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은준이 저택 밖 작업장에 도착했을때, 사람들은 트럭에서 내리며 이리저리 떠들고 있었다. 그러다 다가오는 그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거나 하며 인사를 해왔는데, 그중 한명이 은준이 어깨에 둘러맨 사냥용 라이플을 보았는지 이야기했다.
"오늘도 사냥?"
그것은 은준이나 다른 누구에게 한 말이라기 보다는 혼자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는 수준이었지만, 목소리는 평소와 같이 커 누구든 그 말소리를 듣지 못한 이가 없었고, 이내 사람들의 시선이 은준에게로 집중되었다.
하지만 사냥은 커녕, 어제 잡아온 사냥감도 아직 해체하지 못한 상태라 그럴 생각도 없었던 그로서는 손사레를 치며 금일은 작업을 계속 한다고 몇 번이나 사람들 틈을 지나다니며 외쳐야했다.
"보스, 그런데 어쩐 일로 오늘은 총을 들고 나오셨습니까?"
일꾼들이야 은준이 그렇게 말을 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작업장으로 흩어졌지만, 그들을 감독하는 퉁야는 은준이 작업장에 남아있으니 그의 곁에 서서 함께 걷다가 옆의 총이 신경쓰였는지 틈을봐 물었다.
"아..."
은준은 잠시 말을 멈추고 고민 했지만, 비밀로 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야생 동물이 나타났다고 하여 자위 수단인 총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행동이지, 오히려 그것을 자신만 알고 있다가 다른 사람들이 다치거나 크게는 죽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이 고스란히 자신의 것이 되리라 생각한 것이다.
"사실은 어젯밤에..."
퉁야는 지난밤 은준이 보고 들은 이야기를 그의 입을 통해 전해들었다. 길지 않은 이야기였고, 믿지 못할 이야기도 아니었다. 은준들이 살고 있는 벤시몽 농장은 아프리카에서도 도시와 멀리 떨어진 외딴곳. 야생 동물이 나타나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동네였다.
"어제는 유난히 가까이서 들리는 것 같기는 했지만, 잠결이라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는데, 그렇게나 가까이까지 왔었던거군요! 아침에 물으시길래 그냥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누의 피냄새라도 맡았던 것일까요?"
"어쩌면 그랬었을수도 있지."
어젯밤이 평소와 달랐던 점은 그것 하나밖에 없었다.
"아니면 이런건 아닐까? 지금 이동하는 누 떼를 따라서 포식자들도 따라 움직이는중이니까, 그중 한 마리가 샛길로 빠졌다거나 길을 잃고 여기까지 흘러들어왔을수도 있지 않을까?"
"...."
퉁야도 이런 저런 이유들을 생각하고 있는지 말이 없다가 잠시후 은준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지금처럼 총을 들고다닌다고 하더라도, 갑작스럽게 덮치거나 한다면 총을 쏘는 것도 쉽지 않을겁니다. 물론 사람들이 뭉쳐 있으면 쉽게 덤비진 못하겠지만요."
"역시 그렇겠지?"
아무리 표범이라한들 무리를 향해 다짜고짜 덤벼들지는 않는다. 대체로 사냥은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것을 노리거나 하는 것이지, 뭉쳐있는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거꾸로 사냥을 당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직접적으로 발에 밟혀죽거나 아니면 작은 상처가 곪거나 골절로 인해 뜀박질을 할 수 없게되 사냥을 못해 굶어 죽게되거나. 그들이 다치면 친절하게 치료해줄 의사가 있는것도 아니니 작은 상처도 생존에 크게 위협이 되는 사건이니, 쉽사리 덤벼들지는 않을 터였다. 물론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공포심을 조장해 기회를 만들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은준은 그 뒤로도 여러 방향으로 고민을 했다. 일인일총, 혹은 저택을 벗어날땐 몇명씩 함께 다닌다거나 하는 등등. 그렇지만 그것이 위험으로부터 완전하게 차단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혹시 떠돌이었다면 어젯밤 다른 곳으로 떠나지는 않았을까?"
이전까지는 없던 일이었으니 어젯밤에만 일어난 특별한 소동일런지도 몰랐다. 적어도 은준은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 일었지만, 그래도 만약을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의 목숨과 연관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있을땐 이런 걱정은 생각도 안했었는데 말이지."
오히려 세상에 좀비가 창궐하면 어떨까? 몬스터들이 나타난다면? 하는 등의 쓰잘데기 없는 망상에 빠져 현실에서 잠시나마 도피를 한 적은 있기는 했다.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 어떤 돌파구를 찾다보니 그런 실현 가능성 없는 일에까지 생각이 닿았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은준은 잠시후 퉁야를 불러 몇 가지 지시를 내렸고, 퉁야는 이내 고개를 끄억이고는 창고를 짓는 작업장에 있던 일꾼들 중 몇 명을 불러 벤시몽 농장으로 돌아왔다.
