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잔인하리만큼 시리고 뜨거웠다. 쨍쨍 내리찌는 뙤약볕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고, 사람 키보다 크게 자란 옥수수밭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습기는 그 안은 물론,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의 숨까지 턱턱 막히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냉엄한 자연의 순리에도 인간들은 꺾이지 않고 옥수수 밭 줄기를 헤쳐나갔다. 검은 피부, 검고 머리를 파고들것처럼 강직하고 꾸불거리는 머리털을 한 남자와 여자들은 제각각 모자나 수건등을 머리에 쓰고 감아 정수리를 뜨겁게 달구는 태양빛을 가렸고, 등 뒤로는 커다란 바구니를 지고는 옥수수 대 사이를 헤치고 나가며 좌우로 탐스럽게 영글은 옥수수를 꺾어 바구니에 던져넣었다.
솨아아아!
촤르르륵!
파랗고 누런 옥수수 줄기와 잎으로 이루어진 바다가 사시나무 떨듯 떨며 사람의 손길이 닿고 지나간 흔적을 따라 파도치기 시작했다. 옥수수 대는 몸살을 앓았다.
한쪽 끝에서 시작된 인부들의 행진은 반대쪽 끝에 닿아서야 끝났다. 그들은 고랑을 따라 일직선으로 나아가며 좌우로 높게 자라난 옥수수 대로부터 영근 옥수수를 꺾어 왔고, 등 뒤 커다란 바구니에 따 담긴 옥수수를 바닥에 쏟아냈다.
후두두두!
억세고 질겨보이는 껍질과 허연 수염이 너풀거리는 짙은 녹색의 옥수수가 한데 쏟아져 내렸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은 뽀얀 흙먼지를 헤치고 들어가 그 옥수수들을 하얗고 질긴 자루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엇차! 엇차!
노래를 시작한다. 알아듣지 못할 빠른 말로 흥에 겨워 손뼉과 허벅지를 쳐가며 노래를 부르니, 어떤 이는 고개를 까딱까딱 박자를 맞춰 옥수수를 퍼담았다.
순식간에 가득찬 자루는 쪼그려 앉은 이의 등에 기대어졌고, 좌우로 달라붙은 사람들은 자루를 밀고 붙들고 하며 함께 트럭 뒤에 올려 실었다.
쿵! 하고 트럭이 들썩이는 듯 하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올려진 자루는 트럭 뒤에 대기하고 있던 두 사람에 의해 굴려지고 들려져 안쪽부터 차례대로 차근차근 채워져갔다. 그러는 사이 옥수수를 쏟아낸 이들은 다시 한번 옥수수 밭 안쪽으로 사라졌고, 그들은 한참후 반대편 옥수수 밭 끝에, 안에서 따온 옥수수를 쏟아내곤 다시금 옥수수 밭 안으로 향했다.
옥수수가 터질듯 삐죽삐죽 대가리를 들이밀며 채워진 하얀 자루가 옥수수 밭 양쪽으로 계속해서 쌓여나갔다. 얼마나 들어찼는지 넓적한 밑바닥은 쓰러지지도 않는다.
은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가 이 커다란 옥수수밭의 주인이며 쌓이는 옥수수는 그의 재산이었다. 저 안에서 자라나는 옥수수는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쌓이는 옥수수 자루는 그 자체로 돈이나 다름 없었다.
그도 장갑을 끼고 달라붙어 쏟아지는 옥수수를 쓸어 담았다. 하지만 이내 뒤로 밀려났다. 손발도 안맞고 다른 인부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니 괜히 손만 어지럽히는 셈이었다.
꽉꽉 들어찬 자루도 용을 써봤자 혼자선 어림없는 무게였다. 한쪽이 힘을 못쓰면 반대쪽 사람이 더 힘이 든다. 어쩔 수 없이 은준은 뒤로 멀찍이 밀려났다. 도움이 안되니 괜히 무안해진 그는 벌써 흥건한 땀과 타는 목마름에 거친 장갑낀 손등으로 땀을 닦아냈다.
"물! 얼음!"
비명처럼 두 마디 말을 쏟아낸 은준은 부리나케 저택으로 달렸다. 사람들은 각자가 집에가 가져온 플라스틱 병에 물을 담아왔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선 순식간에 뜨뜻 미지근한 물이 되었고, 겨우 갈라진 목구멍을 적시는 정도에 불과했다.
야의 도움을 받아 커다란 하얀 물통에 차가운 물을 채우고 냉동실에선 얼음을 꺼내어 통에 쏟아부었다. 그것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는, 얼음이 녹을까, 물이 뜨끈해질까 땀을 뻘뻘 흘려가며 인부들이 모여있는 곳을 향해 뛰었다.
사발같은 컵에 차가운 물이 부어지고 그 위로 작아진 얼음이 호도동 하고 떠올랐다. 그것을 차례대로 벌컥벌컥 들이킨 이들은 목구멍에서부터 속까지 짜르르! 하고 울리는 시원함에 절로 웃음꽃이 피어났다.
옥수수 밭을 헤치고 나온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나올쯤에는 벌써 얼음은 녹아버렸지만, 물은 여전히 시원했고, 그 안에서 마른 흙먼지를 삼키던 그들은 시원한 물 한 잔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부르르 떨었다.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옥수수 수확이 끝을 맺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의 일일뿐, 내일은 내일 또다시 옥수수와 사투를 벌여야 할 터였다.
