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카파로 가자-61화 (61/107)

61화

110만 달러.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부피도 장난이 아니다. 전부 100달러짜리 지폐로 받았다 하더라도 1만 1천장이니 100장 묶음으로 110개나 되는 돈다발이 쌓인다는 이야기다. 거기에 100달러 짜리가 아닌 것과, 만 달러 이하의 짜투리(?)까지 포함한다면, 큼지막한 방석 두어개는 깔아놓은 것 만큼 공간을 차지했다.

"이런게 돈방석인가!"

돈방석, 돈방석. 말로만 들어봤지, 실제로 눈 앞에 깔린 돈다발을 보는 은준의 눈엔 그것이 현실감이 없어보였다. 어디 생전 이렇게 큰 돈을 만져보기는 커녕 어디서 보기나 했던가!

그 많은 돈은 곧장 한국을 떠나올때 가져왔던 캐리어 가방에 차곡차곡 쌓였지만, 은준의 마음은 이 많은 돈을 직접 가지고 있는다는 것 자체가 큰 마음의 짐이 되었다.

"은행에 맡겨야해!"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선 역시 은행만한 곳이 없다. 적어도 소시민으로 살아온 은준에겐 돈을 보관한다는 것은 곧 은행에 저금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당분간 그는 이 돈을 저택에 놔두고 혹여 나쁜 마음을 먹은 누군가가 밤새 그의 방 안을 따고 들어올까 노심초사 해야만 했다.

그것은 옥수수 수확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옥수수 수확이 끝났기 때문에 더욱 뉴-카파에 다녀올 시간조차 낼 수 없을만큼 바빠졌기 때문이었다.

또 다시 마을 사람들이 총동원 되었다. 옥수수 대에는 아직도 곳곳에 여물어가는 옥수수가 매달려 있었지만, 은준은 눈을 딱 감고 지시를 내렸다.

"전부 베어냅시다!"

은준의 지시가 내려지자 남자들은 손에 외날의 벌목도를 들고 옥수수 밭으로 들어갔다. 인부들은 나눠 받은 벌목도를 휘둘러 옥수수대 밑동을 찍었다.

탁! 탁! 탁!

곧 사방에서 옥수수대 찧는 소리와 함께 우직! 뿌직! 하며 옥수수대가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어 옆 열에도 투입된 인부들이 옥수수대를 잘라나가기 시작했다. 무성한 옥수수 밭에서 옥수수대가 넘어가는 모습은, 나뭇잎을 애벌레가 갉아먹는 것처럼 구멍을 만들고 점점 넓혀가서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여자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한 손이 아쉬울 상황! 그녀들은 남자들의 뒤를 따르며 그들이 잘라내고 간 옥수수대를 한아름씩 안아들고 밭 옆으로 가져와 한데 쌓았다. 후두둑 후두둑 하고 쏟아내는 옥수수대들은 순식간에 한가득 쌓여 올랐다.

그런 작업이 어느정도 이뤄지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퉁야와 쉬사네는 골동품 골드스타 트렉터에 시종을 걸었다.

키릭! 키릭! 푸르릉!

두 대의 빨갛고 파란 트렉터는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 나란히 달리며 땅을 뒤집어 엎었다.

벌목도로 옥수수대의 밑동을 쳐냈다 하더라도, 아랫부분과 땅 속에 박힌 뿌리는 여전히 남아있었고, 트렉터는 그것을 속 깊이 파고 들어 뒤집어 꺼내고, 뒤 따르는 다른 하나의 트렉터는 속과 겉이 뒤집혀 난장판이 되버린 땅을 다시 한 번 잘게 갈며 흙을 골랐다.

은준이 옥수수 수확이 끝났음에도 도시로 나가보지 못 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모작. 옥수수 이모작을 하기 위해선 옥수수 수확이 끝나면 곧바로 옥수수를 또 심어줘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 옥수수를 심는 것이 늦어진다면, 겨울이 오기 전까지 얼마나 옥수수가 영글지 알 수 없었다. 자칫 시기를 놓치면 힘과 노력만 들이고, 아무런 수확 없이 그대로 갈아엎는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은준이 이렇게 서둘렀던 것이다.

하지만 새롭게 단장이 되어가는 밭을 보는 은준의 심정은 썩 좋지만은 않았다. 그의 눈에 보이는 일련의 작업들이 너무나 비효율적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은준도 놀고먹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좋으나 싫으나 옥수수 농사를 지어먹게 되었으니 정보화 사회에 살다 온 그로서는 옥수수 재배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통신비만 많이 나오고 속도는 나무늘보가 기어가는 것 만큼 느린 인터넷으로나마 이런저런 정보를 습득했다.

그중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역시 농기계를 이용한 효율적인 옥수수 재배였다.

'역시 공장도, 농장도 기계를 써야해. 땅이 넓으면 넓을수록 더 그렇지!'

