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카파로 가자-42화 (42/107)

42화

은준이 얌의 진의를 몰라 번뇌에 빠져있는 사이, 얌이 가르치는 간이 학교는 호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비록 은준의 제안에 의해 진행된 일종의 공공 사업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여금 어떠한 대가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로 얌의 학교를 찾는 이는 어린 아이들 뿐만 아니라 일부 성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벤시몽에 찾아온 겨울 때문일까? 한국에서처럼 영하의 날씨와 눈이 내리는 그런 겨울은 아니었지만, 한자리 숫자로 떨어지는 기온에 속에서 재배할 만한 작물은 없었고 그 말은 즉 이곳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도 농한기라는 것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일부 사람들은 기르는 가축을 먹이는 일을 하거나, 혹은 새로 옮겨온 마을 주변에 텃밭을 만드는 일을 하였으며, 그 외의 시간은 먹고 떠들며 보내는게 전부였다. 그러다보니 그 남는 시간중 일부를 얌의 학교에 가는 일에 쓰는 이들도 생겨났던 것이다. 그것이 잠깐의 호기심이든, 어떤 미래에 대한 투자였든 말이다.

그렇지만 2주의 시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한데 모여 무언가 배운다는 것에 익숙해질때쯤, 은준이 얌의 난처한 장난에 익숙해져 일일이 반응하는 것을 넘어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보름간의 방학이 끝나며 얌은 뉴-카파의 나눔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다음 방학을 기약하며.

겨울이되자 할 일이 없기는 은준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전에도 그가 하는 일이라곤 퉁야와 쉬사네를 시키는게 그가 하는 일의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퉁야도 휴가를 가 벤시몽에 없었고, 이미 100헥타르에 이르는 면적의 개간과 거기서 생산될 옥수수를 보관할 창고의 건설을 완료하였기 때문에, 매일 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일거리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해서 그가 요즘 하는 일이라곤 그가 구입한 2000헥타르에 이르는 땅이 나와있는 지도를 펼쳐놓고 그것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물, 물이 가장 중요한데….”

은준이 옥수수 농장을 100헥타르만 개간하고 멈춘것에는 그것을 심고 수확할 인력의 한계 부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농업용수의 확보 때문이었다. 벤시몽 저택 밑으로 지하수가 흘러 샘에서 물을 퍼올릴 수 있었지만, 무한정으로 솟아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도 이상 물을 사용한다면 지하수도 결국엔 마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가까운 도시로부터 상수도를 연결해 물을 끌어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벤시몽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라면 당연 뉴-카파였고, 그곳도 거의 100km는 떨어져 있었다. 길도 없는 오프로드를 50km/h로 달려 네다섯 시간쯤 걸리는 곳이니 직선거리는 그쯤 되지 않을까 하고 은준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거기에 필요한 공사비용이 얼마일지, 또 수도요금은 얼마나 될지 생각하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나마 여기 강에서 물을 끌어오면 쉬울 것 같지만….”

그가 생각하는 곳은 벤시몽에서 서쪽으로 약 10km쯤 떨어진 곳에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작은 강으로 상류로 거슬러올라가면 ‘로토리오 강’이라는 지명이 나오지만, 워낙 많은 지류중 하나라 그가 가진 지도에조차 이름이 안나와있는 그런 강이었다. 하지만 그런 강이나마 수로를 내어 끌어온다면 그가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엔 충분했다. 다만 역시나 그의 걱정은 공사 비용이었다.

“일단은 올해 농사까지는 지어보고 판매 대금을 받으면 생각해봐야 할까? 생각한대로 이모작이 성공한다면 57만 달러쯤 벌 수 있을 것 같고, 농한기인 겨울이 되면 공사현장에 인부들이 넘쳐난다던데, 그 사람들을 데려다가 시키면 싼 값에 어떻게 될 것 같기도 한데 말이지.”

하지만 은준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역시 사람들만 있어선 무리야. 일일이 삽질로 10km나 판다고? 또 한줄만 판다고 될 일도 아니지. 거기서 또 중간중간 곁가지를 내줘야 주변 땅에도 물을 공급하지.”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은준이 데려다 쓸 수 있는 사람엔 한계가 있었다. 이동도 문제고 먹고 자는 일도 전부 그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었다. 공사장이 도시가 아닌 외딴곳이다보니 식주를 해결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했다. 자칫 인부들이 얼어죽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꼭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야만 사람이 얼어죽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포크레인이 있으면 인력이나 시간을 훨씬 줄일수 있을거야. 하지만 수로를 파도 관이 없으면 오다가 다 땅속에 스며들테니 콘크리트관이든 PVC관이든 있어야 할텐데, 그게 다 돈이거든….”

