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카파로 가자-15화 (15/107)

15화

<준비운동>

은준은 두 사람을 앞에 두고 있었다. 한 명은 남자이고, 다른 한 명은 여자...라고 하기엔 아직은 덜 여물은 여자와 소녀의 중간 단계의 여성체(?) 였다. 은준이 살던 한국은 미성년자를 여자로 생각하면 잡혀가는 곳이었으니까.

남자는 전형적인 아프리카 흑인이었는데, 티비에 주로 나오는 부족 생활을 하는 이들보다는 미국으로 이주한(사실은 미국으로 노예로 끌려간 아프리카인의 후손) 흑인에 더 가까워 머리는 박박 밀어 미끈했고 얼굴은 크고 각졌으며 코와 입이 시원시원하게 컸다.

체크무늬 셔츠에 멜빵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덩치는 군인이나 보디가드처럼 큰데 비해 얼굴은 순하게 웃는 낯이라 사람이 굉장히 좋아 보이는 인상을 주었다.

"전에 카카오 농장에 있었다고요?"

"예, 그 전에는 커피 농장에서도 일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면 전에 있던 곳에서는 왜 그만두게 되었나요?"

사람을 고용할 때에는 여러가지 고려해야할 점이 있다. 능력은 물론 중요하지만, 은준은 그보다는 인성이나 성품을 더 중점적으로 면접을 보는 중이었다. 어차피 은준의 농장에서 해야할 일은 옥수수를 재배하는 일이다. 변호사를 필요로 하는 일도, 의사나 과학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예를 들면 주인을 해치고 재산을 강탈하는것) 부지런하고 창의력 있게 일 할 수 있으면 되었다.

그래서 은준은 그가 말한 두 번이나 농장을 그만두게된 이유가 궁금했던 것이다. 좋아보이는 얼굴 뒤로 동료들과의 다툼이나 나쁜 손버릇 등의 일로 일을 그만두게 된 것이라면, 앞으로 그의 농장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일자리를 구하려는 입장에서 분명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만을 말하겠지만,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오로지 은준의 몫이었다.

"농장 주인은 일꾼들에게 빠져나가는 돈을 매우 아까워했지요. 저렴한 인력은 찾아보면 많았고, 그는 우리에게 줄 임금을 줄이려고 했습니다. 한번에 3천 랜드나 깍으려 했고, 거기에 응하지 않은 노동자는 전부 내쳐졌답니다."

아프리카는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원재료를 해외로 수출하는 무역이 주였다면, 지금은 점점 2차, 3차 산업도 발전해나가는 추세였다. 그와 덩달아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고, 그만큼 노동자들이 원하는 임금 역시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보니 아프리카 노동자를 고용하는데 많은 비용이 지출되면서 해외에서의 값싼 노동력이 수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동남아의 인력은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동북아 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수출되고 있었다. 그러니 농장을 운영하는 농장주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값싼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게 되는 것이었다.

"특별한 기술이 있습니까?"

"남아공 정부에서 인정한 운전면허가 있습니다. 전에 있던 농장에서도 트럭을 운전했죠. 트럭에 문제가 있으면 큰 문제가 아니면 제가 고칠수도 있습니다."

"좋군요. 또 다른 것은요?"

운전할 수 있다는 것은 좋다고 생각했다. 은준은 한국을 떠나올 때와 지금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한국에 있었을때에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땅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며 여유가 생기면 땅을 더 넓여 키워나가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어찌 운이 닿았는지 처음부터 큰 땅을 개간할 권리를 갖게 되었다. 비록 그 땅이 아무것도 준비가 안된 야생의 땅이지만, 개간만 할 수 있다면 전부 큰 수확을 가져다 줄 터였다. 때문에 계획이 조금 변경되었던 것이다.

'어차피 나 혼자 어떻게 할 수 있는 넓이가 아냐. 그 큰 땅을 놀릴게 아니라면 어차피 사람을 써야할거야. 그런데 사람을 쓰면, 한 명쯤 더 쓰는거야 문제될것 없지 않나? 괜히 내가 땡볕 아래서 고생할 필요 있어? 나야 적당히 놀면서 작물이 잘 자라고 있는지, 고용인들이 일은 잘 하고 있는지만 살펴보면 되는거지. 하지만 그러려면 중간에서 일꾼들을 잘 관리할 중간관리자가 필요해!'

10명을 있으면 분대장이, 분대가 모이면 소대장이, 더 많아지면 중대장이 필요한 법이다. 일꾼들도 마찬가지로 정확한 지시의 하달과 원활한 노동력의 분배를 위해선 사이사이에 그런 것들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리소테 정부와의 협약에 따라 대부분 노동자의 고용을 인근 부족에게서 충원할 계획을 가진 은준은 그 대신 일해줄 농장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거기에 자동차 운전이 가능하면 은준이 해야할 일이 그만큼 줄어드니 더욱 좋았다. 은준은 이 사람이 제법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음... 이런 질문은 처음이라... 아! 제가 그렇다고 불만이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은준은 자기가 말하고도 당황한 듯한 그의 다급한 변명에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농장에서 괭이질 할 일꾼을 고용하는 일이다. 어느 농장주가 이렇게 면접까지 봐가며 사람을 뽑았을까? 몸 튼튼해보이고 가격만 맞으면 그가 누구든 데려다 썼을 것이다. 한국의 취업지망생 처럼 있는거 없는거 가져다 붙여 몸값을 올리느데 익숙한 이가 아니라면 이런 갑작스런 질문에 술술 말이 나올리 없었다. 특히 은준의 앞에 있는 사람은 머리쓰는 직종에 종사한 사람이 아니라, 몸 쓰는 일을 하던 사람이었으니.