옥수수의 수확은 다른 작물과 수확 방법이 다르다는 차이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벼와 같은 작물은 한 번에 추수를 하면 끝이지만, 옥수수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한 옥수수 대에 여러개의 옥수수가 자라나는데, 그 생장 속도가 제각각인지라 어느것은 먼저 영글고 어느것은 나중에 영그는게 보통이다. 그런데 그것을 한 번에 죄 따버리면 결국 덜 영글은 것은 크기도 작고 먹을것도 없게된다. 때문에 완전히 큰 것만을 따고, 나중에 시간을 두고 덜 자란 것은 더 키워 따게 되는 것이다.
은준의 옥수수 밭은 무려 500헥타르에 달한다. 그것이 벼라면 한 날 한시에 거둬들여도 전부가 비슷하겠지만, 옥수수는 그 크기가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밭 마다 심은 날짜까지 다르니 더욱 그럴 수 밖에.
게다가 어차피 일일이 사람 손으로 따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거둬들이고 나면, 처음 수확을 했던 곳에 덜 자랐던 옥수수도 그 사이 다 자라게 될 것이다.
옥수수 수확은 열흘에 걸쳐 계속되었다. 수확량은 무려 3600톤! 10톤 트럭 360대 분량의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단순 계산이라면 열흘에 걸쳐 하루에 36대의 트럭이 옥수수를 실어냈어야 했겠지만, 실제로는 서른대의 트럭만이 벤시몽을 방문했다. 과적인 셈이다. 하지만 옥수수를 재배하는 것 까지만이 은준의 몫, 그것의 운반과 판매는 모두 리소테 정부가 할 일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 문제에 왈가왈부 하지 않았다.
사실 단순히 은준이 이 땅을 살 때 정부에서 나왔던 공무원이 말했던 대로라면 3600톤이 아니라 4000톤이 나왔어야 했다. 헥타르당 8톤이 나온다고 했으니 500헥타르면 4000톤이 맞는 셈이다.
하지만 어디 세상살이가 그리 쉽다던가. 은준이 이모작을 하겠다며 일찍 심은 것도 있고, 또 그러게 하기 위해 수확을 서두른 것도 수확량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일부는 여전히 옥수수 대에 달린채로 있는 것도 있었지만, 수확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하나까지 수확을 하려 한다면 이모작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일부는 일을 해준 마을 사람들에게 한 광주리씩 퍼주고, 자신이 먹을 양도 푸짐하게 남겼다. 사실 그정도로는 별 티도 안났지만, 어쨌건 이런저런 것들을 제하고 나니 3600톤이 남았다는 이야기다.
계산은 트럭 하나를 채울 때마다 바로바로 계산을 했다. 속된말로 현금 박치기를 했다는 이야기다. 은준은 솔직한 마음에서 아프리카쪽 공무원들의 업무 속도와 불친절에 대해 말을 많이 들어왔던 터라 걱정되는 부분이 없지않아 있었는데, 이렇게 그자리에서 계산을 끝내주니 한 짐 내려놓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생각했던 것만큼 돈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역시나 세금이 문제였다. 만약 이 옥수수들을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 팔고 현금을 받았으면 세금은 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실제로 사업자가 아닌 개인이 생산한 작물을 얼마 받고 파는것 쯤은 세금을 내지 않았다. 다만 규모가 문제가 되었다. 3600톤은 일반에 팔 만한 수량이 아니었다. 게다가 애시당초 계약하기를 정부에 전량 일괄판매를 하기로 되어있었으니 어림없는 생각이었다.
물론 은준도 속으로는 투덜대기는 했다. 아무렴 돈을 받는 와중에 세금이라고 뚝! 떼어가면 누가 좋을까. 하지만 아쉬운 사람은 은준이었다. 아니, 리소테 정부나 은준이나 아쉬운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약자는 은준이었다.
'다이아몬드 팔아 돈도 많다면서, 그걸 후려치기는!'
어쨌건 법이 그렇다고 하니 은준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그렇게 세금을 제하고 나니 그의 수중에 들어온 돈은 약 110만 달러였다. 뒤에 구구절절 숫자가 붙기는 했지만, 앞자리가 크다보니 뒷자리는 세세히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은준이다. 몇 가지 세금 명목으로 15% 정도를 감하고 난게 그정도란 이야기다.
은준은 사업자로 등록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나온 공무원을 달달 볶아 계산서 비슷한 것을 받아냈다. 혹시나 나중 연말에 세금을 내라고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땐 그걸로 이미 세금을 냈음을 증명할 생각이었다.
"110만 달러라... 환율이 얼마쯤 되지? 한 1100원쯤 하나?"
은준은 110만 달러라는 금액이 감이 오지 않았다. 옛날에에 백만장자, 육백만불의 사나이, 등등 그런 영화에도 나올 정도로 큰 액수였지만, 세월이 흘러 현재에 와서는 백만장자라고 할 정도의 부는 아니게 된지 오래였다. 물론 적은 액수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는 방에 돌아와 계산기를 두드렸다. 두 번, 세 번. 혹시 숫자 하나를 빼먹거나 덧붙이지는 않았는지 몇 번이고 확인을 했다. 하지만 몇 번을 계산을 해봐도 나오는 금액은 동일했다.
"일, 십, 백, 천.... 시, 십이억!"
은준이 아프리카 리소테 왕국에 온지 약 1년 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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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12억을 벌 수 있다고? 나라도 가겠다! 췟췟췟!
하지만 소설이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