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카파로 가자-76화 (76/107)

76화

은준은 무척 당혹스러웠다. 사실 그도 한국으로 돌아올 때부터 언제고 이 주제로 이야기를 하게될 것이라곤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것도 사실이었다.

때문에 그는 집에 오고나서부터 계속 조심에 조심을 해왔는데, 대화중에 혹은 행동거지에 꼬투리를 잡히면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결혼 이야기로 주제가 튈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은준으로서는 단순히 아들이 어머니를 안는 것이 어떻게 결혼 문제로 넘어갈 것이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은준은 갑자기 긴장이 되며 목이 타는 것을 느끼곤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려고!”

순간 어머니의 손이 은준의 손목을 잡아챘다. 이야기가 나온김에 짚고 넘어가겠다는 어머니의 의지가 담겨있는 손이다.

“아니, 목이 말라서. 물좀 마시고요.”

“... 물만 마시고 이리와서 앉아. 방으로 새지 말고.”

목이 말라 물을 마신다는데 은준의 어머니도 도리가 없다. 슬그머니 손목을 놓아주면서, 그래도 재차 확인을 받았다.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컵에 물을 따르면서도 어떤 방법을 쓰면 이 자리를 모면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이 작은 집 안에서 어머니의 손을 피해 도망갈 곳이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은준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다보니 목만 축일 생각이었던 물이 컵에 가득 따라졌다.

‘있다가라도 누구든 마시겠지.’

눈치를 보며 천천히 물을 마시고는 슬그머니 식탁의 이자를 꺼내 앉는다.

“얼른 이리와. 이야기좀 하게.”

그 모습을 본 은준의 어머니가 재촉을 한다.

“이야기 하세요. 다 들려요.”

미련을 못 버린 은준이 별일 아니라는 듯 헤헤 웃으며 넘어가려 했지만, 어머니도 만만치 않았다.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얼굴좀 보면서 이야기 하자. 어여 이리와 앉아.”

‘지금까진 뒤돌아서 이야기 했나?’

“여기서도 잘 보여요. 뭘 얼마나 멀다고, 말씀하세요.”

“....”

은준의 집은 32평이다. 구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은준의 고향집은 부엌과 거실이 바로 붙어 있었고, 그의 말대로 그가 앉은 식탁 의자와 어머니가 앉아있는 쇼파의 거리는 겨우 2m도 되지 않았다. 그 거리면 다른 사람과 마주보고 이야기하기에 멀다고 하기는 어려운 거리였다.

하지만 은준은 어머니의 무언의 압박을 이길 수 없었다. 물론 그도 크게 기대하고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대로 넘어가면 좋은거고, 아니어도 손해볼 일은 아닌 것이다. 결국 그는 다시 슬그머니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 쇼파로 돌아와 깊숙이 몸을 기대어 앉았다.

“똑바로 앉아! 허리 펴고! 그렇게 앉으면 척추에 안좋아.”

이왕 이렇게 된거 은준은 애교를 부려서라도 잔소리의 시간을 줄여볼 생각으로 바짝 옆에 붙어 앉았다. 서른살 먹은 다 큰 아들이 엉겨붙는건 징그러운 일이긴 하지만, 동시에 어머니의 눈에는 언제나 귀여운 아들이다.

그런데 이번엔 어머니의 손이 은준의 쪽으로 넘어오더니 그의 손을 꽉 붙든다. 슬그머니 도망갈 은준의 도주를 미연에 방지할 생각으로 족쇄를 채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굉장히 효과가 있어서 따듯하고 주름진 손을 떨쳐내지 못하고 은준도 다른 손으로 그 손을 잡아갔다.

“엄마...”

“네 나이가 지금 몇이지? 서른 하나? 서른 둘? 너 내일 모레면 마흔이야. 너 여자 친구 있어? 결혼은 어떻게 하려고 그래?”

감성적이 되었던 은준은 불의의 기습을 받았다. 그러자 방금전까지 뜨끈하게 가슴에 차올랐던 무언가가 식어내리며 그의 입이 뚱 하게 튀어나왔다.

“아니 내가 무슨 내일 모레가 마흔이에요. 이제 서른 막 넘었는데. 그리고 여자친구는 만들면 되지.”

“무슨 재주로? 여자들이 눈이 삐었대니? 젊고 예쁜 것들이 널 기다려줄줄 알아? 나이 많고, 번듯한 직장도 없고, 한국도 아니고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데다가, 이 뱃살까지! ... 그래도 뱃살은 예전보다 많이 빠졌네.”

