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처음엔 잘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달리는 트럭을 뒤쫒아가지 못하고 점점 멀어져가는 트럭을 흐믓하게 바라보던 은준은 갑자기 부산스러워진 트럭위에 탄 사람들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끼고 점차 빠르게 걸어 트럭을 향해 다가갔다.
"Emisa! Emisa!"
트럭위의 일꾼들이 트럭 차창을 두들기며 소리질렀다.
어느샌가 트럭에 연결한 쟁기는 뒤로 기울어져 더이상 땅을 갈아엎지 못하고 있었다.
트럭이 멈추고 퉁야가 차에서 내릴때쯤 은준도 트럭이 멈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 이런!"
은준은 트럭의 처참한 모습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밧줄을 걸었던 트럭 곳곳은 휘다 못해 연결 부위가 끊어질듯 벌어져 있었고, 트럭에 올라타 밧줄을 잡고 있던 일꾼의 두 손은 상처투성이였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밧줄을 붙잡아 버티려다가 오히려 손바닥이 쓸려나갔던 것이다.
"아니, 트럭이!"
"일단 돌아가죠. 치료를 먼저 해야겠어요."
퉁야가 무슨 일인가 싶어 트럭에서 내려 사람들이 모여있는 뒤로 다가오다가 옆에 보이는 트럭의 모습에 놀라 소리쳤지만, 은준은 그보다 손바닥에 난 상처를 치료하는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야! 안에서 구급상자좀 꺼내와봐."
사람들이 웅성대며 벤시몽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무슨 일인가 싶어 문을 열고 나오던 야에게 은준이 소리치고는 손을 다친 사람들을 데리고 샘으로 향했다.
촤! 촤!
물을 떠 손바닥에 부으며 살짝살짝 핏물을 닦아내자 손바닥 피부가 벗겨져 생살 위로 피가 방울방울 스며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쉬사네와 다친 사람들이 빠른 말로 이야기를 나눴다.
"뭐래요?"
이야기가 끝나자 은준이 쉬사네에게 물었다.
"처음엔 괜찮았는데, 쟁기가 땅을 파면서 앞으로 가고 얼마 안있어 줄을 묶어놨던 철재 부분이 휘기 시작했답니다. 그래서 뭔가 잘못되가는가 싶어 밧줄을 잡아당겼는데 어느순간 훅! 휘더니 밧줄이 쓸려나가며 손바닥을 다쳤답니다."
"저런...!"
그러는사이 야가 한 손에 하얀 플라스틱 상자를 들고 달려나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야는 물로 씻어내도 계속 붉은기가 도는 손바닥의 상처를 보며 구급 상자를 열고 과산화수소를 뿌리며 응급처치를 했다. 치료는 가지고 있는 단순한 구급품 만큼이나 금방 끝났지만, 사람들 얼굴에 나타난 걱정스런 표정은 가시질 않았다.
"퉁야씨, 가서 트럭 가져오세요. 일단 병원부터 다녀오죠. 지금 출발하면 늦기 전에 도착할겁니다."
은준은 다친 일꾼들을 병원으로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퉁야가 아직 묶여있는 쟁기 때문에 멀리 세워놓고온 곳으로 가려고 할때 쉬사네가 그를 말렸다.
"잠시만요. 괜찮습니다. 이정도면 병원까지 가지 않아도 약을 발라주면 됩니다."
"하지만 손바닥이 벗겨졌어요!"
"그래도 그 범위가 넓지 않습니다. 소독도 하고 약도 바르고 붕대까지 감았으니 치료는 충분히 했습니다."
"혹시 병원비 때문이라면 걱정 마세요."
은준은 혹여 쉬사네가 사람들의 병원비 때문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재차 만류했다. 그에게 돈이 많지가 않아 어지간한 곳에는 돈을 안쓰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고용한 사람이 일을 하다가 다쳤는데 병원비도 주지 않을 만큼 야박한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우리 마을이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정말로 이정도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러고보니 은준은 야의 치료가 끝나고 나서 조급해 보이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이제 한시름 놨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한국에서 살다 이곳에 온지 얼마 안된 은준이야, 어디를 가든 가까이에 병원과 약국이 있었기 때문에 기침만 해도 병원으로 달려가 주사 맞고 빨리 낫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외지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병원보다는 민간요법이 더 가까웠고, 차호중 의사와 같은 자원봉사자들이 마을에 찾아올때나 검진을 받는게 대다수였다. 병원은 도시와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었다.
은준은 자신의 생각을 접기로 했다. 이곳엔 이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있었고, 은준은 굳이 그것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그럼 일단 다친 분들은 앉아서 쉬세요. 그 손으로 다른 일 하지 마시고요."
그래도 은준은 다친 사람들까지 일을 시킬정도는 아니었고, 다른 이들도 그들이 쉬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지 더 이상 다른 말은 없었다.
"일단 다시 가보죠."
은준들은 다시 트럭이 멈춰있는 곳으로 향했다.
"일단 클러보죠."