은준은 다시 머리를 쥐어뜯으며 끙끙거렸다. 야는 그런 모습을 보는게 하루이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앞에 놓여진 찻잔을 가져다가 새롭게 따뜻한 밀크티를 가져다 놓았다.

이 밀크티는 요즈음 은준이 새롭게 맛들인 기호품으로, 남아공에서 나는 루이보스 홍차에 그의 젖소가 매일 짜낸 신선한 우유를 데워 넣은 데다가 설탕이 아닌 자연산 꿀을 넣었기 때문에 건강에도 좋다며 수시로 마시고 있었다.

“아, 고마워. 으음, 이러다 정말 살찌겠는걸?”

하지만 1큰술에 보통 60kcal 한다는 꿀을 밀크티 한잔에 한큰술씩, 여서일곱잔을 마시니 보통 사람보다 한끼를 더 먹는 셈이었다. 게다가 함께 마시는 우유도 적지 않은 열량을 섭취하는 것이었으니.

그렇지만 은준은 당분간 이 취미를 버리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남아공에서는 아기에게도 먹일만큼 가정의 필수품이라는 루이보스 홍차도 원산지라는 이점으로 무척 저렴했고, 특히 프리토리아에서 저렴하게 파는 꿀을 역시 뉴-카파에서도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값이 쌌기 때문에 질리게 먹어도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역시 안되겠어, 뭔가 운동을 해야지. 뭐가 가장 좋을까? 역시 기본은 달리기겠지만, 그냥 달리기만 하는건 재미가 없단 말이야. 승마가 그렇게 운동이 된다던데, 그래서 전 주인이 말을 길렀던건가? 아! 활쏘기도 전신운동이라 운동량이 제법 된다던데, 활을 배워봐? 여기서 국궁은 어려워도 원주민식 활쏘기는 배울 수 있겠던데.”

은준은 언젠가 보았던 마을의 남자들이 활을 가지고 있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은 복합궁인 국궁과 달리 장궁쪽에 가까워 보이는 길고 매끄럽게 휜 큰 활과 화살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분명 그들도 총이 있었지만, 총알을 돈을 주고 사야했기 때문에 평소엔 활을 주로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꼭 농장을 집 근처에 개간할 필요가 없잖아? 어차피 일은 내가 하는게 아니라 사람들을 부리는건데, 농장을 강 근처에 개간하면 물 대기도 수월하겠지. 수로를 낸다 하더라도 조금만 내도 될테고. 음, 너무 강가에 붙이면 그것도 안돼. 우기에 물이 범람하면 옥수수밭이 잠길수도 있잖아? 둑을 쌓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니 차라리 조금 떼어놓는게 낫겠어. 여기서 강 근처면 10km쯤 떨어졌기는 하지만, 원래 물 뜨러 그정도는 걸어다니던 사람들이니 출퇴근이라고 못할 것도 없겠지. 아니면 전처럼 트럭을 써먹어도 될테고 말이야. 옳지! 좋았어! 역시 단게 들어가니까 머리에 에너지가 공급되서 그런가 머리가 좀 돌아가네!”

오래 고민하던 문제의 해결 방법이 나오는 것 같자 은준은 간만에 짐을 벗은 것 같아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어차피 소유의 땅을 전부 개간할 것이라면, 강 근처도 결국엔 개간을 해야할 것이니 어느쪽이 먼저가 되었든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게 그의 결론이었던 것이다.

“좋아, 좋아. 내일은 그럼 몇 명 데리고 강쪽에 다녀와야겠군. 그럼 어느정도 견적이 나오겠지.”

============================ 작품 후기 ============================

슈퍼로봇님, 울퉁불퉁님, 에르시리나님, 천마왕님, 백더클락님, 주노206님, 치야님, kiacel님, 안녕하세요~~이번화는 좀 늦었습니다. 좀...좀... 많이 늦었을지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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