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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카파로 가자-10화 (10/107)

10화

은준은 따사로운 햇살이 방안을 환하게 비추자 몇 차례 눈을 깜빡이다가 크게 기지게를 피며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아 옆 테이블에 올려두었던 생수통을 따 몇 모금 들이켰다.

"이야, 날씨 좋다!"

신발을 꺽어 신고, 창가로 다가가 얇은 커튼을 걷어치자 청명한 하늘이 눈에 선명히 들어와 박혔다. 하지만 기분 좋은 것도 잠시뿐, 어젯밤 하지 못한 우선 처리해야 할 일이 생각나 양미간을 찌푸리며 제대로 신발을 신고 집 밖으로 나왔다.

은준이 가져온 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이동중에 목이 마르면 조금씩 마실 생각으로 슈퍼에서 구입한 것이지, 그의 생각으론 '집=물이 있다'라는 공식이었기 때문에 이 저택에 물이 없으리란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니 존이 차를 가지고 돌아오기 전까지 마실 물을 구해야 하는게 그에게 닥친 첫번째 임무였다.

날은 더운데 물도 마음껏 마시지 못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난 은준은 터벅터벅 걸어 뒷마당으로 향했다. 우물이 있는 것을 봐두었으니 창고를 뒤져 두레박이나 그게 없으면 양동이에 줄이라도 묶어 우물에서 물을 퍼올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물이 보이는 마당에 도착하자 두 눈을 똥그랗게 뜨며 입을 벌렸다.

"어?"

무언가를 발견한 은준은 얼른 우물가로 다가갔다.

"이거 작두 펌프아냐?"

은준은 반가운 마음에 무쇠로 만든 작두 펌프의 손잡이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움직였다.

"진짜 오랜만에 보네. 나 어렸을때 할아버지댁 샘에 있던건데..."

지금이야 전부 모터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지만, 은준이 초등학생때인 1980~1990년대 사이에는 아직 이 수동으로 물을 퍼올리는 펌프를 사용하고 있었었다. 그당시엔 어린 마음에 물을 쓸 일만 있으면 자기가 한다고 고사리 손으로 엉터리 펌프질을 했던게 떠오르는 은준이었다.

"그럼 두레박은 필요없겠네. 근데 왜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놓은거지? 어젠 깜빡 우물인줄 알았잖아. 이건 기둥인줄 알았고."

은준이 오해한 이유는 이곳이 둥근 원 모양으로 벽돌을 쌓아 높인데다가 그 위를 나무로 짠 덮개로 덮어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은준은 천상 이것이 우물이고 어두운 와중에 작두펌프가 있으리란건 생각지 못하고 그저 위에 지붕도 있으니 기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들썩!

은준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덮개를 건드리자 무게감이 느껴지며 밀려나갔다. 움직여지는 것을 확인한 은준은 양 손으로 덮개를 들어올렸고, 그러자 그 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냥 물통 같은거네. 시멘트로 바른것 같은데, 펌프 구멍이 이쪽으로 난걸 보면 물을 퍼올리면 여기에 담아 쓰는, 그런 구조인가?"

그의 말대로 덮개를 치운 안쪽은 반달 모양의 원통 구조를 하고 있었다. 깊이는 그리 깊지 않아 지면과 바닥이 같은 높이인듯해 대략 허벅지쯤 깊이라고 보면 되었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면 아래쪽엔 마개가 있어 그것을 열면 안의 물이 바깥으로 빠지게 되어 있었다.

"음음, 필요하면 청소를 하고 마개를 빼서 물을 내보내면 되겠다. 벌써 안쪽에 거미줄도 조금 있고, 흙먼지나 이런게 있는것 같으니 물을 퍼올리면 여기도 한번 청소를 해야겠네."

좀 더 살펴보니 작두 펌프가 박혀있는 뚜껑은 용접해 떨어지지 않게 해놓은게 보였다.

은준은 물이 나오는지 확인해볼 요량으로 펌프질을 했다. 하지만 속에서 '꿀렁꿀렁' 하는 소리가 나는것 같기는 했으나 정작 물은 나오지 않았다.

"마중물이라도 부어야 하나? 그랬다가 안나오면 마실물도 없는데..."

마중물은 작두 펌프를 사용할때 뒤에서 붓는 물을 말한다. 작두 펌프는 오래 사용을 안하면 올라와있던 물이 도로 내려가기 때문에 다시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이 마중물이라는 것이 필요했다. 어쨌든 은준은 펌프질을 할 때마다 안에서 물소리가 나는 것으로 봐서는 물이 있다고 확신해 남은 생수통의 물을 안에 부어보기로 했다. 정 안되면 전화기를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가스와 전기는 안들어와도 전파는 닿는 곳이었으니까.

촤아!

물은 한꺼번에 전부 쏟아부었다. 아깝다고 조금 부으면 물만 빠지고 지하수는 안 올라오는게 작두 펌프라는걸 은준은 알고 있었다.

끼-꺽! 끼-꺽!

멈추지 않고 박자에 맞춰 펌프질을 하자, 저 안쪽에서부터 '고롱고롱' 하는 소리가 솟더니 이윽고 '쿨렁쿨렁'하며 물냄새가 나며 곧이어 작두펌프에 물이 차오르며 투명한 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콰르르, 콰르르.

쏟아져나온 물이 시멘트독을 채우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나쁜 냄새나 색은 없어서 은준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썩은 물이 아니면 가스는 있으니 끓여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먼 타지에 온 상태기 때문에 수도관이 있어도 끓여 먹었을 터였다.

