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카파로 가자-54화 (54/107)

54화

그날 밤 이후 야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좀처럼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은준으로서는 본의 아니게 금욕적인 생활을 하다가 모처럼 맛을 보았으니 보면 생각나고, 돌아서면 또 생각나고 기회를 노리는 삵처럼 야의 주변을 맴돌며 기회를 노렸지만 허사였다. 그렇다고 강제로 하고픈 마음도 없었다.

'한 번 했다고 제 것 인것 마냥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 초보들이나 하는 실수지. 괜히 섣부르게 들이밀다간 트던 정도 떨어지는 법이지. 그리고 야에겐 시간도 필요할거야.'

그날밤 은준은 야에게 에이즈에 양성 반응이 없었다는 결과를 전해듣고는 묵은 숙제를 해치우듯, 술을 먹이고 분위기를 만들어 단숨에 일을 치뤄버렸다.

그런데 막상 들이밀어보니 혹시나 했던 처녀가 아니겠는가! 한국에 있었을 때야 언감생심 꿈도 못 꿨던 처녀였는데, 이렇게 정작 기회가 생기고나니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던것이라,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프다며 징징거리는 야를 어르고 달래가며 끝까지 가느라 정작 자신은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던 것이다 은준은 남자들끼리 모이는 술자리에서 음담패설을 나누며 처녀 사냥꾼인 아무개가 한 이야기라며 주어듣기로, 처녀는 나름의 '조이는 맛'이 있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상자를 열어보니 반은 맞고 반은 애매하기만 했다. 조이기는 조이는데 단순히 조이기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썩 기분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만약 조이기만 하면 무조건 좋다면, 구멍을 작게만 만든 실리콘 자위기구에 여자들은 뒤로 밀려나야 했을 것이다.

'역시 처음이라 그런지 안에 움직임이 없더라 이말이지...'

처녀가 가만히 있는 것은 몸뚱아리만이 아니라, 그 안쪽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어쨌건 그날 이후로 은준은 쌀이 익어 밥이 되었다며, 앞으로 이렇고 저렇고 한 것들을 많이 알려주며 자신의 색으로 물들여주겠다며 굳게 다짐하고 이미지 트레이닝까지 했지만, 정작 다음날 아침이 되어 은근슬쩍 달라붙는 은준을 얼굴을 붉히며 훽 하고 자리를 피해버리는 야였다.

그것은 쌀쌀맞다기 보다는 부끄러워하는 모습과 어찌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 뒤섞인 모습이었지만, 어쨌건 은준은 첫날밤 이후로 손도 못대고 있는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첫날밤 처녀인 야를 어떻게든 덜 아프게 신세계를 보여주겠다며 있는 지식 없는 지식을 총 동원해 용을 쓰느라 정작 자신은 힘만 빼고 즐기지도 못한 은준은 속으로 삭히며 옆에 있는 퉁야를 째려봤다.

'나야 솔로고 홀몸이니 젊은 남녀가 눈이 맞는건 흠이 아니라지만, 애도 있고 아내도 멀쩡히 살아있는데, 갓 스물 넘은 탱탱한 여대생이랑 배를 맞춰? 이걸 전부 고자질 해버릴까보다!'

그날 밤이야 당장 자신이 급했으니 그냥 넘어갔지만, 은준은 생각할수록 퉁야가 괘심하게 느껴졌다. 여기에 봉사 활동으로 온 대학생들이라고 해봤자 이제 막 스물이 넘은 아이들. 일행중에 나이가 있어보이는 한국인 여성은 없었으니, 그날밤 퉁야의 방 안에 있었던 이는 분명 여대생중 한명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집 주인은 은준은 야에게 온통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고용인인 퉁야는 그새 탱글탱글한 여대생을 낚아 침실로 끌여들었다는 것이 은준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

'내가 그날 야가 아니라 그 애들중 한명에게 작업을 했으면 내게도 기회가 있었을까?'

남의 손에 들린 떡이 더 커보이고 맛있어보이는 심보!

인물이나 나이로보나 야도 떨어지는 부분이 없었지만, 그것보다 은준이 자격지심을 느끼는 이유는 '감히' 아프리카 흑인이 무려 대한민국의 여대생과 사랑해서도 아닌, 하룻밤 관계를 가졌다는데 있었다.

이것은 은연중에 은준이 남성우위의, 그리고 아프리카 인들을 자신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또한 그랬기 때문에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야에게 술을 먹여 일을 치룰 수 있었던 것이었다.

어쨌든 이러한 은준의 못난 질투심 때문엔 한동은 퉁야는 갑자기 전에 없이 일을 시키는 그의 보스 때문에 고생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잊혀지고 씻겨져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은준도 이따금 그 날의 일이 기억나기도 했지만, 그때 당시의 감정은 희미해져 그냥 '그런 일이 있었지'하고 스쳐 지나가는 정도였다.

그리고 한달 즈음 시간이 흘렀을 무렵, 여느때와 같이 옥수수 농장을 돌아보러 저택을 나서려는 은준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야 였다.

"응?"

