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소제목 미정>
업자를 불러 이번엔 창고가 아닌 가족 단위의 사람이 거주 가능한 집을 짓는 것과 관련하여 의논이 한창인때, 은준에게 뜻밖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화를 건 이는 은준이 벤시몽으로 올 때부터 인연이 있었던 차호중이었고, 그가 전해온 이야기는 얼마전 벤시몽을 방문했던 의료봉사단의 단장이었던 최호규 교수의 제안이 주된 내용이었다.
최호규 교슈의 제안은 은준으로서는 굉장히 뜻밖의 것이었는데, 그의 지인들이 아프리카로 사파리 투어를 가려고 하는데, 우연히 이번 최호규 교수의 의료봉사행을 떠났던 벤시몽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들이 은근히 다리를 놓아줄 뜻을 전해왔기 때문에 은준의 의중을 먼저 물어보고자 연락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사파리 투어라 함은 보통 여행사등의 관광상품으로 관광객들이 주로 가는 지역이 있기 마련인데, 최근 한국에서 뜨고 있는 '리얼 야생'이라는 컨셉때문인지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이미 관광지로 개척이 된 곳보다는, 아직 미개척지라고 볼 수 있는 이곳 벤시몽을 거점으로 하여 주변을 돌아봤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서 한국으로 돌아왔을때 남들이 안가본 곳을 다녀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큰 자랑거리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남자들의 유치한 경쟁심의 발로라 할 수 있겠다. 혹은 현대에 들어섰음에도 DNA에 새겨져있는 수컷의 영역을 차지하고자 하는 본능 또는, 다른 수컷들보다 우월하고 싶은 본능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을지도.
하지만 은준은 그런 제안에 회의적이었다. 한밤중에 마을 근처로 내려왔다가 살그머니 사라지는 맹수의 발자국이나, 멀리서 들려오는 맹수의 울음소리 따위를 매일같이 접하고 있는 그로서는 그들의 제안이 번지점프를 더 스릴있게 즐기겠다며 새끼줄로 대충 발목을 묶어서 다리위에서 떨어지는 것과 다를바 없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상대편도 연배가 있는 최호규 교수의 지인들이라서 그런지 나이가 적지 않았고, 원래 남자들이란 나이가 들면 없던 고집도 생기게 마련인지라 그들도 쉽게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어차피 아쉬울것이 없는 은준으로서는 다만 최호규 교수가 자신의 얼굴을 봐달라는 부탁에 쉽게 거절을 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어느정도 타협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은준은 최소한의 베이스 캠프 장소와 인근 지리를 아는 원주민을 붙여주기로 했고, 반드시 사파리 투어 전문 여행사를 끼고 차량과 안전등 일반 사파리 투어와 같은 수준의 대책을 세울 것을 요구했다. 그 이유는 괜히 자기들끼리 차를 타고 나갔다가 실종이 된다거나 맹수의 습격을 당해 은준 자신에게 불똥이 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최호규 교수의 지인들도 맨몸으로 벤시몽에 올 생각은 아니었던지 은준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였는데, 그 뒤에 생각할수록 번잡하고 신경이 쓰이는지라 없었던 일로 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고보니 은준은 고민이 되었다.
'물을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동안은 그냥 집에 있는 샘의 물을 모두가 같이 썼는데, 솔직히 사람들 왔다갔다 불편하기도 하고 신경도 쓰이고. 어차피 돈도 있겠다 이번에 퉁야네 집을 지으면서 지하수를 새로 팔까? 이왕이면 수동 보다는 자동이 좋겠지. 그런데 그냥 수도꼭지 하나 붙여놓으면 이집에서 물 쓰면 저쪽은 안나오고 그러는거 아냐? 뭐 알아보면 수가 있겠지. 아예 관을 굵직한 놈으로 파뭍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야.'
한가지를 생각하자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생각이 은준의 머리를 스쳤다.
'물을 자동으로 퍼올리게 하려면 전기도 있어야 할텐데, 지금 나오는 전력으로 충분히 감당히 될까? 나도 컴퓨터도 써야하는데. 디젤발전기 같은건 좀 오버인거 같고.'
지속적으로 많은 양의 전력을 소모한다면 디젤발전기와 같은 것도 좋겠지만, 벤시몽에서 전력을 사용하는 곳은 지금으로선 벤시몽 저택 한 곳에 가끔 창고에 불을 켰다 껐다 하는 경우가 전부. 이제 퉁야네 집이 들어서면 거기도 전등 정도는 쓸 것이고, 지하수를 끌어올리는데에도 어느정도 전력을 소모할 것이지만, 지속적으로 연료를 태워야하는 발전기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 연료탱크도 들여놔야하잖아. 얼마나 들어가는지는 몰라도 트럭에 드럼통으로 옮겨나를수도 없고. 차라리 좋은일 하는셈 치고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기 같은걸 쓰는게 낫지 않을까?"
이미 벤시몽 저택 지붕에도 태양광 발전 패널이 있으니 은준은 그쪽이 더욱 마음에 끌렸다.
