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은준의 저택이 된 '벤시몽'에 가정부로 지원한, 존이 데려온 여성은 17세의 '야'였다.
"이름이 '야' 라고요?"
"네? 네! 야 라고 합니다. 미스터 김."
야 라고 자신을 소개한 소녀는 은준의 질문에 풀섶을 건드려 놀란 토끼가 폴짝 뛰어오르듯 바짝 얼어있었다. 물론 그녀가 잘못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지만, 이제 막 의무교육인 중등 교육 과정 9학년을 마친 17세 소녀에게는 너무 무거운 자리임이 분명했다.
'낯을 많이 가릴것 같군. 성격도 좀 심약해보이고. 대신 겁이 나서라도 나쁜짓은 못하게 생겼어.'
나쁜짓도 성격이 강해야 한다. 대범하다고도 하고, 대가 세다고도 한다. 다른 표현으로 깡이 좋다고도 하는데 성격이 심약한 사람은 자의로 나쁜짓을 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면 자라오면서 체득한 사회적 규범에서의 일탈을 쉽게 생각하고 깨트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곳은 어디죠?"
"...후, 지금까지 [나눔자리]라는 성당에서 여동생과 함께 자랐어요."
야는 마음을 진정시키려는지 작게 심호흡을 하고는 처음보다는 조금 침착한 태도로 대답했다.
"성당이라면 종교가...?"
"천주교에요. 아주 어렸을때 가나에서 신부님이 저흴 거둬주셨죠."
남아공은 약 10% 정도의 천주교도가 살고 있지만, 가나 같은 경우는 개신교가 대부분이라 천주교를 보기는 쉽지 않다. 은준은 아마도 그 신부가 가나로 포교활동 비슷한 것을 나갔다가 여의치 않아 남아공으로 돌아온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음... 천주교라..."
은준은 잠시 고민했다. 한국에 있을때 워낙 종교인들, 특히 하나님과 예수와 관련된 종교에 빠진 사람들이 하는 행동들에 대해 안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터라 저도 모르게 약간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저, 혹시... 종교가 문제가 될까요?"
"아뇨, 아뇨. 뭐,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문제될건 없습니다."
마음이 약하긴 한지 벌써부터 눈이 촉촉해진 야를 보며 은준은 손사레를 쳤다. 여자의 눈물에 약해진 것도 있지만, 천주교라면 크게 나쁜 소리를 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가 들은 이야기는 대부분 기독교와 관련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었다. 그리고 신부가 되기 위한 과정을 다큐로 만들어 방송했던 티비를 보았던 은준은 약간은 그들이 대단해 보이기도 했기 때문에 크게 거부감은 없었다.
'나한테까지 성당 가자고만 않는다면... 그리고 내 집을 이상하게 바꾸지만 않는다면 문제될 건 없겠지.'
만약 야가 은준의 집에 성물들을 걸고, 자신에게 기도를 강요하거나 한다면 그가 말한 '문제'에 포함되리라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 동생이 있다고요?"
"아, 네. 세 살 터울 동생이 있어요.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답니다. 신부님이 무척 따듯하고 좋은 분이셔서 저희 자매를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어요."
"중등 과정까지는 마치셨는데, 학교를 더 다니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저는... 신부님께 더 이상 폐를 기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신부님께서는 어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동생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해요. 전 제가 동생이 학교를 더 다닐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어요."
은준은 야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대충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아마도 옛날 그의 부모님 세대때의 동생들 학비를 벌기 위해 일찍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던 큰누나의 마음이 이랬을 터였다. 그리고 둘은 고아라고 했으니, 점점 커갈수록 성당에서 산다는 것이 마음에 큰 짐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쭉 함께였다면 이제는 떨어져살게 될지도 모르는데 괜찮겠나요? 듣고 왔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사는 곳은 이곳 뉴-카파에서도 차를 타고 4~5시간쯤 떨어진 외진곳에 있어요. 서로 만날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군요. 특히 동생은 아직 14살일텐데 괜찮겠나요?"
17살이면 은준이 생각하기로 아직 어린 나이다. 게다가 동생은 아직 14살밖에 안된 더 어린 나이니 갑자기 동생이 보고싶다고 뛰쳐나가거나 일을 그만둬버리면 은준으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네, 네! 성당엔 친구들도 있고 신부님도 계시는 괜찮을거에요. 동생과 저는 이겨낼거에요!"
은준은 기를 쓰는 야를 보며 처량하다고 느꼈다. 비맞은 강아지를 보는듯 했다. 집에 대려가 돌봐주고 싶은... 하지만 지금은 군식구를 뽑는 자리가 아니라, 집안일을 총책임할 가정부를 뽑는 자리였다.
"가나 출신이라고 했었죠? 그런데 조금 외모같은것이 ...이색적이네요?"
은준은 혼혈이냐고 물어보려하다가 말을 조금 돌렸다. 아프리카에 혼혈이 만다는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었지만, 당사자에게 직접적으로 묻기에는 민감한 사항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네에, 아버지께서 백인이셨던걸로 기억해요."
