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은준과 마을 남자들은 매일같이 악어 사냥에 열중했다. 마침 농사를 짓는 시기도 아니었고,(농사철이래도 농사는 여자들 담당이었지만) 소와 같은 가축을 치는 사람이 아니라면 평소에도 사냥이 아니라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기에, 이처럼 차까지 타고 사냥을 나간다니 사양하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대체로 사냥은 마을 남자들의 몫이었고, 가져온 총이 무색하게도 은준의 차례는 오지 않았다.
은준도 처음 한두번이야 신기한 마음에 피를 흘리며 죽는 악어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려가면서도 어깨 너머를 기웃거렸지만, 동일한 유형이 반복되는 사냥 모습은 계속될수록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남들이 사냥을 하는 동안 지루해지자 그는 따로 나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이야, 진짜 크네. 아주 굵직굵직 하구만! 저게 바오밥 나무인가?"
마치 가짜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만큼,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집 만큼이나 굵은 기둥에 시멘트를 굳힌 것처럼 단단하고 회색빛 나는 모습, 거기에 줄기 끝에 난 가지에만 나있는 잎새. 그런 바오밥 나무가 아프리카의 초원 곳곳에 뿌리를 박고 서 있었다.
한참을 그 기묘하고 다양한 나무를 구경하던 그는 그의 눈에만도 벌써 열 그루가 넘게 보이는 커다란 바오밥 나무에 한가지 생각이 미쳤다.
"아, 그러고보니 개간하려면 저것들 전부 베어버려야잖아? 그것도 큰일이겠네. 저거 기둥을 베어버리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톱으로 썰다간 나무 기둥에 톱날이 파묻히겠네! 뿌리도 문제네? 뭐, 포클레인 같은걸로 파내야하나? 바오밥 나무는 뿌리를 어디까지 내리지? 트랙터로 갈고 하려면 뿌리도 파내야 할텐데... 씁, 일거리가 한두가지가 아니구만!"
은준은 아무리봐도 인력으로 어떻게 하기엔 무리라고 생각했다. 한두그루면 사람들이 달라붙어 지지던 볶던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그의 땅에 온통 뿌리내리고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뽑아내려면 보통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어보였기 때문이었다.
혀를 차며 다시 사람들 무리로 돌아온 그의 곁으로 쉬사네가 다가와 물었다.
"어디 다녀오셨어요?"
"아, 이 근처에. 나무들이 엄청 크더라고. 걱정이네."
그러자 쉬사네는 은준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참 유용한 나뭅니다. 열매는 기름도 짜고 음료를 만들기도 하죠. 줄기로는 우리가 쓰는 밧줄도 만듭니다. 마을 어른들은 신성한 나무라고해서 함부로 베지도 못하게 하시죠. 백인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요."
"아아..."
은준은 쉬사네의 말에 바오밥 나무가 이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서낭당 같은 곳에 있는 나무를 울긋불긋하게 꾸며놓기도 하고, 그 앞에서 굿을 하기도 하였던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신으로 모시려면 뭔가 특별하거나 흔히 볼 수 없는 그런걸로 하지 않나? 이렇게 사방에 수두룩한데 그게 전부 신이면 그것도 큰일이겠네."
은준이 한국어로 혼자 중얼거리자 쉬사네는 알 수 없다는듯 눈을 꿈뻑였지만, 굳이 해줄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말을 돌렸다.
"저 활로 화살을 쏘면 얼마나 멀리까지 악어 가죽이 뚫리려나?"
"한 번 쏴보시겠어요?"
"응? 그래도 될까?"
보스인 은준이 활에 관심이 있어보이자 쉬사네가 슬쩍 활을 쏴볼것을 권했다. 그러자 솔깃하는 은준. 사실 활을 다뤄본적도 쏴 본적도 없는 그였지만, 어쩐지 잘 쏠 수 있을것 같은 자신감에 쉬사네를 따라갔다.
쉬사네가 가장 젊은 남자에게 다가가 무어라 말을 하고는 활과 화살 몇 대를 받아오자 은준은 그것을 받아들으며 원주인인 젊은 남자에게 웃는 얼굴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Kea Leboha."
