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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카파로 가자-12화 (12/107)

12화

밖의 기온은 지하실이 서늘했던 것과 다르게 무척이나 더웠다. 때문에 밖으로 나가려던 은준은 밀짚모자가 매우 그리워졌으나, 한국에서 가져온것은 야구모자가 전부였다.

"달달하네."

은준은 잔을 꼴깍 비우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잔도 놓고 짐에서 모자도 꺼내올 생각이었다.

"그러고보니 이 짐들도 이제는 정리해야겠구나."

이제 하룻밤을 보내긴 했지만, 앞으로는 쭉 여기서 지내야했다. 언제까지 캐리어와 배낭에 한국에서 가져온 짐을 놔둘수는 없었다.

"할 일이 하나 생기긴 했네."

가방을 열고 모자를 찾던 은준은 기차 안에서 몰래 숨겨가지고 온 총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한국과 달리 멀리까지 거침없이 뻗은 벌판. 그곳엔 초원지대도 있었고 수풀이 우거진 곳도 있었다. 반대로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도 있었는데, 이것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손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방 어디에도 은준이 있는 저택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은준에게 무척 생소한 충격이었다. 한국에 있을때는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이 없는 곳이 없었다. 하다못해 산에를 올라가도 사람이 있고 생수나 컵라면, 또는 잔 막걸리를 파는 장사꾼이라도 있었으며 어디에서든 교회가 보였다. 농담으로가 아니라 편의점보다 교회가 많은 나라가 한국이었으니 말이다.

정말이지 너무나 적막해 이런 곳이라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뇌리를 스쳤다.

"B급 미국 영화였다면 딱 연쇄살인마가 나오는 배경인데 말이지..."

다행히 여기는 아프리카다. 물론 아프리카라고 미친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텍사스는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사자라도 나오면 어쩌겠어. 그런데 이 근방에도 사자가 있을까?"

은준은 밖으로 나가는 김에 총도 들고 나가기로 했다. 이곳은 아프리카의 외딴곳, 한국과 같은 치안이 좋은 동네가 아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자신의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했다. 물론 한편으론 멀리도 아니고 담을 따라 한바퀴 돌러 나가는 거면서 걱정이 과하기는 했다.

"어디보자. 총알은 하나, 둘, 셋... 한 스무발 정도 남은것 같고, 영점은 천상 내가 잡아야 할텐데 여기서 세 발을 더 쏜다고 치면 몇 발 남지도 않겠네. 다음에 존에게 구해다 달라고 해야 할까? 아래 있던 총알은 크기가 다른것 같던데 말이야. 게다가 이 총, 관리는 했던 건가? 뭐가 이렇게 더러워? 음... 지하에 가면 꼬질대 같은게 있을테지. 한번 찾아봐야겠다."

외출을 하려던 것이 졸지에 총기 손질 시간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은준은 바쁠게 없으니 느긋해보였다. 어쩌면 뭘 하든 빨리 끝내버리면 그 다음에 할 일이 없다는게 은준을 자꾸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는것 같았다.

지하실의 작업장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용도를 모르는 것이었지만, 하나씩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확인한 결과 그는 총기손질에 쓸만한 재료를 취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

"이건 뭐냐. 총구가 휘었잖아!"

꼬질대를 거꾸로 집어 넣으려던 은준은 쇠로 만든 곧은 꼬질대가 입구 근처에서 들어가지지 않는 것을 보곤 의아해하다가 속에서 총알이라도 걸렸나 싶어 자세히 살피던중 총구가 미묘하게 휘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총으로 쐈으니 당했지! 대체 어쩌자는거야? 이런 총으론 바로 앞에대 대고 쏴야지 맞겠다!"

은준은 그냥 가지고나가 이대로 쏴보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주인도 쏘던 총이니 그럴 확률은 적겠지만, 자칫 총알이 날아가지 않고 총구에서 폭발했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며 끔찍해했다.

"이걸 펜치로 휘어서 쓸수도 없고 말이야..."

어쩐지 운좋게 총을 얻었다 싶었던 그는 총구가 휘어 못쓰는 총은 지하실에 놔두고, 대신 사냥용 라이플과 탄약을 한주먹 쥐어가지고 나왔다.

밖으로 나온 은준은 새로 가지고 나온 총을 살폈다. 다행히 이것은 전주인이 관리를 잘 했는지 오래된 물건으로는 보여도 적어도 총구가 휘거나 하는 불량은 보이지 않았다.

"요걸 뒤로 당겨서 직접 총알을 넣는건가본데? ...총알이 한번에 세 개밖에 안 들어가는군."

가지고 나온 총알로 장전을 하던 은준은 총알이 겨우 세 발 밖에 들어가지 않는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되었든 총에 총알까지 장전해 들고나온 은준은 멜빵으로 어깨에 둘러매곤 길을 나섰다.

