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존은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어제 은준이 말해두었던 사람을 구하러 나간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은준은 여유롭게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는 천천히 밖으로 길을 나섰다. 그가 존과 동행하지 않은 이유는 존이 그렇게 하자고 말해두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쓸데없이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할겁니다. 미스터 김은 여기 있는게 좋겠어요. 괜히 고생만 합니다."
"그래도 제 집에서 일 할 사람들인데 제가 봐둬야 하는거 아닐까요?"
"물론 그러셔야죠. 하지만 그것은 제가 사람을 데려왔을때 보셔도 늦지 않습니다. 전에 일하던 남자 일꾼도 현재 어디 있는지 모르고, 그러니 이사람 저사람을 만나서 물어야 할 겁니다. 그러니 미스터 김에겐 좀 불편한 자리가 될 것 같군요."
은준은 존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가 주문한 것은 단순히 새로운 일꾼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에 있하다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둘 다 모르는 사람을 먼저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분명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에 대한 정보를 아는 사람들을 찾아가 물어물어 하나씩 짚어가며 찾아가야 할 것이니 돈주고 존에게 의뢰한 입장에서 굳이 그까지 따라 나서서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존이 일찍부터 나간 것과 다르게 은준은 느긋하게 모닝 커피까지 마시고서야 천천히 엉덩이를 떼고 밖으로 나섰다.
은준은 전날 새로 산 티셔츠와 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최대한 현지인 같이! 그것이 은준의 생각이었다. 비록 피부색은 바꾸지 못할지라도, 이곳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같은 분위기를 풍기길 바랬다. 세계 어디를 가도 여행자나 어리버리해 보이는 사람은 상인이나 손버릇이 나쁜 사람들에겐 좋은 작업 대상이니까 말이다.
은준은 길을 따라 걸으며 길거리에 늘어서있는 상가와 가판들을 보며 놀랍기도 하고 약간은 신기한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보면 아프리카도 원시인들이 사는 동네는 아니란 말야. 정말 있을건 다 있네?"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라고 하면 초원과 사자 그리고 많은 동물들과 함께 목창이나 나무활을 가지고 다니며 사냥을 하거나, 헐벗듯이 천을 둘러 대충 중요한 부분만 가린 그런 사람들을 떠올린다.
물론 아직도 도시가 아닌 지역에서는 그런 사람을 찾아볼 수 있다. 전에 은준에게 땅과 집을 판 사람이 말한 것도 그들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였다. 부족 중심으로 유목 생활을 하는 이들을 고용해 임금을 주고 일을 시켜라. 그것은 덜 문명화된 이들을 국가의 테두리안에 두기 위한 방책이었다.
하지만 이곳 뉴-카파는 한국 촌의 읍내를 연상케하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정도라면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한게 아니라면 굳이 존을 통하지 않고서도 필요한 물품 대부분을 구할 수 있어 보였다. 아니, 당장 살 수 없는 물건일지라도 비슷한 종류의 물건을 취급하는 상점에 주문을 하면 다음에 받아볼 수 있을게 분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모든 상점에서 모든 물건을 전부 갖춰놓고 팔지는 안잖아? 인터넷 배송이 어렵다는건 아쉽지만, 그정도는 감수해야지."
은준은 다음에 무언가 필요한게 있어서 뉴-카파에 오게될 때를 대비해 이곳 지리를 좀 더 익혀두기로 했다.
은준과 존이 다시 만난것은 점심시간이 될 무렵이었다. 은준은 존의 전화를 받고 장소를 정해 만났다.
"여기가 음... 아! 요 앞에 빅-마켓이란 대형 마트가 있네요."
"거기라면 어딘지 알 것 같군요.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네. 그럼 전 앞에 있을테니 오도록 하세요."
10분쯤 지났을까 존이 은준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하지만 함께온 사람은 없었다. 은준은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마침 점심때이기도 하고 내내 걸어다녔더니 허기가저 식사를 먼저 하기로 했다. 은준은 단호박에 쇠고기를 말아 익힌 음식을 주문하고 함께 루이보스차를 마시기로 했다.
"의외로 잘 드시는군요?"
존은 포크를 놓지 않는 은준을 보며 말했다.
"원래 가리는게 별로 없습니다. 하하하"
"남아공엔 처음 오신다고 하셨죠?"
"남아공 뿐만 아니라 외국은 중국 말고는 가본적이 없네요. 한국을 떠난 것은 이곳 남아공이 두번째 입니다."
둘은 식사를 하며 오전내 모은 내용을 이야기했다.
"일단 전에 일하던 사람은 쿠에쿠라는 사람이더군요. 전에 만났던 그 관리가 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인이 죽고 임금을 줄 사람이 없자 죽은 프랑스인의 차를 가져다 팔다가 잡혔답니다. 지금은 감옥에 있어서 그를 고용하는건 어려울 것 같더군요."
"저런. 그럼 그 차는 어떻게 되었나요?"
은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차는 장물로 처리되어서 나라에 귀속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돌려주려해도 주인이 죽은 상황이고, 따로 물려받을 사람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집과 마찬가지로 나라에 귀속한 다음에 판매한 것 같습니다."
"대신 가정부는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식당에서 일하고 있더군요. 한번 만나보시겠습니까?"
은준은 존의 말에 잠시 고민했다.
"그 사람도 이 일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한번 이야기를 해보고 싶네요."
"그럼 지금은 일하는 시간일테니 저녁때 들러볼까요?"
