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다음날 어슴프레하게 날이 밝아오자 은준과 퉁야는 일찌갑치 밖을 나섰다. 한여름의 대낮은 태양이 너무 뜨거워 밖에서 노동을 하기엔 적당하지 않았다. 이들의 생활패턴은 해뜰때 일하고 아침식사후 일, 점심먹고 가장 더운 시기를 피해 2시 이후부터 다시 일을 시작하는 식이었다.
시내에서 가져온 자재를 규격에 맞게 잘라 정확한 위치에 구멍을 뚫는 작업은 전날에 비하면 좀 더 빨라졌지만, 톱질을 하고 구멍을 뚫을 위치를 잡는 기본적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작업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 전날부터 해온 작업은 점심때가 되기 전에는 끝마칠수가 있었고, 오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울타리를 세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퉁야, 거기 거기 좀만 더 위로!"
은준의 지휘에 퉁야가 두 손으로 안아든 가로 울타리를 들어올려 높이를 맞췄고, 은준은 세로 울타리 앞에 쪼그려앉아 각각에 뚫은 구멍이 겹치도록 한손으론 미세한 조정을 하며 다른 손으론 나사못을 집어 구멍에 맞춰 끼웠다.
윙, 턱! 윙, 턱!
나사못을 박는 시간은 하나에 길어야 2초면 충분했다. 사람의 손으로 했더라면 훨씬 시간도 많이 걸리고, 팔이 아파 장시간 일을 계속하지 못했겠지만 어차피 전동 공구의 힘을 빌리는 일이었다.
그래도 반나절만에 끝낼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가공한 자재들을 울타리를 박을 위치에 맞춰 옮겨놓는것이 큰 일이었다. 300평이나 되는 땅을 돌며 많은 목자재를 들고 나르며 각각 위치마다 내려놓아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둘은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작업을 하느라 내려놓았던 자재들을 다시 트럭에 싣고 울타리를 세울 주변을 차로 돌며 자재를 내렸던 것이다.
양쪽의 땅에 박을 세로 울타리와 가로 울타리를 나사못으로 단단하게 고정한 은준과 퉁야는 각각 양쪽에서 뉘인채로 나사못을 박았던 울타리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성인 남성의 허벅지 만큼 두껍고 무거운 나무 망치를 들어 울타리를 땅속에 튼튼하게 박아 넣었다.
쿵! 쿵!
기존에 울타리가 박혀있던 곳을 약간씩 옆으로 피해 울타리를 세웠는데 그것은 이미 구멍이 나있는 곳에 울타리를 세울 경우 울타리를 뽑아내느라 넓혀져있는 구멍이라 새로 세운 울타리가 힘없이 흔들릴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가 말처럼 뛰어다니는 동물은 아니었지만, 농촌에선 논과 밭을 갈던 동물이니 의도치 않게라도 소가 밀어내면 울타리가 뽑힐 우려가 있었다.
첫번째 울타리를 세우자 두번째 붙어는 울타리를 세운 상태로 다음 울타리를 연결해 나갔다. 기존에 세운 울타리에 가로 울타리를 반대쪽으로 이어 올린후 나사못으로 고정했다. 하지만 반대쪽 세로 울타리와도 높이를 조정해 맞춰야했기 때문에 볼트로 꼭 죄지는 않고 울타리가 떨어져나가지 않을 정도로만 나사못을 걸치는 정도였다.
그리고 반대쪽에도 가로세로 울타리를 나사못으로 떨어지지 않게 고정을 시킨뒤 나무 망치로 땅속에 동일한 높이로 박은후 양쪽 울타리의 나사못을 꽉 죄어 흔들리지 않도록 하였다.