하지만 별다를건 없었다. 높이가 2m쯤 되는 담장 위엔 피어나지 않은 꽃봉우리 모양의 장식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촘촘하게 박혀있었는데, 그 끝이 송곳처럼 뾰족하지는 않아도 무언가 그 위로 떨어지면 영락없이 구멍이 날게 분명했다.

뱀도 한마리 보였다. 지나가던 길이었는지, 근처에 뱀굴이 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던 은준이었지만, 괜히 건드렸다가 독사라면 큰일나는 관계로 잠시 멈춰 뱀이 가던 길로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지나가기도 했다.

저택 주변으로는 제법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큰 나무는 없었지만, 하나씩 덩그러니 서있는 나무는 맨눈으로 봐도 세 그루는 족히 있었고, 그 위로는 이름 모를 새가 앉아있는것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새와 먼저 보았던 뱀 한마리를 제외하고는 지나가는 들개조차 보이지 않아 은준은 더욱 심심하고 심란해졌다.

"괭이라도 있으면 땅이라도 파지. 전주인은 대체 뭘 하고 지냈던거야? 맨날 사냥하러 돌아다니진 않았을텐데."

은준은 어쩌면 계단 밑 창고에서 체스판이라도 나올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렸지만, 체스에는 흥미도 없고 할 줄도 모르는 그로서는 진짜로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저택 주변엔 '별 일'도 없었다. 너무나 한적하고 외딴 곳임이 분명했다. 도시의 섬 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많은 도시에 있지만, 소통하지 못하고 외딴 섬에 있는 것처럼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은준은 이곳에서 아프리카의 섬을 느꼈다.

존이 찾아온것은 은준이 이 저택에 머물게된지 오일째 되는 날이었다.

부르르릉!

오일만에 들려온 자동차 엔진 소리에서 도시의 향수를 느낀 은준은 얼른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 보았다. 지난밤 해가 저물기 전, 혹시나 야생동물이 들어올까 저택 정문을 닫아걸어놨기 때문에 존이 타고온 차는 밖에 멈춰있었다.

"존!"

"미스터 김!"

은준은 정말로 존이 반가웠다. 그는 얼른 달려가 문을 열고 그를 환영했다. 헌제 차가 한대가 아니었다.

"이 찹니다. 중고기는 해도 쓸만한 놈이죠. 싹 한번 정비를 했으니 당장 타는데도 아무 문제 없을겁니다."

탕탕!

존이 흙먼지로 뒤덮힌 차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장담했다.

"전에는 바로 돌아가느라 몰랐는데, 이제보니 참 좋은 집입니다. 음... 벤..시몽? 맞습니까? 저기 문 위에 그렇게 써있는것 같군요."

은준은 존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내 존이 손가락을 들어 정문 왼쪽 기둥 위에 작은 동판에 쓰여진 글자를 볼 수 있었다. 그곳엔 프랑스어와 영어로 [벤시몽]이라고 적혀있었다. 전 주인이 이 저택에 붙은 이름이었다.

존은 혼자 오지 않았다. 돌아갈 길을 생각해서인지 동행을 한 명 데려왔었는데, 그가 이제는 은준의 소유가 된 차를 끌고온 것이었다.

존들은 이내 돌아가려했다. 차도 건네주었고 잔금도 치뤘으니 다른 일을 찾아 도시로 가야하는 것이다.

"아, 잠깐 잠깐! 기다려봐요!"

떠나려는 존들을 붙잡고 은준은 서둘러 저택 안으로 돌아가 짐을 챙겼다. 얼마가 걸릴지 모르니 갈아입을 속옷과 옷도 챙기고 혹시 모를 일이라 돈은 조금씩 나눠 여러군데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책상에서 수첩을 챙겨가지곤 열쇠로 문들을 잠그곤 허둥지둥 그의 차에 올라탔다.

"존, 혹시 많이 바쁜가요?"

"음, 무슨 일 있으신가요?"

"네. 그때 존이 가고 그 뒤로 집 안을 살펴봤는데, 있는게 없더군요. 하다못해 먹을것도 없어서 고생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적어놨는데, 어디서 구해야하는지 모르겠는것도 있고 해서요. 혹시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랬다. 존이 오기까지 은준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대신 집 안과 밖을 천천히 걸어다니며 그의 눈에 부족해보이거나 뭔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수첩에 적어두었던 것이다.

그래서 차가 도착하면 그것을 타고 시내로 나가 필요한 물건들을 사올 생각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은준은 시장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 밖에 시장에서 팔지 않는 것들은 어디에서 파는지. 또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등 모르는게 너무나 많았다.

"좋아요 좋아. 그럼 우리가 먼저 출발할테니, 따라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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