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카파로 가자-17화 (17/107)

17화

벤시몽에 도착한 은준과 퉁야, 그리고 야는 각자 방에 짐을 풀고 트럭에 실린 자재와 식재료들을 창고와 부엌에 정리했다. 퉁야의 방은 1층에 있는 응접실 뒤쪽의 방이었고, 야는 2층 계단 바로 옆방이었다.

이것은 은준의 의도에 따른 배정이었는데, 솔직한 은준의 속마음은 자신의 집 안에 낯선 이를 들이는것 자체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가족이나 친한 사이도 아닌, 고용주와 고용인 관계인 사람을 둘 씩이나 같은 지붕 아래서 생활한다는 것이 집 안에서 수시로 마주치지 않더라도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남자인 퉁야는 1층에, 야는 혹시나 부를 일이 있을까 싶어 2층 계단을 올라와 바로 옆방에 두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은준은 당일 밤부터는 잘때 방문을 잠그고 자야겠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에이, 이제 방귀도 내맘대로 못뀌겠네."

은준이 혼자 있을때 투덜거렸다. 그래도 야는 집안일을, 퉁야는 농장일을 비롯해 저택의 관리 일을 시켜야하기 때문에 가까운곳에 있을 필요가 있었고, 그렇다고 둘에게 따로 작은 집이나마 지어줄 여유는 없었다.

"야는 때가 되면 식사준비를 하고, 청소는 일주일에 두번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퉁야는 창고 정리가 끝나면 먼저 물탱크 청소를 하도록 해요. 물을 퍼올릴때는 도와줄테니 날 찾고요."

물탱크는 2층 지붕 위에 위치했기 때문에 작업을 위해선 물탱크 안과 샘에 각각 한명씩의 인원은 있어야했다.

야와 퉁야가 지시를 받고 각자 자신의 할 일을 찾아 사라진 사이 은준은 새로 사온 옷과 속옷들을 자신의 방 안에 정리했다. 그리고는 할 일이 없자 1층으로 내려와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특별히 의미가 있는 행동이 아니라, 혼자였다면 이리저리 뒹굴거리기라도 했을 터인데, 보는 눈이 있어 그러지도 못하고 일어서서 서성거린 것이었다. 야 뿐만 아니라 알고보면 은준도 어느정도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고용주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으면 고용인은 더 마음이 불안한게 이치다. 퉁야는 밖에 있으니 모르고 있었지만, 부엌에서 정리를 하던 야는 자꾸만 느껴지는 시선에 혹시나 자신이 실수를 하는 것인지, 잘못하고 있는게 있는지 불안해하다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뒤로 돌아 물었다.

"저... 보스? 뭔가 필요한 것이라도...?"

"응? 아, 아니에요. 아니, 그럼 커피나 한잔 부탁해요."

은준은 야의 물음에 응접실로 돌아가려다 장에서 사온 커피가 생각나 주문을 했다. 이것은 한국에 있을때처럼 가공되어 포장지에 넣어 파는 커피가 아니라, 산지에서 바로 올라온 하얀 자루에 넣어 파는 볶기 전의 원두였다. 은준은 말이 나온김에 커피를 시음해보기로했다.

"네, 보스. 저, 그런데... 말씀 편히 해주세요."

야는 은준이 반공대를 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뉴-카파에서 면접을 볼때야 아직 어떠한 사이도 아니었고, 또 그런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기 때문에 지나쳤지만, 이제는 엄연히 그녀를 고용한 주인된 입장이었다. 어디에도 주인이 고용인에게 공대를 하는 경우는 찾기 드물었다. 게다가 은준의 나이는 서른, 야의 나이가 17이니 야의 입장에서는 거진 두배를 더 산 사람인 것이다.

은준은 그저 아랫사람을 다뤄본 경험이라곤 군대가 전부였고, 이렇게 자신의 돈으로 사람을 고용한 것은 처음인지라 경험이 없고 상대가 낯설기도해 무의식적으로 반공대를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야의 말을 듣자 그녀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퉁야는 어차피 자신보다 댓살쯤 많으니 그렇다쳐도 야는 은준에게 조금 과장하자면 핏덩이인 셈이였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지. 음... 커피가 되면 응접실로 부탁해."

은준은 응접실 쇼파에 가 앉았다. 하지만 거기서도 마땅히 할게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티비가 있었지만, 이제 냉장고에도 상하기 쉬운 식재료를 사다 놓았으니 티비를 보다가 전기가 나가면 죄다 못쓰게될 처지였다. 게다가 티비를 틀어도 은준의 취향에 맞는 프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은 아프리카였다.

잠시후 커피콩 볶는 진한 향기와 원두를 가는 기계를 손으로 돌리는 소리가 있은후, 야가 쟁반에 커피잔을 받쳐들고 와 그의 앞에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다시 부엌으로 물러갔다. 은준은 붉은 장미가 그려지고 금색 실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커피잔을 들어 천천히 향을 음미했다.

"앞으로는 뭔가 할 일을 찾아야할 것 같은데. 옥수수농사야 퉁야나 다른 일꾼을 고용해서 하면 될테고, 집안일은 야가 전부 알아서 할테니 난 뭘 하지? 이래서 전주인이 사냥을 다녔던건가. 나도 사냥을 해볼까?"

