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은준이 뉴-카파에 도착했을때, 약속 장소에는 이미 먼저 도착한 의료봉사팀의 차량이 한쪽에 세워져 있었다.
차호중 의사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한국에서 대학생 의료 봉사팀이 리소테의 벤시몽을 방문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약 보름전. 은준은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그들이 방문한다는 사실에 직접 그들을 맞이하러 뉴-카파로 나왔던 것이다.
그가 트럭에서 내리자 이곳 아프리카에서는 단연 눈에 띄는 동양인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혹시 김은준씨?"
"예. 제가 김은준입니다. 혹시..."
은준이 익숙한 한국말로 대답을 하자 상대방의 얼굴이 완연하게 미소띈 얼굴이 되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한국에서 온 최호규라고 합니다. 가온 대학생 의료 봉사단을 인솔하고 있습니다."
"아, 예. 안녕하십니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은준도 마주 웃으며 마주잡은 손을 흔들었다. 그의 웃음은 오래 기다려온 만큼 절실했고, 그 간절함은 최호규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서로 통성명을 하던 최호규는 그런 은준의 모습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은준의 절심함이 사심에서 비롯되었음은 전혀 알지 못했다.
"어떻게, 바로 출발하겠습니까?"
"저희도 도착한지 얼마 안되어서 모두들 쉬고 있는 중입니다. 조금 시간이 걸릴것 같으니 이쪽으로 오셔서 같이좀 드시고, 인사라도 하시죠. 자, 이쪽입니다!"
최호규는 그렇게 말하며 은준을 한쪽으로 이끌었다. 그곳은 하얀색 대형 버스 아래 그늘밑이었는데, 하얀색 티와 태극기가 들어간 파란색 조끼를 입은 젊은 남여 십수명이 그늘에 기대어 빵과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젊네, 젊어!'
은준은 확연하게 대학생 티가 나는 젊은, 아니 어리다고 표현해아 맞을듯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다.
"교수님! 이쪽에 앉으세요!"
은준과 최호규가 같이 대학생 봉사단원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자 가장 앞쪽에 앉아있던 갈색 염색을 한 남학생이 벌떡 일어나며 자리를 양보했다. 하지만 교수님이라 불린 최호규는 웃는 얼굴로 사양하며 '앉아, 앉아.' 하고 지나쳐 중앙에 섰다.
최호규는 마찬가지로 같은 티와 조끼를 입고, 머리엔 벙거지모자를 쓰고 안경낀 50대 남성이었는데, 그는 이 대학생 의료 봉사단의 팀장이자 대학에선 의대에서 이들의 지도교수를 맏고 있는 교수였다.
"자, 편히 앉아서 먹으면서 듣게. 이쪽에 계신 분은 우리의 이번 봉사활동의 목적지인 벤시몽으로 우릴 안내해줄 분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가이드로 오신 분이 아니라, 벤시몽에 대농장을 소유한 한국 교포분이시고, 이번 의료 봉사의 대상자들은 대부분 여기 계신 김은준 교포분의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프리카의 식량 사정이나 의료 사정이 무척 좋지 않다는건 알고 있지요?"
이쯤에서 대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예!' 하며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중에서 우리는 이렇게 방학때마다 치료받지 못하는 오지 마을을 찾아다니며 봉사활을 하고 있지만, 이분은 아프리카의 식량 사정이 좋지 못함을 알고 직접 아프리카에 대규모 농장을 세워 아프리카의 식량 생산과 공급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분입니다. 자, 모두 김은준씨게 박수!"
와아아!
짝짝짝짝!
갑작스런 최호규 교수의 금칠과 박수 세례에 은준은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거듭 마주 인사를 하며 답례를 했다.
'어휴, 낯간지러라.'
은준은 최호규 교수의 소개를 들으며 내심 웃음이 터지고 민망함을 참느라 내색은 하지 않았어도 속으론 고역이었다. 사실 이러한 최호규 교수의 소개가 이루어진 이유는 전부 그의 탓이기도 했다.
보름여전, 차호중의 전화를 받은 은준은 오래간만에 그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허세를 부렸었다. 리소테 정부와의 계약에 의해 그의 땅에선 식량만을 생산해야하고 전량 정부에 수매해야 하는 것을, 자신이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이들을 긍휼히 여겨 식량 생산과 공급에 이바지하겠다는 식으로 설명을 하였던 것이다.
게다가 그 규모가 500헥타르에 달하고 거기에서 생산될 옥수수의 생산량의 예상 규모를 들은 차호중도 깜빡 거기에 넘어가 최호규 교수에게 이러한 이야기까지 전했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알고지내던 최호규 교수에게 벤시몽으로 의료 봉사를 왔으면... 하고 일종의 청탁을 하였던 것에 대한 자기만족이었다.
이를테면 '내가 그때 이런 청탁을 했던 이유는, 그 사람이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니 편의를 봐주는게 나쁜일은 아니다.' 라는 것이다. 게다가 특별히 의료 봉사의 대상이 되지 못할곳도 아니었으니, 'A나 B로 의료봉사를 갈 것이면 난 B가 좋겠다'고 말한 수준에 불과하니 청탁이라고까지 할 일도 아니었다.
어쨌건 그러한 내용은 은준에서 차호중으로, 다시 최호규로 말이 옮겨지면서 점점 이타적이고 배려심 넘치는 인도주의적인 매우 훌륭한 젊은 교포로 부풀려졌던 것이다.
그렇게 지도교수의 금칠이 보태진 소개가 끝나자, 대학생들의 은준을 바라보는 눈빛은 한국인 가이드에서 젊어보임에도 무척 성공한 사업가 내지 훌륭한 인물을 보는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가는 길이 무척 험할겁니다. 운전들 조심해주시고요, 길이 따로 없으니 제 차를 잘 따라와주시길 바랍니다."
부르릉!
은준의 트럭이 시동이 걸리며 라이트에 빛이 깜빡이자 이내 주차되어있던 차량들도 배기음을 내며 일제히 차체를 떨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져온 차량은 총 다섯대로, 한 대는 흔히 아프리카에서 사파리 투어에 사용되는 4륜 픽업트럭이었고, 나머지 세 대는 의료장비들과 그외 짐들이 실려있는 승합차 크기의 차량이었으며, 마지막은 최호규 교수와 학생들이 타고 있는 큰 버스였다.
이들의 주행은 초행길을 배려한 은준이 약간 감속 운전을 한 덕분에 뉴-카파를 떠나고 다섯 시간을 넘어 여섯 시간에 가까울 정도가 되어서야 마침내 벤시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와아! 저게 어디까지 이어지는거람?"
"이게 다 옥수순가? 쩐다!"
벤시몽이 보일때가 되자 지쳐있던 학생들은 따가운 태양빛을 막아주던 커튼을 걷고 창밖에 펼쳐진 녹색 물격에 감탄했다.
이들이 출발한 뉴-카파는 벤시몽의 동쪽에 있었고, 그 때문에 동쪽에서 바라본 벤시몽의 옥수수 농장은 너비가 3km에 달해 끝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윽고 은준의 트럭을 필두로 한 차량들은 농장 서쪽 원주민 마을이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 작품 후기 ============================
음, 성인노블로 옮길까 생각중입니다. 특별히 농밀한 씬을 적자는게 아니라, 전에 댓글에 적어주셨던 것처럼 그냥 노블이라고 더 선작이 늘 것 같지도 않고, 그렇네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혹시 그냥 노블로 읽고계신분이 한 분이라도 계시다면 옮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분이 계시면 댓글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