하지만 틈이 벌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울타리는 둥근 모양으로 형태를 잡았는데, 나무로 만든 자재들은 모두가 직선이었다. 때문에 아무리 큰 원을 그린다 하더라도 조금씩이나마 나사못으로 연결하는 부위가 틈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가장 쉬운 방법은 울타리를 사각형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직선으로만 곧게 울타리를 세워 네 개의 변을 서로 이어붙이기만 하면 벌어지는 틈도 없을 것이고 만들기도 쉬웠겠지만, 은준은 기존에 있던 울타리만 생각하느라 미처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에 있던 울타리를 말을 놓고 울타리를 따라 달리거나 하면서 운동을 시킬 요량으로 둥글게 만들었던 것이지만, 소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딱히 원형으로 만들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울타리를 세우는 작업은 속도가 붙자 낮이 아직 환할때 끝마칠 수 있었다. 한사람은 들어주고 다른 사람은 나사못을 박는 일은 일정한 높이가 정해져있기 때문에 몸에 익자 한번에 비슷한 위치로 들어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다 됐다!"
"이제 페인트칠만 하면 되겠습니다."
은준과 퉁야는 자신들의 손으로 세운 울타리를 뿌듯하게 둘러봤다.
"그런데 오늘은 어렵겠습니다. 지금 페인트칠을 하더라도 밤새 마를것 같지가 않군요."
"오늘 밤에도 비가 올까요?"
"비가 안 오더라도 아침 이슬 때문에 페인트칠은 내일 하는게 좋겠습니다."
둘은 페인트가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비나 물기가 묻어 제대로 페인트칠이 되지 않는 것을 우려했다. 대신 둘은 뒷정리를 마치고 옥수수밭을 돌며 잡초제거에 나섰다.
"특별히 잡초가 더 많거나 스트라이가가 나진 않는것 같죠?"
"네. 제초제를 안뿌렸는데도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 기존에 하던 것처럼 며칠에 한번씩 사람들을 써서 잡초만 뽑아주면 될 것 같습니다."
은준은 옥수수밭에 농약을 뿌리지 않고 있었다. 또 마찬가지로 비료도 뿌리지 않았다. 농약이나 화학비료는 전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이다. 하지만 아프리카나 남아공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공산품의 생산은 필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대부분을 해외에서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가격이 매우 비쌌다.
그래서 은준은 밭에 농약이나 비료를 뿌릴 생각을 못했다. 자칫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한국에 있을 때에도 많이 듣고 보았던 일이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선 비료도 뿌리고 퇴비나 농약도 필요하지만, 수확을 하고 농작물을 팔아도 빚이 늘어나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니 아프리카는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아, 오히려 사람을 써 잡초를 뽑게 하는게 더 저렴할 정도였다.
그래도 걱정을 안할 수 없었다. 지금이야 300평 규모의 작은(?) 밭이지만, 앞으로 존이 쟁기를 가져다주면 다음번부터는 대규모로 농사를 지을 예정이었다. 그정도면 농약 살포차나 헬기로 뿌리지 않으면 어려웠다. 그렇지만 은준은 그럴 능력이 안됐다. 그래서 수확이 조금 줄어도 농약과 비료 없이 재배해야만 했다.
"물은 안줘도 되겠네요. 근데 물빠짐이 너무 좋아서 나중에 비가 안올땐 괜찮을까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한달쯤 후부턴 우기가 끝날텐데, 그래도 이정도 생장 속도면 그때쯤엔 크게 물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을겁니다. 정 땅이 마르면 물을 퍼다 주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 파이프와 호스를 사놓은 거였지만, 역시 농장이 대규모화되면 어디까지 호스를 끌어갈 수 있는게 아니었다. 또 그러다가 지하수가 마르기라도 하면 더 큰일이었다.
"이번에는 작게 했지만, 잘 봐두었다가 다음번에 필요한게 뭔지 주의를 기울여야겠어요."
"예, 보스."
은준은 다음날 울타리에 페인트를 칠했다. 둘의 예상대로 아침에 일어났을땐 아침 이슬에 울타리가 젖어있는 상태였고, 해가 뜨고 날씨가 맑자 낮이 되기도 전에 물기가 전부 말라 페인트칠을 할 수가 있었다.