"기억한다면...?"
"아주 어렸을때라 확실히 기억하진 못하는데, 분명 절 안고 다니셨던 분은 흑인이셨거든요. 전 40%정도 백인을 닮았는데 동생은 70%쯤이라 거의 백인들같죠."
야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꾸민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은준은 본인이 신경쓰지않는 문제에 그가 나서서 신경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에게 있어선 얼마가 섞였든 전부 외국인인 셈이었다. 그리고 처음 야를 보았을때의 궁금한점도 풀 수 있었다.
'어쩐지 100% 흑인 같지는 않더라니. 저정도면 피부색이 거의 동남아애들 수준은 되는데?'
"그럼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았군요."
간단한 신상에 관한 질문이 끝났으니, 이제 업무적인 부분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사람은 괜찮아보이는데, 인간성과 일을 잘 하느냐 못하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으니까.
"해야 할 일은 식사, 청소, 빨래 이 세가지가 주된 업무일겁니다. 물론 상황에따라 업무 영역이 늘어날수도 있지만, 예를 들면 차 심부름을 한다거나 이런것들. 그냥 저택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살림살이를 맡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될거에요.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야 양의 나이가 어려서 이런것들을 잘 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무, 문제 없어요! 원래 성당에서도 청소 빨래 그리고 식사 준비는 저희들이 해왔답니다. 신부님들것도요, 그리고 아직 어린 아이들 것도 저희들이 해야할 일이었어요."
야는 득달같이 대답했다. 은준은 저정도 각오면 한번 맡겨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면접을 끝낸 은준은 야를 내보낸뒤 뒤따라 방 밖으로 나갔다. 마땅한 공간이 없어서 지난밤 머문 숙소에서 진행했던터라 퉁야도 밖에 의자를 가져와 존과 함께 앉아있다가 내가 밖으로 나오자 얼른 일어섰다.
"난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은 아닙니다. 본인의 일을 찾아서 스스로 잘 하고, 내가 하지 말라고 하는 것만 주의 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거에요. 그리고 음... 주말엔 도시에 나오기로 하죠. 장도 봐야 할테니. 퉁야씨, 종교가 있나요?"
"아, 네.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음, 그러면 주말에 나올땐 함께 나오는 걸로 하죠. 그때 자유시간에 각자 교회든 성당이든 다녀오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대신 서로 종교에 관한 문제로 다투거나 내게 전도할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지킬 수 있겠어요?"
"저, 그럼 절 써주시는건가요?"
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단은 두 분다 괜찮은것 같습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3개월쯤 임시로 일하다가 그 뒤로 계속 일 할지는 그때 결정할까 합니다. 괜찮겠어요?"
"네!"
"네!"
취업성공의 기쁨을 누리는 둘에게 은준은 첫 업무를 지시했다.
"밖에 차가 있어요. 내가 어제 몇가지는 사두었는데, 미흡한게 있을수 있어요. 한번 살펴보고 어차피 앞으로 본인들이 사용하고 해야할 일들이니 필요한게 있으면 사도록 하죠. 그리고 떠나기 전에 만나볼 사람이 있으면 인사하고 오세요. 지금 가면 다음 주말에나 볼 수 있을 테니까."
존은 '쟁기'를 구하러 떠났고, 이번에 사람을 찾아준 일은 서비스로 해주기로 했다. 빡빡하게 건수마다 다 돈을 받는 것보다, 단골을 늘리려는 일환으로 보면 되었다. 은준도 그래서 다음에 또 일이 있으면 존에게 전화를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셋은 장을 한바퀴 더 돌았다. 운전은 이곳 지리를 조금이나마 더 잘 아는 퉁야가 했고, 가운데 좁은 보조석에 야가 그리고 내가 그 옆에 앉았다.
퉁야는 원래 외지인이고, 아직 뉴-카파에서 사귄 사람이 많지는 않았는지 몇몇 노동자로 보이는 이들과 인사를 한 것이 전부였다. 야도 생각보다 길게 걸리지는 않았다. 평생 함께하던 자매가 서로 떨어지게 되었으니 울고불고 눈물바다를 생각했지만, 주말마다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헤어진다는 느낌이 별로 없는것 같았다.
야의 말대로 동생은 거의 백인에 가까운 외모를 하고 있었는데, 잠깐 마주친 두 눈은 영활하게 빛났다. 그 눈빛만 봐도 언니보다는 동생이 더 사회생활을 잘 하게 생겼다고 은준은 생각했다.
뉴-카파를 떠나 벤시몽으로 향하는 은준의 트럭에는 장에서 산 물건들에 그들이 가져온 각자의 짐들이 추가되어있었다.
============================ 작품 후기 ============================
대청도구영탄님, 안녕하세요
양구리공작님 안녕하세요
정근님도 안녕하시고요
천지패황님도 안녕하세요
전모삽님도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