"마지막 질문이 될것 같습니다. 전에 있던 농장에선 임금 때문에 그만두게 되었다고 하셨는데, 제 농장에서 일하게 되면 얼마 정도를 받게 될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은준은 과거 면접을 보러 다닐때마다 그를 속이게 만들었던 질문을 던졌다. 마음이야 있는대로 크게 부르고 싶지만, 어디 그럴수 있는가. 어느 기업이든 돈 많이 달라는 직원보다는 적게 받고 일 잘하는 사람을 부리고 싶어하는게 당연했다. 그러니 어떻게든 이 취업난 속에서 일이라도 하고 싶으면 이렇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

'회사 내규에 따르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이제 백오십 남짓한 돈을 받으며 뼈빠지게 마소처럼 일 할 준비가 된 것이다. 그게 지잡대 나온 이태백의 현실이었다. 물론 그보다 더 적게 받을수도 있고.

"가능하면 12,000랜드는 받고 싶습니다."

80년대만 하더라도 농장의 노동자들은 100랜드를 못 받았다고 한다. 어떤 경우는 돈 대신 수확한 농작물로 임금을 대신하기도 했다니,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함께 노동자 계급의 임금과 인권 상승이 있었던 것이다.

은준은 잠시 고민했다. 생각보다 비쌌다. 연봉도 아니고 월급이다. 남아공 랜드가 아닌, 리소테 랜드라 해도 12,000랜드면 적은 돈이 아니었다. 옥수수 하나에 1랜드가 안되고, 기름 1리터에 8~10랜드를 하는 것을 생각하면 큰 돈이었다. 특히 부족의 흑인을 데려다 쓰면 인당 600랜드면 충분하다니 이 한 사람이 20명 분의 임금을 가져가는 것이었다.

추가로 20명의 노동자를 직접 부리느냐, 아니면 20명의 노동자를 관리인겸 일꾼을 두어 일하게 하고 자신은 편하게 생활하느냐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2000핵타르나 가진 대지주인 자신이 직접 곡괭이질을 하기 싫다는게 이유였다. 역시 똥 싸러 갈때와 싸고 난 뒤가 다르다는 것은 진리의 말이었다.

"10,500랜드에 대신 5월부터 8월까지 겨울엔 집에 다녀올 수 있게 유급휴가를 주죠."

짐바브웨에서 돈을 벌러 온 사람이다. 같은 아프리카여도 남아공은 전체 아프리카의 1/4의 경제를 담당하는 경제 강국이었다. 기후 때문에 농사를 지을 여력도 안되는 곳의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남아공으로 돈을 벌러 오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주로 카카오 농장이나 포도 농장에서 일하게 된다.

전에 일하던 농장에서 갑자기 8,000랜드로 임금을 낮추지 않으면 내보낸다는 통보에 어쩔 수 없이 리소테의 다이아몬드 광산에 광부 일자리를 구하러 리소테로 왔던 그는 마침 존을 통해 농장의 일꾼을 구한다는 소식에 은준과 만나게 된 처지였다.

그의 집은 짐바브웨의 한 마을로, 그곳엔 부인과 6살 먹이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남아공으로 온 뒤로는 일 년에 겨우 한 두번 집에 갈 수 있었다. 게다가 집까지 다녀오기엔 시간도 빠듯해 가족과 만남 뒤에도 얼마 있지 않아 다시 농장으로 돌아와야만 했었다. 그런 그에게 휴가란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고, 지금껏 그래왔다. 휴가도 생소했지만, 유급휴가란게 어떤 단어인지 이해하는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은준이 단순히 복리후생만을 위해 이런 제안을 한 것은 아니었다. 아프리카지만 남아공의 기후는 한국과 비슷한점이 많았다. 적도를 기준으로 위아래가 거꾸로인 형태라 한국이 겨울일때 남아공은 여름, 여름일때는 겨울인 식이라 어차피 겨울인 4월서부터 8월 까지는 농장에서 할 수 있는일이 없었다. 그동안에 할 일도 없는데 비싼 돈을 주고 놀릴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적당한 당근을 제시하며 임금을 깎은 것이다. 농장 일을 마무리하여 조금 늦은 5월 부터는 그가 없어도 은준이 해야 할 일이 많지는 않을 것이란게 은준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12,000랜드씩 열두달을 고용하는 것보다, 선심쓰는척 4개월 휴가를 보낸뒤 10,500랜드만 주는게 18,000랜드쯤 저렴했다. 그 돈이면 값싼 일꾼 30명을 한달간 부릴 수 있는 돈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뭐든지 시켜만주십쇼!"

머릿속에서 계산을 끝마쳤는지 그가 환한 표정으로 외쳤다. 어쩌면 그 기간동안 짐바브웨에서 다른 일을 할 생각일런지도 몰랐다. 그의 이름은 '퉁야' 였다.

이제 가정부로 일 할 '소녀'의 면접만이 남았다.

============================ 작품 후기 ============================

정근님, 안녕하세요

사랑이란님 안녕하세요

전모삽님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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