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첫 수확>
희미하게 동이터 오를때쯤 야는 조심스럽게 침대를 빠져나왔다. 여전히 침대 위엔 잠에 빠져있는 은준의 모습이 보였다. 야는 간밤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는 살며시 얼굴을 붉혔다. 동시에 잠에 깊게 빠져있는 은준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조용히 미소지었다.
"...귀여워."
띠동갑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지난밤 애처로운 표정으로 자신의 위에서 숨차게 달리던 그의 모습은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강아지와 같았었다.
사실은 야도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차마 그가 요구하는 다른 부끄러운 자세나 행동은 따라할 수 있어도 그것만은 아직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은준이 요구하는 자세와 동작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남자들의 환타지가 들어가있는 그런, 여자 입장에서는 무척 부끄럽고 때론 불쾌할수조차 있는 그런 것들도 다수 있었지만, 그런 방면으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던 야는 그것이 가장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인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자꾸만 터져나오려 하는 신음소리는 생각할수록 그녀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처음 은준과 관계를 갖게된 그날, 아랫층에 있는 퉁야의 방에서 새어나온 어느 여성의 신음소리가 방문 밖까지 들렸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방에서 나는 소리 역시도 문 밖으로까지 들릴 것이 분명했다.
화악!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야의 얼굴은 다시 한번 붉게 달아올랐다. 자신이 단정치 못하게 흘리는 신음 소리를 매일 마주치는 퉁야가 듣는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도 그런 부끄러움 때문에 야는 퉁야가 있을 때에는 자꾸만 걸어오는 은준의 손장난도 난감했고, 은준과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사실을 퉁야가 눈치챌까봐 전전긍긍 그의 눈치를 자주 살피기도 했다.
물론 퉁야는 진작에 은준과 야가 서로 그런 관계가 되었음을 눈치챈 상태고, 은준도 특별히 그것을 감추려 한적이 없었기에 모르는 일이 아니었다. 다만 퉁야와 야 사이에서 그것을 가지고 언급하거나 주제삼을만한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에 그 일에 대해선 그냥 그렇게 넘어갔던 것 뿐이었다.
어쨌든 그런 상황이니 야는 어떻게든 은준과 관계를 가질때 손으로 입을 가린다거나, 엎드려 베게에 얼굴을 파뭍거나 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터져나오는 소리를 억누르려 했는데, 그게 또 은준에게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오늘은 반드시 내 밑에서 울부짖게 해주겠어!"
매일밤 각오를 다잡는 은준!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일밤 계속되는 격전을 치를 수 있었던 것은 하루에도 몇 잔씩 마시는 밀크티에 들어간 자연산꿀과 로열제리 덕분이었을까? 아무튼 그런 이유로 은준은 야가 그럴수록 더욱더 부끄러운 자세를 요구하기도 하고, 자신이 가진 온갖 지식을 동원하며 체력의 한계까지 그녀를 밀어붙였다. 오히려 야는 그런 은준을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른채 말이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스스로 체력의 한계를 느낀 은준은 요즘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도 매일 옥수수농장 주변을 달린다거나 화살을 더 많이 쏘는 등 운동에 열중하면서 그의 몸도 이전과 다르게 더 좋아지고 건강해지고 있었다.
"킴, 킴!"
잠시 잠들어있는 은준을 지그시 응시하던 야는 창 밖으로 회색빛 어스름이 붉은 솟아오르는 태양에 녹아내릴때쯤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으응.."
하지만 밤새 달렸던 은준은 쉽게 깨어나지 못했고, 야는 그런 은준을 깨우기 위해 그의 몸을 흔들었다.
근 십여분 가까이 몸을 흔들던 야는 여전히 꿈결속을 헤메고 있는 은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오늘 중요한 날이라고 하셨잖아요. 이제 일어나요. 모두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에요."
"....끄응."
그제서야 은준은 정신이 돌아오는듯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곤 살랑거리는 커튼 너머 창밖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다 시계로 고개를 돌렸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우움, 뽀뽀."
겨우 상체를 일으킨 은준은 눈도 채 뜨지 않은 상태로 뾰족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그러자 야는 '킥킥' 거리면서도 침대 위로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쪽쪽!
"꺅!"
짧게 두번. 그런데 그때 갑작스런 은준의 공격이 들어왔다. 꼭 껴안은채로 침대에 옆으로 누워버린 두 사람. 곧이어 은준이 손가락을 세워 집요하게 그녀의 겨드랑이나 옆구리 허리등을 간질여왔다. 그런 그의 손길을 피해 연신 작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던 야는 결국 그를 두 손으로 밀치고 나서야 침대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고, 헝클어진 머리를 손가락빗으로 쓸어내렸다. 은준도 그때쯤엔 잠이 깨었는지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런 두 사람의 얼굴은 즐거운 미소로 활짝 빛났다.
야가 꺼내준 작업복을 챙겨입고 저택을 나서던 은준은 입구 옆의 개집 앞 밥그릇에 들고나온 고깃덩어리를 던졌다.
"카용!"
그러자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검은 주둥이가 슬그머니 기어나오더니 은준을 향해 한번 '컹!'하고 짖고선 고깃덩어리에 주둥이를 처박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시선 하나는 여전히 은준과 주변을 향해 머물러 있었다.
카용은 은준이 데려온 길 잃은 리카온의 이름이었다. 은준은 리카온이 자신에게 길들여지는 경과를 봐서 그의 처우를 결정하려고 했었다. 당시엔 측은함에 집으로 데려오기는 했지만,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에 걱정이 없을수 없었다. 그래서 아쉽기는 하지만, 길들여질 여지가 없다면 언제까지 우환을 집에 들여놓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다행인지, 꾸준한 은준의 관심과 먹이 덕분에 리카온은 기운을 차렸고, 또 처음에 비해 많이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다. 물론 항상 먹이를 가져다주는 은준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에겐 여전했지만, 적어도 은준이 다가올때는 이빨을 드러내진 않았다.
그때부터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던 은준은 리카온에서 뒤에 두 글자를 따와 '카온'으로 하였다가, 이내 너무 성의가 없다며 좀 더 귀여워지라는 의미에서 '온'자를 애교스럽게 발음을 굴려 '용'자로 만들었다. 그렇게 정해진 이름이 '카용'이란 이름이었다.
잠시 고기를 씹는 카용을 지켜보던 은준이 발길을 돌려 저택 밖으로 나가자 잠시 뒤따르려는듯 앞으로 걸어가던 카용은 이내 목줄에 채여 되돌아왔고, 물끄러미 은준의 뒤를 응시하던 카용은 이내 그릇에 주둥이를 박고 식사에 열중했다.
저택을 나온 은준은 잠시후 옥수수 창고 앞에 도착했다. 그곳엔 이른 아침부터 모여든 원주민들이 한데 모여있었다.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옥수수를 딸 키가 된다면 누구든지 동원된 이 작업은, 드디어 은준이 기다리던 옥수수 수확 작업이었다.
"자! 그럼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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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 변태스러운 야. '그래! 개처럼 더 헐떡여봐!' 이런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