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4시가 되기 전부터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오래지 않아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후두두둑
짙어지는 먹구름 때문에 저택으로 돌아와있던 은준들은 창문을 때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앞으로의 일을 계획했다.
"그들이 제가 나가라고 한다고 나가진 않겠죠?"
"그럴겁니다. 그들에게는 보스의 사정관 상관 없이 그들 조상때부터 거기서 살아왔을 테니까요."
차호중 의사가 찍어준 좌표는 은준이 리소테로부터 구입한 2000핵타르에 달하는 땅 안에 있었다. 즉, 은준이 모르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그의 땅에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만약 그들이 다른 현대인들처럼 정부를 인정하고 법을 준수하는 사람들이라면 퇴거조치를 하든 뭘 하든 하겠지만, 원주민 입장에서는 은준이 하는 말이 뜬금없이 들릴게 분명했다.
"백인들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에 도착해서 자기들 마음대로 땅을 사고 팔았을때와 비슷한 상황인건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끼리 그들의 땅을 마음대로 거래해버린..."
은준은 상황이 난감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들의 상황을 이해 못할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내가 양보할 수만은 없는 상황인데..."
톡 톡 톡
은준의 손가락이 응접실 쇼파의 팔걸이를 규칙적으로 두들겼다. 그러다 한참 있다가 다시 한번 팔걸이를 두들기려던 손가락이 오무라들었다 손 전체가 펼쳐지며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회사 기숙사... 기숙사에서 출퇴근하는 직원. 기숙사라기보다는 직원들이 사는 아파트, 마을 같은건가?"
은준이 생각하는 것은 한국에서 익숙한, 군대 간부들이 사는 군인 아파트 혹은 회사의 미혼 직원들을 위한 기숙사였다. 군대의 일반 병사들이 아닌 경우에는 수년마다 근무하는 부대가 바뀌기 때문에 관사와 같은 아파트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또한 일부 회사, 특히 생산 공장같은 경우엔 수도권 보다는 지방이나 도시 외곽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집에서 출퇴근하기 어려운 직원을 위해 기숙사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만약 저 부족 혹은 마을 주민들이 전부 은준의 농장에서 일하게 된다면 굳이 그들을 내보낼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차라리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이 일하러 오는 것보다는 낫지. 너무 멀리 떨어져있으면 농장까지 일하러 오가는 시간만 더 걸리고. 음, 이정도 거리면 차타고 30분쯤 걸릴까?"
은준은 지도를 보며 대략적인 거리를 재어봤다. 도로가 없고 오프로드를 4~50km로 달린다고 생각하면 이런저런 예기치 못한 지형을 만난다 하더라도 30분이면 도착할 정도의 거리였다. 하지만 걸어서 온다면 네다섯 시간은 족히 걸릴 터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오히려 잘 된건가."
밤이 되자 쏟아지던 비는 점차 줄어들더니 창문을 열자 시원하고 신선한 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은준은 잠시 저녁에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그는 그가 생각했던 바가 이곳의 사람들에겐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궁금해했다. 퉁야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괜찮을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도 좋은 방법이군요. 아침에 트럭에 사람들을 태워와 농장에서 일을 하고, 저녁땐 다시 차를 타고 돌아간다면, 어차피 한 마을에서 태워올테니 시간을 많이 뺐기지도 않을 겁니다. 시간을 많이 절약하겠죠. 그들이 보스와 거래할 생각이 있다면 무척 좋아할 겁니다."
퉁야는 일을 하거나 바깥 마을에서 학교로 공부하러 오기 위해 몇 시간씩 새벽부터 걸어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은준이 생각하기엔 그건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교통편이 좋지 않은 회사에서 셔틀 버스를 운영하는 경우를 종종 봐왔던 은준은 잠깐 차로 태워 나르고, 걸어다닐 시간을 대신 얼마간 일을 더 시킨다거나 하는 편이 효율적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걸로 기름값을 뽑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데 좀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음? 큰 일인가요?"
퉁야의 표정에 걱정이 묻어났다.
"이 근방 부족이라면 소토어를 사용할텐데, 전 더 남쪽에서 오래 살았던 터라 줄루어는 잘 하지만 소토어라면 조금..."
