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농장을 개간하다.>
은준의 아침 일과에 한 가지 일이 추가되었다. 그것은 바로 새로 사온 젖소로부터 신선한 우유를 짜내는 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창고의 헛간에 들어가 닭이 낳아놓은 달걀을 골라낸뒤 소젖을 짜는 것이다. 그리고나선 젖소를 끌고 새로 만든 울타리 안으로 데려가 풀어놓으면 식전 행사가 모두 끝나는 것이다.
"귀찮긴 해도 밤새 밖에 놔뒀다가 야생동물이 잡아먹으면 큰 손해지."
이곳은 한국이 아닌 아프리카의 외딴 농장. 소를 밖에 내 놓으면 밤새 야생동물이 나타나 물어갈 확률이 매우 큰 곳이다. 때문에 은준들은 낮에는 밖에서 마음껏 풀을 먹도록 풀어놓았다가 해가지고 일과가 끝날 무렵에는 젖소도 역시 창고로 들여보냈던 것이다. 창고엔 원래 말을 두었던 좁은 울타리가 있었기 때문에 젖소를 창고에 들이는건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소젖을 짜내는 것도 바로 그자리에서 짜내면 됐기 때문에 젖소가 도망갈 공간이 없어 움직임이 크지 않으니 착유작업도 수월했다.
그래도 우유 생산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루에 약 10~15L 정도로, 일반적인 젖소가 생산해내는 우유량보다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그 이유는 은준이 일부러 생산량이 떨어져가는 나이든 젖소를 사왔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많은데? 10L를 하루에 어떻게 다 먹어, 셋이서!"
한국에서 사 마시던 1.8L 우유도 혼자서 일주일은 마셨던 은준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 다섯배나 되는 우유를 셋이서 하루만에 처리해야되게 생겼던 것이다. 그 모양을 보고 야는 자기가 요거트를 만들어보겠다고 했지만, 우유로 마시나 요거트로 먹나 10L를 먹어치워야한다는 것은 변함 없는 일이었다.
"제가 버터로 만들어볼게요!"
상황이 이렇게되자 젖소를 키워보라고 부추겼던 야가 결연한 표정으로 나섰다. 그래도 버터라면 우유나 요거트 보다는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마찬가지, 버터 장사를 할 것이 아니면 세 식구가 소비하는 버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남는 우유로 버터를 만들어도 전부 소비하지 못할 것은 뻔했다. 그래도 책임감을 느끼는지 버터며 치즈며 만들어내는통에 식탁엔 유제품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다 결국 찾은 방법은 은준이 쉬사네 마을 사람들이 오면 일과가 끝나고 돌아갈때 임금과 함께 우유를 나눠주는 것이었다. 그나마 덕분에 우유를 생으로 버리지 않게 되었다고 모두들 안도할 수 있었다.
쉬사네와 마을 사람들은 쟁기가 들어온뒤 거의 매일을 벤시몽 농장으로 출퇴근하게 되었다. 당장 농사를 지을 것은 아니었지만, 겨울이 지나고 8, 9월쯤 봄이 되면 옥수수를 비롯해 땅콩과 감자를 심어야했다. 그러기 위해선 미리미리 밭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또 한해를 넘겨야 할지도 몰랐다. 은준은 올 가을이 지나기 전에 최대한 넓게 밭을 일굴 계획이었다.
부르릉!
퉁야가 트럭에 올라 시동을 걸자 엔진이 펌프질을 하며 폭발적인 힘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 힘은 다시 축과 축을 회전시키며 바퀴를 굴러가게 만들었다.
드르르륵!
트럭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자 뒤에 연결된 넓은 쟁기도 그 뒤를 따라 끌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옆에서 따라가며 지켜보는 은준이 보기엔 그가 생각했던 것 만큼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더 들어! 더 들어!"
은준의 외침에 쟁기를 따라가며 쟁기 위에 용접해 붙인 쇠파이프를 붙들고 있던 두 남자가 더 힘껏 쇠파이프를 앞으로 밀어 젖혔다. 그러자 윗부분이 앞으로 들리며 아래의 쟁기가 땅 속을 파고들기는 했으나 쟁기가 땅을 파고 들어가는 진동을 이기지 못하고 사람들이 손잡이를 놓치며 내평개쳐졌다.
"멈춰, 멈춰!"
은준은 그 모습을 보고 트럭을 쫒아 달려가며 차문을 두들겼다. 곧 사람들이 몰려왔다. 멀리서 풀을 베어내던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허리를 펴고 트럭이 있는 쪽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두 마을 사람이 고개를 휘두르며 빠르게 말을 쏟아내자 쉬사네가 통역을 시작했다. 아직 은준이나 퉁야나 소토어를 바로바로 듣고 이해하기는 부족했다.
"이게 너무 무겁다는데요? 그리고 손바닥이 찢어질것 같답니다."
"음, 아마 땅이 딱딱해서 더 그런거 같은데. 처음 개간하는 땅이라..."
