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카파로 가자-47화 (47/107)

47화

벤시몽의 겨울은 길었다. 은준은 그 대부분의 시간을 소토어를 배우거나 활과 화살을 다루는 방법은 연습하는데 썼는데, 최근엔 직접 화살을 만드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했다. 사실 그래봤자 곧게 자란 나뭇가지를 잘라 다듬는 것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다만 깃털을 붙이는게 작은 문제였지만, 실제론 깃이 안달린 화살을 쓰는 경우도 많았고, 오히려 바람이 강하게 불땐 깃이 달린 화살이 더 명중률이 떨어진다는 말에 그는 옳다하며 깃없는 화살을 만들어 썼는데, 그의 속마음은 그저 번거로운 작업이 귀찮았을 뿐이었다.

그래도 마냥 놀고 먹으며 허송세월을 한 것은 아니었다. 본업이야 옥수수 농장의 주인이지만, 꼭 옥수수 농사만 지으라는 법은 없었다. 땅이야 옥수수 재배 외의 것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계약이 되어있지만, 그렇다면 땅만 건드리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으로 그가 행한 일은 마을 사람들이 사냥한 악어의 가주을 모으는 일이었다.

은준은 실제로 악어 가죽으로 만든 가방이나 구두 혹은 지갑 같은 것을 실제로 가져본 적은 없었지만, 그런 것들이 꽤 비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해서 악어 가죽들을 모아 그것을 판매할 방법을 찾다가 인연이 있었던 존을 찾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이러한 시도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은준이 가진 악어 가죽은 창과 화살에 온통 구멍이 뚫리고 찢겨 온전한 부분이라고는 가장 큰 부분이 겨우 손바닥 만한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사냥해온 악어를 해체하면서 통째로 토막을 내는 통에 더 작아진 것도 있었다.

그는 악어 사냥을 하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가죽이 상하지 않게 잡아다 줄것을 불탁했지만, 그도 쉽지 않을 것이란건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고, 실제로 크게 상태가 나아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악어의 크기가 좀 작았더라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근방에 서식하는 악어의 크기는 평균 1.5m~2m에 육박해서 상처없이 잡기란 요원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한국에서 가져온 돈을 일방적으로 까먹는 생활을 하며 겨울을 보냈다. 만약 이곳이 리소테 왕국에 속한 땅이라 리소테 랜드 화(貨)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진작 먹을 것 걱정부터 해야 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겨울이 끝나가고 점차 기온이 상승할 때쯤에는 마을엔 배가 부른 아낙들의 모습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 겨울 악어 고기로 몸보신을 하며 긴 겨울밤을 보낸 후유증(?) 이었다.

"이거 한번씩 다시 갈아엎어야 겠는데?"

은준은 날이 풀리며 개간한 옥수수밭이 점차적으로 녹색의 물결이 짙어져가는 모습에 자신의 밭을 돌아보러 나왔다가 하루가 다르게 솟아나는 잡초들을 발견했다. 겨울이 오기 전에 한번씩 갈고 자갈을 골라냈지만, 다시 봄이 찾아오자 끈질긴 생명력으로 머리를 비집고 땅 속에서 커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아프리카에서 농사가 쉽지 않은 이유중 하나였다. 물론 은준은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그가 심을 옥수수인 슈퍼옥수수는 이 흔한 잡초인 악마의 풀이라 불리는 스트라이가에 강한데다가 완전 무농약 재배가 가능한 품종으로 알고 있어 덤으로 농약을 사서 뿌려야 하는 비용까지 절감할 생각이었다.

본격적으로 종자를 심기 전에 한번 더 밭을 갈고 돌을 골라낼 생각으로 쉬사네를 통해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비록 그들이 그의 땅에 살고는 있지만, 은준에게 종속된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은준의 일을 해주고 돈을 받는 것은 그들의 선택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돈을 줘가며 일을 시키는 은준의 밭일을 안 할것은 아니었지만, 그들도 나름의 생활이 있다는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마음대로 '당장' 일을 시킨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먼저 계획을 통보하고 스스로 자원하는 사람을 일당을 주는 식으로 사람들을 부렸다.

그런데 그렇게 돈이 마을 사람들에게로 흘러들어가자 마을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전의 그들의 생활이란 대부분 자급자족에 의존하는 경향이 컸다. 다만 일부 도시에 나가 일을 하는 젊은이들이 이따금 보내오는 돈이나 그런 것들로 일 년에 몇 번 정도 멀리 도시에 나가 필요한 물건을 구해오는게 경제활동의 전부였다.