은준은 미국의 어느 옥수수 농장에서 옥수수를 수확하는 영상을 보고는 그런 생각을 했다. 영상에서는 작은 집채만한, 이름도 잘 모르는 그런 커다란 농기계에 올라 지평선이 보일만큼 넓은 옥수수밭을 따라 옥수수를 수확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것은 지금 퉁야나 쉬사네가 타고 있는 트렉터보다 수 배는 더 넓은 범위를 한 번에 휩쓸고 다녔는데, 그 기계가 지나간 자리는 가루가 된 옥수수 잔해만이 남았다. 나머지는 옥수수든 옥수수대든 순식간에 기계 안에서 갈려 뒤 따르는 역시나 커다란 트럭 같은 차량의 짐칸으로 쏟아져 내렸다.

은준이 본 것은 식용 옥수수를 재배하는 농장이 아닌, 사료용 옥수수를 재배하는 농장이었다. 사람이 아닌 소와 같은 동물의 사료로 쓸 옥수수를 재배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수확도 옥수수와 대를 나눠 수확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애초에 수확을 할 때 영상에서 보았던 것처럼 통째로 갈고 섞어버렸던 것이다.

물론 은준도 자신의 상황과 영상에서 나온 곳이 똑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옥수수를 수확하고 다시 옥수수를 심어야 하는데, 일일이 사람 손으로 베어내고 옮겨 나르는 일은 그와 같은 기계로 한 번에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비용적인 면에서는 지금처럼 사람을 부려서 하는 것에 비해, 기계를 사고 유지하는 비용은 훨씬 클 것이 분명했다. 대체 이 사람들 같이 값 싼 일꾼들의 일당을 모아 기계값을 채우려면 몇 년이 걸릴까? 분명 그 비용을 생각하면 기계가 아닌 사람을 쓰는게 맞았다.

하지만 은준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빨리 수확하고, 빨리 갈아엎고, 빨리 심는다. 그것이 그에게 내려진 가장 중요한 숙제다. 농사란 시기를 잘 맞춰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은 기계만큼 빠르지도 않고, 먹어야 하며 쉬기도 해야한다.

또 반대로 생각하면 사람을 쓰는 것이 좋은점도 있었다. 어차피 기계를 사려면 큰 돈이 들 것이 분명할터, 은준이 지금 큰 돈을 벌었다고 할지라도, 영상에서 보았던 것 같은 기계를 사는 것은 '억!' 소리가 나는 것이 허다했다. 물론 가격은 기계의 크기와 성능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그와 비교한다면 역시 인건비는 거저먹는 것과 다름 없었다.

게다가 그처럼 큰 농기계를 들여놓으려면 충분히 넓은 차고와, 더 많은 기름과 같은 유지비용도 무시할 수 없을 터였다. 또한 수시로 정비하기 위해선 지금처럼 간단한 것이나 손볼 줄 아는 은준들의 수준으론 불가능 할 테니, 거기에 관한 비용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은준은 이 문제를 깊게 고민해보기로 했다. 앞으로는 더 많은 땅을 개간할 것이고, 그때 가서는 지금 처럼 하나하나 손으로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원래 살던 마을을 버리고 이주해 온 두 마을 사람들 역시 그가 안고 가야할 이들임은 분명했다.

그의 고민이 깊어지는 사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점점 커졌고 곧 은준의 관심을 끌었다.

"응?"

고개를 돌리니 그곳엔 지난번 의료봉사단이 주고 간 티셔츠와 낡은 바지에 맨발인 아이들이 쌓아놓은 옥수수대를 뒤적이며 개중에 크게 여물은 옥수수를 골라내고 있었다.

은준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 아이들도 그의 시선을 느끼고는 하던 동작을 멈추고 그와 눈을 마주쳤다. 아이들은 아쉬운 눈빛으로 가슴에 안아든 옥수수를 내려놓으려 했다.

그 모습에 움찔한 은준은 상관없다는듯 손짓을 해보이고는 다시 시선을 옥수수밭으로 돌렸다. 곧 '투둑!' 하고 옥수수 꺾는 소리가 띄엄띄엄 들려왔다.

============================ 작품 후기 ============================

갈랑입니다.

역시 기계의 도움을 받는다면 쉽지만, 모든 농민들이 기계를 사용하지는 않죠.

수익과 비용의 문제가 가장 크고, 흙, 물 등에 노출되는 작업 환경 때문에 작업 중간에 멈추는 일도 적지 않죠.

특히 작업하다가 중간에 멈추면 짜증이 확.. ㅋㅋ 간단한 거면 부품 사다가 갈아 낄텐데, 큰 고장이라도 일어난거면 문제가 커지더라구요. 센터에 보내야하고, 그럼 또 시간이 며칠 훅 지나가고. 때는 놓치고... 빌리려면 또 돈 나가고.. 쩝;

그래서 절충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세한건 나중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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