은준은 머리를 한방 맞은것 같았다. 굳이 현지인 관리인을 뽑은게 무엇때문이던가. 본인이 좀 더 편한 생활을 위한 것도 있었지만, 은준이 영어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신 말을 전해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퉁야의 임금을 제안할때 감안했었고. 하지만 이제보니 정작 필요한 언어를 하지 못한다니 은준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아프리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은 영어나 아프리카어를 쓴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프리카에도 많은 언어를 지역마다 다르게 쓰고 있다. 과거 유럽의 식민지가 많았기 때문에 영어를 국어로 쓰는 곳도 많지만, 또 한편으론 관공서가 아닌 실제 주민들은 그들만의 언어를 스는 곳이 많았다.
또한 좀 안다 싶은 사람도 영어와 스와힐리어만 있으면 아프리카 전역에서 말이 통한다고 아는 사람도 많은데, 역시 그것도 오해라, 남아공 같은 경우는 영어를 포함해 지역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11가지 정도 되었고, 리소테 지역 같은 곳은 퉁야의 말대로 소토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가 아는 줄루어는 그의 출신지인 짐바브웨나 모잠비크, 말라위 그리고 일보 리소테에서만 사용하고 있었다.
"으음..."
은준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퉁야의 낯빛이 흐려졌다. 어쨌거나 면접 당시에 3개월간 경과를 보고 정식으로 채용할지를 결정한다고 했었기 때문에, 퉁야로서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나선 것은 부엌에서 뒷정리를 하던 야였다. 그녀는 은준과 퉁야가 문제가 풀리지 않아 고심하던차 둘의 이야기를 듣고 조심스럽게 나섰던 것이다.
"저기... 소토어라면 제가 할 수 있는데, 뭔지 몰라도 도와드릴까요?"
야는 그녀의 동생 얌과 함께 성당의 신부를 따라 뉴-카파에 온 뒤로 쭉 이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이 지역 언어인 소토어를 할 줄 알았다. 은준이 한국어가 기본이듯, 야에게는 소토어를 하는게 기본인 셈이다.
"으음..."
하지만 은준은 그런 그녀의 말에도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가 야에게 원한 능력은 청소와 빨래 그리고 요리였다. 그녀를 면접에서 합격시켰을때 원주민에 대한 소토어 통역은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그냥 은준과 서로 친구라거나 돕고 돕는 관계였다면 문제가 아니겠지만, 어쨌든 은준에게 야는 고용인이었으니 문제가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웹 디자이너라고 뽑아왔는데, 경리일을 할 줄 안다고 경리를 안뽑고 둘 다 시켜먹는 것과 같았던 것이다. 적어도 은준이 생각하기에는.
그럴수록 퉁야의 고개는 점점 아래로 떨어져 곧 바닥에 닿을 정도가 되었다.
"퉁야씨, 앞으로 우리 야에게 말 부터 배워야겠군요."
"네, 네? 예! 알겠습니다! 열심히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은준의 이 말에는 이 문제로 퉁야를 자르지 않겠다는 뜻도 담겨있었고, 그것을 그도 알아들었기 때문에 이내 그의 어두운 얼굴도 조금은 환해졌다. 하지만 역시 자신의 업무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은 여전했기 때문에 완전히 기색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놀고 먹을랬는데, 아무래도 여기서 살아가려면 이곳 말 정도는 알아야겠네. 영어만 되면 그냥저냥 살 줄 알았는데, 소토어라니..."
은준은 이제와서 또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니 앞날이 깜깜하기만 했다.
"중학교때부터 배운 영어도 이만큼 할 때까지 한참 걸렸는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토어는 언제나 할 수 있으려나?"
그때 아직 어떤 대답도 듣지 못한 야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저, 그럼 전 어떻게..."
"일단 내일 함께 가야지. 어쩌면 소토어 말고 다른 말도 쓰는지도 모르니까, 그게 영어면 좋겠지만 어디까지나 기대일 뿐이고. 내일은 좀 부탁할께. 앞으론 퉁야씨도 나도 소토어를 배울테니까 당분간은 이런 부탁을 할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괜찮을까?
"네! 네! 얼마든지요."
은준의 확답에 야는 오히려 더 좋아했다. 어쩌면 그녀도 집에서 가정부일만 한다는 것이 조금은 답답했는지도 몰랐다. 야도 중등 학교까지 나온 젊은 아가씨인데 집에만 있고 싶었을까. 그녀는 은준의 걱정과 반대로 일종의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데에 더 기운이 솟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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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모삽님 안녕하세요
backtheclock님 안녕하세요.. 영타 치기 어렵네요 ㅜㅜ
정근님 안녕하세요
화니왕자님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도그드림 안녀앟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