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사냥은 아주 성공리에 끝났다. 총소리에 놀란 누 같은 초식동물들이 일제히 흩어져 달아나기도 했고, 독수리는 하늘로 날아오르고 또 느긋하게 식후 망중한을 즐기던 맹수들도 눈이 동그래지고 귀가 쫑긋해져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우릴 경계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혹여 자신들을 향해 달려올까 걱정이 한가득인 은준의 마음과 다르게 맹수들은 어슬렁 거리며 경계만 할 뿐,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고, 그들 일행은 도망친 누 떼 사이로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는 누를 트럭 뒤 짐칸에 싣고는 마을로 돌아갔다. 올때와 다르게 사람들은 트럭의 뒤를 따라 한참을 걸어야만 했다.
은준도 최초의 사냥에 무척 고무되어 있었다. 군대와 예비군 훈련에서가 아닌 곳에서 총을 쏴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고, 또 사냥용 라이플이란 것을 다뤄본 것도 마찬가지로 처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이 위에 사람 모양의 그림이 그려진 과녁이 아닌 살아있는 무언가를 향해 총을 쏜 것도 처음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심장은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크게 두근거렸다. 총알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던 누의 혀를 빼물은 얼굴에 충격을 받았던 것도 잠시, 오히려 자신의 손으로 누를 잡았다는 사실에 100m 달리기 시합에서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던 것과 마찬가지로 절제되지 않는 흥분으로 심장이 요동쳤던 것이다. 그것은 마을에 사냥감을 내려주고, 사냥을 축하하는 작은 잔치가 끝나고 자신이 직접 잡은 누를 트럭 뒤에 싣고 벤시몽 농장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울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은준은 그날밤 잠을 설쳤다.
죄책감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은준 스스로도 이상해할 만큼 한 생명을 끊었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책에서 나오는 인물이 처음 생명을 죽이는 경험을 하고 토악질을 하고 음식을 못 넘기고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던 것이 다 거짓말 같았다.
'어쩌면 작가는 그런 경험을 전혀 해보지도 않고 상상만으로 글을 썼던 것은 아닐까?'
어차피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 많은 다른 생물들의 생명을 필요로 하고 소비하면서 살아왔다. 은준은 스스로만 하더라도 한 달에 한 번은 치킨을 사 먹었다고 할 만큼 닭고기를 좋아했고, 그것만 하더라도 십수년동안 100마리가 넘는 닭을 죽여왔을 것이다. 또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것저것 음식에 섞인 닭고기라던가, 평소에 먹던 삼겹살, 감자탕, 갈비, 수육, 등등등 얼마나 많은 닭, 돼지, 소 이런 생물들을 간접적으로 죽여왔던 것일까. 게다가 식물은 생명체가 아닌가? 비명을 내지르지 못한다고 죄책감을 갖지 못한다면 말을 못하는 언어 장애인을 죽여도 죄가 아니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따지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인간은 농부들이겠지.'
은준은 스스로 떠올린 생각에 우스워 소리죽여 키득였다.
그렇게 망상을 접고 잠에 들기 위해 침대 깊숙히 몸을 파묻던 그는 갑자기 창 밖에 울려퍼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옹오우우!
평소 듣던 멀리서 들려오던 소리가 아니었다. 아주 가까이, 근처에서 나는 소리가 분명했다.
은준은 이제까지 야생 동물이 저택 근처까지 다가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깜짝 놀라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곤 창문을 조심스럽게 열어 밖을 살폈다. 좀 전의 울음소리를 제외하면 저택 주변은 너무나 조용했다.
크릉, 크르릉
다시 이번엔 목에서 혹은 코에서 그르릉 거리는 소리가 낮게 한껏 예민해져 집중하고 있던 그의 귀에 포착되었다. 은준은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벤시몽 저택의 정문, 창살로 된 큰 정문 앞으로 노란 빛덩이 두 개가 아른거렸다. 그것은 갑자기 사라졌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시 나타나기도 했고, 한쪽만 보였다가 다시 다른 한쪽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정문 주변을 살피듯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도깨비 불을 보는듯 했다.
하지만 어느정도 밖의 어둠에 적응이 되고 청명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달과 별의 빛 아래에서 은준이 보았던 노란 빛 두개는 곧 정체를 들어냈다.
표범!
은준의 저택 앞에서 어슬렁거리던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표범이었다. 그것은 대체 이것이 무엇이냐는 듯 정문의 창살 틈으로 까만 코와 주둥이를 들이밀어 보기도 하고, 앞발을 들어 탁탁! 문을 때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한 번은 정문 밑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확인해보려는 것처럼 납작하게 상체를 숙이곤 주둥이부터 앞다리를 허우적 거리며 비집어보기도 했다. 그중 압권인 것은 표범이 뛰어올랐을 때였다.
"헉!"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은준은 숨이 턱 막혔다. 표범이 정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오려고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담과 정문은 이럴 때를 대비해서인지 꽤 높아 표범의 점프력으로도 한번에 뛰어넘지 못했고, 표범이 네 다리를 허우적 거리며 뭔가 잡아채려 할 때에도, 매끄러운 철봉들은 쉽게 발판을 내주지 않았다.
