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화요일 아침.
한국에서 관광객이 오기로 한 날이다. 하지만 은준은 여느때와 같이 밀크티 한 잔을 들고 집 정리를 한다 청소를 한다 하며 부산스러운 야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중이었다.
마침 진공청소기를 들고 쇼파 아래의 먼지를 빨아들이기 위해 허리를 숙이자 은준은 눈을 반짝이며 그녀의 뒤로 다가가 착 달라붙은 치마 위로 둥근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이제는 야도 적응이 되었는지 살짝 몸을 떠는게 손끝에 전해져왔지만, 잠시 멈추었을뿐 하던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절경이네 절경이야!'
예전에는 짧은 치마, 짧은 바지 혹은 완전히 달라붙는 스키니진 같은 옷을 입은 여성을 보면 욕구가 솟았지만, 이제는 하늘하늘한 긴 치마가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달라붙어 살짝살짝 몸매를 드러내는 것도 남자의 음심을 자극한다는 것을 깨달은 은준이다.
은준의 손길 때문인지, 아니면 청소를 하며 움직인 탓인지 일어서는 야의 얼굴이 붉게 달아있었다.
"킴, 오늘은 나가보지 않아도 돼요? 손님들이 오신다면서요."
야는 은준이 손님을 마중 나가지 않고 집 안에만 있자 의아해하는 한편 걱정스런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그녀는 은준의 나라인 한국에서 손님이 온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야에게 있어서 은준은 하늘이나 마찬가지, 그런 그의 고국에서 오는 손님을 허술히 대접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은준은 몇 번이나 신경쓰지 말라고 했지만, 집안 살림을 하는 야의 입장에서는 또 그러기 쉽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오거나 말거나. 아, 정말 필란스버그나 갈것이지..."
필란스버그 국립공원. 요하네스버그의 북동쪽에 있는 곳으로 크루거 국립공원과 함께 가장 인기있는 곳이다. 굉장히 유명한 만큼 호텔이나 여러 시설들이 꽤 잘 갖춰져 있는데다가 사실 벤시몽과도 가까운 곳이라 서식하는 동식물도 거의 흡사했다. 다만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인 만큼 이 가깝다는 기준을 서울시와 구리시의 관계로 보면 오산이다.
은준이 짜증을 부리자 야는 실소를 머금고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 그간 은준을 지켜본 야는 그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은준이 귀찮은걸 싫어하고 단순하며 기분나쁜 일은 금세 잊어버린 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손님의 방문을 귀찮아하며 투덜거리고 있지만, 곧 풀릴 터였다.
그리고 그런 야의 판단과 크게 다르지 않아 입으로는 투덜투덜 반복하면서도 그의 눈은 연신 야의 뒷모습만 따라다니고 있었다. 지난 밤에도 침대가 무너져라 흔들어댔지만, 한숨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또 기운이 살아서 뻣뻣해졌기 때문이었다.
"에잇! 언제 올지 모르는데. 올거면 빨리 오지! 오전중에 도착한다더니!"
그래도 벤시몽의 주인으로서 손님은 직접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꾹 참는 모습을 보이는 은준이다. 하다가 멈추느니 차라리 참았다가 저녁때 두 배로 해야겠다는 속셈이다.
관광객들이 벤시몽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가 훌쩍 넘어서였다.
"새벽 한 다섯시쯤 출발했나보군."
가장 가까운 도시가 뉴-카파이니 벤시몽에 오는 이들은 그곳을 거쳐 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도착 시간을 기준으로 출발 시간을 예상해보는 은준.
뿌연 흙먼지를 가르며 나타난 것은 총 여섯대의 픽업트럭이었다. 은준은 트럭들이 은근슬쩍 벤시몽 저택 정문 쪽으로 다가오자 손짓을 하며 한쪽 구석으로 그들을 인도했다. 바로 인근에서 공사를 하며 다져진 공터였다.
차에서 가이드들과 여섯 쌍의 중년 부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시간 차를 타고 오면서 몸이 불편했는지 남자들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빙글빙글 돌려댔고, 여자들은 까만 선글라스를 치켜올리며 연신 감탄을 토했다. 그녀들의 시선은 저택 벤시몽에 집중되어 있었다.
'좋은건 알아가지고...'
은준은 눈을 떼지 못하는 그녀들을 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새삼스럽지만 벤시몽 저택은 프랑스의 노신사가 말년을 보내기 위해 전재산을 투자해 지은 저택으로 유럽의 어느 저택을 그대로 들어다 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고풍스러운 저택에 눈을 떼지 못하는 것도 당연.
하지만 은준은 그들을 저택에 한 발자국도 들여놓을 생각이 없었다. 이제는 퉁야도 저택 밖에 새 집을 지어 이사를 갔고, 벤시몽은 명실공히 은준과 야 그리고 얌 세 명의 러브하우스였다.
"어서오세요.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여자들이 슬금슬금 저택 쪽으로 다가오려고 하자 은준이 먼저 성큼성큼 나서서 길을 막았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도 타지에서 한국어를 하는 남자가 다가오니 고개를 돌려 은준에게 집중했다.
"아! 반가워요. 이야기 들었습니다. 응... 은준씨!"