보통은 자신의 일은 알아서 챙기는 편이고, 그 외의 일들은 주로 은준이 먼저 그녀를 불러 시키거나 하였기 때문에, 야가 먼저 은준을 부르는 일은 거의 없었던지라 은준은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부름에 의아함을 느꼈다.

"저기, 잠시만..."

야는 앞치마를 꼭꼭 쥐고 비비며 고개를 모로 꼬며 그에게 눈짓했다. 은준도 평소와 다른 야의 분위기에 퉁야를 먼저 보내고 슬그머니 야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는 부엌쪽으로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창 밖으로 멀어지는 퉁야의 뒷모습을 확인하더니 돌아서서 은준에게 다가왔다.

"보스. 그날 밤 이후로 많이 생각했어요."

잠시 머뭇거리던 야가 결심한듯 고개를 들어 은준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은준도 야가 말하는 그날 밤이 언제인지 눈치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그래."

"...그날 밤 전 보스의 손에 이끌려 소녀에서 여자가 되었어요. 우리가 결혼을 약속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날 절 어루만지는 손길에서 저에 대한 배려를 느꼈답니다."

느닷없이 결혼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은준은 가슴이 철렁하며 마른 침을 삼켰다. 비록 '내 처녀를 뺐었으니 당장 결혼해!' 같은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 단어 자체가 가지는 힘은 총각이 듣기에 전혀 가볍지 않았다.

"절 안으신 것은 제게 마음이 있어서이시겠죠?"

또 무슨 말이 나올까 약간 가슴을 졸이던 그는 갑작스런 물음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라며 대답했다. 그러면서 속으론 '거짓말은 아니잖아? 마음이야 항상 있었지.' 라고 생각했다. 물론 야와 은준이 서로 생각하는 '마음'의 종류가 달랐음은 서로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은준이 뜸을 들이자 야는 잠깐 처연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시다면 전 보스가 아내가 되어도 좋아요. 그동안 보스를 따뜻하고 좋은 분이라고 생각해왔어요. 하지만 제 처지에 감히 마음에 담지 못할 분이라고도 생각했죠. 그렇지만 그날 당신께서 제게 마음을 보여주신 이후로 많은 생각을 했답니다."

이때 은준은 이어지는 야의 폭탄 발언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보스는 매우 능력 있는 분이세요. 분명 부인을 여러명 둘 수도 있으시겠죠. 어쩌면 고향에 이미 본부인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전 괜찮아요. 이곳에 계실 동안에는 제가 당신의 여자이겠죠?"

야의 이런 생각은 일부일처제가 당연시 되어지는 곳에서라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곳 아프리카의 리소테에선 가능한 일이었다. 여전히 아프리카에선 일부다처제의 혼인형태가 있었고, 능력만 되면 소나 그만한 가치의 무언가를 지불하고 처가에서 아내를 사오는 일이 종종 있었다. 게다가 한 술 더 떠 자매를 둘 다 데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하다고 해야할지, 더군다나 아직 왕이 있는 리소테에선 왕 본인도 부인이 다섯이 넘었으니, 이런 곳에 살고 있는 야 또한 그런 일에 익숙했다.

거기에 야가 자라온 곳은 성당이었으니, 순결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았을 수 없었다. 결국 야의 순결을 은준이 가져갔으니 야는 은준의 아내가 되는 것이고, 이곳 기준으로 은준은 무척 능력있는 남자였으니 다른 부인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 것이다.

게다가 야가 순진해도 멍청한 것이 아니었으니, 여권이 낮은 이곳에서 능력있는 남자와 관계까지 가진 마당에 냉큼 부인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려고 하는 모습은 평범한 반응이었다. 여권이 낮다고 생존본능마저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이런 반응이 일종의 생존본능의 발현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은준은 머리가 멍해져있었지만, 그 와중에 자신에게 유리한 대목은 독수리처럼 잡아채는 능력을 보여줬다. 이것이야말로 위기의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한 경우라 하겠다.

'한국에 본부인이? 이곳에 있을 동안엔 야가 내 부인이라고? 그러면 뭐야, 한국에서 내가 결혼을 하든 말든 자긴 상관없다는 이야긴가? 이건 마치, 현지처 개념같잖아?'

은준의 이런 생각은 과히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타국에서 장기간 출장을 오는 남성들의 경우, 현지에서 젊은 여성을 데려다 애인이나 현지처로 삼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이다. 또 이런 사실 역시 야도 알고 있었던 것이고, 이런 선택을 하게되는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과연 은준과 같은 이런 상황에서 싫다고 하는 남자가 있을까? 물론 한국에 오매불망 자신만을 기다리는 여자가 있다면 모를까, 은준에겐 그런 여자도 없었다. 자기가 알아서 '리소테에서만 부인' 이라고 하는데 어차피 잘 꼬셔서 애인으로 삼을 생각을 하고 있던 그에게는 불감청 고소원이었다.

결국 은준은 밥이 익어 진수성찬이 되었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야는 안도하며 은준의 품에 안김으로서 아침나절에 일어난 해프닝은 끝을 맺었다.

============================ 작품 후기 ============================

못난이 은준... 코나 꿰여라!

그래도 부럽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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