"혹시 한 5분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일단 얼굴이라도 보고 생각해보고 싶은데."
"흠, 따라오시죠."
둘은 존의 안내로 택시를 타고 전 가정부가 일하고 있다는 식당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택시로 5분쯤 걸렸는데, 걸었다면 20~30분은 걸어야 했을 거리라 은준은 택시를 타기로 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둘은 식당에 들어가 과일 음료를 시키며 전 가정부를 불러다줄것을 부탁했다.
"어떻게 찾아왔죠? 지금 바쁜 시간이라 빨리 들어가봐야해요."
그녀는 지금까지 은준이 봐왔던 아프리카 사람과 다르게 살집이 투실투실하고 덩치가 컸다. 은준은 어쩌면 자기보다 무게가 더 나가지 않을까 하고 그녀를 자세히 살폈다.
"이 분은 뉴-카파 외곽의 저택의 새로운 주인이오. 당신이 전에 그 집에서 가정부 일을 했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어휴, 그러시구나. 제가 여기 있는걸 어찌 알고 잘 찾아왔네요. 제 이름은 암마에요."
암마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인은 넉살좋게 옆 테이블의 의자를 하나 끌어다 놓고 앉으며 급 화색을 띄며 웃었다.
"제가 그 저택에서 빨래며 청소며 알버트씨의 식사까지 도맡아 했답니다. 그 집을 사셨다고요? 아주 잘 하셨어요. 좋은 저택이죠. 그리고 저도 그 저택을 무척 사랑했답니다. 제 자랑은 아니지만, 저보다 그 집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에요. 일주일에 두 번씩 저택을 청소하면서 안 가본데가 없었으니까요. 호호호호호."
한마디로 암마라는 여인은 말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그 덩치와 얼굴에는 욕심이 늘어붙어 있었다. 은준은 그녀의 인상에서 별로 호감을 받지 못했다. 그녀의 말대로 일은 잘 할지 모르겠지만, 계속 얼굴을 맞대고 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거기엔 그가 한국에 있을때 남아공으로 이민간 부부의 블로그에서 본 내용도 어느정도 한 몫을 했다.
그 집도 가정부를 썼다고 했다. 하지만 안주인은 가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가정부가 집에 갈때면 매일 무언가 한 봉다리씩 들고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분명 아침에 올대는 빈 손이었는데 말이다. 일을 잘 했는지까지는 내용에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 점 하나만으로도 고용인으로서 빵점이라고 은준은 공감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은준이 관상을 볼 줄 아는 것은 아니지만, 꼭 관상을 볼 줄 알아야 상대의 인상을 보고 '아, 저 사람은 어떻겠구나.'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암마는 은준이 보기에 믿음이 가지가 않았다. 그 블로그의 이야기를 보고 와서 그런지 몰라도, 그녀가 저택에 있을때 먹을것을 워낙 잘 가져다 먹어서 저렇게 살이 찐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이 사람은 어렵겠다. 내 편견일지 모르지만, 이런 첫인상을 가진 상태로는 뭘 해도 의심이 들 것 같아. 꼭 저 사람이 아니면 안되는게 아니니 좀 더 괜찮은 사람이 있나 찾아봐야겠다. 사람 한 명 잘못 들이면 풍지풍파 일으키는 법이지.'
암마는 전 주인인 알버트라는 사람이 어떤 대우를 해줬는지 몰라도 무척이나 이 일을 맡고 싶어했는데, 은준은 존에게 다른 사람을 더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좋겠는지 생각해본게 있으십니까?"
"음, 일단은 정직한 사람이면 좋겠고요. 그리고 또 인상이 좀 좋았으면 좋을것 같네요."
"그리고요?"
존의 물음에 은준은 마땅히 적당한 조건이 떠오르지 않았다. 가정부라니, 집에서 그가 갖은 집안일을 하던 처지인데 가정부를 구하려고 하니 짠 하고 생각날리가 없었다.
"보통 필요로하는 능력이겠죠. 청소는 꼼꼼히 하는지, 빨래는 깨끗이 하는지 그리고 요리는 잘 하는지. 아! 생각났다. 이왕이면 저보다 나이는 적었으면 좋겠군요. 나이 많은 사람을 부리는건 익숙치 않아서..."
은준의 직장 생활은 항상 을, 병, 정의 입장이었지 갑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돈도 써본사람이 쓴다고, 사람도 부려본 사람이 잘 부리는 법이다. 은준은 자기보다 나이 많은 아주머니가 와서 자기는 손하나 까딱 안하며 놀고 있는데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다.
"아차, 이게 중요한건데. 존도 알겠지만, 제 집이 멀리 있잖아요. 여기서 왔다갔다 하는건 아무래도 어려울테니 상주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거에요."
"알겠습니다. 좀 애매한 조건도 있는것 같지만, 여기는 일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으니 구하기 어렵지는 않을겁니다. 제가 가장 좋은 사람으로 알아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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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사랑님 안녕하세요~
천지패황님 안녕하세요. 음, 이 글에는 특별한 능력이 나오지는 않을겁니다. 퓨전란에 연재하고는 있지만, 딱히 들어갈만한 카테고리가 없어서요;; 이 글은 순수 아프리카 귀농 글이 될 것 같습니다. 뭐, 나중에 은준이 성공하게되면 좀 더 큰 물에서 놀 수는 있겠지만, 기본은 귀농 소설입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