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울타리를 보수하자!>
은준에겐 매일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나마 치열한 삶의 투쟁의 연속이었다면 몸이 고달프기는 해도 심심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옥수수 밭과 집 주변과 관련된 남자의 힘이 필요한 일들은 대부분 퉁야가, 그리고 집 안에서의 의식주와 관련된 가사 전반의 일은 야가 전담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은준이 하는 일이라곤 아침에 일어나 창고에 가서 닭들이 낳아놓은 달걀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것들을 꺼내 오는 것과, 아침 식사후 괭이 하나 달랑 들고 얼마 되지도 않는 옥수수 밭을 한바퀴 빙 돌고 들어오는 것이 전부였다. 한동안은 열심히 하던 소토어 학습도 이제는 처음같은 열의가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이 집안에 야도 있고, 퉁야도 소토어를 배우는 것 같으니 당장 급한 마음이 안생기는 것이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먹고살 걱정도 할 필요 없으니 그야말로 급할게 없는 처지가 되고 만것! 결국 은준이 하는 일은 먹고 자고 이 한마디를 하는게 그의 전담 업무가 되고 말았다.
"아, 심심하다..."
사실 놀고먹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하루 건실하게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하루 정도 아무것도 안하고 푹 쉴 수 있다면 대환영이겠지만, 매일 같이 그런 일상이 반복된다라면 그것도 고역인 것이다. 또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놀 줄 안다고, 은준처럼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다 갑작스럽게 이런 식으로 할 일이 없게 되자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할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혹, 놀기 싫으면 나가서 일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일 하기는 싫고..."
노는데 단맛을 들이면 일 하기가 싫어진다. 몸을 관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하여 건강 관리를 하는 것은 고되지만, 패스트 푸드와 탄산 음료, 고지방 음식들로 몸매를 망치는 것은 순식간인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일하기는 싫고, 할 일은 없어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내가 체면이 있는데 야보고 같이 놀아달라고도 할 수 없고..."
분명 지금처럼 뒹굴거리는 모습도 체면 서는 행동은 아니었지만, 은준은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이미 이것도 만성이 되어 당연한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다.
"인터넷도 안돼, 티비도 못봐, 게임도 못해. 아아악!"
이 세가지야 말로 은준이 한국에서 즐기던 문화생활의 대부분이었다. 모두가 현대 문명의 이기. 하지만 이곳은 인터넷도, 전력도 부족한 외딴 섬 같은 농장. 은준의 시간을 때우기 위해 마음껏 티비와 컴퓨터를 켜놓기 위해서는 간이 발전기를 옆에 두고 노상 돌려야 할 터였다.
보다 못한 야가 지나가다 한마디 했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동작도 빠릿빠릿하고 의욕적으로 뭔가 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으며, 가끔은 귀여운 모습을 보여줄때도 있었다. 막 소토어를 배운다고 설칠때처럼 그래서 자신이 쓰던 옛날 교과서도 찾아다 주었던 거였다.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서. 하지만 지금의 은준의 모습은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꼴보기 싫은 한량 그 자체였다.
"보스, 그러지 말고 밖에 쓰러진 울타리를 고쳐보면 어떨까요? 이제 소도 열마리나 되는데 몇 마리는 가까이에 놓고 키워봐요. 신선한 우유도 얻을 수 있고 그러면 보스가 좋아하는 라떼도 더 맛있어질거에요."
은준은 쇼파 위에 늘어져있다가 야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젖소?"
"웅, 우유가 소 젖이니 젖소일까요? 아무튼요."
은준은 야가 던진 미끼를 확 물었다.
"신선한 우유라..."
야의 말대로 쉬사네들에게 은준은 열 마리의 암소를 사다가 맡겨놓은 상태였다. 전부 암소인 이유는 새끼를 쳐 더욱 불릴 속셈인 은준의 생각이었다.
"개들이 홀스타인 같은 젖소는 아니지만, 송아지를 낳으면 젖이 나오긴 하겠지? 아, 궁금하다. 갖 짜낸 우유는 어떤 맛일까?"
