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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카파로 가자-63화 (63/107)

63화

벤시몽에 손님들이 찾아왔다. 한 부류는 건설업자였고, 다른 한 명은 야의 동생 얌이었다.

은준은 새로운 창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머릿속 찜목록에 아른거니고 있는 농기계를 위해서라도, 또한 꼭 그것만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옥수수 농사를 한 싸이클 돌리고 나보니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던 것이다.

기존에는 마을 주민들을 동원해 만든 원주민식 창고를 운영했는데 사실상 이것이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이 이번 수확기때 밝혀졌다. 물론 원주민들이 하는대로 소규모로 밭을 일궈 작물을 재배하는 수준이었다면 별다른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은준과 같이 대규모로 옥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하니 거기서 나오는 생산량을 감당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게다가 애초에 창고를 지을때는 100핵타르만 경작하는 것을 전제로 삼았었는데, 갑작스럽게 그 다섯배인 500핵타르로 규모가 커지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문제도 있었는데, 옥수수를 수확해도 보관할 충분한 창고가 없으니, 후반에 가서는 드라마에 비유를 하자면 쪽대본이 나오는 것처럼 옥수수를 수확해 자루에 담으면 그것을 바로 트럭에 옮겨 싣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다보니 때론 딜레이가 생겨 트럭이 마냥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일까지 벌어졌으니 옥수수 수매를 하러 나온 직원이 기분이 좋을리가 없었다.

그때 일로 진땀을 흘렸던 은준으로서는 다음번 수확기에는 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수확한 옥수수를 보관할 대형 창고를 짓기로 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옥수수대 역시도 일부는 태우고 일부만 사료로 사용한다 하더라도 보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저대로 방치해둘 수 없다는 생각도 창고 건설에 확신을 주었다.

창고 건설 문제는 시작부터 순조로웠다. 어차피 은준이 요구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고 그저 쥐와 같은 피해 없이 옥수수와 옥수수대를 보관할 수만 있으면 되었기 때문에 업자가 가져온 기존에 시공했던 조립식 창고 건물 사진 몇 장을 살펴보고는 창고 크기와 가격에 대해서만 조율을 마치고는 곧바로 공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인부들이 순식간에 기존에 있던 여러동의 창고 건물을 밀어 없애고는 터를 파고 기초공사를 시작했다. 여기에 철근 공사, 판넬 공사, 창호, 도장, 미장 등등의 공사 대금으로 또 3만 달러가 소요되었지만, 은준이 생각하기로 대형 창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였다.

얌이 벤시몽을 방문하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녀가 다니는 학교의 방학 기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은준은 야와의 약속대로 이번 방학에도 얌을 벤시몽으로 초대하기로 했고, 지난 몇 주간 옥수수 수확과 연이은 파종으로 무척이나 바빠 시간을 낼 수 없었던 탓에 오랜만에 만드는 얌의 모습에 은준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이 컸네?"

사실은 그 뒤에 '가슴이'라는 말이 붙을뻔 했지만, 야의 앞이라 가까스로 목구멍으로 주워삼킨 은준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야는 은준의 말대로 못 본 지난 몇 주 사이에 부쩍 어른스러워진 듯한 얌의 모습에 엄마미소를 지으며 흐믓해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여동생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니 아니 그럴까.

다만 엄마미소를 짓는 야의 모습을 보는 은준 역시도 덩달아 흐믓해하다가 빤히 바라보는 얌과 눈이 마주치고는 서둘러 얼굴 표정을 바로 고쳤다.

벤시몽에서는 다 아는 사실이지만, 야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야와 은준의 관계는 얌에겐 비밀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얌을 보는 은준은 과연 얌이 그 사실을 모를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속을 알 수가 없어...'

어쨌건 그런 상황이라 당분간 은준은 독수공방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지난 방학때 연이어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얌이기 때문에, 이번엔 또 어떤 기행을 보여줄지 걱정하고 있던 은준은 의외로 얌전한 얌의 모습에 옥수수 창고 건설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기존 창고 부지를 밀고 새로 지어 올리는 대형 창고는 옥수수 자루와 앞으로 옥수수대 파쇄기가 도착하면 남은 옥수수대를 분쇄해 자루에 담아 보관할 목적과, 창고 벽에 바로 붙여서 별동을 지어 농기계 보관 창고를 쓸 요량을 하고 있었다.

