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카파로 가자-62화 (62/107)

62화

<얌, 냠.>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을 한 덕에 옥수수 파종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은준에겐 한가지 걱정거리가 생겼다. 그것은 땅 한쪽에 산처럼 쌓인 옥수수대였다.

총 다섯 개로 나뉘어진 옥수수 밭에서 수확한 옥수수도 대단한 양이었지만, 수확하고 남은 옥수수대 역시 한데 모아놓으니 그 양이 어마어마 했다.

원래 옥수수는 버릴게 없는 작물이라, 옥수수는 사람이 먹기도 하고 가축의 사료로도 훌륭했으며, 그 대 역시도 사료나 아니면 밭에 뿌려 퇴비로 사용하면 지력을 회복하는데 아주 큰 효과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보통의 대규모 옥수수 농장에서는 옥수수를 수확하고 남은 옥수수대는 밭에서 뽑지 않은채 그대로 트랙터로 흙과 함께 갈아엎은 뒤, 겨우내 묵혀 퇴비로 쓰는게 일반적이었을 테지만, 벤시몽 농장의 옥수수 밭은 1년에 이모작을 하려는 탓에, 옥수수대를 넣고 밭을 갈아엎고 묵히는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바로 다시 파종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결국 베어낸 옥수수대는 전부 밭 밖으로 옮겨졌고,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 것이 더 이상 위로 올라가 쌓을 수 없자 옆으로 옆으로, 면적을 넓혀가 파종이 끝날 무렵에서는 거의 밭 하나 넓이 만큼의 옥수수대 야적장이 생기고 말았다.

덕분에 신이 난 것은 소와 같은 가축을 키우는 마을 주민들이었다. 은준은 조금이라도 옥수수대를 처리하는데 도움이 될까, 옥수수대를 가져다 소를 먹이라며 등을 떠밀었는데, 매일 새로운 풀을 찾아 소떼를 몰고 떠돌아야 했던 남자들은 그럴일 없이 산처럼 쌓여있는 옥수수대가 있는 곳 근처에 데려다 놓으면 알아서 소들이 온종일 옥수수대를 씹으며 살을 불렸기 때문에 이러한 은준의 베품에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그렇지만 은준은 그런저런 이야기를 전해들으면서도 딱히 생색을 내지는 않았다. 그에게 소용없는 것들을 나눠줘 다른 이들이 풍족해졌지만, 어차피 그 안에는 은준이 사다 맡긴 소도 포함되어있었기 때문에 소들이 잘 먹고 새끼를 많이 친다면 그에게도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준이 걱정한 것은 이들이 먹어치우는 옥수수대의 양에 비해 남아있는 옥수수대의 양이 훨씬 많았다는데 있었다. 결국 그것들을 해결하지 못하고서는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뻣뻣한 옥수수대가 얽히고 섥혀서 그 안에 공간이 충분한데다가 다 수확하지 못한 옥수수까지 달려있으니, 저대로 그냥 뒀다가는 엄청난 쥐떼가 번식할지도 모르겠어."

그야말로 쥐들의 안식처와 식량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 은준은 하루라도 빨리 옥수수대를 해결할 방법을 찾고자 했다.

"퉁야, 뭔가 방법이 없을까?"

퉁야 역시도 은준에게 쥐의 번식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결코 허황된 상상이 아니라는데 동의했다.

쥐라는 것은 번식력이 왕성한 데다가 일반적인 집쥐의 경우 임신기간이 20일에서 21일에 불과하며 한번에 열마리 가까이 낳고는 곧바로 다시 번식이 가능해서, 단순 계산으로 한 쌍의 쥐가 1년이면 만 오천 마리의 쥐로 불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니 지금처럼 안전한 서식지와 충분한 먹이를 제공하는 상태라면, 순식간에 그 숫자가 늘어나서 주변의 다른 옥수수 밭까지 먹어치우거나 혹은 인가를 습격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애초에 잡았던 계획은 5개의 옥수수 밭이 아니라 한 개의 옥수수 밭만 경작을 할 계획이었던 터라, 거기서 나오는 옥수수대라면 지금처럼 가축의 사료로 쓰면 충분히 소비가 될 것이라는게 은준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욕심만 많아져 무려 500핵타르를 개간했으니 문제가 커지고 만 것이다.

"더 넓게 펴 너는 것은 어떻습니까? 서쪽으로 보스의 땅이 더 있으니 그곳에 흩뿌린 다음 놀고 있는 트랙터로 땅을 갈아엎으면 나중에라도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쪽은 워낙 땅이 좋지 않아서 일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은준이 말한 좋지 않은 땅이란 말은 지력이 약하다거나 하는 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벤시몽 저택을 중심으로 동쪽의 이미 개간한 밭의 경우엔 애초에 초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개간에 큰 힘이 들지 않았지만, 반대편인 서쪽의 경우엔 성인이 두 팔을 벌린 길이만큼 지름이 두꺼운 바오밥나무들이 수두룩해 그것들을 뽑아내기 전에는 개간이 쉽지 않을 것이란게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래도 언젠간 해야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차근차근 해나가지 않으면 언제까지도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긴 한데, 서쪽 땅을 개간하면서 하기에는 당장이 급하다는게 문제야. 지금 이러고 있는 순간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안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떻게 알겠어."

그러고는 은준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쥐떼가 바글바글 할 걸 생각하면, 으으으! 차라리 전부 태워버릴까?"

은준은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와 퉁야는 순간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는지 동그래진 눈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태우면 재가 생길겁니다!"

"그러면 부피도 확 줄겠지?"

"게다가 그 재를 뿌리면 지력 회복에도 좋지 않을까요?"

척척 죽이 맞는 둘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들은 곧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것들을 태우지 말아달라, 이 말이지?"