결국 한참을 주변을 어슬렁 거리던 표범은 끝내 저택을 넘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하지만 은준이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국에 있을땐 술에 취해 밤을 새 거리를 배회하다가도 별 탈 없이 집에 돌아가던 은준이었다. 처음 남아공에 왔을 때에도 기차 안에서의 총격전 이후에는 아무일도 없었고, 그렇게 그도 이곳 생활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게다가 도시와 동떨어진 벤시몽임에도 지금까지 가까이 다가오는 동물은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어느새 이곳도 한국에서 살 때와 마찬가지로 '위험하지 않음' 이란 타성에 젖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 날을 기점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동안 아무일 없었던 것이 행운이었다는 것처럼, 혹은 이제 막 아프리카라는 세상에 '캐릭터'를 생성한 '초보'라서 다른 무언가로부터 공격을 막아주었다는 것처럼, 그가 먼저 총을 들고 누를 사냥한 그 날, 또 다른 포식자인 표범이 은준의 저택을 노리고 은밀히 어둠속에 스며들듯 그렇게 그를 방문해왔다.
다음날 아침, 식탁 앞에 둘러앉아 아침을 먹던 은준은 퉁야와 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혹시 들었어요?"
은준의 물음에 둘은 고개를 들며 되물었다.
"무엇을 말입니까?"
"그, 뭐냐, 흠흠, 아우우 하는 소리 말예요."
은준은 그 밤에 본 것이 표범이 맞는지 어둠속이었던 터라 확신하지 못하고, 대신 그가 들었던 울음소리를 짧게 흉내내었지만, 역시 부끄러워 짧게 끝냈다. 하지만 다행히 둘은 한 번에 그것을 알아들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은준은 식탁 앞에 앉아 동물 울음소리를 흉내내는 짓을 또 해야 했을지도 몰랐다.
"아아, 예. 어제는 좀 더 컸죠. 근처까지 왔었나 봅니다."
퉁야는 별것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은준이 고개를 돌려 야를 보니, 그녀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듯 했다. 여기서 심각해하는 사람은 은준, 그 혼자였다.
상황이 이러니 은준도 더 길게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다른 둘의 반응을 보니 더 길게 호들갑 떠는게 더 이상할 것 같았고, 심하면 그를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몰랐다. 예를 들면 겁쟁이라던가? 하지만 은준은 다른 남자인 퉁야나, 앞으로 작업에 들어갈지도 모를 야에게 겁쟁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그도 침착을 가장했다.
"그럼 난 오늘은 어제 잡아온 누의 가죽을 벗겨야겠네요."
"아, 그럼 제가 돕겠습니다."
퉁야가 나섰다. 또 은준도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혼자서는 들지도 못할 것이 누 였다. 어떤 사람이 소 한마리를 혼자 번쩍 들 수 있을까? 누를 해체하려면 창고에 있는 테두리에 홈이 있는 테이블에 올리기도 하고, 가죽을 벗길땐 반대로 뒤집어가며 작업을 해야 할 텐데 혼자서는 어려울 터였다. 이제는 은준도 처음과 달리 그 테이블의 용도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전 주인이 사냥 해온 사냥감을 해체하던 작업장이었다.
"그럼 있다가 마을에 다녀오면 나랑 같이 하도록 하죠."
식사가 끝나고 퉁야는 트럭을 몰고 밖으로 나갔다. 은준은 평소와 다르게 저택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퉁야가 문을 닫는지를 확인하고는 집 안을 어슬렁거렸다. 평소라면 주변 밭이라도 둘러보았을 은준이 집 안에서 밍기적거리자 야가 이상한듯 물었다.
"오늘은 밖에 안나가보세요?"
"어? 아, 나가야지."
하지만 말과 다르게 은준의 엉덩이는 무거웠다. 그러다가 결국 이상하다는 야의 눈초리를 이기지 못하고, 좀 있으면 퉁야의 트럭도 도착하겠다 싶은 시간이 되어서야 은근슬쩍 사냥용 라이플을 어깨에 걸치고는 저택을 나섰다. 그런 그의 등 뒤에 야의 이상하다는 눈빛이 잠시 머물렀다.
============================ 작품 후기 ============================
backthelock님, agsd3r5님, 에르시리나님, 전모삽님, 진찰주님, dontcrykitty님, 천지패왕님, 하늘을닮고픈남자님, 똘랭님, 중앙시장님, superrobot님, 파블님, spookybart님 안녕하세요~ 헉헉 영어님들 너무 어렵어렵 ㅜㅜ 영타는 별로라 ㅋㅋ전 에이레네 섭에서 하고 있습니다. 다른 서버 사람들은 에이레네를 게이레네라고 부른다죠? ㅋㅋㅋ에, 주력은 일단 가장 오래되고, 편수도 많은 폴라이트테일X 이기 때문에....ㅎㅎ 더 자주 올리지 못해 저도 안타깝습니다 ㅜㅜ 재미있게 읽다 가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