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누런 황금 물결 치는 벤시몽의 옥수수농장. 곧 가을이 끝나갈 무렵이 되어서야 은준의 벤시몽 농장에도 수확의 시기가 찾아왔다.
마을 주민들이 총 동원된 작업. 제법 머리가 굵은 아이들까지 바구니를 안고 옥수수 수확에 여념이 없지만, 은준은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한국에서라면 미성년자 노동 착취라고 난리가 났을 일이지만, 이들에겐 이들만의 생활 방식이 있었고, 은준은 자신의 생각을 이들에게 강요할 생각이 없었다.
구르르르릉! 구궁! 구궁!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옥수수대가 쓰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가 도미노를 건드린 것 처럼 가장자리 끝에서 부터 시작하여 끝과 끝을 왕복하며 옥수수 농장을 평정해나갔다.
슈슈슈슉!
꽁무늬에선 가루가 된 옥수수대와 옥수수잎이 소방호수에서 쏱아지는 물줄기처럼 맹렬한 기세로 토해져나왔고, 인간이 족적을 남기듯 지나간 자리에 쏱아지며 길게 꼬리같은 흔적을 남겼다.
바구니에 가득 따진 길게 수염이 자란 옥수수는 한데 모였다가 곧장 크고 하얀 마대 자루에 옮겨 담아졌다. 그것은 다시 트럭에 들어올려졌고 신축 창고에 도착한 트럭에서 내려진 옥수수 자루들은 일꾼들에 의해 창고 한쪽 구석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려졌다.
모자와 보안경 그리고 마스크를 쓰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은준은 자꾸만 양옆으로 벌어지는 입매를 간수하느라 안간힘을 써야 했다.
저것은 은준을 부유하게 해줄 돈이다. 그의 생활을 풍족하고 여유롭게 해줄 보물이었다.
연봉 2천만원의 월급쟁이가 홀로 아프리카로 날아와 옥수수를 재배해서 이렇게 성공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그에겐 행운도 따랐다. 애초에 예상했던 땅이 아닌 생각지 못한 커다란 땅을 구할 수 있었고, 그가 예상했던 오두막에서 쓸쓸히 먹고 자며 낮에는 땡볕 아래서 괭이 한 자루를 들고 어떻게든 수확량을 늘려보려고 아둥바둥하는 것이 아닌, 거꾸로 지금은 사람을 부려가며 본인은 관리만 하고 정작 힘든 노동은 사람을 부리며 엄청난 수확을 거둬들이고 있게 되었다.
지난 수확때 수중에 들어온 돈이 110만 달러. 이번엔 수확 시기를 늦춰 옥수수가 충분히 자라길 기다렸으니 수확량이 더 늘었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 말은 즉 그가 벌어들일 돈이 더 많아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그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안 가실 수밖에.
다섯 개의 커다란 옥수수밭 중 세 개의 옥수수밭에서의 수확이 끝나가자 은준은 예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두 개의 밭이 더 남아있었지만, 이곳은 한국에서처럼 바로바로 공무가 처리되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난 경험으로 이쯤에 전화를 하면 수확이 끝날 무렵에는 옥수수를 받아가고 돈을 줄 사람이 나올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500헥타르에 달하는 옥수수 농장의 수확이 끝나고, 외지에서 들어온 커다란 트럭들이 창고에 있던 옥수수 자루를 달러와 바꿔 돌아갔다.
120만 달러. 그것이 은준이 얻은 소득이었다.
은준은 자신이 운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왕 하는거 좀 더 잘해보자는 생각으로 이리저리 옥수수 농사에 대한 자료를 찾던중, 다른 대형 옥수수 농장에서 관리하는 웹사이트를 찾을 수 있었다.
그곳도 은준과 같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다만 아프리카가 아닌 동남아 지역이라는게 그와 다른 점이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 더 큰 차이점이 있었는데, 그는 은준과 달리 옥수수를 수확하면 옥수수자루와 낱알을 분리해 가공 처리하여 판매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문에 그는 낱알을 분리하는 기계도 필요했고, 분리된 낱알을 건조 가공하는 공장도 있어야 했다. 웹사이트에는 거래처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있지 않았지만, 은준은 그가 거대 국제 식품 업체와 거래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자루와 낱알을 분리한 옥수수와 온전한 옥수수의 쓰임새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통조림? 어쩌면 팝콘용일수도 있겠지. 이건 종자가 뭔지 모르니까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옥수수를 통째로 삶아먹는 문화권에 판매할 생각은 아닌게 분명할거야."