"이거 몇 번 비워야 쓸만 하겠는걸?"

은준은 시멘트독에 차오르는 물 위로 떠오른 부유물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펌프질을 멈추면 다시 물이 내려가니 얼른 달려가 마개를 빼고 다시 달려와 펌프질을 하는 은준이었다.

몇 번을 반복해 눈에 크게 보이는 부유물이 없자 시멘트독을 청소하는 일을 멈추었다. 이왕이면 한 사람이 더 있어서 물을 퍼올리는 동안 다른 한사람은 안을 쑤세미 같은 것으로 박박 문질렀으면 했지만, 큰 바가지 같은것을 찾아 마중물로 쓸 물을 받아놓는다면 시간이 조금 걸려도 혼자서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건조하고 메마른 땅이라 걸을때마다 흙먼지가 피어올랐기 때문에 은준은 시멘트독의 뚜껑을 다시 닫고는 이번엔 뒷마당 한쪽편에 있는 창고로 향했다.

"어, 잠겼네?"

텅.

하지만 창고 문은 잠겨있었다. 주먹만한 철로 만든 자물쇠였는데, 열쇠가 없으면 열 도리가 없어 보였다.

"영화에서처럼 총으로 쏘면 열리려나?"

은준은 시덥지 않은 생각을 했다가 피식 웃었다. 분명 집 어딘가에 열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현관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 가까운 서랍장부터 열어보니, 현관문에서 바로 보이는 화병이 놓여져 있는 한 칸짜리 서랍장 안에 열쇠 꾸러미가 들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유난히 큼직한것이 그 주먹만한 자물통과 짝인게 분명하다고 은준은 길다란 플라스틱 열쇠 꾸러미를 들고 다시 창고로 향했다.

구구구궁!

녹은 슬지 않았는지 자물쇠는 부드럽게 열렸고, 자물쇠가 물려있던 큼직한 걸쇠를 들어올리고 옆으로 밀어 양 옆으로 밀게 되어 있는 두 분을 분리하자, 아래의 레일을 따라 문이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한쪽 문이 활짝 열리자 은준은 어두운 창고 안으로 들어가 전등 스위치를 찾아 켰다.

팍! 팍! 팍!

전등갓 안쪽의 전등이 백열하며 환한 빛을 내자 창고 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창고 안에는 네모난 건초가 칸칸이 쌓여 있었다. 전 주인이 말을 키웠다고 하니 아마도 말 먹이였던 모양이라 생각했다.

건초가 차지하는 공간을 제외하고도 창고는 제법 넓었다. 은준은 차가 오면 이 안에 넣어도 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안으로 들어가며 주변을 살피자 새의 깃털 같은 것이 떨어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닭털인가, 오리털인가?"

떨어져있는 털이 한두개가 아니라 곳곳에 떨어져있는 것을 보면 이곳에서 닭 같은 것을 키우며 싱싱한 달걀을 구했을지도 모른다며 은준도 시내에 가게 되면 닭을 몇 마리 사오는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뭐지?"

그중에서 은준의 시선을 끈 것은 큼직한 탁자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탁자라고 하기엔 모양이 기이했는데, 가로세로 폭이 2mX3m 쯤 되는데다가 가장자리에는 홈이 파져있어 그 끝엔 아래쪽으로 구부러진 요철이 튀어나와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홈을 따라 한데 모여 그곳으로 떨어지게 되어있는것 같았다.

"킁킁. 무슨 비린내 같기도 하고 고약한 냄새 같기도 하고..."

게다가 거뭇한 얼룩도 있고 이상한 냄새도 올라와 은준의 콧등을 씰룩이게 했다.

"아, 물통이다!"

그러던중 은준의 눈에 손잡이가 달린 플라스틱으로 만든 물통이 한쪽 구석에 켭켭이 쌓여있는게 들어왔다.

"그런데 이것들도 좀 상태가 이상하네. 대체 이걸로 뭘 했길래 이렇지?"

하지만 은준이 발견한 물통은 좀 전에 보았던 큰 탁자와 같이 얼룩과 이상한 냄새가 나 물통으로 쓰기엔 적당치 않아 보였다.

"말똥 치우던 통은 아닌데 말이지..."

다행히 은준은 다른쪽에서 넓직한 대야와 함께 깨끗한 물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연장이라던가, 창고 양쪽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또 공간이 있으며 여기에도 새의 털이 떨어져 있는것을 추가로 발견했다. 그것 말고도 밧줄 뭉치와 같은 여러가지 물건들이 있었지만, 당장 쓸 일도 없는 터라 이내 물통만 들고나와 창고문을 닫아 걸었다.

다시 샘으로 돌아온 은준이 먼저 물통을 깨끗이 씻어 털고, 시멘트독의 물을 퍼 마중물을 붓고는 펌프질을 해 물을 끌어올렸다. 물이 올라오자 물통의 물을 버리곤 몇 번 새 물로 깨끗이 헹구어 물통 가득히 물을 채워가지고는 다지 집으로 돌아왔다.

찬장을 뒤져 주전자를 찾은 은준은 물을 조금 부어 헹군뒤 다시 주전자에 물을 붓고 가스렌지를 켜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과자냐..."

물이 끓는 동안 별수없이 가방에 들어있던 과자로 배를 채운 은준은 물이 끓자 불을 끄고는 뚜껑을 열어 뜨거운 물을 식혀두고 다시 밖으로 나와 시멘트독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여울사랑님 안녕하세요.

천지패황님 폴테도 보시나요? ㅎㅎ 그 갈랑 맞습니다~

즐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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