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카파로 가자-38화 (38/107)

38화

벤시몽 농장의 일을 거들어주던 두 마을이 농장 인근으로 마을을 옮기기로 한 이후로는 평온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날 밤 은준의 앞에 나타나 그를 놀라게 했던 표범은 그 뒤로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일주일, 이주일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서 은준도 이전과 같이 두려움을 떨쳐버렸는지 인근에 나갈 때면 더이상 사냥용 라이플을 들고 나가는 일은 없어졌다.

그렇지만 작은 언쟁이 있기도 했다. 마을을 옮기는 것도 서둘러야 했지만, 그렇다고 한창 진행중이던 창고 건물을 짓는 일을 중간에 중단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창고를 완공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 다음에야 새로 이주할 마을을 세우는데 전인력을 투입하게 되었는데, 여기엔 농장에서 일하던 인부들만이 아니라 두 마을 사람들 남녀를 불문하고 전부가 달라붙어 총력을 기울였다. 문제는 이때쯤에 발생했다.

본래 농장에서 일을 하던 사람도 아니었고, 이후 마을 이전 건을 논의하기 위해 벤시몽을 방문했던 이도 아니었던 그녀는, 마을을 짓기 위해 임시로 머물라고 은준이 배려하여 내어준 창고 건물 하나를 점거한채로 새로 들어설 마을에 자신의 집을 짓기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아니, 여기에 집이 있는데, 왜 또 저기에 집을 지으라고 한데요? 나는 일 없네요!"

은준으로서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내어준 창고 건물은, 어디까지나 기존 마을과 이곳을 왔다갔다 하며 집을 짓는 것이 비효율적이라 여겨 기왕이면 겨울이 오기 전에 마을 건설을 마무리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배려였던 것이다. 이곳의 겨울이 춥지 않다고는 해도, 그것은 은준에게나 그런 것이지, 아무래도 이곳에서 평생 살아온 이들에겐 0도에 가깝게 내려가는 겨울이 춥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소식을 들은 은준은 쉬사네를 대동하고 그녀를 찾아가 자신의 사정을 말해보았지만, 허사였다.

"여긴 사람이 살 집을 지어놓은게 아니라 옥수수를 보관할 창고입니다. 마을은 저쪽이니 그곳에 집을 지으세요."

은준은 어디까지나 말로서 좋게 풀어나가려 했다. 어쨌건 그녀도 새로 들어온 마을로 이주해 올 사람이었고, 그렇게 되면 이웃에 살게될 여자였다. 또 언젠간 그녀도 자신의 농장에서 일하게 될지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는 만만치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래? 집이 집이지. 그럼 한쪽엔 옥수수를 쌓아두고 나는 이쪽에서 살면 되겠네!"

몇 차례 실갱이 끝에 은준은 자신의 힘으론 그녀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애초에 말이 통하면 설득이라도 할 텐데, 말이 통하질 않았다. 단순히 사용하는 언어의 다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문화적인 측면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었다. 은준이 창고라고 지어놓은 원주민식 건물은, 그녀가 원래 살던 마을에선 집으로 사용하던 건물이었다. 실제로 그녀의 말처럼 한쪽엔 말린 옥수수를 쌓아놓거나 매달아놓고, 한쪽에서 자거나 밥을 해먹는등의 생활을 해왔던 것이니 그녀도 틀린 말을 한 것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다만 은준과 그녀는 같은 것을 두고도 서로 창고와 집으로서 다르게 인식을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결국 자기보다 더 덩치가 큰 여자를 힘으로 끌어내지 못하고 말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 그는, 일전에 그와 협의를 했던 마을 원로를 만나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해결해줄 것을 요청했다. 다행히 그녀도 마을 원로의 말을 무시할 순 없었는지 창고 건물을 비워줌으로서 일은 일단락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벤시몽 농장에도 4월이 말이 되어 겨울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은준은 자신의 저택 창고 한쪽에 쌓인 옥수수 자루를 보며 뿌듯하게 미소지었다. 그것은 그가 아프리카로 날아온 이후 첫 수확이었다. 그것이 비록 수익과 연결될 만큼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작은 밭에서 나온 옥수수는 만족할 만한 수량이어서, 이제 겨울이 지나고 다가올 여름이 벌써부터 기대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전에 은준은 해야 할 일이 한가지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은준이 할 일은 아니었지만, 4월 중순 이후부터 계속해서 안절부절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퉁야는 스스로 먼저 말을 꺼낼 것 같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은준은 그가 먼저 입을 열기로 했다.

"퉁야씨!"

은준은 저택 물탱크에 물을 채우고 내려오는 퉁야를 불렀다. 그는 최근 별다른 일이 없을 때에도 저택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낡은곳을 점검하거나 지금처럼 자신이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사라지기라도 할듯, 평소 그가 담당하고 있던 일들을 매일같이 확인하고 부족한 것을 채워넣었다.

은준은 내심 그런 퉁야가 우스웠다. 차마 말로는 못하고 행동으로 몸이 달아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곧 있으면 5월. 내가 퉁야씨한테 휴가를 주기로 한 때지. 5월부터 8월 까지면 한참 그를 보지 못하겠는걸? 그때까지 그가 저택에서 하던 일들은 이제 내가 해야하는건가?"