그런면에서 은준은 또 한번 운이 좋았다. 그것이 과연 운인지 그가 정착할 곳을 잘 찾은 것인지 판단은 그의 몫이지만, 어쨌든 그처럼 건조시설이나 다른 기계의 확충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은준이 수확한 옥수수는 저장했다가 그대로 리소테 내부의 시장으로 공급될 것이고, 최종적으로 소비자에게 도착한다.
그들은 통채로 자루가 달린 것을 쥐고 먹는 경향이 있었고, 은준은 덕분에 낱알을 털어 건조해야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수확이 끝나자 은준은 다시 한가해졌다. 밖에선 여전히 트랙터가 밭을 갈아엎고 있었지만, 그것은 월급을 받는 퉁야나 쉬사네가 할 일이었다. 은준은 그저 언제 한국에 다녀올까 하는 생각에 여념이 없었다.
'이제 곧 7월. 한국은 한창 여름일 시기. 한국에 다녀올거면 이왕이면 추석때 맞춰서 다녀오고 싶은데...'
근 2년 만의 귀국이다. 그간 명절에도 코빼기 보이지 않았으니 친척들도 궁금해하고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친척들이 모두 모이는 추석에 맞춰 방문해 인사를 드리는게 간편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겨울엔 할 일도 없는데 일찌감치 가서 추석때까지 눌러앉아있다 와?'
이젠 아쉬울게 없는 은준은 이참에 한국에서 몇 개월 쉬다 올 생각까지 했지만,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지. 그러면 뭐해. 또 백수짓 한다고 혼이나 날껄. 게다가 야하고 얌도 여기에 있고. 나 혼자 한국에 돌아가봤자 무슨 재미람. 뭐 하루 이틀쯤은 재미 있을지도 모르지만, 추석까진 삼개월은 독수공방해야 할 텐데.'
은준이 이만큼 성공했다는걸 아는 사람은 오직 그의 아버지 뿐이었다. 그의 어머니조차도 은준이 연 20억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그저 별 고생 없이 정착해 보통 그 나이 또래의 월급쟁이 정도의 돈을 벌고 있다고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하는일 없이 세 달이나 뒹굴거리고 있으면 또 백수짓을 하는 건 아닌가 하고 걱정할 것이라는게 은준의 눈에도 빤히 보였다.
걱정되는 것은 또 하나 있었다. 이제 곧 겨울이 되면 퉁야도 고향으로 휴가를 받아 돌아가게 된다. 이번엔 돌아올때 가족과 함께 온다고 기대도 보통 기대하는게 아니었다. 은준의 마음 같아서는 어차피 가족들 만나러 휴가를 가는 거면, 3개월 뒤에 돌아올거 그냥 일찌감치 돌아와서 자리잡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은 고용주인 은준의 입장에서일뿐. 퉁야 입장에선 또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게다가 아무리 널널하다고 해도 직장은 직장이었고. 즉 은준이 걱정하는 것은 퉁야가 없는 동안 야 혼자 벤시몽 저택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얼마나 외롭고 무서울까. 퉁야라도 있으면 밥이라도 같이 먹을텐데. 그냥 내가 짧게 다녀와야겠다. 한 보름이면 애들도 만나고 추석도 쇠고 할 수 있겠지.'
과연 혼자있는 야가 걱정되는 것일까 아니면 독수공방 하기 싫었던 것일까. 그것은 은준만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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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만 달러 +120만 달러 = 한화 25억 ㄷㄷ 이게 그냥 이익도 아니고 순이익. 어지간한 중소업체 수준이죠 ㅋ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념을 찾기는 해야해요. 분명 뒷정리도 깔끔하게 잘 즐기고 오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게 사실이죠. 저로서는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던... 그냥 가져갔던거 고대로 가져오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인데, 왜 그걸 못하는지..
어, 그리고 댓글중 하나가 사라졌네요? 뭐였는지 확실히 기억은 안나는데, 이번화 올릴때 답변 올리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쓰다보니까 없어졌네요; 자삭하셨나..
어쩔수 없죠. 그럼 전 이만, 다음에 뵙겠습니다~ 선추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