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날이 어두워 은준이나 야가 저택 안에 들어와있을때, 밖에서 자동차 엔진소리와 함께 창문으로 불빛이 번쩍이더니 잠시후 엔진소리가 꺼지고 저택 대문 닫는 소리와 함께 퉁야가 돌아왔다. 오전에 도시로 은준의 심부름을 나갔던 퉁야가 목재를 가지고 돌아왔던 것이다.
"식사는 못하셨죠?"
야가 퉁야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부엌의 식탁 의자에서 일어나며 묻고는 늦은 저녁을 준비했다. 야와 은준은 저녁 시간에 맞춰 식사를 이미 했지만, 8시가 다 된 시간에 도착한 퉁야는 오후에 뉴-카파에서 출발했으니 중간에 식사도 못하고 계속 운전해왔을 것이란걸 서로 알고 있었다.
응접실에서 늦은 시간에 가로등도 없는 곳을 운전해오느라 혹시라도 사고가 나지는 않았을까 걱정스런 마음에 방에 올라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던 은준도, 잠시 퉁야에게 보고를 듣고는 보고 있던 책을 덮으며 이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아침이 밝자 은준은 작업복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왔다.
"퉁야, 혹시 오늘 차 쓸일 있어요?"
은준은 어젯밤 창고에 주차해둔 트럭이 실린 목재를 살펴보며 옆에선 퉁야에게 물었다.
"오늘은 없습니다. 차 쓰시려고요?"
"이 자재들 때문에요. 아직 울타리 철거가 안끝나서, 일단 트럭 쓸 일이 없으면 이대로 놔뒀다가 나중에 울타리를 새로 만들때 그대로 옮겨다 놓을까 해서요."
"그럼 오전에 할 일을 끝내놓고, 오후엔 제가 돕겠습니다."
은준은 퉁야가 자진해서 울타리 설치를 돕겠다고하자 사양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할 일이 없던 차에 야가 떠밀어 하게된 일이긴 했지만, 일단 일을 시작했으니 서둘러 마치고 싶었했다. 이 자재들을 전부 손수레로 실어나르려면 손이 무척 가는 일인데, 트럭으로 나르면 한번에 끝날 일이기 때문이었다. 일이 늦어지면 적어도 쉬사네들을 태우러 가기 위해서라도 트럭의 자재들을 전부 창고에 내려놓아야 할 터였다. 그렇지 않고 밖에 놔뒀다가 밤새 비가 내리거나 땅에서 스며나오는 습기에 목재가 썩어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탁! 탁!
은준은 뽑아낸 울타리를 뒤집어 구부러진 못을 펴고 망치로 때려 박힌 못을 빼냈다. 그리고 못은 전부 작은 통에 옮겨담고 나무는 손수레에 쌓아두었다가 묵직하게 넘칠지경이 되면 외바퀴로 아슬아슬하게 밀며 창고로 옮겨 한쪽 구석에 쌓았다.
그와같은 작업은 정오 무렵이 되자 겨우 끝낼 수 있었다. 전날 종일 하던것에 이어 오늘도 반나절이나 시간이 소요되었던 것이다. 덕분에 은준들은 평소보다 약간 늦은 시간에 식사를 하게 되었다. 얼마 안남은 일감을 마저 끝내고 식사를 하려는 은준 때문이었다.
점심 식사를 끝낸 은준과 퉁야는 한참 뜨거운 태양이 떠오르는 시간을 피해 두어시쯤 밖으로 나가 새로운 울타리를 설치하기 위해 트럭을 몰고 저택 밖으로 향했다.
"음, 이 것이 가로용이고 이게 세로로 박을 용도인건가요?"
"예, 보스. 가로 길이야 전에 있던것과 조금 다르긴 하겠지만, 어차피 여기있는것들끼린 전부 길이가 같으니 이대로 쓰면 될겁니다. 다만 이 세로용은 반으로 잘라 써야할텐데, 공이비로 3000랜드나 달라고해서 그냥 가져왔습니다."
