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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카파로 가자-18화 (18/107)

18화

이른 새벽. 막 동이 터오르는 시각, 은준과 퉁야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저택을 빠져나왔다. 은준은 오늘 부터 본격적으로 그가 가진 땅을 개발할 생각이었다.

그그그긍.

창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새 집에 익숙해졌는지, 건초 더미에 자리를 잡고 올랐던 닭들이 활개를 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부산을 떨었다.

부르릉!

소형 트럭에 시동이 걸리자 은준은 두 팔을 휘저으며 닭들이 차 근처로 몰리는 것을 방해했다. 자칫 차 바퀴에 빨려들어가기라도 한다면 그게 웬 일인가!

트럭이 창고를 빠져나가자 은준은 닭들이 마당을 자유롭게 쏘다닐 수 있도록 창고문을 열어놓은채 트럭 옆자리에 올라탔다. 은준은 그간 경험으로 이 저택 인근엔 담을 뛰어넘어들어와 닭을 잡아갈 야생 동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단 아침 먹기 전까지 근처만 한 바퀴 돌아보고 오죠."

"예, 보스."

은준은 아직 저 '보스'라는 호칭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사실 한국에서야 보스라고 하면 조직폭력배나 암흑가의 우두머리 정도가 듣는 호칭으로 굳어진게 보통이지만, 원래 뜻은 은준처럼 고용주도 보스라고 불리는게 맞았다. 또 영어권 영화를 보면 직장인들이 상사를 보스라고 표현하는 걸 볼 수도 있다. 은준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는 익숙해져야 할 표현임엔 분명했다.

차르륵! 차르륵!

저택을 나와 길을 벗어나 달리기 시작하자 무릎까지 자란 풀들이 트럭의 옆을 치며 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강이 흐르지 않는데도 이렇게 풀이 무성한걸 보면 땅 밑으로 물이 흐르나봅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쓰는 지하수가 이 일대에 영향을 미치나보군요. 잡초가 무성해서 전부 베어내려면 골치아프겠지만, 그래도 여기에 옥수수를 심으면 잘 자라겠어요."

"옥수수를 심으시려고 하십니까? 옥수수라면 어렵지 않을 겁니다. 금방 자라기도 하고. 포도 나무나 카카오 나무는 열매를 맺으려면 오래 기다려야 하거든요."

덜컹!

이따금 평평하지 않은 땅 때문에 트럭이 위아래로 흔들릴때도 있었지만, 애초에 정비된 길을 가는게 아닌 오프로드를 타고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둘은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급할거 없으니 천천히 갑시다. 주변 지형도 살펴보면서요."

"예, 그러도록 하죠. 그래도 이정도면 차가 버텨줄 겁니다."

"이렇게 덜컹거려도 고장나지 않겠어요?"

은준은 모처럼 산 중고 트럭이 문제를 일으키면 앞으로 가져올 쟁기를 써먹어보지 못할까 걱정되어 한마디 했다.

"문제 없습니다. 전에 있던 농장에서도 나무 사이사이까지 길을 내놓진 않았었습죠. 이정도라면 괜찮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제가 나중에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은준은 퉁야의 말에 그것에 관해서는 더이상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는 퉁야가 이쪽에 더 경험이 많기 때문에 확신하는 부분에 대해서 자꾸 말하는 것도 좋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보다는 이 풀들이 정말 문제군요. 지하에 물이 흐르기도 하고, 비도 내리니 풀이 이렇게 자라는거겠지만, 옥수수를 심기 전에 어떻게 처리할지가 문제군요. 베어내는 것으론 어림도 없겠어요."

"불로 태우는 방법도 있습니다. 다만 방심하면 온 사방천지로 옮겨붙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죠."

"...많이들 태우나요?"

"그럼요. 외곽의 작은 마을같은 곳은 대부분 불을 놔 태웁니다. 그러면 그 재가 다시 양분이 되기도 하고요. 가끔 그러다 큰 불이 나기도 하는데, 그래서 주의가 필요한거죠."

"흠..."

은준은 퉁야의 조언대로 불을 놓는 것도 염두에 두기로 했다. 하지만 불이 날수도 있다니 만약 불을 써야 한다면 정말로 주의가 필요할 것이라 우선은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전부 베어서 건초로 만들어도 좋을텐데. 사실 소도 키워볼까 했는데, 키워본적이 없어 괜찮을지 모르겠더군요."

"아, 앞쪽에 울타리가 있던데, 그 용도입니까?"

"그건 전 주인이 말을 키웠던데라고 하더군요. 사실 저도 그걸 보고 소를 생각했죠."

"소라... 그것도 괜찮을겁니다. 한번 생각해보시죠?"

길을 가다보면 작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다. 그중엔 나무라고 하기도 어려운 사람 키보다 작은 것도 있었지만, 큰 것은 은준의 키 두배 만한 것도 있었다. 전에 은준이 보았던 그것이었다.

"작은 나무는 쟁기로 쓸면 뽑혀나올테니 별 문제 없겠지만, 이 큰게 문제네. 그냥 놔둘까? 일하다 쉴때 그늘이 생기게?"

"그렇군요. 옥수수 밭이라면 그늘이 필요할겁니다. 나무가 있는 농장은 그 밑에 앉으면 바로 그늘이니 상관없지만, 옥수수밭 사이에 앉아있으면 푹푹 찔테죠. 중간에 나무 그늘이 있으면 일하다 쉴때 좋을겁니다."

