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쉬사네들로부터 이곳 사람들이 바오밥나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게된 은준은 더욱 골치가 아파졌다. 이곳에 연고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은준으로서는 원주민들의 협력이 여실히 필요했는데, 괜한 일로 그들과의 사이가 틀어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마냥 쳐다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인 것이, 왜냐하면 은준은 정부와 계약하기를 그가 구입한 땅에 옥수수를 재배하여 공급하기로 하였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와서 제대로 못 한다고 전부 몰수하고 쫒아내면 어쩌지?”
은준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이미 그가 적법한 절차를 통해 돈을 주고 구입한 땅이었지만, 그가 생각하는 아프리카란 해적, 내전, 성폭행, 무법지대 등등, 광활한 자연과 야생동물과 같은 좋은 것보다는 안좋은 것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그가 말을 듣지 않으면 혹시라도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정부도 온전히 믿기엔 신뢰성이 높지 않았다.
“문의를 해볼까?”
엄밀히 말해 갑과 을의 입장은 아니지만, 심적으로 ‘을 인 것 같기도하고?’ 라고 느끼고 있는 은준으로서는 어떤 결론이든 정부측의 확실한 대답이 있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바오밥나무를 보존한 상태로 일정 수확량의 부족분을 인정한다거나, 혹은 원주민들의 반발에 상관없이 전부 갈아엎으라거나 말이다.
그런데 은준은 쉬사네의 말을 듣고 주관적인 의견 외에 객관적으로 원주민들이 바오밥나무를 어떻게, 어느정도로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볼겸 인터넷을 검색하던중 깜짝 놀랄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바오밥나무가 보호수종이라고? 그럼 베면 안되는거 아냐? 아아... 멸종위기종은 아니고. 휴, 그건 다행이네. 그래도 막 베어내면 잡혀가는거 아냐?”
나무를 베었다가 감옥에 갇히는 상상을 하며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짧게 웃음을 내뱉었으나, 잠시 생각해보니 웃을일이 아닌 듯 했다.
“설마... 아니지? 막 잡아다가 총살 시키고 그러는건 아니겠지? 어휴...!”
안좋은 생각을 자꾸 하다보니 은준의 머릿속에서는 아프리카는 부패한 무법도시라는 이미지가 생겨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망상을 휘저어 흩어버리곤 고민했다.
“음.. 씨앗이나 묘목 이런 것은 반출을 정부가 관리하는구나? 형량같은거는 안나왔네? 설마 초범도 징역은 아니겠지. 벌금이나 구류 이런게 아닐까? 그런데 이런것보다 벌목이 더 큰 죄 아니려나? 큰 나무는 수천살씩 먹었다는데, 생각해보니 천연기념물급이네 완전!”
천연기념물을 훼손했으면 그 자체로 범죄이겠지만, 생각해보니 그와 같은 나무가 수두룩 했던 것과 바오밥나무에 아무런 표시도 없었던 것을 기억하며 그런 것은 아닐 것이라 애써 생각을 지웠다.
“무슨 혼잣말을 그렇게 해요? 킴.”
컴퓨터앞에 앉아 계속 중얼거리고 있자 그런 그에게 야가 다가왔다.
“어? 어 그래, 잘 왔어. 뭐 좀 물어볼테니까 아는게 있으면 알려줘.”
은준은 아무래도 현지인이고 도시에 살았던 야라면 뭔가 알고있지 않을까 싶어 그녀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인터넷에서만 정보를 찾는 것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바오밥나무? 보호수종? 웅... 잘 모르겠어요. 들어본적 없는 것 같아요. 중요한 거에요?”
하지만 오히려 방금 인터넷을 찾아본 은준보다 더 모르는 야였다. 인터넷에 알려진 관광명소가 있는 동네 주민은 잘 모르지만, 타지에서 온 사람이 오히려 더 잘 아는 이치였다. 식민지 시대때 워낙 많은 바오밥 나무가 잘려나간 뒤로, 타국가와 외국인은 오히려 바오밥나무 보호에 앞장섰지만,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겐 너무나 흔한 나무였기에 오히려 무관심한 것이다.
“끙... 차호중 선생님이 그래도 여기 오래 계셨으니 잘 아시려나?”
그나마 인맥이랄 수 있는 이가 그 뿐이라 은준은 한 번 전화라도 해볼까 하다가 마음을 돌렸다.
