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봄봄봄... 여름?>
구르르릉!
엔진 내부에서 작은 폭발이 연달아 일어나며 발생한 힘은 회전 운동으로 바뀌었고, 트랙터는 그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며 동시에 흙을 갈아엎었다.
그 뒤로는 검은 피부의 사람들이 따르며 땅이 뒤집히며 속에 파묻혀있다 겉으로 들어난 크고 작은 돌을 골라내 바구니에 담았고, 그 바구니가 무거워지면 얼른 옥수수 밭 옆으로 나와 돌무더기에 가져온 돌을 쏟아내었다.
이와 같은 작업은 두 개로 나뉘어진 옥수수 밭에서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는데, 겨울 휴가를 마치고 벤시몽으로 돌아온 퉁야가 합류하면서 쉬사네와 그가 함께 두 대의 트렉터를 나눠 운전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작업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번과 달리 단순히 땅을 갈아엎어 농지화 하는 작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올 봄부터는 바로 옥수수를 재배해야 했기 때문에, 그 뒤를 따르는 또 다른 일꾼들은 발이 촘촘히 달린 밭갈퀴를 들고 울퉁불퉁해진 밭을 평평하고 고르게 만들었다.
만약 은준이 한국에 있으며 취미로 작은 밭떼기에 자신이 먹을 옥수수를 직접 길러 먹을 생각이었다면, 좀 더 따뜻해진 뒤에 모종으로 싹을 틔워 판매하는 것을 사다 심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도 어느정도 규모까지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벼를 심는다면 모판에 심어 키운 모를 이앙기로 심는다고 알고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벼를 심을 논이 너무 클 때가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서해쪽 간척지에 있는 논은 헬기로 볍씨를 바로 뿌리는데, 그것은 논의 규모가 너무 커서 모를 키워 이양기로 심는다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이유로 은준의 옥수수밭도 모종을 옮겨심는 것은 어려웠다. 어쩌면 돈을 번 이후년에는 하우스 안에서 겨울에 모종을 키워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해 옮겨 심는 방법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해서 지금은 갈퀴로 고른 흙 위로 직접 씨를 파종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은준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실질적으로 그가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애초에 그 역시 농사의 전문가는 아니었고, 오히려 이곳 원주민들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 잘 알았다. 그는 그냥 옥수수를 심어라, 하고 지시를 내리면 그들이 알아서 적당히 그가 제공하는 종자를 가져다가 밭에 심어냈다. 종자를 심는 깊이나 흙을 덮는 두께, 그 위에 주는 물까지.
원래 농사짓는 사람이었다면 손이 근질거리거나 참견하고 싶어했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은준은 그게 더 편하게 느껴졌다. 그는 편한걸 좋아했지 사서 일을 만들어내는 성격은 아니었다. 처음 이곳에 올때는 굳은 각오를 하고 왔었지만, 자신이 직접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만들어지자 일찌감치 뒤로 빠진 뒤였다.
"수고했어. 어때, 할만해?"
은준은 100헥타르에 달하는 밭을 트랙터로 갈아엎고 온 퉁야와 쉬사네를 치하하며 냉장고에서 꺼내온 냉수를 건넸다.
"아직도 몸이 덜컹거리는 느낌입니다. 하하."
그가 건네준 차가운 물을 마시며 열기가 가라앉은 퉁야가 엄살아닌 엄살을 부리자 은준도 마주 웃음을 지었다.
"종자는 얼마나 남았지?"
"아직 많이 있습니다. 애초에 살때 넉넉히 사뒀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이 남았습니다. 이정도라면 두 번은 더 쓰겠는데요?"
"두 번이라..."
은준은 퉁야의 대답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퉁야들도 보스인 은준이 무언가 고민에 빠진듯하자 대충 알겠다는듯 조금은 애매한 표정이 되었다가 은준이 다시 고개를 들자 언제 그랬냐는듯 표정을 바꿨다.
"어차피 모든 밭을 한날에 심을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묻는 은준의 눈이 빛났다.
다음날이 되자 벤시몽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추가로 두 곳의 옥수수밭이 더 만들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는 기존에 있던 옥수수밭 길 건너편에 만들어졌고, 다른 하나는 벤시몽 저택의 동쪽에 지어졌다. 현재 벤시몽 저택을 중심으로 서쪽에 원주민 마을이, 그리고 첫번째 밭이 남쪽에 있다면, 새로 만들어지는 밭은 저택 동쪽과 남동쪽에 좌우가 뒤짚힌 'ㄴ' 모양이 되게 이어지는 형태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은준의 생각은 이랬다. 어차피 100헥타르의 밭을 만드는 것은 하루면 되었고, 다시 그 밭을 재차 갈아엎고 파종하는 것도 하루면 될 일이엇다. 게다가 어차피 심는게 며칠 늦어지면 수확도 그만큼 늦어지게 될 터, 때를 놓쳐 수확을 하지 못하는 일도 벌어지지 않으리란 것이었다.
하루는 1번 밭, 또 하루는 2번 밭, 다음날은 3번 밭. 이런 식으로 순차적으로 돌리며 일을 한다면 지금의 인력으로도 더 많은 밭을 운영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또 실제로 수확이란것이 벼농사처럼 한번에 싹 거두는게 아니라, 먼저 영글은 옥수수를 먼저 따고, 다음에 또 익은게 있으면 골라서 거두는 식이니 하루에 다 수확할 필요도,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생각을 바꾸니 은준은 굳이 이모작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먼저 심어서 거둔 곳은 이모작으로 돌리면 되고, 좀 늦게 심어서 시일이 안맞는 곳은 한번만 심으면 되겠지. 오히려 이모작 못한다고 한 번도 안심으면 그만큼 손해 아냐?"