은준과 퉁야들은 트럭 뒤로 달라붙어 아직 연결되어 있는 쟁기의 연결 부위를 풀어냈다. 그리고 퉁야는 다시 트럭에 올라 시동을 걸고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부르르릉!
탁!
엔진음이 별다른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퉁야는 다시 시동을 끄고 트럭에서 내렸고, 은준은 땅바닥에 뉘인 쟁기를 내려다보며 고민에 빠졌다.
"으, 이런. 될줄 알았는데!"
"쟁기가 너무 무거웠습니다. 사실 아까전에도 엑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아야 그나마 움직이더군요. 차라리 일찍 이렇게 된게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별 문제 없는줄 알고 이대로 했다간 엔진이 나가든 차축이 나가든, 어디든 문제가 나긴 했을겁니다."
퉁야가 휘어진 차체를 둘러보며 혀를 찼다. 어지간해선 꿈쩍도 안할 철재가 엿가락처럼 휘고 속이 빈 사각 기둥은 아래의 접합 부분이 날카롭게 찢겨 기울어져 있었다.
"휴, 일단 이것좀 트럭 위에 실읍시다. 이건 못쓰겠네요."
은준은 탱크에서 떼어낸 지뢰제거 쟁기를 1톤 트럭에 연결해 쟁기로 쓴다는 생각은 일단 접기로 했다. 그러기엔 떼어낸 쟁기 부분이 너무나 무거웠다.
다치지 않은 사람들이 죄다 몰려들어 용을 쓴 끝에 겨우 다시 쟁기를 트럭에 실을 수 있었다. 내릴때 보다 올려 실는게 더 어려웠다. 그 뒤에 다른 일꾼들은 다시 밭을 경작할 곳의 풀을 베기 위해 벤시몽 밖으로 나갔다. 쟁기는 창고의 어두운 한 구석에 처박히게 되었다.
"저걸 치우는 것도 문제겠네. 소 여물통으로나 쓰면 모를까 저걸 누가 사가겠어. 다시 군부대로 몰라 가져다놓는 것은 어림도 없을테고. 고철로라도 팔아볼까? 그러다가 잡히면 또 큰일인데, 그냥 일단은 저대로 둬봐야겠지?"
은준은 혀를 차며 창고를 나왔다. 밖에선 퉁야가 트럭 뒤에 올라타 구부러진 곳을 거꾸로 펴고 있었다. 가장 크게 휜 곳은 트럭 운전석과 조수석 뒤에 세로로 세워져있는 창살 모양의 철재 칸막이 부분이었다. 하지만 사람 손으로 다시 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이미 끊어진 부분은 붙일 방도도 없었다.
"그건 일단 놔둬요. 나중에 수리를 하거나 교체를 해야죠. 아니면 그냥 그대로 쓰거나. 차 움직이는덴 문제 없죠?"
"네, 휜것만 어떻게 잘 펴놓으면 문젠 없을겁니다. 좀 될 것 같은데, 제가 펴놓죠."
은준은 더이상 길게 말하지 않고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와서 본 차들은 한국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상태가 이상했다. 찌그러지고 휜 부분이 있어도 그냥 타고 다니는 기본이고, 문짝이 떨어져나갔는데도 그대로 돌아다니는 차도 보였다. 은준도 그정도에 비하면 이정도는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작물을 심으려면 땅을 개간해야 하는데, 그 계획이 완전히 무산되게 생겼다. 당장이야 시간이 많으니 사람들을 부려 풀을 베고, 땅을 파고, 돌을 골라낸뒤 겨울이 지나고 봄에 씨를 뿌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옥수수를 이모작 하려면 옥수수를 거두고 땅을 갈아 엎고 다시 씨를 뿌리는 작업을 신속히 끝내야만 다시 한번 옥수수를 수확할 수 있을 터였다. 그것을 전부 손으로 하기엔 땅이 너무 컸다. 큰 땅을 경작하려면 더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거나 기계의 힘을 빌려야만 했다.
은준은 오래 고민 끝에 지갑에 넣어 두었던 명함을 꺼내 휴대전화의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처음 뉴-카파에 왔을때 벤시몽 저택과 인근 땅을 구입할때 만났던 기관의 공무원에게 약간의 도움을 요청했다.
============================ 작품 후기 ============================
눈탱이님, 안녕하세요
정근님, 안녕하세요
양구리공작님 안녕하세요
방학작가님 안녕하세요
ElfofElm님 안녕하세요
천마왕님 안녕하세요
진찰주님, 안녕하세요
백수의시간님 안녕하세요
똘랭님 안녕하세요
라파엘대천사님 안녕하세요
제국의영광님 안녕하세요
헉헉 앞으론 한꺼번에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너무 기네요 ㅋ 그리고 긴 댓글 남겨주신 제국의영광님 감사합니다. 대단치 않은 글에 이렇듯 꼼꼼하게 댓글을 달아주시니 감사합니다 ㅋ 전혀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아직 앞으로 나오지 않은 이야기에 대한 것을 한 발 먼저 지적해주셔서 '조금만..'하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부분도 있지만,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좋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