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따닥 따닥딱! 투둥 퉁퉁 투둥!
어두운 밤하늘. 그 위로 회색빛의 구름이 너풀 흐른다.
그 아래의 지상에선 서치라이트의 조명과 모닥불 주변으로 둘러 앉고 일어선 사람들이 수두룩했고, 중앙엔 원주민들이 북과 나무로 된 악기를 손과 막대기로 두들겨가며 신나는 음률을 만들어냈다.
원주민들과 의료 봉사를 온 한국인 젊은이들은 한데 어울려 가져온 술을 마시고,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노래를 따라 어깨를 들썩이며, 머리위에 수건을 두른 아낙은 최호규 교수의 손을 붙잡고 가운데로 나와 춤을 추며 다른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큰 소리로 웃었다.
의료 봉사단의 벤시몽에서의 마지막 밤! 일정을 모두 마친 이들은 어깨의 짐을 모두 내려놓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많이 배우고 적게 배우고를 떠나, 돈이 많고 적고, 잘 살고 못 살고, 피부가 희건 검건 상관없이 인류라는 단 하나의 가치 아래 평등해졌다.
은준과 야도 마찬가지였다. 고용주와 고용인 관계를 떠나 이 시간 만큼은 그저 옆에 나란히 앉은 남녀일 뿐이었다.
"모두 즐거워보여요."
야는 색색의 새 옷을 입고 한 손엔 콜라병을 든채로 주변을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흥겹게 취한 이들을 보며 말했다.
"야는 즐겁지 않아?"
은준은 야에게 물으며 손에 들고있던 투명한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든 갈색의 맥주를 한모금 삼켰다.
"저도 즐거워요. 이런건 학교를 졸업하고 오랜만이거든요."
"...그때가 그리워?"
그의 물음에 야는 살짝 미소띤 얼굴을 수그려 맥주잔을 만지작거리는 자신의 손을 가만히 응시했다.
"...조금요."
어쩐지 쓸쓸해보이는 그녀의 목소리에 은준은 야가 외로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생이 보고싶어?"
"...항상 보고싶죠. 그래도 괜찮아요. 주말마다 만날 수 있잖아요? 헤헷."
"..."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은준은 잠시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국에선 보지 못했던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도 고향이 그리울때가 있어. 아니, 사실 항상 그립지. 내 가족, 내 친구, 오랫동안 살아온 우리집. 모두 거기 있으니까. ...영화같은데에선 주인공은 고향에서도 똑같은 하늘과 별을 바라볼테니 모두 함께 있는거라고 하던데, 한국에선 저 별들이 안보일텐데 어떡하지?"
"푸훗! 뭐예요 그건."
그의 이야기에 안쓰러운 눈빛을 하던 야는 뒤에 이어진 은준의 장난스런 농담에 웃음을 터트리며 잔을 들었다.
"언젠가는 집에 갈거야. 돈 많이 벌어서."
"아..."
"그리고 다시 돌아와야지. 그래서 또 돈 벌어야지. 큭큭."
은준의 아프리카를 떠난다는 말에 부지불식간에 탄성을 내질렀던 야는 이어진 그의 장난섞인 말에 그가 자신을 놀렸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순간 그녀의 두 눈이 쌜죽해졌다 다시 이어진 그의 말에 미소가 드리웠다.
"거기도 가족들이 있는 집이지만, 여긴 내 집이야. 내가 샀고, 내가 가꿔나가는 나의 집. 사실 미래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당장은 여길 떠난다는 생각은 못하겠어. 게다가 여기엔 야도 있고..."
갑작스런 은준의 고백에 야의 얼굴이 붉어졌다. 단순히 모닥불의 불빛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은준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우 느끼해! 내가 생각해도 이렇게 느끼한데, 야는 순진해서 그런가 얼굴이 빨개졌네. 이정도면 좀 벽이 허물어졌으려나?'
그렇다면 이게 단순히 속내가 아니라 의도된 멘트란 말인가? 그런데 그때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아니, 젊은사람들이 왜 이러고들 앉아있습니까! 자, 일어나요, 일어나! 이럴땐 춤도 추고 해야죠!"
그들은 최호규 교수와 그와 함께 춤을 추던 파트너였다. 둘은 각자 은준과 야의 손에 들려있던 잔을 빼앗아 옆에 내려놓고 손을 잡아 이끌었다.
"자자! 흔들어, 흔들어~."
교수의 체면은 어디로 갔는지, 한두번 해본것이 아닌 솜씨로 몸을 흔들었다. 그 모습에 학생들마저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까지 나오자 은준도 교수 혼자 춤을 추고 있게 만들수는 없었다. 그는 덥석 야의 손을 맞잡고 함께 흔들고 또 한 손으로 빙글 빙글 그녀를 돌리며 빠른 비트에 몸을 맞겼다.
한참후 둘은 숨이차서야 옆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하, 하하하!"
"킥! 후훗."
무릎을 짚고 허리를 숙인 은준이 먼저 웃음을 터트리자, 야도 덩달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후 숨을 가다듬은 은준이 먼저 제안을 했다.
"좀 모자른것 같은데, 한잔 더 어때? 기분도 좋은데 와인이라도 하나 따 볼까?"
"좋아요!"
술도 어느정도 들어가고 가볍게 몸을 흔들며 달아오른 야도 거부하지 않았다. 둘은 자연스럽게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집으로 걸었다. 그때 은준의 반대쪽 손은 해냈다는듯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벤시몽 저택에 도착한 둘은 와인을 꺼내라 지하로 통하는 문이 있는 계단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둘의 귀에 흐릿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그것은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기엔 가까웠고, 얼핏 누군가 아파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은준은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하는 생각에 소리를 따라 움직이다가 그 소리가 1층 퉁야의 방에서 나는 소리임을 깨달았다.
"어맛!"
야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입을 가리며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아...하앗...으극..!'
은준은 그 목소리가 여자의 것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놀란 은준은 자신도 모르게 옆의 야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마침 고개를 돌리던 야도 붉어진 얼굴로 그와 눈을 마주쳤다.
'쉬잇!'
은준은 짖궃은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고, 빨개진 얼굴을 푹 수그린 야도 고개를 끄덕여 뒤로 물러났다.
은준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내려가 와인 한 병을 꺼내 들고 올라왔고, 둘은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갔다.
'와, 요즘 여자애들은 장난 아니구나.'
그는 그 신음 중간중간에 한국어가 섞여있었음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곧 2층 은준의 방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은준씨 ㅊㅊ 검사결과 안전함을 알게된 쥔공씨, 고전적인 방법인 술과 분위기로 야를 꿀꺾 했습니다. 걍 노블인 관계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ㅋㅋㅋ내일은 제가 하루종일 일이 있는 관계로 주말까지 쉬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다음주에도 이렇게 매일 연재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ㅋㅋㅋㅋㅋ 아, 내공 딸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