은준은 잠시 생각했지만, 잠시후 고개를 저었다. 사냥이란건 평생 생각해본적 없는 일이었다. 사냥은 할 줄도 모르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괜히 겁없이 나갔다가 되려 사냥감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부터 되었다.

"책을 보는 것도 좋겠지. 책은 무궁무진하니까. 책값이 많이 들어가겠는데, 혹시 싸게 중고를 사거나 빌려다 볼 곳이 없을까? 음, 그래도 퉁야씨 혼자만 일하게 둘수는 없겠지. 빡세게는 안하더라도 내 땅이고, 농사지러 왔으면 괭이질은 해봐야지 않겠어?"

은준은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어차피 원래 계획과 크게 틀어진 것도 아니었고, 다른 좋은 생각이 있으면 그때가서 또 생각을 해도 괜찮을거라 생각했다.

커피를 다 마신 은준은 잔을 부엌에 가져다놓고는 작업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창고로 향했다. 퉁야가 기존에 있던 것들과 새로 사온 것들을 찾기 쉽게 정리를 하고 있었고, 뉴-카파에서 사온 닭들은 걸리적거리지 않게 아직 사온 그대로 조그만 닭장에 꾸역꾸역 들어차 울어대고 있었다.

"어이쿠, 보스!"

"어디까지 정리 한거죠? 나도 돕죠."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퉁야가 황공한척 은준을 말렸다.

"둘이 하면 더 빨리 끝날겁니다. 빨리빨리 끝내고 식사도 하고 오늘은 일찍 쉬죠. 짐도 아직 정리 못했잖아요. 해 지기 전에 물탱크 청소까지 끝내려면 혼자서는 어려울겁니다."

"그럼 저쪽 테이블을 함께 옮기시죠."

퉁야가 가리킨 것은 전에 은준이 보았던 냄새가 이상하고 테두리에 홈이 있는 그 테이블이었다.

"퉁야씨는 이게 뭔지 알겠어요?"

"이게 아마도 도축할때 쓰는 테이블일겁니다. 핏물이 테두리를 따라 저쪽 끝에서 모이도록 된걸보면요."

그제서야 은준은 이 테이블의 용도를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나오는 이상한 냄새와 얼룩, 그리고 한쪽에 쌓여있는 통들은 동물의 핏자국이었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전 주인의 취미가 사냥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럼 맞을겁니다."

"흠, 사냥이 재미있나?"

"보스도 관심 있으신가요?"

농장에서 10년 넘게 일했던 퉁야는 사람 대하는게 익숙한지 오늘 처음본 나이도 적은 은준에게 꼬박꼬박 보스라고 말을 붙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은준도 퉁야와의 대화가 끊어지지 않으니 어색하지가 않았다.

"없는건 아니지만, 해본적도 없고 뭐..."

"제가 왼쪽으로 돌면 천천히 따라오세요. 한번 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전에 농장 주인도 가끔 사냥을 하는 것 같았는데 재미가 있나 보더군요."

"근데 괜히 재미로 동물을 잡는 것 같기도 하고, 이곳에 뭐가 있는지 또 뭐가 위험한지 하나도 모르니 위험할 것 같네요. 나중에 한번 생각해보죠. 하하하."

정리가 끝난 창고에 닭들을 풀어놓고, 안에서 간이 발전기와 양수기를 꺼내 샘으로 옮겼다. 그리곤 간이 발전기에 기름을 채웠고, 퉁야는 밧줄을 가지고 지붕 위로 올라갔다.

물탱크가 있는 지붕으로 올라가는 길은 저택 안에 있었다. 2층 복도엔 천장에서 내리는 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아무것도 없는 다락방이 있고, 거기서 창문을 통해 물탱크가 있는 곳으로 통하는 형태였다.

'2층 다락방도 뭔가 쓸 수 있으면 써봐야지. 나중에 야보고 청소를 해놓으라고 해야겠다.'

물탱크 옆으로 나온 퉁야가 밑으로 밧줄을 던졌다. 은준은 양수기에 연결한 호스를 밧줄에 묶었고, 그것을 본 퉁야는 다시 밧줄을 당겨 호스를 지붕 위로 끌어올렸다.

부르르릉!

웅~ 웅~

간이 발전기와 양수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며 샘에 고인 물을 퍼올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빨겨 올라가는 물. 은준은 서둘러 펌프질을 시작했고, 이내 샘에는 물이 다시 고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 후, 위에서 퉁야가 손을 흔들었다. 그제서야 은준은 펌프질을 멈추고 양수기와 발전기를 멈췄다.

"아이고, 힘들다! 이제 정리만 하고 가서 밥 먹어야지. 이젠 화장실 물 내릴때 그냥 내리면 되겠지."

그동안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볼 때마다 물양동이에 물을 떠와 변기에 부어야했던 은준은 드디어 물짐 나르는 신세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 작품 후기 ============================

backtheclock님, 안녕하세요. 이계진입은 없습니다 ㅋ

전모삽님 안녕하세요

정근님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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