“아이 참, 매일 운동 한다니까요.”

“어쨌든! 너 당장 결혼해서 아이 낳아도 그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때면 정말 마흔이야. 또 고등학교 입학할 때면 쉰이고. 군대 갔다와서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면 예순에, 너처럼 여자친구도 없으면 네 아들 결혼식장에 들어갈 때 넌 일흔살 먹은 할아버지가 돼서 지팡이 짚고 들어가 이것아.”

순간 은준은 입이 막혔다.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그로서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끌려갈 수는 없었다.

“무슨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는데만 10년이에요. 게다가 결혼까지 또 10년? 에이...”

“네 꼴을 봐라. 너 돈벌겠다고 한국 떠날때가 서른이었어! 네 아들도 네꼴 나면 그래. 그리고 네 아버지는 연세가 몇이시니. 올해 예순 다섯이야. 네가 이제부터 여자친구 만들어서 몇 년 사귀다가 결혼한다고 하면 그땐 칠순잔치 같이 하게 생겼어. 아닐거 같아?”

무엇하나 틀린 말이 없었다. 중간중간 몇 년쯤 훌쩍훌쩍 뛰어넘긴 했지만, 은준이 생각하기로도 거의 엇비슷하게 그 나이쯤은 될 것 같았다. 새삼 정정해 보였던 아버지가 이제 곧 예순이 넘어간다고 생각하니 믿겨지지 않는 은준이다.

“너 솔직히 말해봐. 여자친구 있어? 없어?”

다시 숨을 고른 은준의 어머니가 은근하게 물어본다. 한바탕 몰아붙이고 다시 숨구멍을 틔워주는 모습이 노련하다.

“여자친구요? ... 없어요.”

은준은 어머니의 물음에 순간적으로 벤시몽에 있는 야가 생각났지만 일부러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찰나간의 망설임을 놓치지 않았다.

“있구나! 괜찮으니까 말해봐. 응?”

“진짜 없어요!”

“으이구! 이 밥통아! 여태까지 살면서 뭘 했어! 뭘! 여자친구 하나 못 만들고! 그렇게해서 장가는 가겠어? 너도 베트남가서 마누라 얻어올래!”

“...”

“그리고 요즘 어떤 여자애가 옥수수 농사 짓는다고 아프리카까지 따라가? 그럴거면 차라리 한국에서 다른 남자 만나지! ...은준아. 그러지 말고 잘 생각해봐라. 멀리까지 가서 고생하지 말고, 거기 땅은 팔고 한국에서 일하는건 어떠니. 아닌말로 너 하나 일할데 없을까.”

“...”

은준은 어쩌면 어머니가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은준 스스로 생각해봐도 자기 자식이 결혼도 못하고 멀리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서 한다는 것이 겨우 옥수수 농사라면 말리고 싶었을 터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은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짓이였다. 매년 50억의 이익. 이제 한 사이클을 돌려보았으니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다음 주기도 거기서 크게 다르진 않을 터였다. 아닌게 아니라 거기서 조금 수익이 준다 할지라도 아쉬울게 없었다. 연봉 3~4천에서 2, 3백만원이 준다면 가계에 큰 부담이지만, 50억에서 몇 억쯤 주는 것은 전혀 부담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땅을 팔고 한국으로 돌아와 평범한 봉급쟁이가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매일 야가 해주는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며 느긋하게 하루를 보내다가 밤이 되면 야를 품에 안는 생활과는 바이바이.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도 못 먹고 출근 전쟁에 이어 뼈 빠지게 일해 사장 배를 불려주고 자기는 거기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얼마를 받아먹는다?

차라리 혼자 살지. 여자가 그리우면 돈이 있으니 언제든 젊고 탱탱하고 예쁜 여자를 구하는건 문제가 아니다. 그럴 생각은 없지만, 은준이 마음먹고 한국에서 일 년에 1억 줄 테니 1년만 벤시몽에서 인간 난로를 하라면 불가능한 일일까? 그 반대일 확률이 높다.

돈이 많으면 나이는 문제가 아니다. 재벌 할아버지와 손녀뻘 여자의 결혼 같은 이야기는 종종 뉴스에도 나오지 않던가. 거기에 연예인들은 띠동갑과 결혼하는 일도 수두룩하니 은준이라고 못 할 것 없다.

