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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카파로 가자-73화 (73/107)

73화

추수철이 끝나고 얼마후 벤시몽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은준의 고향인 한국에서와 같은 매서운 한파는 아니지만, 춥고 덥고 하는 것도 어느정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곳 사람들에겐 영상 5도 언저리에서 맴도는 기온도 무척 춥다고 느껴졌다.

겨울이되자 퉁야는 은준에게 휴가를 받아 가족이 있는 짐바브웨로 떠났다. 오래 떨어져있던 가족을 만나러 가는 그의 얼굴은 기쁨과 설레임 그리고 기대로 그간의 고생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이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퉁야를 맨 손으로 떠나 보낼 만큼 은준도 야박하진 않았다. 조금은 이기적이기도 하고 짠돌이 같기도 하지만, 또 쓸데에는 쓸줄도 알았다. 그는 명절 떡값과 휴가때 휴가비가 적을때 느끼는 상실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장기 휴가를 받아 가족을 만나러 가는 퉁야에게 두둑한 봉투를 챙겨주었다.

또 퉁야만 특별 대우를 할 수는 없었으니 만만치 않게 고생한 쉬사네에게도 금일봉이 하사되었고, 야도 봉투 하나를 받아 들었다. 비록 야가 필요하다는게 있으면 얼마든지 사줄 마음이 있는 은준이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인 법이다.

날이 추워지자 얌은 다시 방학이 되어 벤시몽을 방문했다. 한국과 달리 여름방학 겨울방학이 특별히 길지는 않지만, 야와 얌 그리고 은준은 주말과 방학때 만큼은 꼭 시간을 함께 보냈다.

추운 겨울, 밖에 돌아다니지도 않고 벤시몽 저택에 두문불출한 셋이 뭘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는 불 보듯 뻔한 일.

수동적이었던 야로서는 부끄러워 하면서도 은근슬쩍 스스로 움직이며 재미를 찾아갔고, 원래 활동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얌은 은준에게 생각지도 못한 공격을 감행하며 그를 당혹케 했다.

이후 침대, 욕실, 응접실 등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육탄전에 난감한 것은 야 혼자뿐이었으나, 얌의 허를 찌르는 공격과 십여년 가까이 시청각 교육과 실전으로 다져진 은준으로의 의외의 장소와 방심한 타이밍을 노림에 야도 결국 포기(?)하고 장단을 맞추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불같은 시간도 언제까지 지속될 수 만은 없는 일. 마침내 은준은 추석에 맞춰 벤시몽을 떠나 한국으로 귀국했다.

키이이이잉-

잠시 먹먹해졌던 귀가 뚫리며 활주로를 따라 비행기가 착륙하자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기내에 계신 승색 여러분...]

은준은 스튜어디스의 안내 방송을 들으며 작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인천 공항의 풍경을 응시했다. 착륙한 비행기는 활주로 위에서 조금 이동하더니 잠시후 완전히 멈춰섰고, 이어진 안내 방송에 따라 은준도 좌석 위 짐칸에 넣어둔 가방을 꺼내어 앞사람을 따라 비행기를 빠져나왔다.

공항 로비로 빠져나온 은준의 얼굴은 웃음을 참지 못해 진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이게 대체 얼마만이야? 여기도 저기도 전부 한국인이라니!"

고국에 돌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공항을 빠져나가는 교통편을 알아보고는 시간이 남아있자 가까운 한식당으로 향했다.

혼자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오랜만에 쌀밥을 먹었다. 아프리카서도 쌀을 먹긴 했지만, 한국에서처럼 찰진 쌀이 아니었고, 한국식 반찬도 없었다. 그가 비록 입이 짧지 않고 가리는게 없어 끼니를 거르는 법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한국에서의 음식이 그립지 않을 수는 없었다. 두툼한 쇠고기를 매일 같이 먹을 수 있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던 은준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며 턱을 쓸었다.

"음, 확실히 내가 타긴 탔네. 아프리카에선 죄다 까마니 내 얼굴이 하얀줄 알았는데, 여기 와서보니 완전 까만데?"

스테인리스 컵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살피며 은준은 중얼거렸다. 2년에 가까운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고, 모자만으로 모든 태양빛을 피할 순 없었다. 특히 손바닥을 뒤집어보면 마치 경계선이 그려진 듯 절반을 나눠 손등은 타고 손바닥은 원래 색을 유지하고 있어 우스꽝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잠시후 주문한 음식이 나오긴 했지만, 은준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와, 무슨 된장찌개가 14,000원이나 하냐. 누가보면 한우라도 들은줄 알겠네."

하지만 아무리 숟가락을 휘저어 보아도, 보이는 것은 반입도 안되는 두부 조각과 호박 조각이 전부다.

돈은 많이 벌었어도 그의 생활습관이나 돈 씀씀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태어나서부터 쭉 서른 평생을 소시민으로 살아왔으니 그가 느끼는 돈의 가치는 여전히 전과 같았다.

"4만원이면 아프리카 아이 한 명이 한 달을 살 수 있다던데, 여기서 세 끼 먹으면 그 애들 한달치 식대랑 비슷하겠네. 허 참."

같은 돈으로 누구는 하루를 살고 누구는 한달을 산다니 입맛이 쓴 은준이다.

은준이 신경쓰이는건 또 있었다. 지금도 계속해서 그를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나는 향취가 그것.

진한 화장품 냄새와 스킨 냄새에 그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그가 한국을 떠나있는 동안 한국에서 향수를 쏟아 붓는게 유행이 된 것이 아니라면, 그의 후각이 예민해진 것일 터였다.

"큰 뒤로는 안그런줄 알았는데..."

어려서부터 후각이 예민했던 은준이다. 어렸을땐 그런것도 자랑거리가 되는 법이라, 누구와 함께 돌아다니며 사방에서 나는 냄새를 맞추는 놀이도 하였던 그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예민한 감각도 약해져갔다. 직장에서도 화장품 냄새에 코를 찡그리긴 했어도 머리가 아플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프리카에 살면서 인공적인 냄새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인지 다시금 예민해진 코였다.

은준은 벌써 야와 얌의 살내음이 그리워졌다.

손가락등으로 코를 가리며 자리를 피한 은준은 버스 승강장으로 나와 버스를 기다렸다. 하지만 여기서도 얼굴은 펴질줄을 몰랐다. 사방에서 울리는 클랙슨 소리와 자동차 엔진음이 날카롭게 귀를 파고들었다.

겨우겨우 짐을 싣고 이리저리 차를 갈아탄 끝에 마침내 은준은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띵동.

벨이 울리고 현관문 너머에서 발소리가 나더니 잊지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어떻게 그 목소리를 잊을 수 있을까. 십 년을 떨어져 있어도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있다. 바로 어머니의 목소리.

은준은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질 것만 같아 애써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아들!"

============================ 작품 후기 ============================

마음 같아선 일일 십연참도 하고 싶지만...컥 커컥!

이전화는 갑자기 댓글이 많아져서 깜짝 놀랐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선추코 가 마법의 언어일까요? ㅋㅋㅋ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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