이렇게 은준이 마음을 바꿔먹자 힘들어진 것은 퉁야와 쉬사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이었다. 하지만 퉁야는 원래 연봉을 받고 취직한 상태였기 때문에 불만이 있더라도 표시할 수 없었고, 쉬사네 역시 이참에 퉁야처럼 은준과 연봉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기에 더 적극적이었다. 다만 쉬사네의 경우엔 퉁야처럼 경력을 인정받은 것도 아니고, 고향 역시 이곳이었기 때문에 금액적인 부분도 적었고 겨울 휴가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시작된 급작스런 농장의 확대는 계속되었고, 은준이 가진 자금이 종자값과 연료값으로 빠져나가면서 바닥을 보이자 그때서야 농장의 확장이 멈추게 되었다. 그나마 은준이 다음 옥수수 판매 대금을 받게 되는 날까지 사람들을 부릴 임금과 자신이 먹고 마시는데 필요한 돈을 남겨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옥수수밭은 더욱 늘어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준이 개간한 옥수수밭은 무려 다섯 곳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애초에 100헥타르 짜리 밭 한 곳만을 운영할 계획을 가졌던 것에 비하면 계획에 없이 다섯 배나 커진 것이었다.
결국 은준의 옥수수밭은 그의 집인 벤시몽을 중심으로 좌우가 뒤짚힌 'ㄷ' 모양을 하게 되었다.
밭이 이런 모양을 하게 된 이유도 있었다. 옥수수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다른 작물과 마찬가지로 물이 필요 했는데, 서쪽 멀리 있는 강을 제외하면 수원이라곤 벤시몽 저택의 샘에서 퍼올리는 지하수가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은준들은 매일같이 다섯곳 500헥타르에 달하는 밭에 물을 대기 위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펌프질을 해야만 했다.
"헉! 헉! 아직 100번 안됐나?"
은준이 기계적으로 팔을 들었다 내리며 옆에서 쉬고 있는 퉁야들에게 물었다.
"아직 58번 더 남으셨습니다. 보스."
"힘드시면 아이들에게 시키시죠? 애들이라면 콜라 한 병씩이면 서로가 한다고 할텐데..."
앞은 퉁야, 뒤는 쉬사네의 말이었다. 하지만 은준은 차마 아이들에게 이런 중노동(?)을 시킬 수 없었다. 이곳에서는 조금만 머리가 굵어지면 어른들을 따라다니며 일을 돕는것이 당연시되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살다온 그로서는 그것이 아동 노동력 착취처럼 느껴져 그럴수가 없었다. 차라리 지금처럼 셋이 번갈아가며 펌프질을 하는게 마음만은 편할것 같은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또 아이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위해(?) 마음 써주는 은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쉬사네의 말대로 펌프질좀 해주는 댓가로 콜라를 받는다면 그게 더 좋았던 것이다. 실제로 은준이 마을 사람들을 위해 하루에 한 시간 여는 매점을 낸 뒤로 쉬사네를 통해 듣게된 판매 실적에 따르면 시원한 콜라의 판매량이 가장 많았다. 은준이 매일같이 사람들을 부리며 임금을 주게되자 그와 동시에 구매력이 상승하면서 기호품이랄 수 있는 콜라의 판매가 급증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며칠뿐, 매일같이 계속된 고된 노동에 몸이 버티지 못하게된 은준은 결국 저택엘 찾아와 정문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애들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얘, 얘들아. 일로와봐."
은준이 녹초가되어 손짓을 하자 아이들은 눈을 빛내며 우르르 그에게 몰려들었다.
"자, 이거 줄테니까 너희들이 이것좀 해라. 오케이?"
은준은 냉장고에서 꺼내온 콜라를 따 아이들 앞에 내밀었고, 다섯명쯤 되는 아이들이 팔을 쭉쭉 뻗어 먹이를 낚아채는 독수리처럼 콜라병을 빼앗듯 받아들더니 우르르 샘으로 몰려갔다.
그들은 게중에도 우두머리가 있는지 가장 큰 녀석이 콜라를 들고 쫑알쫑알 지시를 내리기시작했고, 좀 더 작은 아이들은 서로가 펌프에 달라붙어 몇 번 펌프질을 하더니 총총총 달려가 콜라를 한 모금 받아마셨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몇 번 순번이 돌자 콜라는 이내 바닥을 드러냈고, 그와 동시에 아이들의 전투력(?) 또한 급감했다.
"야야, 얘들아, 빨리 물을 퍼올려야지! 물이 끊기잖아!"
은준이 당황해 외쳤다. 그렇지만 이미 받아먹을 것을 받은 아이들은 시늉만 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보스, 먼저 주시면 안됩니다! 애들이 영악해서 댓가를 주실 때에는 일을 끝마친 다음에 주셔야해요!"
그 모습에 밭에 나가 물을 조절하던 쉬사네가 물줄기가 약해지자 돌아왔다가 조언을 해왔다. 은준은 원주민 아이들이라고해서 순진하고 순수할 것이라 생각했던 자신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 작품 후기 ============================
으잉. 연참을 해서 어색하시다면 다시 예전으로....;;;; ㅋㅋ 그런데 요즘은 일일연재를 하는데 그래도 연재가 늦다니요 ㅜㅜ진행속도랑 인물들과의 대화 부분은 저도 인정하는 부분이네요. 근데 좀처럼 그게 잘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쩝; 스타일 같은게 굳어진걸까요...
아이코 감사합니다 전모삽님. 24장이면 엄청 많네요 ㄷㄷ, 이번에 2월달 정산을 받았는데 거기에도 쿠폰으로 받은 돈이 조회로 받은 돈보다 많더군요. 확실히 한장당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게도 쿠폰을 날려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