점심시간이 되자 은준들은 잔치를 벌였다. 야외에 불이 피워지고 어제 잡아온 누가 홀라당 가죽이 벗겨져 원주민식 요리로 익어갔다. 은준은 괜히 포도주를 내줬다가 수십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먹기 시작하면 지하 창고에 있는 포도주가 동이 날까봐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그래도 고기가 풍족하니 사람들 모두 좋아했다.
누군가 막대기를 두들기며 박자를 내자, 하나둘 목청을 내어 노래를 불렀다. 은준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분위기를 망칠 생각은 없어 웃으며 손뼉을 쳤다. 야도 간만에 흥이 나는지 앞에 나서서 몸을 흔들며 춤을 췄는데, 그녀가 나서니 다른 남정네들도 몇이 튀어나와 함께 흥을 돋궜다. 오직 은준만이 질투심에 눈을 부라렸다. 자신이 사려고 점찍은 장난감을, 다른 사람이 와서 이리저리 집어들고 돌려보는걸 노려보는 눈빛이었다.
온종일 축제를 벌일 때는 아니었기 때문에, 점심이 끝나고 누 한마리가 통째로 사라지는 마술을 선보인 이들은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고는 일터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은준이 나서 손뼉을 치며 사람들을 불렀다.
사람들이 주목을 하자 그는 옆에선 야를 보며 마을 사람들에게 통역을 해 줄것을 부탁했다.
"자, 모두 배불리 먹었으니 일을 하러 가야겠지만, 잠시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돈을 주는 전주가 할 이야기가 있다니 모두들 조용히 은준을 주목했다. 원주민이란 그 지역에 본디 사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지,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었다. 좀 더 현대화된 사람들의 눈에는 미개해 보일지 몰라도 그들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이 있었고, 지금과 같이 행동 방식은 그들이나 이들이나 비슷했다.
"얼마전에 여러분들이 지금 짓고 있는 저기, 창고 건물에 머물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고, 전 그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왜 저곳에 머물으려고 하는 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를 했지만, 잠을 자며 생활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붕만 있으면 되는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죠. 식량, 물 등등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가지들."
은준이 이들을 부리는 조건은 숙식제공이 아니다. 아침 저녁은 물론 자신들의 마을에서 해결해야하고, 은준이 제공하는건 이동 차량과 하루 일당이 전부였다. 그러니 이들이 당분간이라고 해도 저기에 머물게 된다면 그들 스스로가 먹고 마시는 일을 해결해야만 하니, 단순히 잠을 잔다고 잠만 자는게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옮겨올 것이 분명했다. 물론 기반은 본래 마을에 고스란히 있겠지만.
"물론 며칠, 몇십일 뿐이라면 조금 불편함이 있더라도 참으며 살 수는 있을 겁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익숙한 주거지를 떠나 떠돌게 되면 먹을것 씻을것 잘것 등을 새로 챙겨야하니 매번 고생일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 며칠이 지나면 집에 돌아갈 생각으로 참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일하는 것이 과연 며칠 만에 끝날 일일까요? 아닙니다. 지금 당장 창고를 짓는 것만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해왔던대로 딱 그만큼만 더 고생을 하면 끝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전 앞으로 이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씨앗을 뿌리고 거두고 또 씨앗을 뿌리고 다시 거둘것입니다. 저 혼자요? 아닙니다. 여러분과 함께죠, 제가 여러분을 고용할테니까요."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은준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감을 잡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퉁야나 통역을 하고 있는 야도 마찬가지였다. 은준은 그들에게도 아무런 이야기를 해 준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그 혼자서 고민하던 내용이었으니까.
"제 제안이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전 계속 이곳에 있을 것이고, 여러분이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면 그만큼 보상이 돌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아침에 이곳으로 출근해 저녁이면 퇴근을 하더라도 마을 남자들 대부분이 마을을 떠나 여자와 아이들만 남아있는 것은 불안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만, 저도 그렇습니다. 제 가족이 아니라 해도 제가 여러분과 관계를 가진만큼 마을에 남아있는 그들과도 연관이 없을수 없죠.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저 역시 가슴이 아플겁니다.
하지만, 그들을 가까운 곳에 두고 보호할 수 있다면? 눈 안에 항상 그들을 보고 위험으로 부터 보호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당신이 일 할때 아이들은 당신이 보는 앞에서 안전하게 뛰어놀수 있다면? 만약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신이 한걸음에 가족에게도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은준은 조용해진 마을 사람들 앞에서 잠시 숨을 깊게 내쉬었다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의 마을을 이곳으로 옮기는 것을 제안합니다!"
============================ 작품 후기 ============================
치야님, 천지패왕님, 중앙시장님, 悲流님, 파블님, 천마왕님, 슈퍼로봇님ㅎㅎ, 똘랭님, 데스크로스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마음으로는 더 자주 올리고 싶은데, 저도 다른 글들을 읽느라.....험험;;;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