비가 오고 마르고 풀이 자라고, 다시 비가 오고. 그러기를 반복하며 방치되어있던 땅이다. 크고 작은 돌도 많고 흙은 다저져 단단했다. 때문에 쟁기로 흙을 뒤집어 부드럽게 만드는 작업을 하는 거였지만, 쟁기가 워낙 크다보니 그 무게를 사람 손으로 버티질 못했다. 애초에 사람 손으로 다루는 쟁기가 아니라 탱크의 기계를 이용해 지뢰를 파내던 지뢰제거 쟁기였다. 날이 열개나 달린 쟁기인 것이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장갑을 끼면 좀 괜찮을지도..."
"장갑가지고는 안될것 같은데요. 내가 보기에도 쟁기가 너무 무거워서 아까 밖에서 보니까 쟁기가 땅을 파고들어가질 않더라구요. 차라리 날 부분이 무거우면 괜찮은데, 뒤에 엉덩이가 더 무거워서 계속 날이 떠요. 그래서 사람이 저걸 앞으로 밀면서 날이 땅을 파도록 해야 하는건데, 사람이 더 붙으면 모를까 둘로는 좀 어렵겠는걸요."
은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기껏 쟁기를 구해왔는데,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여기에 들어간 비용도 적지 않아 그냥 버리기에도 마땅치 않았다. 어떻게든 이걸 사용해서 땅을 갈아엎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만 했다.
"좀 더 잘 알아봤어야 하는건데. 그냥 날이 많이 달려서 편할 생각만 했더니..."
"그럼 두 사람으론 무거워서 못하는 거니까, 사람을 더 붙여보죠?"
"...어떻게?"
"흠, 지금은 이렇게 세로로 쇠파이프가 두개만 붙어있어서 두명이 잡고있잖습니까? 근데 이상태로는 하나에 여러명씩 붙어도 힘을 주기가 쉽지 않아보입니다."
은준은 퉁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손으로, 어깨로 밀고 또 온 몸으로 밀어도 부족할 판이다. 몇 사람이 쇠파이프 하나에 매달린다해도 붙들고 힘을 줄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다 가로로 손잡이를 길게 붙여보죠?"
"가로로?"
사람들은 머리속에 긴 쇠파이프가 길게 붙은 모양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리어카 밀듯 여러사람이 붙어 밀어붙이자 쟁기날이 땅을 파고든다. 은준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번에 문제가 생겼다.
"하지만 용접기가 없군. 결국 시내까지 이걸 들고 다녀와야겠는걸?"
전주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애초에 말년에 놀고먹기 위해 지은 집이다. 간단한 공구와 사냥을 하고 도축하는 도구는 있어도 용접기와 같은 물건은 애초에 있지를 않았다. 필요가 없으니 전기톱이니 뭐니 하는 것들도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은준은 먼저 울타리를 세울때에도 일일이 손으로 톱질을 해야만 했었다.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엔진톱을 사기엔 아까운게, 기계류가 비싼 이곳에서 앞으로 얼마나 쓸지도 모르는 엔진톱을 비싼돈 주고 살수도 없는 노릇이었던 것이다. 차라리 앞으로도 꾸준히 엔진톱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면 은준도 가진 달러를 들고 나가 톱을 사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손으로 톱질은 한것은 비용과 효율성의 문제였다.
벤시몽에 용접기처럼 없는게 많은 것도 이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모든 집이 모든 도구를 사놓는 것도 아니고, 돈 있다고 한 번 쓰려고 공구를 사는 것은 아니다. 한번만 잇몸으로 때울 수 있으면 그러고 마는 경우도 많았다.
"당장은 어렵겠군요."
용접기가 있는 시내에 다녀오려면 또 하루가 걸린다. 시내와 멀리 떨어져있어 땅값이 싸지만, 그만큼 이런게 불편했다.
은준은 한참을 고민하다 트럭 위로 올라갔다. 그리곤 운전석 위 둘둘 말린 포장 위에 함께 놓여있던 굵은 밧줄을 꺼내들었다.
"이것좀 거기 구멍에 연결해봐요."
차 위에서 은준이 밧줄 한쪽을 던지자 밑에있던 쉬사네가 그걸 밭아들고는 쟁기 윗부분에 나있는 구멍중 한쪽에 끼워 매듭을 졌다. 그것을 본 은준은 자신이 쥐고 있던 반대쪽 밧줄을 트럭의 옆면에 나있는, 포장 칠때 밧줄을 걸어 묶는 곳에 걸어 반대쪽과도 연결해 다시 한번 쟁기의 구멍에 걸었다. 밧줄이 쟁기 양 끝의 구멍을 걸고, 다시 트럭 옆면의 가장 앞 양쪽 부분에 걸린 형태가 되었다.
"자, 다들 올라와서 이것좀 당겨봅시다!"
은준이 사람들을 트럭 위로 불러올렸다.
