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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카파로 가자-8화 (8/107)

8화

<벤시몽>

대부분의 사항은 이미 존과 조율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그가 서류등을 준비해둬 행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없었다. 다만 오늘 처음 들은 농장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에 대한 판매가에 대한 협상이 필요했기 때문에 조금 시간이 걸렸는데, 애초에 큰 땅을 공짜나 마찬가지에 분양받는 상황이라 협상이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다행히 존의 말대로 리소테 정부에서는 옥수수 거래로 큰 이득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식량 자급률을 높이려는 정책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후려치는 일은 없어서 매년 전년도 시세로 가격을 책정하기로 했다. 사실 매년 곡물가격이 상승하는 추세였기는 했으나 은준으로선 배짱을 부리기 어려웠다.

하지만 계약을 끝내고 나오는 은준은 희망에 가득차 있었다. 그와 대면했던 관리의 설명이라면 1핵타르당 8톤의 옥수수가 생산되고, 1톤에 360달러 즉, 1핵타르만 옥수수를 심어 수확한다면 2,880달러를 벌 수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은준이 경작 할 수 있는 땅이 2000핵타르였으니 거기의 2000배는 엄청난 돈이었던 것이다.

물론 은준이 아직 생각지 못한 부분, 예를 들면 어느 세월에 2000핵타르의 땅을 전부 일굴 것인가와 그러기 위해서 들어갈 인력에 대한 임금, 각종 소모품을 포함한 비용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것 같은 것도 있었다. 그렇다고 은준이 아예 그 점을 간과한 것은 아니었지만, 농기구나 농업용 기계의 시세를 모르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존."

"하하하. 저도 감사합니다. 미스터 김. 앞으로도 필요한게 있으면 절 찾아주십쇼!"

은준은 존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언제까지일지 몰라도 당분간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긴 했다. 길도 잘 모르고 어디에서 뭘 어떻게 판매하는지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누군가 도와준다면 불감청 고소원이었다.

"그러면 혹시 어떤것들을 취급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어떤게 또 필요하신데요. 말씀만 하십쇼."

"그래도 뭘 취급하는지를 알아야 말씀을 드릴텐데..."

"하하하. 그런것 없습니다. 그냥 전부 취급합니다. 가전제품도 취급하고 남아공에서 구하기 어려운것도 대신 수입해다드리기도 하죠. 저야 뭐든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은준은 존의 큰소리에 마치 농담을 하는것 처럼 실제론 진심을 담아 슬쩍 물었다.

"그럼 총이나 총알도 구할수 있나요? 하하하하!"

"아, 물론이죠. 돈만 있으면 어렵지 않습니다. 하하하."

"아하하하..."

은준은 만약 그가 총을 취급해도 조심스럽게 말할줄 알았는데, 설마하니 총도 문제 없다고 큰 소리로 말 할줄은 몰랐기 때문에 슬그머니 얼버무렸다.

모든 일이 완료되자 은준과 존은 수수료 잔금을 치루고 악수를 나눴다. 이번 거래는 존도 은준도 서로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둘의 얼굴은 밝았다.

차호중은 다음날 돌아가기로 했다. 지금 출발해도 밝을때 팔라보르와에 도착하기는 글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셋은 저녁까지 함께 먹고는 다음날 헤어지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이 밝자 고민하는 은준에게 존이 다가왔다.

"농장까지 가셔야죠. 그러려면 차가 필요하겠습니다?"

"하아, 그렇네요. 차가 있어야 도시에 왔다갔다 할 텐데."

"그렇다면 제게 맡기시죠. 어차피 농장을 운영하시려면 트럭이 좋겠죠? 그러고보니 큰 농장을 운영하려면 사람 손만으로는 어려우실텐데, 어떻게 트랙터나 콤바인을?"

앞서가는 존 때문에 은준은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은준도 존의 말대로 콤바인 같은 것을 사야하는 것인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생각했던 농장이라면 자기 혼자 혹은 일꾼 몇 명을 고용해 일 해볼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스케일이 커져 버렸다. 도저히 사람 인력으로 어떻게 해볼 만한 규모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농기계를 살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 있을때도 농촌에서 농기계를 사려면 농협에서 대출을 받거나 마을 단위로 공동 사용하려고 돈을 모아 사거나 했었다. 농사일에 쓰인다고 싼게 아니라, 농기계도 수백 수천만원 단위로 비싼건 무척 비싸다는 것을 알고있는 은준이었다.

"그럼 일단 작은 트럭을 하나 구하고 싶은데요. 가격이 될지 모르겠네요."

