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은준이 데려온 리카온은 사실상 그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더군다나 야의 경우엔 갑자기 은준이 냉장고에 보관되어있는 고기를 생으로 내오라는 말에 의아해 밖으로 나왔다가 은준이 안고 있는 리카온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비명을 지르기까지 했다.
짧은 비명과 함께 허겁지겁 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갔던 야는 곧바로 다시금 문을 슬그머니 열며 고개부터 빼꼼 내밀어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지만, 멀찌감치 떨어져 경계할뿐 가까이 다가오려 하지는 않았다.
"설마 여기서... 키우실건가요?"
아니겠지 아니겠지, 하며 두 손을 모아 잡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그녀의 모습에 은준은 겁먹은 듯한 모습이 귀여워 보인다며 속으로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리카온을 구해온지 10분도 안돼 결심을 번복할 생각도 없었다.
다만 환영까지는 아니어도 가장 태연한 모습을 보여준 이는 다름 아닌 퉁야였다. 그는 은준의 품에 안긴 리카온을 보곤 놀랍지도 않은지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채 은준의 곁으로 다가와 섰다.
"퉁야, 퉁야도 리카온을 길들일 수 없다고 생각해?"
그러자 퉁야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대답햇다.
"음, 제가 알기론 나이지리아에서 하이에나를 애완동물로 삼는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은적이 있습니다."
퉁야의 말에 은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퉁야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대신 주둥이에 가드를 씌운다고 하더군요."
퉁야는 손을 오무려 입을 가리는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그래도 리카온은 하이에나보다 훨씬 작은데..."
은준이 작게 중얼거렸다.
어찌되었든 벤시몽의 새로운 식구라 할 수 있는 리카온을 반긴 이는 리카온을 데려온 은준 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를 하는 이도 없었다. 결국 집주인이자 고용주는 다름 아닌 은준이었다.
"그럼 일단 집이 있어야겠지?"
은준은 여전히 리카온을 안은채로 마당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이전에 애완동물을 길러본 적이 없으니 그 비슷한 것이라도 있을리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그의 시선이 창고에 가 닿았다.
"창고의 건초더미라면...?"
"아, 안돼요!"
"응?"
"닭하고 병아리들을 잡아먹을지도 몰라요!"
야가 손사레를 치며 그를 막아섰다. 만약 은준이 리카온을 창고에 풀어놓는다면, 리카온은 야생에서 살아왔던대로 닭과 병아리를 사냥해 배를 채우려 했을 터였다. 비록 매일 아침 계란을 꺼내오는 일은 은준의 역할이었지만, 그렇다고 야가 노랗고 조그만 병아리를 귀여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낮에 마당에 나와 어미 닭을 졸졸졸 따라다니는 병아리를 지켜보는 일을 꽤 좋아했다.
"아, 그건 그렇겠네."
은준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었으니 야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럼 어디 기둥에라도 묶어 놓으면? ...그런데 목줄이 없구나!"
"따로 집을 만드시죠? 재료라면 전에 창고 문을 만들어 달고 남은 목재가 남아있습니다."
퉁야가 제안을 했지만 은준은 그것도 역시 염려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밤새 도망가면 어떡하지?"
하지만 그런 은준의 물음에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야 만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차라리 그러면 다행일거야. 힘내! 리카온!'
무덤덤했던 반응치고 퉁야는 은준을 도와 순식간에 개집 하나를 뚝딱 만들어냈다. 은준은 다시 창고에 있는 건초더미를 들고나와 개집 안에 깔아주었고, 그 위에 리카온을 뉘였다. 다만 아직까지 리카온의 주둥이는 꽁꽁 묶인채였다.
"풀어줘도 괜찮을까? 어휴, 어휴!"
은준은 연신 주둥이를 묶고 있는 끈의 매듭에 손을 가져가다가 이상한 한숨과 함께 손을 빼기를 반복했다. 끈을 풀어주는 순간 야생의 리카온이 자신의 손을 물기라도 할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결국 그날밤 리카온은 주둥이가 묶인채 밤을 보내야 했다.
"으르릉....!"
도시에 나가 사온 목줄이 채인 리카온은 기운이 없어 옆으로 누운채로 잇몸을 드러내며 목을 울렸다.