'저택에서 한 달에 사용하는 전력이 한 100kw쯤 되던가? 그럼 하루에 넉넉잡고 4kw라고 치고, 한집 더 추가되는데에다가 모터도 돌려야하니 10kw라고 놓자.'
하루에 필요한 전력량이 나오자 그것을 토대로 자연력을 이용한 발전기를 찾아 인터넷을 뒤졌다. 주로 많이 쓰이는 것이 현재 있는 것과 같은 태양광 패널과 풍력 발전기였는데, 가끔 지역에 따라 지열 발전기를 사용하는 곳도 있었다.
"소형 발전기는 정말 조그만것도 많구나. 이런건 정말 가로등 하나 켜는 정도겠는데?"
은준은 어느 회사의 홈페이지에 나온 제품의 규격을 살펴보며 정보를 모았다. 대체로 소형과 중형의 제품이 많았고 대형의 것도 있었으나, 그런것은 사진으로만 봐도 굉장히 컸고, 가격이 나와있지 않았어도 무척 비쌀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중형발전기도 너무 커. 정격출력이 50kw라고? 정격출력이라는게 내가 제대로 이해한거면 한 시간에 생산해내는 전력의 양이라는건데, 그럼 2시간만 돌리면 내 집에서 한달 동안 쓰는 전기를 다 만들어낸다는거네? 그런데 크긴 크다. 터빈 무게만 2.4톤에 회전 지름이 15m라는 이야기는 바람개비 날개가 돌아가는 원의 지름이 15m란 이야기겠지? 자, 잠깐. 이게 맞나? 지름이 15m면 얼마나 큰거야? 그럼 그 소리가 아닌건가? 아니면 중형은 보통 이정도 하는건가?"
실제로 풍력 발전기를 본적이 없었던 은준은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제품의 규격만 보고서는 선듯 실제 이미지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어? 이게 괜찮아보이는데? 풍력하고 태양열 복합 발전이 되잖아? 높이가 115피트? 한 10m쯤 된다는 것 같고, 풍력이 2.4kw에 태양열로 1.41kw면 날씨 좋고 바람도 부는 날엔 한 시간에 한 4kw쯤 나온다는거니 이것 하나만 있어도 뽕을 뽑겠다!"
며칠에 걸쳐 이메일로 견적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설치 지역에 따른 해당 제품의 효용성과 관련하여 컨펌을 받고 견적서 까지 받은 그는 곧장 발전기를 설치하기로 했다. 덕분에 애초에는 전기 배선 공사를 할 계획이 없었던 관사(관청에서 빌려주는게 아니라 은준의 소유였지만)에도 잉여 전력을 사용할 수 있게 전기 배선을 넣도록 주문을 넣고, 지하수 개발 회사와도 연락을 취해 새로이 지하수를 개발하였고, 덤으로 기존에 있던 저택 마당에 있던 샘은 개조하여 상수도 관을 곧장 저택으로 연결해 모터로 물을 뿜어 수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이참에 옥수수 농장이 넓어진 것을 감안해 옥수수밭 중간중간에 관을 박고 수동 펌프를 달아 물을 퍼올릴 수 있도록 했다. 수량은 지하 80m 부근에 무척 풍부했기 때문에 어지간한 가뭄이 돌지 않고서는 물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업자의 말에 은준은 마음을 놓았다.
덕분에 2층 외부에 있던 물탱크는 쓸모가 없게 되었는데, 그것은 버리지 않고 후에 옥수수 농장에 물이 말랐을때 호스가 닿지 않는 먼 곳에 물을 주는 용도로 쓰기로 하였다.
"음... 이거 한꺼번에 일을 벌였더니 꽤 돈이 나갔는데? 그래도 발전기를 제외하면 그렇게 비싸진 않았네. 발전기는 미국제품이라 그런지 좀 비쌌고. 그런데 너무 봉사하는데만 돈을 쓴거 아냐? 딱히 나한테는 이득이 없네. 안돼겠어. 내 돈 내가 벌었는데 나한텐 쓴 돈이 없다니! 내게도 스스로 선물을 줘야지."
지금껏 쓴 돈 모두 간접적으로라도(퉁야를 저택에서 내보내거나, 컴퓨터를 전기 걱정없이 쓴다거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건만, 그런것이 크게 와닿지 않은 은준은 자신에게도 어느정도 돈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돈 있다고 막 쓰면 개털 되는건 한순간이고, 한 번 수확하면 한 번 정도는 날 위해 쓰기로 하는게 좋겠어. 이번엔 음... 좀 큰 침대를 사볼까? 확실히 지금 침대는 더블 사이즈긴 한데 셋이 레스링을 하기엔 조금 좁을것 같단 말이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은준은 잠시 음흉스럽게 혼자 히죽히죽 웃다가 마침내 결심한듯 다시 컴퓨터를 잡았다.
"그래. 적어도 킹 사이즈는 되어야지! 갑자기 옆으로 밀려 떨어지면 안되잖아?"
============================ 작품 후기 ============================
더 일찍 올리려고 했는데, 지금 컴터가 말썽을 부리고 있습니다. 벌써 한 4일쯤 된거 같네요. 포맷해야하나;;;
댓글 달아주신분, 추천해주신분, 쿠폰 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