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시장 상인들이 좋아합니다.>
시장에 도착한 존과 은준은 길거리에서 팔고있는 커피를 마시며 은준이 적어온 쇼핑 리스트를 살펴보기로 했다. 마치 한국의 재래 시장에서 카트를 밀고 다니며 믹스 커피나 각종 차를 파는 아주머니처럼, 이곳에도 시장 한쪽편에 자리를 놓고 즉석에서 커피콩을 볶에 만든 커피를 팔고 있었다. 오히려 믹스 커피에 비하면 고급이라 할 수 있었다.
은준은 커피콩 볶는 모습을 처음 보는터라 손바닥만한 팬 위에 커피콩을 올려놓고 나무막대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볶아지는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하지만 그가 가져온 수첩엔 전부 한글로만 적혀있었기 때문에 은준은 고개를 돌려 존에게 영어로 목록을 불러줘야 했다.
~~~~~~~~~~~~~~~~~~~~~
휴대전화
인터넷
식료품
휴지
수건
자동차와 소형 발전기에 쓸 기름
닭
소
전에 집을 관리하던 관리인 혹은 새로운 사람
가정부
속옷
양말
옷
선글라스
슬리퍼
작업화
작업복
옥수수 종자
땅콩 종자
상추처럼 금방 자라는 채소 종자
목욕비누
샴푸
세숫비누
챙이 넓은 모자
고무호스 또는 PVC 파이프
쟁기
~~~~~~~~~~~~~~~~~~~~~~~~
은준이 적어온 목록은 제법 길었다. 하지만 생각날때 하나씩 적은 터라 두서가 없었고, 당장 생각을 못한 물건은 아예 적혀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은준은 만약 여기서 더 필요한게 생기면 이젠 차도 있으니 직접 사러 나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살게 꽤 많군요? 대부분 여기서 한바퀴 돌면 살 수 있을것 같기는 한데, 몇가지는 조금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어떤게 문제가 있죠?"
존은 짧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거기가 워낙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 인터넷 선을 깔려면 아마 자비로 공사를 해야할 겁니다. 통신사에서는 거기까지 한 가구를 위해 그만한 공사비를 지불할 생각을 못할겁니다. 아니면 이런 방법도 있죠."
"다른 방법이 있나요?"
"스마트폰을 개통해서 컴퓨터에 연결해 스마트폰을 통해서 인터넷을 하는건 가능할겁니다. 사파리 여행자들을 위해 기지국은 세워놓았으니 신호가 약하기는 해도 512kbps는 나오는것 같더군요."
은준은 새삼 이곳이 한국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하다못해 인터넷이 1메가도 안나온다니! 영화 한편 보려면 며칠은 걸리겠는걸.'
존은 은준에게 자세한 사용 방법을 알려주었다. 유심칩을 사서 선불 요금을 결제한 후 사용하면 되었다. 하지만 정액제같은 요금제가 없고, 통신비가 워낙 비싸 은준의 생각대로 한국에서 처럼 마음껏 인터넷을 하는 것은 요원해보였다.
'휴, 어쩔 수 없지. 영화같은게 보고 싶으면 한국에다 연락해서 보내달라고 해야지. 인터넷으로 다운받아 보려다가는 집도 날아가겠다!'
"다른 것들은 뭐... 근데 이 쟁기는 어렵겠는걸요?"
"또 무슨 문제가 있나요?"
은준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데서 안된다는 말을 듣게되자 의아해 물었다.
"여기 사람들은 쟁기를 안써요. 보통 괭이를 쓰지 비싼 소를 밭 가는데에 쓰진 않거든요. 그 값이면 사람을 더 써서 괭이로 밭을 갑니다."
"음? 대체 소 한마리에 얼마쯤 하는데 그렇죠?"
"대략 16,000랜드쯤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설마 아까 말씀하신 것중에 소가 있는것이 밭을 가는데 쓰려고 한 겁니까? 차라리 그러지 말고 사람을 더 쓰세요. 그게 그들에게도 더 좋죠."
"아, 아뇨. 소는 그냥 땅이 워낙 넓어서, 그 땅을 전부 개간하는건 너무 어렵겠더라구요. 그래서 남는 땅에서 소를 방목해 키워볼까 해서 적어본겁니다. 또 옥수수 농사를 짓게되면 옥수수대가 나올테니 그걸 처리하는데도 괜찮아보이고. 쟁기는 이번에 산 트럭에 연결해서 써볼까 한겁니다."
"그럼 소는 직접 기르실건가요?"
"아뇨. 소를 키울 사람도 일꾼으로 고용을 해볼까 생각했죠."
은준의 할아버지댁에서는 소도 두어마리 키운적은 있었으나, 은준은 소똥 치우기 담당이라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은준의 말에 존이 한참을 고민하고 궁리했다. 은준은 존이 오래도록 말이 없자 괜찮은 생각이 있는것 같아 조용히 기대하며 기다렸다.