"자자, 착하지..."
그런 리카온에게 은준이 가져온 것은 갓 짜온 우유였다. 넙적한 플라스틱 접시에 우유를 담아 리카온의 주둥이가 있는 쪽으로 접시를 밀어준 은준은 '쭈쭈쭈쭈' 하는 소리를 내며 우유를 먹기를 기다렸다.
"덩치를 봐서는 다 큰 녀석 같은데 우유를 먹을까요? 고기같은걸 먹지 않겠어요?"
여전히 리카온을 경계하는 야는 문 뒤에 숨어서 은준에게 외쳤다.
"그래도 아픈건지 굶은건지 어쨌든 쓰러져있던 녀석이니까 처음엔 우유 같은게 낫지 않을까?"
은준도 리카온이 육식을 하는 동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침일찍부터 갓 짜낸 우유를 들고온 이유는 있었다. 물론 그도 리카온을 처음 본 것이 어제였기 때문에 확신은 없었다.
"으릉..."
그렇지만 리카온은 여전히 앞다리와 뒷다리로 간헐적으로 목줄을 빼내려 휘저을뿐 우유엔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자리를 비켜줘야하나?"
누가 지켜보고 있으면 먹이를 먹지 않는 동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에 은준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문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야의 허리를 감싸며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관심을 아예 끊은 것은 아니어서, 둘은 조심스럽게 창가로 다가가 쪼그려앉아 머리를 살짝 위로 내밀고는 리카온을 지켜봤다.
그렇지만 은준이 사라진 뒤로도 한참을 리카온은 자신의 목을 죄고 있는 목줄이 불편하고 괴로운듯 그것을 떼어내는 데에만 집중하였고, 그 바람에 우유가 담긴 접시를 걷어차 도리어 우유를 엎지르기만 했다.
데구르르르
엎어진 플라스틱 접시는 핑글핑글 돌아 굴러가더니 한 바퀴를 삥 돌아 원래 있던 자리 근처로 돌아와 멈춰섰다.
"...조금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겠어."
은준은 엎어진 우유 접시를 보다가 냉장고로 가 고기를 조금 썰어냈고, 야는 그런 은준을 지켜볼뿐이었다.
찹!찹!찹!찹!
먹이의 선정이 잘못되었는지 은준이 고기를 썰어내오자 리카온은 은준을 경계하면서도 그가 하나씩 손가락만한 고깃덩어리를 던져줄 때마다 하던 동작을 멈추고 바닥에 떨어진 고기를 덥석덥석 집어먹었다. 그 기세가 워낙 좋아서 은준은 잘 먹는 리카온의 모습에 또 넙죽넙죽 던져주다가 반 접시나 되는 고기를 전부 던져주고 말았다.
"입맛이 좀 있나보네? 자자, 나 기억했지? 내가 네 먹이 준 사람이야. 알았어?"
"컹!"
은준은 고기를 다 집어먹고 혀를 길게 내밀어 날름 입을 훔치는 리카온을 보며 뿌듯해했다. 하지만 그가 뭐라고 하든 알아듣지 못하는 리카온으로서는 그저 앞에 있는 낯선 인간에게 짖는 것 밖에 할 줄 몰랐다.
하지만 은준도 한번에 리카온이 자신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인간에 익숙한 개도 주인이 바뀌면 낯을 가릴텐데, 야생을 살아가던 리카온이 인간을 바로 주인으로 인식하기란 무리였다. 대신 쭉 이렇게 먹이를 챙겨주고 얼굴도장을 찍으면 언젠가는 리카온도 자신을 따를 것이라고 은준은 믿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하늘짱11님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물론 다른 여러분들의 관심도 감사드리고 있습니다^^아쉬운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ㅎㅎ에, 퉁야의 경우는 딱히 인재라고 할 정도는.... ㅋㅋ 영어를 하는 건 남아공 영어라고, 영어도 공영어중 하나입니다. 오히려 그쪽이 생활 영어 하는 사람이 우리나라보다 많을지도? 제가 알기론 그렇습니다. 다만 여러 농장을 전전한 경력은 인정해줄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