“아니야. 이러들 저런들 개인 입장에서 어떻다 하는 거겠지. 차라리 확실하게 담당자에게 물어보는거야. 그게 확실하지!”
은준은 전화기를 들고 그가 받아두었던 옥수수 수매 담당자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벤시몽 농장을 구입하며 만났던 이의 전화번호를 찾아 그들과 통화를 하였다.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담당자가 아닐 경우 담당자에게 전화를 돌려주는 친절을 기대할 수는 없어 결국 그가 얻은 것은 담당과의 외부 전화번호가 전부였다.
하지만 담당자라고 전화번호를 받았던 것도 사실은 담당자가 아닌 바람에 은준은 이사람 저사람을 건너 건너 거의 한 시간을 전화기를 붙잡고 있은 뒤에야 진짜 담당자라고 할 만한 사람과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슨 한 번에 받는 사람이 없어? 대체 몇 번을 걸어야 그제서야 받는건지 원...”
한국에서라면 벌써 몇 번이고 민원이 들어갔을 일이지만, 은준은 그러려니 하고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도 이곳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있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바오밥나무는 최대한 손대지 않는 것으로,(그러나 절대 안된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옥수수 농장에 관해서는 은준이 고민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상관없다는 답변을 듣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옥수수 수매를 왔던 담당자도 수확량에 대해서 뭐라고 한 적이 없구나. 많다고도 적다고도. 사실은 내가 옥수수 농사를 져다가 판매하지 않아도 상관없는거 아냐? 뭐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담당자들의 반응에 은준은 허탈해하면서도 마음을 놓았는데, 그의 그런 추측은 그런대로 진실과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애초에 은준이 리소테에 오기 전에도 식량이 부족해 굶어 죽는 사람은 없었다. 석유 재벌만큼은 아니지만, 다이아몬드 광산을 가진 왕실은 전 국민이 일을 하지 않아도 먹여살릴 능력이 있었다. 물론 리소테 왕국이 큰 나라가 아니라는 점도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때, 그런 상황에서 자기네 나라에 와서 농사를 짓겠다는 외국인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로서는 어차피 사람보다 땅이 많은 상황이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어차피 땅도 남아도는데 조그만 밭떼기 가지고 소꿉놀이 하게 하는 것 보다 조금 밀어주고 그로 하여금 직접 하기엔 귀찮지만 누가 대신 해준다면 나쁘지 않을, 식량 자급자족을 실현하는 것도 괜찮아 보였던 것이다.
물론 리소테 왕국 자체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내부에 존재하다보니 그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왕실과 정부에서 생각하기에는 그런 것 하나라도 이뤄놓으면 외부에 보이기에 괜찮은 지표 하나가 생기는 일이었다. 식량 자급률 말이다.
헌데 이 외국인이 생각보다 굉장히 부지런(?)했다. 게다가 손도 커서 가까운 부족 하나를 끌어들여서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적은 땅에 빽빽이 옥수수를 심더니 그것도 모자라 일 년에 두 번씩이나 수확을 해내기 시작했다.
실질적으로 거기서 이미 그들이 원했던 목표를 초과 달성한 뒤였다. 어차피 도시 밖에 사는 사람들은 어느정도 각자 텃밭에서 일궈 먹기도 했고, 남는 것이 있을땐 그런 것들이 도시 등지로 유입되기도 했었다. 그 외에 모자란 부분만 채워주면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은준에게 수확량을 늘리라 말라 말 할 필요가 없었던 것. 이제는 공급이 더 늘어날 경우엔 역으로 식량을 주변의 다른 지역으로 수출할 수도 있을 상황이 되었다. 그래봤자 왕실 재정에 비하면 껌값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정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공무원이 없는 관계로 알 길 없는 은준은 그에게 하달된 지침대로 그가 불하받은 땅을 개간해 옥수수 농장으로 만들되 적당히 보존이 필요한 것이 있는 곳은 보호 구역으로 만들어가며 지속적으로 수확량을 늘려가기로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드립니다~
저번화에 올라온 댓글 중에 벤시몽 농장의 크기에 대해서 확실히 해달라는 글이 있었네요.
확인해보니 제가 큰 실수를 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농장 크기를 헥타르에서 평으로 변환할때 한 자리를 적게 봤습니다; 본문에 60만 5천평이라고 섰었는데, 605만평이 맞습니다. 해서 그 부분을 수정하였습니다.
헷갈리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