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은준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담장 밖에 설치한 물탱크에 물을 채워넣으면서도 야의 동생인 얌이 보여준 행동의 의미를 알지 못해 고민에 빠져있었다. 호스를 잡고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물을 뜨러 왔던 이들은 평소와 다른 그를 이상하게 쳐다봤으나 그는 그런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냥 호기심이었을까? 하지만 아무리 호기심에서라도 그렇지, 처음 보는 남자의, 그것도 언니를 고용하고 있는 사람의 거기를 만져볼 생각을 어떻게... 혹시 조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애 아냐? 하지만 야는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는데. '
그는 힐끔 얌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과 중간쯤에 있는 공터에선 얌과 마을 아이들이 맨발로 공을 차며 뛰어놀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유별나게 하얀 피부 때문에 눈에 띄였지만, 전날 그의 바지 위를 쓰다듬던 모습은 그의 착각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평범하게 건강해보이는 소녀였다.
'내 착각인가? 어쩌면 그냥 손을 들었는데, 차가 덜컹거리면서 짚은게 몸이 기울며 그쪽에 닿았을수도 ...있나?'
하지만 은준은 여전히 도발적으로 빤히 쳐다보던 얌의 눈빛을 지울수가 없었다.
'혹시 정말 날라리 아냐? 언니 앞에선 조용하게 있다가 언니가 없으면 돌변해서...! 저정도 발육이면 몸은 이미 다 컸지 뭐. 어쩌면 벌써 다른 남자들하고 이런 저런 관계였을 수도...'
그렇게 의심을 한번 하고나니 은준은 전부 의심스럽게만 보였다.
'야하고 얌을 데려왔다는 신부가 혹시 변태아냐? 밤이면 야, 얌 자매를 불러다가 이렇게 저렇게... 아니면 야가 없을때 얌을 불러다가 언니를 어떻게 한다면서 인질로 잡고 얌에게 이런 저런 일을 시키면서...?'
은준의 망상은 갈수록 수위를 높여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종국엔 아예 얌을 이미 닳고 닳은 여자가 아닐까 하고 상상을 하며 은근한 기대를 하기에 이르렀다.
'밤에 방에 들어가면 얌이 날 기다리고 있다거나? 아니면 잠을 자고 있는데 몰래 침대로 기어들어와서...'
하지만 이런 그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늦게도록 언제나 얌이 자신의 방을 찾아올까, 혹시 그녀가 자신을 찾아왔는데 자다가 놓쳐버리는건 아닌가 싶어 밤 늦게까지 뜬 눈으로 지새웠지만 다음날이 되도록 그가 기대하던 그런 일은 전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 은준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얌은 다음날 아침에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기운차게 돌아다녔으며, 셋이 식탁에 마주 앉는 식사 시간에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초롱초롱하고 말똥말똥한 두 눈을 은준의 눈에서 떼질 않으며 은준의 은근한 기대를 부추겼다.
야도 그런 얌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조용한 목소리로 동생에게 속삭이기도 했다.
"사람을 너무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면 못써! 보스가 부담스러워 하시잖아."
"험험."
둘이 속삭인다고 했지만, 바로 앞 식탁 옆자리에서 나는 소리다. 은준도 야의 귓속말을 들었지만, 두어번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숙이고 식사에 열중했다. 하지만 머리 위로 느껴지는 시선을 알아차리기엔 충분했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은준도 인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그 때 일은 실수일 뿐이고, 좀 유별나게 호기심이 많은것 뿐이야. 아무렴 어디서 나같은 동양인을 봤겠어? 관광객이라도 많은 대도시라면 모를까, 뉴-카파는 유명한 도시도 아니잖아? 그리고 한밤중에 도둑고양이처럼 숨어들어왔어도 문제였을거야. 난잡하게 관계를 가졌었다면 어쩌면 나에게까지 병을 옮겼을수도 있잖아. 게다가 몸만 컸지 나이를 생각하면 범죄라고 범죄!"
은준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전처럼 잠도 못자고 한밤의 손님을 기다리는 일도 없어졌고, 짙어졌단 다크서클과 함께 멍하니 서있는 일도 사라졌다.
하지만 은준을 헷갈리게 하는 일이 또 벌어지고 말았다.
"얌, 오늘은 언니를 도와줄래?"
"도와? 내가 뭘 하면 되는데?"
"침대 시트를 빨건데, 빨래를 걷어다가 대야에 담아줄테니까 얌이 꾹꾹 발로 밟으면 되는거야. 뭔지 알지? 나눔자리에서처럼 하면 돼."
"응!"
은준이 대야를 꺼내주고, 야가 침대에서 시트를 걷어다 넣고 물을 받아 세제를 풀자 얌이 그 안에 들어가 밟으며 시트를 빨기 시작했다.
은준은 쉬사네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농장의 개간 작업도 이미 둘러보고 왔기 때문에 저녁이 되기까지 그가 할 일은 없었다. 이미 퉁야가 하던 저택에서의 일도 오전에 끝마쳤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점점 선선해져가는 날씨를 즐기며 그늘에 의자를 가져다놓고 앉아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 그의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찰박! 찰박!
은준은 눈을 감은채 바람을 느끼다 천천히 눈을 떴다. 그곳엔 치맛자락을 두 손으로 들어올리고 빙글빙글 큰 대야 안을 돌며 빨래를 밟고 있는 얌이 있었다.
"으음."
은준은 그 모습에 절로 흐믓한 미소가 지어졌다. 어깨가 드러나는 얇은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얌이 맨 다리를 드러내고 있는 모습, 거기에 다리를 들어올릴때마다 잠깐씩 보이는 거품과 물에 젖어 햇빛에 빛나는 하얀 다리와 맨발은 그 자체로도 그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정신없이 그 모습에 빠져들어 있는 사이, 빙글빙글 돌며 밟던 얌도 은준의 시선을 알았는지 더이상 돌지 않고 그를 마주보는 방향에서 방글방글 웃으며 다리를 번갈아 밟았다.
은준은 옅보던 것이 들킨것 같아 난처했으나 애초에 의자가 놓여진 방향이 그쪽이었기 때문에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한편으론 오히려 고개를 돌리는 것이 더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스르륵.
그때 치마 양 끝을 움켜쥐고 있던 얌의 두 팔이 점점 위로 들어올려졌고, 동시에 그녀의 원피스 치마도 위로 올라갔다. 무릎 위로 올라와있던 치마는 점점 허벅지를 타고 올라갔고, 마침내 더이상 올라갈 수 없을만큼 다리가 갈라져나온 곳 까지 올라갔을때, 어느새 목이 빠져라 고개를 내밀고 있던 은준은 깜짝 놀라 빨개진 얼굴로 허둥대었고, 그 모습에 얌은 맑은 목소리로 깔깔깔 웃었다.
그리고 잠시후 은준이 곁눈질로 다시 얌을 쳐다보았을때는 이미 언제그랬냐는듯 내려가있는 치맛자락에, 안도인지 아쉬움인지 알 수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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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시간님, 울퉁불퉁님, kiacel님, 정적님, 파블님, backthelock님, 녹색의 향기님, 참좋은아침님, 안녕하세요~제가 한 썰렁개그 합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