존도 드디어 쟁기를 가져왔다. 은준은 은근하게 걱정을 하고 있었다. 실물을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양은 쟁기랑 비슷하긴 했는데, 무게가 어떨지 모르겠군요. 트럭이 120마력쯤 되죠? 탱크는 모르긴해도 1000마력은 될텐데, 거기에 달던 물건이 트럭에 연결해서 잘 쓸수 있을까요?"
"트럭 상태가 좋습니다. 그정도는 되지 않겠습니까?"
"음, 너무 무겁진 않을까 걱정되네요. 지뢰를 파내던 물건이라 만일에 있을 폭발에 대비해 장갑을 두껍게 했을수도 있는데."
"그래도 트럭이 끌지 못할정도는 아닐겁니다. 들은대로라면 아마 내전에 사용했던 탱크인것 같은데 요즘 탱크에 비해 힘도 딸리고, 어차피 탱크의 파워는 자체적으로 두꺼운 장갑을 가진 탱크 자체를 움직이게 하는데 대부분 쓰일 겁니다. 그러니 지뢰제거 쟁기도 그렇게까지 무겁진 않을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다행히 은준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존이 가져온 쟁기는 트럭이 수월하게 끌어당겼다. 게다가 늦게 가져온것에 대한 서비스인지 쟁기 뒤에 원래는 없던 손잡이까지 쇠파이프를 용접해 달아 앞에선 트럭이 끌고 뒤에선 사람이 쟁기를 조종할 수 있게 해주기까지 했다. 다만 쟁기의 무게가 무게인지라 그 조종도 한 사람만으론 어렵게 보인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밭을 정비해야겠군요."
"창고도 새로 지어야 할겁니다. 적당한 위치를 정해주시면 저도 다음에 시내에 갈때엔 업자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밭은 기본을 셋을 하나로 할거에요. 첫번재 밭은 상반기에 옥수수를, 두번째 밭엔 감자를 그리고 마지막엔 땅콩을 심을겁니다. 그리고 다음 하반기때에는 옥수수밭과 감자밭을 바꾸고 다음 해에는 땅콩 밭을 옮겨 남은 두번째 세번째 밭에서 옥수수와 감자를 심을거에요. 퇴비와 비료를 주지 못하니 몇가지 작물을 순환해가며 심어야 할거에요."
이것은 은준이 그동안 고민한 결과였다. 원래에도 옥수수와 땅콩을 번갈아 심으려 했지만, 땅콩의 경우 한곳에서 계속 심으면 병이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아예 감자를 하나 더 끼워 세가지가 계속 순환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나마 쉬사네의 마을에서 나는 소로부터 퇴비라도 얻을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은준이 생각하는 농장의 규모는 그 마을에서 나는 소똥으론 어림도 없었다. 결국 옥수수만 심어선 지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울타리가 세워지자 은준은 우시장이 설 때에 시내로 나가 젖소를 사왔다. 원래는 일반 소를 사다가 우유를 짤 생각이었지만, 소젖도 송아지가 있을때만 나왔기 때문에 일반 소는 사람이 마실 우유를 가져가면 송아지가 먹을 젖이 없게 되었다. 은준은 차마 그렇게까지는 할 수가 없어 아예 젖소를 사왔던 것이다.
거기다 젖소가 일반 소보다 많이 난다고는 하지만, 역시 송아지 없이 젖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젖이 마를때쯤엔 다시 젖소를 살 계획까지 했다. 그렇게 한 젖소가 우유를 내지 못하게 되면 다른 젖소를 새끼를 낳게해 젖을 짜고, 또 그 소도 젖이 안나오면 다른 소를... 이런 식으로 하다보니 점점 송아지가 늘어나 일부는 우시장에 되파는 일도 있었지만, 그것은 훗날의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아, 어제 글 쓰다가 또 날렸스빈다. 글자 몇 자 지우려고 백스페이스 눌렀는데, 뒤로가기 크리티컬! ㅜㅜㅜ 오늘 다시 써서 올립니다.
진찰주님, 정근님, 천마왕님, 똘랭님, 워리어님, 치야님, 에르시리아님, 러브진님, 진호님, 헤헤누누님, 양구리공작님, 감사하빈다 헉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