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카파로 가자-9화 (9/107)

9화

은준이 실망한 것은 그가 이러한 전원주택을 실제로 본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저택을 짓고 살아온 전 주인이 프랑스인이라고 했을때 떠올린 것은 영화에 나오는 차를 타지 않으면 걸어서 수십분씩 걸리는 거대한 정원이 딸린, 한 층에 창이 열 이상 달리고 위로는 네다섯층쯤 되는 그런 큰 저택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죽고 없는 프랑스인은 전혀 그런 저택을 소유할 만한 부호도, 귀족같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이 저택의 주인은 은준이 아니라 그의 유산을 물려받을 다른 프랑스인이었을 것이다. 전주인은 그저 재산을 물려줄 친인척도 없었기 때문에 조용히 자연을 벗삼아 호젓한 말년을 보내기 위해 프랑스에서의 기반을 정리해 아프리카로 온 중년 신사에 불과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차피 혼자 조용히 노년을 정리할 집이 그렇게 클 필요도, 재력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것 까지는 생각하지 않은 은준은 밖에서 보이는 모습에 약간 실망을 했지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그러한 생각이 쏙 들어가고야 말았다.

"이야~."

은준의 입에서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밖에서 보았던 벽돌을 쌓은 외벽과 저택 안은 또 달랐다. 입구에서 은준을 반긴것은 크기가 50제곱센티미터쯤 되어 보이는 새하얀 타일이 깔린 바닥이었다. 현관 옆에는 모자나 외투를 걸어두는 옷걸이도 있었다. 여름엔 주로 모자를 걸었을 것이고, 겨울엔 외투를 걸기도 했을 터였다. 아프리카에도 겨울엔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곤 하니까 말이다.

현관 정면엔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보였다. 진한 붉은 갈색의 나무 계단은 중간에 오른쪽으로 꺾여 있었고, 난간은 계단을 따라 이층 복도로 이어졌는데, 난간을 따라 고개를 드니 1층 중앙엔 천장이 없었다.

현관 오른쪽으론 응접실인듯 가운데에 카펫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 넓은 탁자와 주변엔 쇼파가 두르고 있었다. 그 반대쪽인 왼편엔 부엌이 있었는데 족히 열 명은 앉을 긴 식탁과 의자가 놓여져 있었다. 마지마으로 계단 옆으론 좁은 복도가 나 있었는데 그 오른쪽으로 문이 있는것으로 봐선 응접식 뒤로 방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한국에 있을땐 평생 서민적인 삶을 살아온 은준은 벽에 액자를 걸어본적이 없었다. 벽은 그저 달력과 시계를 거는 공간이었다. 또한 책상과 의자도 마찬가지여서 의자 등받이 위를 올록볼록 깎고 등이 닿는 곳과 엉덩이 대는 부분을 푹신하고 화려한 문양을 수놓은 쿠션으로 장식된 그런 의자는 티비에서나 보는 물건이지, 그의 집엔 단순히 네 개의 다리가 버티고 있는 딱딱한 의자가 전부였다. 쇼파도 그나마 아버지께서 나이가 든 뒤에야 샀지, 그 전에는 전부 바닥에 앉아 생활했었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가구들은 전부 어느 중세 영화에나 나오는 그런 고풍스러운 것들 뿐이였고, 벽에는 곳곳에 누군지 알 수 없는 얼굴의 흑백 사진과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은준은 그런 가구들을 조심스럽게 만져보며 감탄을 터트릴 뿐이었는데, 실제론 오래된 엔틱 가구이긴 했어도 그렇게 조심히 만져야할 고급 가구는 아니었다. 물론 은준은 이런걸 실제로 본적이 없고, 티비에서도 이런 물건은 부자집에 있는 것으로 봐서 무척 비싼 것으로 착각했다.

이층에 올라간 은준은 놀람의 연속이었다. 서재방, 자는방과 같은 것들이 각각 나뉘어져 있었고, 방마다 카펫이 깔려 있어서 무척 푹신했다. 1층과 마찬가지로 가구들은 전부 엔틱 가구였고, 침실에 있는 침대는 모서리마다 기둥에 지붕과 커튼까지 달린 침대여서 입이 절로 벌어졌다.

침실이 이층 방중에 가장 컸는데, 침대 왼쪽엔 작지만 동그란 테이블과 일인용 쇼파 두개가, 오른쪽 벽으론 작고 네모난 책상에 가벼워 보이는 작은 나무 의자가 있었으며 그 벽엔 큰 풍경화도 하나 걸려 있었다. 그리고 침대 옆 창문엔 사람이 걸터앉거나 아예 올라가 앉을수 있을 만큼 넓은 공간이 있어 거기에 걸터앉아 창밖을 볼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뭐든 그렇지 않겠느냐만은 은준은 새삼 문화적 충격에 놀라며 한편으론 신기한 마음과 호기심에 조심스럽게 창가에 걸터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1층과 달리 2층은 창문을 못질해 막아놓지 않아 열 수 있었는데, 밖은 해가 지고 있는지 점점 노을이 진해지고 있었다.

