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은준은 일찌감치 쉬사네와 다른 마을 남자 몇 명과 함께 차에 올랐다. 그리고 트럭 뒤에는 커다란 톱이 하나 실려 있었는데 그 크기가 굉장해 톱날 너비만도 50cm즈음 되었고 좌우 길이는 그보다 더해 트럭 짐칸에 싣고도 그 뒤로 1m는 더 삐져나올 정도로 길었다.
이 드는데만도 두 사람은 필요할 것처럼 보이는 대형 톱은 옥수수밭으로 개간할 땅에 자라고 있는 수많은 바오밥나무를 벌목하기 위한 특별한 무기였다.
소설 어린왕자에도 나오는 이 바오밥나무는 소혹성 B612를 망가트리는 장면으로 나올만큼 무척이나 커서 술통처럼 큼직한 기둥은 둘레만도 10m에 달하고 그보다 큰 것도 있을만큼 놀라운 나무였다.
하지만 이 나무들을 베어내고 옥수수밭을 개간해야할 은준에게 있어서는 골치아픈 나무일 따름이었다. 바오밥나무를 베어내려는 사람이 은준 혼자만이 아닌 덕분에 수소문하여 지금과 같은 이야기속 거인족이 썼을법한 톱을 구하긴 했지만, 사실 기둥을 베어내는 것 보다는 땅 속에 박힌 뿌리를 뽑아내는 것도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차는 곧 나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어차피 거리는 벤시몽 농장에서 가까이에 있는 곳이 첫 번째로 선정되었고, 다만 크고 묵직한 톱 때문에 차를 타고 온 것에 불과했다.
“와... 진짜 크네. 이 톱으로 되려나?”
막상 바오밥나무 앞에 선 은준은 하늘을 지탱하는 기둥처럼 곧게 솟은 커다란 바오밥나무의 덩치게 기가 죽었다. 게다가 그 둘레도 숫자로 들었던 것보다 더 넓어보여 그가 준비한 톱으로 좌우이동이 될지 걱정이 되기까지 했다.
겨울철 날씨 때문인지 따라온 마을 주민들이 소극적이자 은준은 쉬사네를 불러 먼저 시작을 하기로 했다.
스윽 스윽
두껍고 맨질맨질해 보이는 껍질에 톱날이 닿으며 잠깐 연두색 속껍질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내 하얀 속살을 내비치고 말았다.
톱날이 한번 이동할 때마다 나무에선 하얀 톱밥이 부서져 내렸다.
“허억, 허억! 아, 팔 아파...”
그런데 순조로웠던 시작과 달리 톱질을 채 열 번도 채우기 전에 은준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한번씩 번갈아가며 당겨야 할 톱질은 곧 멈췄고, 톱날은 바오밥나무 기둥에 낀 채로 흔들렸다.
은준은 좌우 팔을 한쪽씩 감싸 안으며 주물렀다.
“이게 힘드네. 안쓰던 근육이라 그런가? 아니면 기둥이 두꺼워서 그런가? 한 번 당기는데 힘이 다 빠질 것 같데.”
“진짜 어려운데요? 차라리 도끼로 칠까요?”
어려운 것은 은준만이 아닌지 쉬사네의 얼굴도 잔뜩 찌푸려져 가관이었다. 하지만 은준은 손을 내저었다.
“이 두꺼운걸 도끼로? 어림 없을걸. 그리도 차라리 톱으로 써는게 낫겠어.”
잠시 쉬며 회복한 둘은 다시 번갈아가며 호흡을 맞춰 톱질을 했다. 금세 팔이 뻐근해왔지만, 은준은 겨우 톱질 열 번도 채우지 못하는게 부끄러웠는지 다문 입 속으로 ‘악! 악’ 하는 소리를 삼켜가며 기어코 열 번의 톱질을 채우곤 손을 놓고 물러났다. 그의 늘어트린 두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으아! 대체 이걸 어떻게 톱으로 베어내는 거지? 전기톱 없나? 전기톱! 아, 있어도 날이 짧아서 어려울텐데. 그 제재소나 이런데 있는 대형 톱이 있으면 좋겠다.”
은준은 자신의 땅에 있는 모든 바오밥나무를 베어내고 옥수수 농장을 세우겠다는 결심을 벌목 시작 10분 만에 포기하고 싶어졌다.