은준은 막상 5월이 되가니 문득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무려 4개월에 달하는 유급휴가! 4개월이면 대학생들이나 가질 수 있는 방학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그는 숙제도 없고 때워야 할 학점도 없으며,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합친것과 같은 4개월의 긴 휴가인 것이다.

만약 어느 직장인이 4개월동안 휴가를 달라고 하면 영원히 쉬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일이다. 퉁야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분명히 계약에 명시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말은 못 꺼내고 은준의 근처를 맴돌며 무언의 압박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에잇! 주기로 했으면 줘야지. 어차피 1년으로 치면 원래 받아야 하는 것보다 적게 주는 건데."

애초에 퉁야 정도 되는 일꾼이 받는 급여는 12000랜드. 하지만 은준이 제시한 것은 10500랜드와 겨울 4개월 동안의 유급휴가였다. 4개월 쉬게 해주면서 18000랜드를 아낀 셈이었다.

"그런데 18000랜드를 아낀것은 맞는데, 실제로 고용하는 기간은 8개월임을 생각하면 내가 손핸가?"

이런걸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때 다르다고 하는 것일게다. 그땐 그 18000랜드가 아까워 농한기인 겨울에 휴가를 주며 급여를 싸게 책정해놓곤, 이제는 막상 겨울이 오니 생각이 다르게 드는 것이다.

"쩝,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이제와서 말을 바꿀 수도 없고... 계약을 그렇게 했으면 해 줘야지."

그러는사이 퉁야가 뒷정리를 끝내고 은준 앞에 와 섰다.

"부스셨습니까. 보스!"

은준은 그런 퉁야를 보며 어쩐지 오늘따라 그가 깍듯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그의 입가에 띈 미소는...

"무슨 좋은일 있어요?"

은준은 그 모습이 질투나 시치미를 뚝 떼고 물었다. 실제로 그는 올해 설날땐 고향에도 가지 못하고 홀로 아프리카 외딴 농장에서 설을 보냈었다. 한창 새 마을 건립 건으로 시끄러울 때라 자리를 비울수도 없었고, 금전문제와 같은 여러가지가 그의 발목을 붙들었었다.

"아, 아닙니다. 좋은 일은요..."

은준의 질문에 퉁야가 얼른 표정을 굳혔다. 그도 그의 고용주의 심사가 오늘따라 왠지 뒤틀려 있음을 감지한 것이다. 실제로 퉁야는 속으로 휴가가 취소되는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은준은 굳어있는 퉁야를 보며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어차피 주기로 한 휴가였다. 갑자기 성격에도 안맞는 악덕 고용주가 되어 계약서를 찢을게 아니라면 저토록 좋아하는것 그냥 좋은 마음으로 보내주기로 한 것이다.

"없기는... 쳇! 이제 곧 5월이네요."

"아, 예... 그렇죠..."

"집에 가야죠?"

은준이 그 말을 꺼내는 순간, 퉁야의 입꼬리가 활짝 위로 치솟았다. 그 모습을 보자 은준은 잠깐이라도 아깝다는 생각을 했단 자신이 속좁아 보였다.

'저렇게 좋아하는것을...'

"아, 뭐..."

"이번 주말에 뉴-카파에 갈때 아예 짐 싸서 가요. 다음주가 5월인데 며칠 더 있는다고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기 전에 물탱크에 물이나 한 번 더 채워놓던지요."

"예, 예? 정말입니까! 가, 감사합니다. 보스! 감사합니다!"

긴가민가 하는 와중에 은준의 명확하게 입으로 휴가건을 확정시키자 퉁야는 몇 번이고 은준에게 허리를 숙여가며 감사를 표했다. 한참을 그런 뒤에야 은준이 낯간지러워 손을 훼훼 저은 뒤에야 그는 빠른 걸음으로 그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아... 나도 집에 다녀와야 할 텐데. 이번 추석이 몇 월 이더라? 추석땐 갈 수 있을까?"

2모작을 하게 되면 2개월 반에서 3개월 정도의 생육 기간이 필요했다. 날씨에 따라 8월 말이나 9월 초에 심는다 해도, 다 자란 옥수수를 거두고 판매를 하는 것은 그 스스로 지키고 있어야 하니 아무리 빨라도 11월 초까지는 이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은준은 다시 한번 시무룩해져 고개를 떨궜다.

그런데 그때,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앞치마를 조물거리며 불안한 눈빛이 가득한 그녀는 다름아닌 야 였다.

============================ 작품 후기 ============================

중앙시장님, 치야님, 권우현님, 주노206님, 추풍령나그네님, 파블님, 천마왕님, 참좋은아침, 남장기바둑님, 울퉁불퉁님, 안녕하세요~ㅎㅎ 첫 연재를 했던 것이 1월이었는데, 벌서 4월이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이 4월이 작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게 뭔고 하니, 첫번재 원고료가 들어오는 날이기 때문이죠.

사실 거창하게 원고료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여러분들이 제 글을 읽어주심으로해서 노블레스 결제 금액중 일부가 저에게 들어오는거죠.

물론 선작수라던가 조회수를 보면 그리 인기가 많은편은 아닌지라, 큰 기대는 안했었습니다. 매일 연재도 안하는데요 뭐. ㅋㅋ 그래도 금액을 확인해보니 노블레스 3개월권 결제할 금액은 되네요. 어쩐지 자급자족하는 기분이 듭니다 ㅋㅋㅋㅋ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