은준은 시시각각 업자와 인부들을 따라다니며 재촉을 했다. 그 이유는 애초 예상했던 공사 기일이 늘어날수록 비용이 추가되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라고 모든 물가가 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대형 기계가 필요한 일이나 전문 기술자가 필요한 일은 무척이나 비쌌고, 벤시몽처럼 도시와 떨어진 곳은 거리에 따라 출장비가 천차만별인데다가 그것이 하루가 늦어지면 그만큼이 추가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아무리 큰 이익을 낸 은준이라도 닥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히려 백만 달러의 돈이 생겼지만, 그의 씀씀이는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야 돈을 쓸 시간이 없었긴 했지만, 조금 여유가 생겼다고 해도 은준은 이 돈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백만 달러도 생각보다 큰 돈이 아니었던 것이다.

파쇄기 한대에 3만 달러. 창고 한 동에 또 3만 달러. 조금 과장을 하면 순식간에 1/10을 써버린 셈이다. 여기에 조금 더 쉽게 해보겠다고 농기계 몇 대를 들여놓으면 돈이 바닥나는 것도 순식간일 터! 그렇게 생각하니 은준은 백만 달러도 큰 돈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니 돈을 벌었다고 '난 부자다!' 라는 생각보다는 '어쒸, 이거 돈좀 만진줄 알았는데 쓰다보면 훅 가게 생겼네?'라는 생각이 더 커진 것이다.

"그래도 일단 아버지께서 지원해주신 돈은 갚아 드려야겠지."

돈을 받자 은준이 가장 먼저 한 생각이 바로 이것이었다. 다만 직접 한국에 귀국해 찾아뵙고 건네드리고 싶은 마음 때문에 미루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지금 진행하는 일만 마무리되면 추석 겸 해서 겸사겸사 한국에 다녀올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크게 생색을 낼 생각은 없었다. 이전에 돈이 없을 때에는 가족들 친척들 돈을 끌어모아 크게 판을 벌여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것은 당시 그의 아버지와 통화를 하면서 접은지 오래였다. 게다가 이렇게 한 번 옥수수를 팔고나니 그럴 이유도 없어졌고 말이다. 그런 생각에 은준은 또 한번 그때 자신을 말려준 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어쨌건 한국에 가더라도 자신이 큰 돈을 벌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려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 돈 때문이었다.

돈이라는게 요물같아서 사람을 홀리는 법이다. 내 돈이 아니어도 내 돈 같고, 내가 하면 더 잘 벌 수 있을 것 같고, 돈 벌리는 일에 자기를 빼놓으면 원수지자는 것이다.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가 친척들이나 아는 사람들 누구누구가 자기들도 투자를 하겠다며 너도나도 덤벼들 것을 생각하니 은준은 덜컥 겁이 났다. 불과 몇 개월 전과는 반대가 된 샘이다.

"하지만 이거 몇 평이나 된다고, 사람들이 들러붙어서 네 몫 내 몫 떼어가면 얼마나 남겠어. 그래놓고서는 또 수익이 이것밖에 안되네 어쩌네 하면..."

그 때가 되면은 은준 자신의 몫으로 떨어지는 돈 마저도 지금보다 줄어들 지도 모를 일이라며 진저리를 쳤다.

"어차피 투자를 받아도 그 돈 쓸데도 없잖아? 지금 내가 가진 돈도 쓸 데가 없어서 가만 놔두는데. 그냥 누가 물어보면 옥수수 농사 조금 한다고 하고 그냥저냥 먹고살 정도만 번다고 해야지. 그러면 설마 옥수수 팔아서 10억씩 번다고 누가 생각이나 하겠어?"

은준은 자체적으로 가이드라인까지 정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고, 아버지께만 사실을 알려드리는 것으로 말이다.

"어머니껜 죄송스럽지만, 혹시 모르니..."

그가 아는 어머니는 수다스럽게 누구에게 떠벌리는 성격은 아니셨지만, 비밀은 모르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중견기업 월급쟁이 만큼은 번다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아들에 대한 걱정을 놓으실 거라며 마음을 잡았다.

============================ 작품 후기 ============================

글 쓰면서 자료 검색을 하다가 갑자기 어느 사이트에 들어가니까 보안 어쩌고 뜨면서 에러가 나더니 익스플로러가 닫히는 바람에 쓰던 글이 날아갔습니다. 정말 짜증나네요. 왜 조아라는 자동 저장 기능이 없는건가요..에효... 썼던거 다시 쓰려면 이상하게 바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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