어쩐지 젊은 남자의 표정은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아무래도 가장 막내라 그가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은준은 속으로 생각했다.
쉬사네가 사람들에게 소토어로 뭐라 하며 은준을 데려가자, 나이 있는 사냥꾼들이 웃으며 손짓발짓으로 은준을 가르쳤다. 은준도 그들이 하는 빠른 말을 전부 이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크게 말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고, 그들이 시범으로 보여주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따라할 수 있었다.
"이렇겐가?"
이들의 활은 하얗고 휘어지게 깎은 나무에 줄을 묶은 단순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화살은 깃털은 있지만 촉은 금속이 아닌 나무를 그대로 뾰족하게 깍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시위를 거는 방법도 약간 달랐다.
"두 손가락을 안으로 집어 넣어서 시위를 당기라고? 그럼 놓을땐 어떻게 놔? 손가락을 쫙 피나? 이렇게? 어어, 오케이. 알았어요."
잠깐이지만 화살을 걸고 시위를 당기는 것까지 배운 은준은 사람들이 주변으로 물러서자 입술을 햝고는 어깨를 뒤로 빼며 시위를 당겼다.
"어우, 어우!"
하지만 얼마 하지 못하고 시위를 걸었던 손가락이며 팔뚝을 폈다 접었다하며 손을 털었다. 가느다란 줄을 당겨 나무를 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 당기는 힘이 온전히 손가락 두개에 쏠리는 느낌에 손가락이 잘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박장대소하며 자지러졌다.
"어우, 이게 손가락이 엄청 아프네. 손가락만 안아프면 한번 당겨보겠는데, 진짜 아파."
그러며 은준은 옆의 남자의 손을 잡아다 살폈다.
"이야, 이게 굳은살이네. 완전 무슨 타이어 고무같아."
은준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인에겐 한국인의 사법이 있는 법이지. 에헴."
어디서 또 들은 건 있는지 이번엔 엄지와 검지로 시위가 아닌 화살 끝을 잡아 그대로 당겼다. 그러자 좀 전보다는 확실히 활대가 휘어지는게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하지만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었던듯, 시위를 당기는 손가락과 팔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끝까지 당기지도 못하고는 시위를 놓치고 말았다.
투닥탁!
화살은 날아가지도 못하고 활대를 어떻게 쳤는지 핑글 튕겨나가더니 바닥에 떨어졌다.
"아, 이게 활이 별로네. 내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험험."
핑계를 대 보지만, 웃음소리만 더 커질 뿐이었다.
"아이참, 활쏘기는 한국인 종특 아니었어?"
아무렴 종족특성에 활이 있더라도 생전 처음 잡아보는 생초보가 백발백중이 가당키나 할까. 은준은 자신이 초보라는 사실은 생각지도 않고 억울해하기만 했다. 그렇지만 아예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닌지, 두 번째 시도는 제법이란 소리가 나올 정도는 되었다.
"이번엔 잘 날아갔네! 근데... 가도 너무 갔네. 쩝."
생각보다 활의 탄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작정하고 힘을 줘 당기니 '끼리릭' 하는 소리와 함께 활이 휘어졌고, 한 번도 경험이라고, 두 번째 화살은 말 그대로 쏜 살 같이 하늘로 날아갔다.
목표로 했던 악어는 커녕 그 위로 훌쩍 넘어 강물 중간에 화살이 쏘옥 하고 빠지긴 했지만, 체면치레를 했다고 생각한 은준은 어깨가 으쓱해 활을 주인에게 넘겨주었다.
"총은 쏴봤는데, 활은 어떻게 조준해야할지 몰라서 그랬지. 근데 생각보다 재미있네?"
처음 활을 잡아본 은준은 자신이 쏜 화살이 휙 하고 멀리 날아가자 그것에 재미를 느끼고는 흥미가 생겼음을 알았다.
"쉬사네에게 말하면 새 활을 얻을 수 있을까?"
은준은 사냥한 악어를 트럭에 쌓고 벤시몽으로 돌아가는 길에 쉬사네에게 은근히 자신이 쓸 활과 화살을 구해다 줄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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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늘은 뉴-카파로가자 쓰는걸로 행동력이 다 했습니다. 좀비림은 다음 기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