끼리릭!
장정 여럿이 달려들어 밧줄을 당기자, 쟁기 윗부분이 트럭이 있는 쪽으로 끌려올라오기 시작했다.
"아! 이렇게도 되겠군요!"
"그런데 오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쟁기도 무겁고, 땅을 갈다보면 그 압력도 있을텐데, 잘못하면 밧줄이 끊어지거나 밧줄을 건데가 떨어져나갈지도 몰라요."
"그래도 일단 해보죠. 이 트럭도 수수깡으로 만든건 아니니 부서지진 않을겁니다. 하하하."
퉁야가 마치 은준이 트럭이 고장날까봐 걱정한다는 투로 농담을 던졌다.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자 그래도 여유가 생긴 것이다.
부르릉!
퉁야가 다시 한번 트럭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트럭 위에 올라탄 장정들도 트럭에 건 밧줄이 혹시나 빠질까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꽉 잡은채 쟁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과과과과!
트럭이 속력이 붙자, 땅을 파고들던 쟁기날이 곧 땅을 가르며 흙의 파도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성공이다! 성공이야!
"멈추지말고 앞으로 쭉 갑시다!"
쟁기가 성공적으로 밭을 갈아엎기 시작하자 트럭에 탄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첫 쟁기질이 성공한 것을 자축했다.
============================ 작품 후기 ============================
사랑이란님 안녕하세요~ 그냥 먹는데도 있는것 같기는 한데, 보통 대형 업체로 가는게 아니라 가정에서 소비할 용도로 쓰게되면 고온 살균방법이 있습니다. 이름은 그럴듯하지만 그냥 끓이는거;;; 오히려 성분측면에서 유당같은걸 소화를 못시켜서 설사같은 탈이 나는 경우가 많은것 같습니다. 어쨌든 한번 고온에서 끓이면 괜찮다고 합니다.
ElfofElm님, 안녕하세요. 아이디가 영어라 치기 어렵네요 ㅜㅜ 말뚝 정보 감사하고요, 겨울에 관한건 위에 슈퍼로봇님 말씀하신것과 비슷합니다. 거의 그 근처고 겨울은 4~8월쯤에 있습니다. 다만 한국보단 안추워서 눈도 거의 안내리고 아주 추울때 영하로 조금 내려가고 보통 3도 내외인 곳입니다. 안추운건 아닌데 한국보단 안춥습니다 ㅋ검은하늘너머님 안녕하세요. 장르가 퓨전인 이유는 두번쯤 후기에 쓴것 같지만 계속 질문이 나오는군요 ㅋㅋ 현대물인데 현대물 장르가 없어서 퓨전에 넣었습니다. 판타지도 아니고 연애물도 아니고 마땅한데가 없더군요;;
백수의시간님 안녕하세요
똘랭님 안녕하세요
ppo9999님 안녕하세요 메이거스 보다가 ... 음, 아시죠? ㅋ제국의 영광님 안녕하세요. 댓글을 많이 달아주셨네요 ㅜㅜ톱에 관한건 이번화에서 언급을 했으니 따로 더 적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바이스는 없는 상황입니다. 피스로 한번에 박는다고 하신 부분은, 울타리로 쓴 목재가 얇은 합판도 아니고 손가락 마디 두세개 정도되는 목재입니다. 피스도 대자로 쓰면 못쓰진 않겠지만,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그렇게한거니 뭐가 더 낫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만드는 사람 마음 아니겠습니까 ㅋ 어떤 사람은 못으로 박을수도 있고 뭐 그런거죠.
그리고 주인공 돈 없습니다 ㅜㅜ 오자마자 땅 산다고 뜯기고 차사고 뭣사고... 집에갈 돈하고 만약을 대비한 돈도 있어야죠.
또 아프리카에서하고 한국에서하고 공산품 가격차가 큽니다. 아직 공장같은게 많지가 않아서 수입품이 많습니다. 전기톱 한국에서 십오만원 십삼만원 싼게 그정도쯤 할텐데, 쥔공이 가진 돈으로 그것도 싼게 아닙니다요 그리고 못 빼는건 어찌아셨나요;; 나중에 난방용으로 쓸건데. 이건 맞추셨으니 따로 설명안하겠습니다 ㅋㅋ간접경험이나 직접 해보고 쓰라고 하신 부분은 음;; 제가 반 농사꾼이라 나름 이것저것 해봤는데 글로 읽으면 안해본것 같아 보이나봅니다 ㅜㅜ 산에가서 톱으로 소나무 밤나무 이런것도 해다가 토막내서 지게로 져내리고, 밭에 말뚝 가져다 박고 비닐 씌우고 어지간한건 해봤습니다; 지금은 기계로 하지만 예전에는 사람 힘으로 논도 쓸고 그랬었는데 ... 흙흙 저는 억울합니다 ㅜㅜ어쨌든 뭐 제 필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더 잘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ㅋ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