"헐, 3000랜드? 그냥 톱질 조금 하면 되는걸 그렇게나 많이 달라고 하다니. 바가지네 바가지! 잘 했어요. 별 힘든일도 아닌데."
은준은 깜짝 놀랐다. 그가 생각하기론 이것들을 사온 곳이라면 기계에 밀어넣기만 하면 전동 톱날이 종이 자르듯 싹둑싹둑 짤라줄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3000랜드나 달라고 했으니 말이다. 3000랜드면 옥수수 농장의 일꾼 300명을 하루 종일 부릴 수 있는 금액이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300명이 하루종일 톱질을 하면 나무로 작은 산을 쌓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사실 이런 비슷한 일로 고역을 격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기술자들이 이렇게 큰 돈을 요구했는데, 어떤 사람은 집안의 전기 배선에 문제가 생겨 사람을 불렀다가 날아온 영수증에 깜짝 놀라었다. 왜냐하면 영수증에 적힌 금액이 은준의 경우처럼 생각지도 않던 큰 금액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소모된 부품값은 적고 대부분이 출장비와 공임비였다. 그래서 그것으로 다투다 결국 돈을 지불하지 못하겠다고 하자 다음날 기술자가 찾아와 다시 수리하기 이전으로 고쳐놓고 갔다나 뭐라나.
그러니 퉁야가 생각하기로도 자신의 월급 1/3에 해당하는 큰 돈을 요구하며 나오니 그냥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은준과 퉁야는 긴 목재를 반으로 잘라 은준이 생각한대로 끝을 세모 모양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해야만 했다.
은준은 줄자로 목재의 길이를 재고 펜으로 중간에 선을 X 자로 그린뒤 톱질을 시작했다. 하지만 바닥에 놓은채로는 톱이 땅바닥에 걸려 톱질을 할수가 없었고, 목재를 세로로 세워서는 흔들림 때문에 선대로 자를 수가 없었다. 다른 방법으로 트럭 난간에 올려서도 잘라보았지만, 여간 불편한것이 아니었다. 잠시 궁리하던 은준은 퉁야를 불렀다.
"퉁야! 이것좀 도와줘요."
은준이 생각한것은 저택 테라스에 나와있는 작은 탁자였다. 작은 탁자라고는 해도 트럭처럼 높이가 높지 않고 성인 남성의 허리 정도의 높이라 목재를 올려놓고 톱질을 하기에 적당했다.
전날만해도 은준이 와인을 즐기던 것에서 졸지에 목공용 선반이 되어버린 테라스의 탁자의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재 하나하나에 길이를 재고 선을 긋는것이 비효율적이라 생각한 은준은 탁자에 틀을 잡아 자재를 올려놓기만 하면 바로 자를 길이가 나오도록 만든 것이다.
"음, 여기하고 여기에 이 작은 나무토막을 붙여놓으면...."
먼저 모양대로 자르다 남은 짜투리 나무토막 두개를 가지고 가로세로 변이 'ㄴ'자 모양이 되도록 붙이고 거기에 새로운 목재의 끝을 맞추니, 탁자의 테두리에 목재의 중간 부분이 정확히 대각선으로 들어 맞게 되었다. 앞서 시행착오를 격고 불편함 속에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진작에 이렇게 하면 편한것을!"
은주은 이제 탁자에 목재를 올리고 탁자의 변을 따라 튀어나온 목재를 자르기만 하면, 긴 하나의 목재였던 것이 두개의, 중간이 비스듬이 짤린 목재가 만들어졌다. 거기에 한번씩 반대쪼을 사선으로 잘러주면 애초에 은준이 생각했던 끝이 삼각형 모양인 세로 울타리가 완성되었던 것이다.
그러는사이 퉁야는 건전지가 들어가는 전동드릴로 긴 목재의 양쪽 끝에 위아래로 각각 두개씩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바로 나사못을 끼워넣을 구멍이었다. 또한 동시에 은준이 잘라낸 세로 울타리에도 구멍을 뚫어 나사못만 끼워넣으면 가로와 세로가 연결될 수 있도록 했다.