"이 방법은 어떻습니까? 미스터 김 말대로 소를 사세요. 그리고 근처에 소를 키우는 부족에게 맡기면서 대가를 지불하는겁니다. 그렇게되면 그들로서는 어차피 키우는 소에 몇 마리 더한거가지고 소득이 더 생기는 것이고, 미스터 김은 소에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그들이 알아서 키워줄 것이니 서로 좋을 겁니다."
"아, 정말 그러면 되겠군요. 그럼 근처에 어느 부족이 있는지도 아시나요?"
"그건 차차 알아봐야죠 하하하. 혹시 당장 급한건 아니시겠죠?"
소에 관한 문제는 일단 그렇게 일단락 지었다. 은준도 당장 급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존의 제안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 쟁기에 관한 문제가 남아있었다.
"쟁기는 음... 제가 생각을 해보니 굳이 다른데서 사올 필요까지는 없을것 같습니다. 뭐, 꼭 미스터 김이 말한 쟁기가 필요하다면 건너건너 구해볼 수는 있을것 같은데 그렇게되면 가격이 훌쩍 뛰겠죠. 이건 어떨까요?"
존은 자신이 생각한바를 은준에게 설명했다. 그것은 군에서 쓰던 지뢰제거 쟁기 즉, mine plough였다. 지뢰제거 쟁기는 원래 군에서 아프리카 내전때 파뭍은 지뢰를 제거하기 위해 탱크 등에 장착해 땅을 갈아엎어가며 지뢰를 찾아내던 장비였다.
"탱크에 장착하는 물건이니 조금 무게가 나가기는 하겠지만, 어차피 트럭에 연결해서 쓴다고 하시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을겁니다. 오히려 그냥 쟁기보다 날이 많아서 한번 끌면 10개쯤 고랑이 파진다고 보면 될겁니다."
은준은 존의 생각이 매우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으니 뭔가 꺼림칙한게 눈에 띄었다.
"저기 근데, 군에서 사용하던거라면서 제가 구입할 수 있는겁니까?"
"뭐, 어차피 지뢰제거 작업은 몇 년 전에 끝난거라서 하나쯤 창고에서 사라져도 찾는 사람도 없을겁니다. 후후, 그런거죠."
마치 px에서 맛스타 하나 빼돌리는 것처럼 쉽게 말하는 존. 그리고 그것을 뜨악하게 쳐다보는 은준은 떨떠름해하면서도 이 동네는 총과 총알도 마구 굴러다니는 곳이니 같은 맥락인가 싶어 고개를 끄덕여 승락했다. 은준의 은근히 자기 집은 외딴 곳에 있으니 누가 알겠냐 하는 생각도 어느정도 그것을 승락한데 작용을 했다고 보면 되었다.
큰 건이 해결되자 작은 건들은 문제가 아니었다. 존은 벌써부터 그를 자주 애용해주는, 그리고 앞으로도 많이 애용해줄 것 같은 우량고객인 은준을 데리고 다니며 자세히 설명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비록 인터넷은 어렵게 되었지만, 매장으로 들어가 유심칩을 사고 선불 요금을 내 남아공 통신사를 통해 전화를 사용하게 만들었다. 또한 휴지를 비롯한 수건과 속옷 및 옷가지들을 장만하고, 작업복은 가볍게 입을 옷을 몇 벌 더 사 그중에서 몇 개를 골라 일할때 입기로 했다. 다만 모자는 한국에서처럼 밀짚모자가 없어서 그 대용으로 낚시모자나 등산할때 쓰는 그런 둥근 챙이 있는 모자를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농장을 개간해 심을 종자들도 충분히 샀고, 괭이와 같은 농기구와 파이프, 고무호스도 길이가 넉넉하게 구입해 트럭에 실었다. 존이 쟁기를 구해주기로 하였지만, 도구는 각각에 쓰임이 있기 마련이라, 쟁기는 쟁기대로, 괭이는 괭이대로 따로 쓸 일이 있을 거라는게 은준의 생각이었다.
식재료는 마지막 농장으로 출발하는날 사기로했다. 이번에 돌아갈때 가정부와 관리인겸 일꾼 한명을 고용할 생각인 은준은, 그 일이 언제 해결될지 예측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둘은 이미 시간이 저녁에 가까웠기 때문에 하룻밤을 뉴-카파에서 보내고, 다음날 일찍 움직여 사람을 찾아보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여울사랑님, 제가 바로 소소한 이야기 쓰기 전문입니다 ㅋㅋㅋㅋㅋ서비스님 안녕하세요. 종자같은건 현지 구입입니다. 원래 지역이나 토질에 따라 잘 크는 종자가 따로 있어서 작물을 재배하려면 차라리 현지걸 구입하는게 좋죠. 현지에서 팔린다는건 그곳에서 잘 큰다는 이야기니까요. 그리고 종자같은건 통관때 수수료도 들고 수입이 불가능한 것도 있기 때문에 현지 구매하는 것으로 잡았습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