은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층으로 올라간 그는 수첩과 펜 그리고 줄자를 찾아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는 야는 그제서야 한시름 놨다는 표정이었다.
울타리는 저택 담장 밖 바로 앞에 있었다. 항상 은준들이 차를 타면 지나다니는 길 좌우로 한쪽은 옥수수밭이 다른 한쪽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이 울타리는 원래 전 주인이 기르던 말을 사육하던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말도 없고 마땅히 놔 기를 것이 없어 방치된 채였다.
크기도 지금의 옥수수밭과 거의 비슷했다. 말은 달리는 동물이기 때문에 충분한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울타리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애초에 은준이 이 저택에 왔을때만 하더라도 이미 부러지고 쓰러진 부분이 곳곳에 널렸던 울타리였다. 지금은 그때보다 시일이 더 지났으니 더하면 더했지 나아질 턱이 없었다. 설마하니 울타리가 형상기억합금 아니, 형상기억목재라면 모를까.
"음..."
은준은 울타리를 살펴보다 생각보다 일이 많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 전에 얼핏 보고 지나칠 때에는 단순히 '좀 쓰러졌다' 혹은 '부러졌네?' 라고 생각하며 지나쳤었는데, 울타리를 보수할 생각으로 살피고보니 손볼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었던 것이다.
"일단 길이부터 재보자."
은준은 가져온 줄자를 꺼내 가로로 댄 목재와 세로로 땅에 박아놓은 말뚝의 크기를 가로와 세로 그리고 두께까지 수첩에 적었다. 그리고 울타리 외곽을 따라 한바퀴 천천히 돌며 말뚝 하나 하나를 손으로 잡고 흔들어보고 두드려보며 겉모습만 멀쩡하고 속은 썪은 것은 없는지도 확실하게 점검했다. 비록 요 근래 나태한 생활을 하고 있던 그였지만, 할 때는 하는 남자였다.
울타리 상태는 많이 좋지 않았다. 흔들면 땅에서 쑥 뽑힐 정도로 벌어져있는 곳도 있었고, 조금만 힘을 주면 부러지거나 이미 깨져 날카로운 모서리 때문에 자칫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부분도 있었다. 또 가로로 못을 밖은 목재중에서도 땅에 떨어지거나 하늘에서 내린 비에 습기를 먹어 썩어들어간 곳도 많았다. 페인트가 오래되 벗겨졌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쇠말뚝을 박아 버릴까?"
"튼튼하기로 따지만 그게 최곤데. 알루미늄은 몇 번 쓰다보면 휘어져서 못쓰고, 조금 무겁기는 하지만 쇠파이프를 잘라 만든 말뚝을 박아넣고 가로로 붙여 용접해버리면 오래쓰긴 하겠지."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로망이 없잖아! 목장은 역시 나무 울타리에 하얀색 페인트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이유 말고도 현실적으로 쇠파이프로 300평이나 되는 땅을, 약 200미터나 되는 둘레를 쇠파이프로 두르려면 엄청난 양이 필요할 터였다. 비용 면에서도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는 셈이었다.
결국 은준은 시내에 나가 울타리를 만들 목재와 페인트를 사오기로 했다. 지금의 울타리는 대부분이 약해져있어 두고 쓸만한 곳이 없었다. 결국 전부 새로 만들어야만 했다.
"이것도 꽤 일이 되겠는데? 괜히 일을 벌린건 아닌가 몰라."
올 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옥수수 농사를 대비한 창고도 올려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막상 울타리를 세우려 하니 집 안에서 뒹굴거릴때와 달리 기운이 나는것 같은 은준이었다.
============================ 작품 후기 ============================
진찰주님 안녕하세요
zeromax님 안녕하세요
치야님 안녕하세요. 원래 폴테도 처음엔 매일 연재했었죠. 한 257화 부턴가? 그때부터 격일제로 바꿨다가 지금같은 주 1 체제로 .. ㅜㅜ
전모삽님 안녕하세요
정근님 안녕하세요
방학작가님도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