"후아, 후아! 이거 생각보다 어렵네. 한두개면 모르겠는데, 수십개씩 자르려니까 어깨 빠지겠다!"
손으로 하는 톱질은 은준의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밀었다 당기는 톱질은 좌우로 엇갈린 톱잘이 나무와 마찰하며 생으로 톱밥을 긁어내는 식으로 나무를 자르게 되어있었기 때문에 팔과 어깨에 걸리는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한번 아프기 시작한 팔은 잠깐씩 팔을 멈추는 것으로는 어림없어, 다시 일을 시작하면 금세 팔이 아파왔다. 결국 그 모습을 보던 퉁야가 나섰다.
"저랑 번갈아가면서 하시죠."
"아, 그럴까요?"
은준은 퉁야의 제안이 무척 반가웠다. 톱질 보다는 가만히 손만 대고 있으면 구멍이 뚫리는 작업이 더 쉬워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일정한 위치에 동일한 간격을 지키기만 하면 손가락으론 버튼을 누르고 팔로는 흔들리지 않게 목재에 잘 대고 흔들리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좀 더 수월했다. 다만 온몸을 타고 오르는 진동과 소음이 시끄러울 뿐이었다.
"퉁야, 힘들죠? 이제 또 바꿔요."
자신이 힘들면 다른 사람도 힘든 법이다. 퉁야라고 어깨와 팔이 기계로 되어있지 않으면 톱질이 쉬울리 없었다. 그 사실을 아는 은준은 적당히 팔이 쉰것 같자 다시금 서로의 작업을 바꾸어주었다.
이 작업이 또 반나절이 걸렸다. 모르는 사람이 볼때는 틀에 목재를 대고 슥삭슥삭 썰어 잘라내고 윙윙 드릴을 돌려 구멍을 뚫는데 금방이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작업을 진행한 은준은 작업속도가 생각보다 더디다는걸 해가 서쪽으로 슬슬 내려가려고 할 때쯤 알게되었다. 비숙련자의 톱질이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었다.
"아, 이런. 다 못끝내겠는걸?"
은준은 아직도 절반이 넘게 남은 울타리용 자재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트럭엔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자재가 절반 넘게 남아있었다. 둘이 힘을 합쳐 일을 했지만, 300평이나 되는 목장을 한바퀴 두르는 울타리에 들어가는 자재는 세로로 땅에 박을 것만 70개가 넘어갔다. 거기에 가로로 연결할 울타리도 위에서부터 아래로 한칸에 3개씩 연결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간격을 맞춰 구멍을 뚫는것도 금방 끝낼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둘은 나머지 작업을 다음날로 미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밤 이것들은 어쩌지?"
"다행히 밤새 비가 온다는 라디오 예보는 없었으니 이대로 둬도 큰 문제는 없을겁니다."
"음, 젖으면 페인트칠을 못할텐데."
"이슬에 조금 젖는 정도는 낮이 되면 금방 말를겁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고요. 어차피 누가 가져갈 것도 아닌데, 방수포를 펴서 덮어두죠?"
"알겠습니다. 그러면 새벽에 조금 빗방울이 떨어지더라도 큰 일은 없을겁니다."
은준과 퉁야는 하루 일과를 마치기 전, 트럭 운전석 지붕 위에 있던 커다란 방수포를 끌러내려 트럭에 실린 자재와 바닥에 쌓아놓은 잘라놓은 자재를 뒤집어 씌운뒤, 주변에 굴러다니는 큼지막한 돌을 들어다 중간중간을 눌러놓았다. 밤새 바람이 불더라도 돌의 무게 때문에 방수포는 날아가지 않을 것이다.
============================ 작품 후기 ============================
전모삽님 안녕하세요
사랑이란님 안녕하세요. 헛, 그러셨었군요. 감사합니ㅏㄷ~ ㅎㅎ
백수의시간님 안녕하세요
라파엘대천사님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