"예. 옥수수대가 없어서 못먹이지 소들이 무척 잘 먹는다고 합니다. 어차피 태워 없앨거면 자기들한테 달라고 하는군요."

어차피 은준의 허락하에 소떼의 먹이로 쓰고는 있지만, 그것을 죄다 태워버린다니 차라리 자기들에게 달라는 주민 남자들의 요구였다. 그러자 은준도 그것을 무시하기 어려웠다. 분명 소유는 그에게 있었지만, 농장 일이 바쁠때면 항상 그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 바로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괜히 밉보여 다음 수확철때 아무도 그의 일을 도와주러 나오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나온다고 확신할수는 없지만, 사람의 감정 상하는 건 아주 사소한 일 때문이기도 했다.

은준이 그들의 제안을 듣고 고민에 빠지자, 주민 남성들이 너도나도 입을 열고 떠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돗대기 시장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은준도 걱정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조용히 시키고 쉬사네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고작 한 쌍의 쥐가 1년만에 15000마리면, 실제로 1년 뒤엔 수만 마리가 인가를 휘젓고 다닐지도 모를 일이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병까지 옮기기 시작하면 문제가 걷잡을 수 없게 커질지도 몰랐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자 은준을 향해 떠들던 이들이 고개를 돌리곤 서로를 향해 떠들기 시작했다. 자신들 끼리 의견 조율을 하는 것이다.

"자자, 조용들 하시고. 이렇게 해봅시다."

좀처럼 끝날것 같지 않자 은준이 나서서 정리를 시작했다.

"소가 하루에 얼마나 옥수수대를 먹습니까?"

"한 단, 아니 두 단은 먹지요."

사람이 두 팔로 옥수수대를 안아 들었을때가 한 단으로 치면 그것의 두 배를 먹는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어차피 다음 수확 전까지 이것들을 전부 먹지는 못하겠지요?"

은준의 말에 또 웅성거리더니 누가 툭 털어놓았다.

"그, 그건 그렇지요."

"그러면 먹을만큼만 남기고 나머지는 태워버리겠습니다. 어차피 묵은 것보다는 새로 베어낸 것이 더 좋을테니, 수확기 전까지만 먹이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이치상으로 은준의 말이 틀리지 않아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새끼 칠 소가 있으니 좀 더 남기지요?"

누군가의 외침에 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남길것과 태울것을 정할 사람은 이들로, 은준은 봐도 얼마나 태우고 남겨야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그걸 정할 이들이 얼마나 더 남겨도 알 수도 없을 뿐더러 이왕 이렇게 된거 조금 넉넉히 남기더라도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또 그것을 뚝 떼어 나눠놓고 보니 그거나 저거나 많기는 마찬가지라, 이대로 쌓아둔다면 쥐가 꼬이기는 마찬가지로 보였다. 벌써부터도 사람들이 뒤적거리고 다니자 '후두둑!' 하고 쏜살같이 도망치는 녀석들의 꽁무늬가 보였다.

"저걸 저대로 두면 안될텐데...."

하지만 일단 지친 이들을 붙들어둘 수가 없어서 그날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저택에 돌아온 은준은 인터넷을 뒤졌다. 옥수수대를 사료로 쓰더라도 변형이 필요했다. 좀 더 부피를 줄이고, 쥐 피해를 없앨 방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기억속엔 카다란 트랙터와 같은 기계로 옥수수밭을 밀며 그대로 옥수수대를 갈아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본 것이 있었다.

속이 터질만큼 느린 인터넷에 답답해하면서도 수 차례 검색을 하고 페이지를 뒤적거리며 알아본 결과, 하베스터라는 물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대부분 베어내는 작업과 분쇄가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이미 베어져 쌓여있는 것들을 처리하기엔 부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트랙터에 탈부착이 가능한 모델이 있어 다음 수확때엔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는 정도로, 일단 기억해두기로 하고 좀 더 검색에 집중했다.

그러던차에 옥수수 분쇄기 제품이 있는것을 발견하여 알아보니 가격은 백만원대로 저렴하지만, 그 크기가 작아 은준은 자신의 앞마당에 쌓여있는 옥수수대를 처리하기 위해선 같은 제품이 열 대가 있어도 부족하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지, 답답한 인터넷을 붙들고 몇 시간을 검색하다가 그의 마음에 쏙 드는 제품을 발견하고는 책상을 '탁!' 내리쳤다.

전장이 약 4m에 너비와 높이가 2m내외인 그것은 전방으로 나아가며 옥수수대를 수확하며 동시에 파쇄해 뒤에 달린 자루로 쏟아내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무게는 2.6톤에 달해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동시에 멈춰있는 상태에서도 옥수수대를 집어넣으면 스스로 톱날이 빨아들이며 분쇄도 가능하지 지금같은 상황이나, 나중에도 충분히 사용가능했고, 갈린 옥수수대가 뒤에 달린 자루로 들어가니 따로 분쇄된 가루를 담기 위해 따라다니는 차량이 없어도되 그것도 그의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가격이...3만 달러? 이야, 역시 농사용 기계라고 무시할게 아니구나..."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보면 볼수록 욕심이 난 은준은 일단 품명과 사이트 주소를 적어두고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옥수수 수확기의 종류도 여러가지가 있더군요. 마시멜로우처럼 흰색 비닐로 둘둘 감아 쑥쑥 싸는 기계도 있고, 제가 말한 자루에 담아내는 것도 있고, 다른 트럭이 따라다니는 것도 있고... 역시 공통점은 커질수록 가격도 비싸진다는 거네요 ㄷㄷ 어지간한 차보다 비싼것도 많고요. 하지만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려면 역시 인력만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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