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길 잃은 리카온
은준은 그날 밭을 둘러보러 나왔다가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그것은 원주민 남성 셋이 둘러서서 발밑을 내려다보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도 똑같은 사람들이니 아는 사람이나 친구들이 있어 서로간에 대화를 하는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할까마는 그곳이 옥수수 밭 너머 이백여미터쯤 떨어진 곳인데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순찰을 돌고 있어야 할 이들이 죄 그쪽에 몰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어? 무슨 일이라도 있나? 저럴 사람들이 아닌데."
비록 원주민 남성들이 타지에서 온 사람들의 시선에는 조금 게을러 보일수도 있지만, 자신이 맡은 일을 내팽겨쳐두고 놀러다닐 이들은 아니었다. 그들이 노는 것은 할 일이 없어서지 결코 일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러고있는 사이 남자 한 명이 더 무리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새끼줄 같은것을 들고 있었는데, 그가 다가서자 다른 사람들은 그가 가져온 밧줄을 나눠 들더니 아내 쪼그려앉아 주섬대기 시작했다.
"확실히 뭐가 있는데... 한 번 가볼까?"
은준은 호기심이 생겼다. 이렇다할 유희 거리가 없는 이 외딴 농장에서의 생활은 티비와 컴퓨터 등의 화려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극에 익숙해져있던 그에겐 무척 지루한 일이 분명했다. 그나마 최근엔 야 와의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덜 한 감이 없지않아 있었지만, 그렇다해도 하루 종일 배를 맞대고 용을 쓸 수는 없으니 그것도 한 순간에 불과했다.
자박 자박 자박
대규모 밭을 일구며 골라낸 자갈들이 깔린 길을 따라 걷자 자갈이 서로 마찰되며 발소리를 냈고, 귀가 밝은 이가 먼저 뒤를 돌아보자 남들도 은준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곤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에 쓴 캡 모자를 살짝 들어보이며 인사를 해왔다.
지금이 노예가 있는 식민지 시대는 아니지만, 원주민들은 큰 농장을 소유하고 그들을 데려다 일을 시키는 동양에서 온 젊은 은준을 제법 인정해주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은준을 볼 때면 그들쪽에서 먼저 대우를 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거기엔 지난번 악어 사냥과 같이 은준의 도움을 받았던 일이 있었던 것도 한 이유였다.
은준이 고개를 내밀어 다리 사이로 보이는 물체에 관심을 보이자 그들은 은준이 좀 더 다가와 살필 수 있게 옆으로 자리를 내주었다.
"거기 뭐가 있나요?"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노력파는 아니었지만, 매일 보고 듣는 것이 소토어이고보다 보니 그도 어느 정도는 풍얼을 읊는 정도는 되었다. 비록 그게 띄엄띄엄에 발음과 단어의 선택도 조금 어설펐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적당히 걸르고 짜맞춰 의미를 파악할 정도는 되었다.
"[다친, 다친, 고기, 집, 가족!]"
오히려 문제는 알아듣는 것이었다. 은준이 어설프게나마 자기네들 말을 하니 알아듣겠거니 하는 것인지, 빠르게 이사람 저사람 서로가 입을 여는 통에 은준은 그들이 하는 말 중에서 자신이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 몇 가지만을 선별해 그것을 통해 대화 내용을 유추해야만 했다.
"아~, 뭐 죽은 동물이라도 쓰러져있었던 건가? 아니, 다쳤다고 했으니 죽은건 아니겠구나. 하긴, 사람이 하이에나도 아니고 죽은 동물을 주어다 먹진 않겠ㅈ...힉! 하이에나다!"
은준은 비켜선 이들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며 중얼거리다가 바닥에 옆으로 뉘여져 있는 동물을 보고서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쳤다.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남자들은 깔깔거리며 손뼉을 치다가 몸짓으로 손목을 붙이고 그 위를 다시 손으로 빙글빙글 돌린다거나 두 발을 딱 붙이고 마찬가지로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묶여있어서 안전하다며 그를 안심시켰다.
은준도 그제서야 자세히 살펴보니 하이에나는 옆으로 드러뉘인채 앞발과 뒷발을 각각 새끼줄로 묶여져 있는 상태였다.
"거참, 깜짝 놀랐네."
묶여 있음을 확인한 은준은 언제그랬냐는듯 너스레를 떨며 슬그머니 하이에나에게 다가가 이리저리 살폈다.
그것은 여전히 살아있었는데, 원래 그런 것인지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날 정도로 말라 있었다. 사실 은준도 차를 타고 달리는 와중에 하이에나 무리를 스쳐지나간 적은 있어도, 이렇게 가까이서 자세히 살펴본 적은 처음인터라 모든것이 궁금했다.
하이에나는 전체적으론 황구와 비슷한 색의 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부가 갈색인 황구와 달리, 앞다리와 배 그리고 뒷다리에 이어지면서 검정과 갈색 그리고 흰색이 군데군데 섞여있어 마치 얼핏보면 피부병에 걸린 황구처럼 보일 정도였다. 또한 길게 나온 주둥이는 눈 밑에서부터 전부 검은색이었고, 귀는 넓고 컸다. 그리고 발목과 꼬리 끝은 온전히 흰색털을 가지고 있었다.
"한 1m쯤 되나? 생각보다 작네. 새끼인가?"
길이도 길이였지만, 최근 잘 먹지 못했는지 뼈가 드러날정도로 말라 더욱 체구가 작아보였다. 그래서 은준은 그것이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하이에나 새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팡팡!
은준은 가만히 묶여 고개를 땅에 기대어 '오울, 오웅.' 하고 낮게 목으로 우는 소리를 내는 하이에나 새끼의 모습에 슬그머니 손을 내밀어 등의 털을 쓸어내리며 만졌다가 그나마 살이 붙어있는 엉덩이에서 허벅다리로 내려오는 부분을 토닥여봤다.
하지만 다리가 묶인 이 하이에나 새끼는 낯선 인간의 손길을 피할수도 없었기에 힘겹게 고개를 들어 앓는 소리를 한번 내고는 다시 바닥에 머리를 내려놓는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은준은 어쩐지 이 죽어가는 하이에나 새끼가 가엽게 느껴졌다. 게다가 아까 이들이 했던 말을 생각하면 데려가 죽여 고기로 해 먹을 것 같았으니 더욱 그랬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악어 사냥을 다니고, 또 누와 얼룩말 영양 등을 족족 쏴주여 고기 잔치를 벌였던 은준이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원래 작정하고 잡은거고, 얘는 아픈애잖아. 그리고 너무 개랑 닮았어. 개는 인간의 친구잖아?'
물론 한국에 있을땐 은준도 개고기를 먹는 편에 속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것은 변함 없었다. 다만 눈 앞에서 죽어가는 개와 이미 고기가 되어있는 개는 그의 머리속에선 전혀 다른 분류에 속했다. 다분히 이중적인 태도인 셈이다.
하지만 이미 사내들은 다리를 묶은 하이에나를 짊어지고는 마을로 향했고, 은준은 말도 잘 안통하는데다 저대로 가면 당장이라도 토막이 쳐질까 다급한 마음에 서둘러 뒤를 따라갔다.
============================ 작품 후기 ============================
조아라도 쓸때 분량이 얼마나 되는지 볼 수 있음 좋겠어요.
전 대항해시대 온라인을 하는데, 조아라나 문피아에서 그런 장르의 글을 찾고 싶습니다. 패러디도 좋고, 게임 소설도 좋고, 퓨전이나 판타지도 상관없는데.
[바람과 별무리]라고 보고 있는게 있는데, 부족해요 ㅜㅜ난 아직 목마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