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카파로 가자-55화 (55/107)

55화

한국에서 의료 봉사단이 방문한 이후로도 은준의 농장 벤시몽은 평소와 다름 없이 목가적인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그들이 지나간 이후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전에 없던 형형색색의 현대식의 공장에서 생산한 옷을 입고 다녔지만, 그것은 이곳에서 아주 작은 무언가에 불과했다.

쉬이이. 코르르르!

방금 큰 일을 보고 일어선 은준은 무언가 시원하면서도 미련이 남는 표정으로 소용돌이치며 작은 구멍으로 빨려들어가는 변기물을 응시했다.

"저 회충이 나를 갉아먹었던 것인가, 아니면 내가 살찌지 않게 대신 열량을 나눠가졌던 것이냐..."

그러고 보면 그간 먹는 것 같지 않게 생각보다 체중이 크게 불지 않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것이 저 회충들이 장 속에서 그가 흡수해야 할 열량을 대신 나눠 먹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약을 먹어 장이 깨끗해져서 좋다라는 것보다는, 앞으론 먹는대로 살로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하지만 또 정작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듯 손을 씻고 거울을 보며 이리저리 머리 모양을 만진 후 기분 좋게 흥얼거리며 계단을 내려와 부엌으로 향했다.

그곳엔 이미 식사시간이 끝나고 뒷정리를 하고 있는 야가 뒤돌아 서 있었다. 은준은 살짝살짝 발을 놀려 그녀에게로 다가갔는데, 그런 그의 얼굴은 개구쟁이의 짓궂음이 가득했다.

몰캉

"꺅! ...킴?"

야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엉덩이를 잡아오는 손길에 놀라 비명을 지르다가 뒤에서 불쑥 나타난 이가 은준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곧 새초롬한 표정으로 여전히 자신의 엉덩이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는 손을 털어내곤 씻고 있던 그릇을 잡았다.

은준은 그런 야의 모습에 사랑스럽다는듯 허리를 감싸안으며 볼에 살짝 입을 맞추며 웃었다. 그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이야 남자와 여자의 관계이지만, 그당시만 해도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였으니, 어느 고용인이 대놓고 새침한 표정을 지었겠는가.

"음... 응... 음음..."

은준의 손은 초원을 달리는 몽골의 말처럼 야의 매끈한 복부를 사정없이 누볐다. 그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감촉에 그에게서 기분 좋은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야는 난감해하며 손에 묻은 물을 대충 치마에 훔치곤 자꾸만 밑으로 내려오려는 손을 잡아 빼며 은준을 떼어내려 어깨를 흔들었다.

"아이참, 이렇게 환한대... 누가 봐요."

"보긴 누가 볼까봐? 여긴 내 집이고, 퉁야는 일을 나갔으니 올 사람은 아무도 없어. 괜찮아."

그렇지만 능글맞게 응수하는 은준은 좀처럼 떨어져나갈 줄을 몰랐고,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야는 엉덩이 계곡 사이로 느껴지는 감촉에 얼굴을 붉히며 몸을 틀어 쏙! 하고 은준의 마수에서 벗어나 계단을 뛰어올랐다.

"그래도 낮은 안돼요! 전 어쨌든 지금은 청소를 해야해서..! 있다가 바.. 밤에..."

그렇게 여운을 남기고 2층으로 사라지는 야를 보며 만면이 헤벌쭉 하게 되어 있던 그는 잠시후 투덜대며 집을 나섰다.

"낮이면 또 어때. 환하고 더 좋지 뭐."

벤시몽 농장의 옥수수는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작은 싹이 움트던 것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지금은 벌써 은준의 어깨까지 자랐고, 길게 휘어지는 잎새 사이로는 벌써부터 옥수수로 자라날 것 처럼 보이는 움이 자그맣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후죽순이 아니라 우후옥순이네! 옥순이~ 옥순이~."

얼마 있으면 저 옥수수들이 전부 돈이 되어 자신의 주머니로 들어온다는 사실에 절로 흥이 돋은 그는 한국에 있을때 들었던 어떤 가요의 음에 엉멍진창 생각나는대로 가사를 붙여 흥얼거리며 농장을 돌며 옥수수를 살폈다.

그렇지만 옥수수는 은준이 없어도 될 만큼 알아서 잘 자라고 있었다. 또 사실 그가 하는 일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잡초는 이미 커다랗게 커버린 옥수수 '숲' 아래에선 거의 전혀라고 할 만큼 햇빛을 받지 못해 크질 못했고, 옥수수대 중간에 까만 점박이 같은 것이 조금 생기긴 했지만, 은준이 염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멀리서 경계를 순찰하고 있던 마을 남성이 은준을 발견하고는 손을 들었다 내렸고, 은준도 그에 같이 손을 들었다 내리며 화답했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서 은준은 그 전만 해도 많이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그의 땅에서 일을 하고 돈을 받지만, 그가 딱히 고용주 노릇을 하며 참견하는 일도 거의 없었고, 은준은 대부분 시간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사용하다보니 마주치는 일도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은준의 고국이라는 곳에서 의사들이 찾아와 무료로 진료를 해주고 치료까지 해주는 일이 있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고마워하기 시작했다. 은준이 딱히 나서서 '내가 이들을 불렀소.' 하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알게모르게 흘러나온 이야기가 사람들 끼리 주고받으며 크지 않은 마을에 금새 퍼졌던 것이다.

그러면서 은준에 대한 생각이 '이웃에 있는 큰 집에 살면서 여러모로 도움도 되고 재산도 엄청난 능력있는 젊은 남자'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옆으로 마을의 처녀중 한 명이 또래들과 물을 뜨러 왔다가 그를 발견하곤 눈웃음을 치다가 엉덩이를 씰룩이며 마을로 돌아갔다. 웬지 모르게 유혹을 하는듯한 모습에 은준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턱을 쓰다듬었다.

"...엉덩이는 멋진데 아직 애란 말이지. 게다가 얼굴도 내 취향은 아니고. 괜히 건드렸다가 떠넘기면 짐이지, 짐이야."

은준이 보기에 그녀는 겨우 열여섯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안았고,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생김새가 전형적인 아프리카 원주민의 모습이라 전혀 매력적이지가 못했다.

"평생 엉덩이만 볼 게 아니면 말이야."

그는 혀를 차며 돌아섰다. 문득 집에 있는 야가 생각났지만, 아직은 부끄럼쟁이라 이 시간엔 절대 허락을 해주지 않을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쯧! 언젠간 꼭...!

무엇을 꼭 하겠다는 것일까? 게다가 그의 망상은 계속되는지 종종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했다.

"야외에서도 해보고, 어쩌구 저쩌구...."

============================ 작품 후기 ============================

지난주엔 조금 바빴습니다. 전편에 댓글로 남겼다시피 컴터도 싹 밀고 개인적으로도 바빴고... 무엇보다 마나가 오링나서;;;;

너무 버닝했더니.... 제 능력 밖의 일이었습니다. 일일연재하시는분들 새삼 대단합니다 ㅋㅋ앞으론 조금 간격을 두고 연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ㄷㄷㄷ아, 소제목 정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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