1층과 2층을 구석구석 살핀 은준은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보고 별 생각없이 전등을 키려고 하다가 이 집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다는 것을 떠올렸다. 워낙 도시와 떨어져있는 터라(가장 가까운 뉴-카파에서 차타고 3~4시간 거리였다.) 전기 공사가 안 되어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리소테 왕실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이 집 한 곳을 위해 여기까지 전기 공사를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 섯부른 판단이었다. 전기 공사를 하지 않아도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니 말이다. 때문에 은준은 전기 공사가 안되어있다는 이야기에 뉴-카파에서 사온 양초를 찾으러 1층으로 내려가려다 방문 옆에 있는 스위치를 발견했다.

딸칵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은준이 스위치는 누르자 거짓말처럼 천장에 불이 들어왔다.

"어? 전기가 들어오네? 뭐지?"

은준은 얼떨떨 했지만, 저택 곳곳을 살펴보던중 저택 뒷편에 있는 창고 건물 지붕에 태양광 발전기가 설치되어있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아무리 이런 집에 살던 사람이라도, 현대인이라면 전기 없이는 못 살았을걸?"

은준의 새집 탐사는 전기가 들어옴에 힘입어 계속되었다.

"2층 집에 방은 1, 2층 포함 여덟개. 거기에 주방이 있으니 총 아홉개인가? 아! 그러고보니 계단밑에 문이 하나 있었지! 거기가 그럼 지하실인가보다. 그럼 총 열개인가? 와, 내가 생전에 방이 열개인 집에서 살게될 줄이야!"

은준은 새삼 격세지감을 느꼈다. 서울에 혼자 있을때도 단칸방 신세였고, 고향집도 겨우(?) 방 세 개인 집이었다. 그런데 고작 5만 달러에 이런 집과 2000핵타르의 땅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아, 그런데 저녁이 되니까 슬슬 배가 고파지네. 전기가 들어오면 냉장고도 있겠지?"

은준은 계단을 내려와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은 따로 문이 없어서 복도 너머에서 '아, 부엌이 있구나.' 라고 확인만 하고 아직 자세히는 살펴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어쨌든 은준이 부엌에 들어서자 그의 생각대로 냉장고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냉장고 문을 열었을때 그는 순간 실망하고 말았다. 오래 주인이 없을 것을 집을 비우며 생각했었는지, 전기 코드는 뽑혀있었고,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찬장도 열어보았지만, 그곳도 텅 비었있었다. 아무래도 전 주인의 장례를 치르고 집을 비우며 그런 것들을 꼼꼼하게 치운것 같았다. 비록 은준에게는 안타까운 일일 수도 있겠지만, 만약 상하거나 썩고 벌레가 날아다녔다면 그게 더 고역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굶을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한국 음식을 그리워할 것을 생각해 이것저것 챙겨온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존이 차를 가져오면 뉴-카파 시내로 쇼핑을 나가면 될테고, 그 전까지는 가져온 것을 먹으면 될 것이라 생각하니 은준은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가스렌지가 안켜지네? 가스가 끊겼나?"

은준은 오래 가스를 사용하지 않아서 정부에서 가스를 끊었나 생각하다가, 이곳이 전기도 자급하는 외딴곳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분명 가스관도 연결되어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가스렌지가 있는걸 보면 가스통을 사다 연결해 썼을거야."

은준의 생각대로 부엌 반대쪽 집 밖엔 철재 문이 달린 작은 붙박이장 같은 공간이 있었는데, 거기에 가스통 세개가 들어차 있었다. 그걸 잡고 흔들어보니 가스가 남아있는것 같아 밸브를 돌려 열었다.

"이런건 할아버지댁에서 많이 해봤지."

은준의 할아버지댁인 시골은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가스를 통으로 배달해 사용했다. 때문에 어깨 너머로 배워 사용하던 가스통을 다 쓰면 바꿔연결하는걸 해본 적이 있었다.

다시 철재 문을 닫아 잠그고 부엌으로 돌아온 은준은 또다른 난관에 부딪혔다. 수도꼭지를 돌려도 물이 나오질 않았던 것이다.

"이건 또 왜이래? 상하수도는 당연히 안 연결되어 있겠지만, 수도꼭지가 있는걸 보면 분명 사용하기는 했던것일 텐데..."

배는 점점 고파오는데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은준은 답답해하며 또 집을 뒤졌다. 그러다 겨우 찾은 것이 뒷뜰에 나있는 우물이었다.

"수도꼭지는 없나?"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수도꼭지는 없었고, 우물을 덮은 두껑이 전부였다.

"두레박도 없는데 이걸 어째..."

은준은 또 열심히 두리번거렸지만, 찾은것은 지붕 위에 보이는 작은 물탱크가 전부였다.

"저 물탱크에 물을 채워서 사용했나본데, 물을 채우려면 비가 오길 기다렸으려나? 아니면 펌프 같은걸 이용했을지도 모르겠군."

은준은 창고를 뒤져볼까도 생각했지만, 이미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창고를 살펴보는 것은 날이 밝은 뒤 하기로 하고 어깨가 축 늘어져 집으로 들어왔다. 결국 저녁은 물이나 익힐 필요가 없는 과자와 초콜릿으로 때우고 말았다. 그나마 마시던 생수병이 있어 다행일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여울사랑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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