"그럼 이건 놔두는 것으로 하죠."

정찰겸 사전 조사로 저택 근방을 한바퀴 돈 둘은 아침때가 되자 다시 저택으로 돌아왔다.

"근처에 마을이 있을까?"

"마을 말씀이십니까?"

은준의 혼잣말을 들은 퉁야가 되물었다.

"농장의 노동자로 고용하려고요. 우리 둘 만으로 얼마나 할 수 있겠어요? 사람이 많아야 크게 재배를 하죠. 아, 제가 말한적 없군요. 이 근방 2000핵타르가 전부 제 땅입니다."

"2...000 핵타르요?"

퉁야는 깜짝 놀랐다. 지금껏 일해왔던 농장보다 몇 배는 큰 규모였다. 하지만 은준의 2000핵타르 땅도 대형 농장에 비하면 사실 별 것 아닌 크기였는데, 팜유를 위한 야자나 카카오를 키우는 기업형 대형 농장의 경우엔 야자와 카카오 나무로 지평선이 펼쳐질 정도로 큰 곳도 수두룩 했다.

"화, 확실히 그정도 크기를 개간하고 작물을 심어 관리하려면 한두사람으론 어림 없겠습니다."

"그래서 농기계를 사볼까 했는데, 여간 비싼게 아니더군요. 그래서 당분간은 사람을 써서 조금씩 규모를 늘려볼까 생각중이에요."

"과연 그렇다면 사람을 구하는게 급선무겠군요."

"근처에 부족이 있다는 식으로 들었었는데, 확실히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군요. 차를 타고 돌아다녀가며 일일이 찾아야 하려나...?"

그때 옆에서 식사를 마친 그릇을 챙기던 야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음? 왜, 무슨 할 말 있어?"

"아, 저기... 그런거라면 선교사분들이 잘 알지 않을까요? 성당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그런 분들이 부족들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도 하고 선교활동도 한다고 들었거든요."

은준은 야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티비를 보면 선교활동이나 의료봉사 혹은 우물을 개발해준다며 돌아다니는 프로가 가끔 나오곤 했었다. 그들이라면 이 근방에 있는 부족들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퉁야에게는 한창 햇빛이 강할 때에는 쉬고, 조금 볕이 약해지면 마당을 정리하라고 주문했다. 담장 밖에 비할바는 아니었지만, 담장 안쪽도 꽤 오래 관리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인지 듬성듬성 구석진 곳을 중심으로 풀들이 자라나고 있어 보기 흉했다. 그러는 사이 은준은 전에 도움을 받은 차호중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도 의료봉사를 다닌다고 했으니 알고 있는게 있거나 혹은 아는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차호중 선생님?"

"아, 김은준씨? 오랜만이군요. 잘 지냈어요?"

"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지난번엔 감사했습니다."

"하하하, 한국사람끼리 같이 도우며 사는거죠."

은준과 차호중은 간단한 안부인사를 나누며 대화의 장을 열었다.

"혹시 지금 바쁘지 않으시면 부탁 하나를 드려도 될까요?"

잠시후 은준은 너무 용건 때문에 전화를 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을때쯤 은근슬쩍 본론으로 들어갔다.

"흠,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문제라고 할것 까지는 아닌데, 전에 외부로 의료봉사활동도 나간다고 하셨었지요?"

"그랬었죠?"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혹시 뉴-카파 근처에도 도시와 떨어져있는 부족이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은준의 물음에 차호중은 잠시 생각을 하다 입을 열었다.

"그쪽이라면 있기는 하겠지만, 무슨 일로...?"

차호중은 아직 은준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확답을 내리진 않았다. 하지만 은준은 차호중의 말에 제대로 전화를 걸었다는 생각에 서둘러 자신의 상황과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했다.

"아하, 농장에서 일 할 인력을 필요로 하는군요."

"예, 리소테 관리가 근처의 부족민들을 고용했으면 하고 말했었거든요."

"그러면 그 관리도 그곳 어디에 부족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게 아닌가요?"

"...!"

은준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고, 너무나 당연한 사실에 할 말을 잃었다. 차호중의 말대로 관리가 그러 제안을 했다면, 농장 근처에 리소테 국민으로 끌어들일 부족민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하. 아마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나보군요. 뭐, 지금쯤 한창 적응하고 있을 때이지 정신없어 그럴 수도 있지요."

차호중은 은준이 무안해하지 않도록 다독였다.

"일단 내가 알고 있는 곳 위치를 GPS로 찍어주지요."

"GPS로요?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은준은 잠시후 차호중이 보내준 GPS 좌표를 휴대폰의 GPS앱을 실행시켜 위치를 확인했다. 그리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부족민들이 살고있는 마을의 위치가 은준의 땅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땅인데..."

============================ 작품 후기 ============================

backtheclock님 안녕하세요

꿈의황제님 안녕하세요

사랑이란님도 안녕하세요

전모삽님 안녕하세요.

히로인이야 흑인이면 어떻고 혼혈이면 어떻습니까.

물론 저야 흑인 얼굴이 익숙하지 않아 이쁜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거기서 부댓기며 사는 은준은 익숙해지면 흑인도 예뻐보일지도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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