤중에 방 안에 가스같은게 들어와서 자고 일어나보니 모처의 창고안? 이런거?”

언젠가 보았던 헐리우드 영화에서의 장면을 떠올리며 가볍게 웃고난 그는 다시 생각해보니 한국이 아닌 이곳 아프리카에서라면 농담만으로 끝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덜컥 들었다.

“그냥 권총이나 하나 구해볼까. 원래 미국같은데서도 사냥하는 사람들이 근거리에서 갑자기 뭔가 튀어나올 것을 대비해서 권총을 가지고 다닌다는데, 나도 멀리서 달려드는 녀석은 이 사냥용 라이플로 쏘고, 창문에 붙은 녀석은 권총으로 쏘는게 차라리 쉬울지도 모르겠네.”

은준은 다시 생각해 봐도 그것이 가장 괜찮은 생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도 권총은 한 번도 직접 만져본 적도 없었고, 사격은 꿈도 못 꿔본 일인지라 사격시 얼마만큼의 명중률을 낼 수 있을지 자신 없었으나 어차피 바로 앞에서의 사격이라면 빗나가지도 못할 것이라며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다만 오늘은 당장 권총을 구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픽스드 나이프 하나를 챙겼다. 창문에 면상이라도 붙이면 콧잔등이라도 긁어줄 요량이었던 것이다.

사실 거창하게 픽스드 나이프라고는 했지만, 사실상 예전 창고에 있던 조금 큼직한 나이프에 불과했는데 은준은 아마도 이것이 전 주인이 사냥한 동물을 도축할 때 사용했지 않았나 하고 추측하는 물건이었다.

생각을 막 정리한 은준은 이제 차에 올라타 저택을 나서려 했다. 그런데 그런 그를 배웅하러 나온 야가 옆에 섰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위험할 것 같으면 차에서 내리지 말고요.”

집안일을 하다 나왔는지 걷어올린 소매 밑으로 물방울이 맺힌 가는 팔목이 눈에 들었다. 고개를 들어 야를 보려던 은준은 그녀의 뒤편으로 청명한 하늘과 선명하게 떠있는 태양을 발견했다.

“... 같이 드라이브나 갈까?”

겨울이라지만 어디까지나 아프리카의 겨울이었고, 은준에게 있어선 약간 서늘한 날씨에 불과했던 터라 무척 좋은 날씨에 속했다. 그런데 막 떠나려는 찰나 집안일이나 하고 있던 야를 보니 순간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열여덟살. 한국에서라면 한창 친구들과 학교에서 떠들 나이인데, 야는 벤시몽에서 저택을 관리하느라 바쁘다.

물론 주말마다 동생인 얌을 만나러 은준과 함께 뉴-카파에 다녀오거나 하지만, 그 외에는 거의 벤시몽 저택 울타리를 나서는 법이 없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답답해할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에 관해선 아무말 없는 야의 속내가 궁금하기도 한 은준이었다.

그런 저런 생각 때문에 순간적으로 입에서 나온 소리였는데, 야는 생각 이상으로 기뻐하며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벗어 현관 앞 테라스의 난간에 던지듯 걸쳐놓고는 치렁이는 치맛단을 잡고 뛰어와서는 보조석의 문을 열고 안에 들어와 앉았다.

그러더니 은준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곤 당기듯 그에게 달라붙어 입을 맞춰왔다.

잠깐 사이에 가볍게 닿았다 떨어진 것이었지만, 야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눈은 반짝였다.

“기뻐요, 킴!”

문든 은준은 자기 때문에 야가 너무 답답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동생인 얌이 활발한 것과 반대로, 언니인 야는 정적이고 얌전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해왔는데, 함께 드라이브를 가자는 소리에 이렇게나 반응할 줄은 그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어쩌면 어디로 가기 위한 것이 아닌, 말 그대로 드라이브기 때문인걸까? 아니면 정말 집에서만 있었던 것이 답답했던 걸까...’

은준은 굳이 야를 집 안에 가둬둘 생각도, 그럴 의도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한 번 이야기 해보기로 생각했다. 하지만 차가 출발하고 내내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 야의 모습에 번번이 말 할 기회를 놓치고 만 그였다.

============================ 작품 후기 ============================

짜잔~

선추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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