교대로 투입된 이들은 그래도 은준보다는 오래 붙어있었다. 고목나무에 매달린 매미처럼 발을 기둥에 대고 톱의 손잡이만 잡고 온 몸을 이용해 톱을 당기니 은준처럼 팔힘으로만 당길 때보다 더 수월히 해나가는 듯 보였다.
그렇지만 이들 앞에 새로운 난관이 닥쳐왔다.
“어어?”
톱을 당기던 남자 한 명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은준이 무슨 일인가 싶어 살펴보니 그가 아무리 톱을 당겨도 톱이 움직이지를 않고 있었다.
“톱이 꼈어! 뒤로 빼, 뒤로!”
“안돼! 완전히 눌린거 같아. 나무가 너무 무거워서 그래!”
기둥 아랫부분을 파고들던 톱날이 위에서 내리누르는 바오밥나무의 무게에 눌려 끼이고 만 것이었다. 한 번 끼인 톱날은 사람들이 달라붙어 아무리 흔들고 당겨봐도 속수무책이었다.
“아아, 끼이기 전에 빼서 다른 각도로 베었어야 했는데...”
은준은 나무와 한 몸처럼 꿈적도 않는 톱을 보며 머리를 쥐었다.
이들도 그냥 무작정 톱만 들고 온 것은 아니었다. 두꺼운 나무를 베다 보면 톱이 사이에 끼는 일은 부지기수. 그럴땐 그 전에 반대쪽에서 베어들어가거나 쐐기 모양으로 틈을 벌려가며, 벌어진 틈엔 기둥을 세워 나무가 눌리지 않게 한 다음 톱질을 해야 했다.
은준들도 바오밥나무가 워낙 큰 탓에 앞의 방법은 엄두도 못 내고, 뒤의 방법을 써 보려 했었으나, 파고 들어갈 깊이를 잘못 생각한 탓에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톱질을 하다 물러선 마을 주민들은 은준과 반대로 오히려 얼굴 표정이 폈다. 어째서인지 쉬사네 역시 크게 내색하진 않았지만, 다행스럽게 여기는 듯 했다.
그 이유는 이들의 문화에 있었다. 아프리카의 부족중에는 이 바오밥나무를 신성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다. 그런 바오밥나무는 부족의 주술사가 관리하며 사냥감의 가죽이나 뿔, 뼈와 같은 것들을 기둥에 걸어놓거나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은준이 바오밥나무를 벤다고 했을 때 그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으니 따라오긴 했으나, 그들 마을의 수호목(守護木)이 아니더라도 꺼림칙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제 톱이 나무 사이에 껴버렸으니 더는 벌목을 하지 못하리라며 속으로 개운해하는 것이었다.
“도끼로 찍어서 틈을 벌리면 빠질까?”
그런 이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은준은 어떻게 하면 톱을 빼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톱이 망가지지 않을까요?”
“그럼 줄을 걸어서 반대쪽에서 당기면 조금은 틈이 벌어지지 않을까?”
“....”
미련을 못버린 은준이 이런저런 방법을 생각해보았지만, 쉬사네는 하늘로 20여 미터는 되게 치솟은 바오밥나무를 올려다보며 말을 삼켰고, 그런 쉬사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었던 은준도 이내 고개를 떨궜다.
작업이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자 은준과 사람들은 일단 철수했다.
집에 돌아온 은준은 고민에 빠졌다. 다른 톱을 구하려고 하면 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어느정도 기술을 습득한 후에는 여러개의 톱으로 동시에 벌목을 진행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오히려 즐거워보이는 마을 주민들의 표정에 대해 물어보았다가 들려온 쉬사네의 대답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이제는 은준도 이곳 아프리카 사람들이 바오밥나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었다. 게다가 바오밥나무의 열매와 잎은 원주민들의 식량 역할을 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동시에 옥수수 농장을 개간해야 하는 그의 목적과 대치되기도 했다.
바오밥나무는 은준 소유의 땅 곳곳에 널려 있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오래기다리셨습니다. ㅎㅎ어쩌다보니 날짜가 이렇게나 되었네요. 추석에 이어 좀비림을 쓰다가 날려먹어서 멘붕으로 쉬다가, 다음엔 장염까지 겹치는... 아주 요상한 2주를 보냈습니다.
꼭 간장게장을 먹으면 장염이 오네요.. 예전엔 아무렇지 않았는데, 군대있을때 중대장 따라 천엽 먹고 장염 걸렸던 뒤로는 게장만 먹으면 이모양이네요. 흑흑 내 게장 돌리도....
선추코 감사드리며, 전 다음에 또 인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