다만 은준은 자기가 아버지에게만 말하고 어머니에겐 비밀로 한, 지은죄가 있어 꿀 먹은 벙어리 흉내를 낼 뿐이었다.

늦은 밤, 은준은 오랜만에 자신의 방에 누웠다. 은준의 어머니도 당장 밖에 나가서 며느리감을 데려오라고 할 수 없으니 계속 붙들고 있을 수 없었다.

드러우운 은준의 정신은 또렷했다. 단지 시차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녁때 그의 어머니와 나눈 이야기는 막연하게 생각했던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결혼과 여자에 대해 생각을 하자 자꾸만 떠오르는 야의 얼굴에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야는 여자친구도 애인도 아니다. 둘의 관계는 고용인과 교용주로 시작되었고, 이제는 밤마다 살을 비비고 몸을 섞는 관계가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은준의 욕구를 해결할 생각으로 의도적으로 관계를 만든 것이지, 사랑이 싹터 이런 관계까 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매일 그의 밥을 해주고 함께 같은 집에 살며 청소와 빨래를 해주며 식사도 같이 하고 밤엔 함께 잠드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부부와 다름 없었다. 대저 은준과 야의 관계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벤시몽의 마을 사람들도 은준과 야의 관계를 부부로 알고 있다. 퉁야는 조금 다르게 알고는 있긴 하지만, 그도 이미 둘의 관계까 현지처 정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현지처... 인가?”

현지처. 처는 아내다. 비록 결혼식도 혼인신고도 없었지만, 말 속에 들어있는 의미는 사실혼 관계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은준의 어머니는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 없으면 아프리카에 이민간 한국인 중에서라도 잘 찾아보라고 했다. 야의 존재에 대해 몰랐기 때문에 한 말이기도 했지만, 이왕이면 한국인 며느리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이민간 한국인 2세라고 말 하지 않았을 것이다.

머리가 복잡해진 은준은 일부러 눈을 감았다. 하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창 밖의 환한 전등의 빛 때문인지, 아니면 허전한 옆구리 때문인지 쉽게 잠들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아... 좀 더 일찍 올리려고 했었는데..

주중에 한참 글을 써서 거의 올릴 분량이 되었을쯤 '딸칵' 하면서 전기가 나갔다 들어오며 컴퓨터가 재부팅 되었습니다. 당연 쓴 글은 전부 날아갔죠. 1차 멘붕...

덜덜 거리며 다시 컴퓨터를 키고 기억을 더듬어가며 복구하려 했지만, 재차 전기가.. 2차 멘봉...

도저리 맨정신으로 글을 쓸 수가 없어서 공지라도 올리려고 공지를 쓰는데, 또 전기가...3차 멘붕 ㅜㅜ회복기를 거쳐 겨우 써서 올립니다. 하아.. 가장 처음 썼던게 가장 마음에 들었었는데, 아무리 수정해도 그때처럼 안되네요 ㅜㅜ 그래도 이번엔 분량을 좀 많이 했습니다. 허허..

예상을 하자면 저장해가면서 쓰라는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글 쓰는 사람마다 자기 스타일이 있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한 번 삘 받으면 논스톱으로 써내려가는데, 저장을 안합니다.

이게 일부러 안 한다는게 아니라, 집중하면 주변 소리도 안들어와요. 저장 같은건 머릿속에 없죠. 그 상황에서 모니터가 갑자기 까매지는겁니다. 경비실 쫒아갈뻔 했어요 ㅜ 어디 차단기가 내려갔는지, 우리집은 냉장고 컴퓨터 형광등 하나 켜고 살거든요. 주변 어느 집에서 공사하는 드르륵 소리가 나더니, 그거 때문에 그랬나.. 어휴ㅜ뭐 그랬습니다. 지금도 완전 회복은 못했는데 더 늦출 수 없어서...

그리고 지난화에 나온 1살 짜리 강간 사건은 오타가 아닙니다. 실제 있었던 일인데 11살이 아닌 1살 여아를 9명의 군인이 강간한 사건으로 뉴스에도 나왔었죠.

...1살이 여자로 보이나? 11살이면 조숙한 경우엔 여자로 보일 수 있다 쳐도 1살은 좀..

거기에 틈은 있답니까? 차라리 ... 음.. 이건 말로 하긴 넘 과격하니 제 머릿속으로만.. ㅋ그럼 부디 다음엔 이렇게 날아가는 일이 또 없기를 기원하며 글을 올립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