개중 한명이 나서서 은준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했다.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았는지 더듬긴 했지만, 그정도는 대범하게 넘어갈 마음이 있는 은준이다.
은준은 저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지만, 이름을 들은 것은 가장 먼저 인사를 나눈 이상태라는 사람 한 명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차피 1박만 하고 가는 곳이라 생각했는지 은준에게 크게 신경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은준도 차라리 그것이 편했기 때문에 굳이 몇 번 얼굴 볼 일도 없는 사람들, 일일히 찾아다니며 통성명 할 생각은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이들은 불청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거 얼굴 붉히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짐을 내리기 시작하자 은준도 나서서 그들을 도왔다.
이미 들은대로 숙식은 자체 해결. 최근 유행하는 모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흉내내 텐트에서 잠자며 직접 음식을 해먹겠다고 미리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얼마나 잘 할지, 과연 어떨지 기대가 되는 은준이다.
'그 나이에 무슨 만용인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은준은 그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사람도 야외에서 텐트 치고 자는 것이 불편할텐데, 중년 부부들이 캠핑장도 아닌 정말 '리얼 야생'에서 텐트라니...
'솔직히 리얼 야생도 아니지. 대체 먹을걸 얼마나 싸온거야? 아이스박스가 여섯개도 넘네!'
그나마 다행인것은 이미 벤시몽은 사람 냄새가 퍼져 야생동물들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을 주민들 덕분이었다. 만약 초창기처럼 벤시몽에 두세사람이 살던 시절이라면, 한 밤중에 텐트를 습격하는 무리가 나타났을 수도 있었다.
가이드들도 나서서 짐을 내리는 것을 도왔다. 현지 가이드는 전부 흑인들. 여행사에서 나왔는지 한국인도 한 명 껴 있었다.
'총도 있네?'
은준은 짐 내리는 것을 도와주나 차 안에 총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만약을 대비한 안전장치였다.
"자자, 텐트는 이렇게 치는 거라고. 내가 시범을 보여주지!"
남자중 한 명이 텐트좀 쳐봤는지 나섰다.
은준은 그 모습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한국에서 온 여행사 가이드와 이야기를 나눴다.
"물은 저쪽에 있는걸 쓰면 됩니다. 전기 모터가 달린거니까 그냥 틀면 나옵니다. 지하수고 수질검사도 받은 것이니 걱정 마시고요."
샘을 파면서 함께 수질검사도 받았다. 음용해도 괜찮은 물이지만, 그래도 은준은 항상 끓인 물만 마셨다. 그래도 굳이 그런 이야기까진 하지 않았다. 차에서 내리지 않은 짐중에 큰 생수통이 몇 개나 있는 것도 보았다.
'알아서 잘 해먹겠지.'
은준은 여행사 직원에게 그것 외에도 텐트를 칠 자리와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주었다. 물론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저택에 무단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임은 당연했다.
그 외에는 은준도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어차피 오전은 텐트를 치고 식사를 하고 오후엔 차를 타고 나갈 것이고, 밤에 와서 잔 다음 다음날 아침 텐트를 정리하고 이동하며 구경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저들의 벤시몽에서의 일정 정부였다.
그런데 그때 아주머니 둘이 저택쪽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은준은 가이드를 쳐다보았지만, 그도 무슨 일인지 모르는듯한 눈치였기 때문에 은준은 천천히 뛰어서 그녀들을 따라잡았다.
"어디로 가세요?"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거니 깜짝 놀랐던 두 여성도 그게 이곳 주인인 은준인 것을 보고는 웃으며 대답했다.
"호호호, 아이고 총각이 뭘 남사스럽게 물어. 아니, 총각이 아닌가?"
"깔깔깔."
어디가 웃긴지 은준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녀들이 가는 곳이 어딘지는 알아차렸다.
"아, 그건 저쪽에 있습니다. 따라오세요. 안내해드리죠."
은준은 살짝 불쾌했지만, 아직 여행사 직원으로부터 아무런 이야기를 전해듣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웃는 얼굴로 그녀들을 안내했다.
여행사 직원도 무슨 일인가 따라와봤다가 은준과 함께 그가 안내하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그곳에 도착하자 은준을 제외한 셋의 표정은 그리 편치 않았는데, 여행사 직원은 난감해하는 표정이었고, 다른 둘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은준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이곳을 소개했다.
"여기가 화장실입니다. 원래 이런건 없었는데, 여러분이 오신다길래 준비했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뒤엣말은 여행사 직원을 향한 말이었다. 은준이 당부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파해주라는 의미였다.
은준이 준비한 것은 간이 화장실이었다. 예전에 자원봉사를 왔던 이들이 전부 화장실 문제로 저택을 들락날락 하는 것이 거슬렸던 은준은 이번에는 같은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간이 화장실을 구입해놨던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 아프리카에서 아무곳에나 볼일을 보는 문제 때문에 저렴한 가격으로 간이 화장실을 보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은준도 이참에 몇 개를 구입해 이곳과 마을 주민들에게도 나눠주었다.
은준은 저택으로 돌아오며 화장실 때문에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문제를 미연에 잘 방지했다며 자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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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작/쿠폰/추천 감사합니다.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도 역시 모두 감사드립니다.
저도 자주 올리고 싶기는 한데....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