하지만 은준이 벤시몽에 와서 그들의 노동력을 돈을 주고 사게 되면서부터는 그들 스스로가 경제 주체가 되어버렸다. 개인 재산은 있어도 개인 돈은 없던 이들에게 스스로 가용할 수 있는 돈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악어 가죽을 보러 왔던 존이 벤시몽 바로 옆에 이주해온 원주민들로부터 수공예품을 돈을 주고 사갔던 터라 그 돈도 적은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돈을 쓸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비록 벤시몽으로 이주를 해오면서 전보다는 훨씬 도시에 가까워졌기는 했지만, 여전히 차를 타고 네다섯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기 때문에 한국에서처럼 길건너 슈퍼에 가듯 그렇게 다닐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벤시몽에서 차라고는 은준이 소유한 1톤 트럭이 전부였다.

"보스, 다음에 도시를 방문할 때에는 저도 함께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다 결국 쉬사네가 먼저 은준을 찾았다.

"그거야 상관 없지만,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야? 우린 당일치기로 다녀오는거라..."

은준은 진심으로 한 명 더 태워가는건 문제가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혹여 그 때문에 1박을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일정이 틀어지는 것은 꺼려졌다.

"그건 아닙니다. 잠깐 마을에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할게 있어서 그런거니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겁니다."

쉬사네는 은준이 거절을 하지는 않을까 얼른 손을 내저으며 부정했다.

"흠, 살게 많은가?"

은준은 마을 사람들이 도시에 나가서 뭔가를 구입한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고보니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들도 반절쯤은 공산품이었지 아마?'

은준이 원주민이라고 부르는 마을 사람들은 전통 복식을 입은 이들도 있지만, 빨간색 파란색 등 원색적인 티셔츠를 입은 이들도 많았음을 떠올렸다.

"좀 있습니다."

"하긴, 다 같은 사람들인데 필요한게 없으려고. 그런데 지금까진 한번도 그런 말을 안했지?"

그에게 있어서 어차피 가는 길, 한 두사람 더 태워가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근 반년을 이웃에 살면서 이제야 물건을 사러 도시에 간다는 마을 사람들이 의아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은준의 입장에서 생각한 것일 뿐이었다. 만약 컴 한 통을 사려고 왕복 며칠을 걸어야 한다면 차라리 껌을 포기하지 그것을 사러 그런 고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을 사람들도 당연히 필요한 물건은 항상 있었지만, 도시에서 그것을 구매하기 위한 경제력 즉, 현금이 부족했고, 그것이 어느정도 해결되자 누군가 대표로 도시를 다녀와야하는 차에, 쉬사네가 은준에게 동행할 것을 부탁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알게되자 은준은 새삼 자신이 주변에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이란게 서로 돕고 사는건데 말이지. 어차피 그들도 나를 돕고 댓가를 받는 것이고, 나로서도 저들이 없으면 힘들어지는건데. 매주 도시에 나가는거 내가 먼저 사다줄 거 없냐고 물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보통은 그런다. 한 집에 살면서 누가 밖에 나가는가 싶으면 무엇무엇좀 사다달라고 하거나, 혹은 나가는 사람이 먼저 다른 이들에게 필요한게 없냐고 물어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은준도 한국에 살 때는 당연히 그러는게 익숙했지만, 이곳에 와서는 생김새가 낯설어서인지 아니면 그만큼 아직 친근함을 느끼지 못해서인지 그러질 못했었다.

"이런건 어떨까? 여기에 상점을 하나 내는거야. 꼭 거창하게 상점 씩이나 하는건 아니래도, 주로 필요로 하는건 있을거아냐? 그런것들을 먼저 내 돈으로라도 넉넉히 사서 가져다놓았다가, 마을에 필요하게 되면 그들이 돈을 주고 사가는거지."

은준이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사내 매점이었다. 혹은 자판기라던가. 물론 실제로 자판기를 놓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필요한게 있을때 주말까지 기다리거나 하는 것보다 평일에도 필요한걸 구매할 수 있다면 주민들의 생활도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거였다.

즉, 이것도 지난번에 생각했던 의학도로부터의 마을 사람들에 대한 전반적인 검진을 빙자한 야에 대한 에이즈 검사와 마찬가지로 사리사욕이 끼어든 일종의 복리후생의 개념인 셈이다. 그럼으로서 주민(사원)들이 회사(은준)에게 고마움 즉 충성심을 가지고 그의 농장 일이나 그가 하는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바라는 생각인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전적으로 은준의 머릿속에서만 이뤄지는 것이었고,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야는 은준의 이런 사업(?)에 크게 찬성하며 즐거워했다.

그런 성원에 힘입어 은준은 야를 벤시몽의 가정부 겸 매점 직원으로 전격 발탁을 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추가 수당은 없었다.

============================ 작품 후기 ============================

잉, ㅜㅜ 선작수는 한분 한분이 모여 커지는 거랍니다.

선작이 적다고 도망가지 마세요 ㅜㅜ나름 이웃마을에선 인지도 있는...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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