은준은 한국에서 흔히 봐왔던 용달차를 생각했다. 그정도라면 당장 은준에게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일이 안풀리면 농자은 작게 운영하고 이전 주인이라던 프랑스인처럼 여가생활로 남는 땅에서 사냥을 하거나 소 같은 동물을 기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이걸 보면서 생각해보세요."

존은 놀랍게도 자신의 차 안에서 팜플렛을 들고 나왔다. 얼핏 보니 그의 차 안에는 그것 말고도 다양한 종류의 팜플렛을 보유하고 있어서 은준은 깜짝 놀랐다.

'뭐든지 필요한게 있으면 말하라는게 농담이 아니구나!'

뉴-카파까지 함께 했던 차호중 의사가 떠나고 은준과 존은 함께 이제는 은준의 소유가 된 농장으로 향했다. 그동안 은준은 존이 준 팜플렛을 보면서 한국의 용달차와 가장 비슷해 보이는 차를 집었다.

"이런건 중고로 얼마쯤 하나요?"

어차피 마구 굴릴 차였다. 은준은 생각지도 못하게 5만 달러를 써버렸기 때문에 새것 보다는 중고를 살 생각을 했다. 존은 은준의 말에 운전을 하면서도 팜플렛을 쳐다봤다. 이미 도심지를 지나 인적이 드문 비포장 도로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태나 연식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수수료 포함해서 6천 달러만 내시면 가장 좋은 걸로 찾아보겠습니다!"

존의 망설임없는 대답은 은준이 그를 믿게 만들었다.

트럭을 사기로 했으니 은준은 이제 걱정 없이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그리고 존은 또 한 건 일을 맡았다는 생각에 서로 기분 좋은 드라이브게 되었다. 은준은 그런 김에 은근슬쩍 계속 궁금해했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까 총도 취급한다고 하셨는데 진짠가요?"

"네, 물론이죠. 특히 미스터 김 같은 경우는 시내에서 사는게 아니라 더 총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아! 어쩌면 그 집에 전 주인이 사용하던 총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아!"

은준도 전혀 생각하지 못하던 것을 존이 지적했다. 은준은 그저 자신이 가진 AK-47에 맞는 총알을 구해볼까 하고 말꼬를 틀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입을 연 김에 그것도 물어보기로 했다.

"총알 같은건 얼마쯤 하나요?"

"남아공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AK-47 같은 경우는 7.62mm탄을 쓰죠. 그런건 한 상자에 100달러쯤 합니다."

"100달러요? 상자가 얼마나 하는데요?"

은준은 총알이 100달러나 한다고하자 깜짝 놀랐다.

"종이상자에 들었는데, 30발씩 들었죠. 보통 여기서 쓰는 탄창이 30발 들어가니 한 상자를 사면 탄창 하나 채울 수 있다고 보면 됩니다."

"비싸네요."

은준은 진심으로 비싸다고 생각했다. 100달러면 10만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다. 그런데 겨우 30발이라니, 총알 하나 쏘면 3천원이 날아간다는 소리였다. 예전 훈련소에소 농담식으로 총알이 날아가면 육계장 컵라면이 날아가는거고 포탄이 날아가면 쌀포대가 날아간다고 들었던 은준은 총알 하면 500원에서 1000원쯤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하하. 윗동네에선 많다고 하는데, 여긴 그렇지 않죠. 관광객이 많아져서 단속이 강화됐거든요. 필요하시면 좀 구해드릴까요? 그럼 총도 필요하실텐데. 한국인이시면 K-2? 아니면 M16이 좋을까요?"

"헐, 그런것도 있나요?"

"그럼요. 원랜 단발인데, 연발로 개조도 됩니다."

"...!"

한참을 가자 길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더 들어가자 하얀 페인트를 칠한 울타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래 관리를 안했는지 곳곳에 페인트가 지워지기도 했고 어느곳은 무너지거나 망가진 곳도 눈에 띄였다.

"저기가 목장이었나봅니다."

"말은 없네요."

말은 도망갔거나 야생동물에 잡혀 먹었는지도 몰랐다. 아니면 원주민이 지나가다가 가져갔거나 혹은 프랑스인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준 이가 가져갔거나. 은준은 그중에서 마지막이 가장 가능성 있다고 생각했다.

프랑스인이 여기까지 와서 사냥을 하며 노년을 보냈다면, 분명 관리를 하는 사람을 두었을 터였다. 아마 말을 돌보고나 울타리를 보수하고 주변을 관리할 남성과, 저택의 관리를 할 여성도 있었을지 몰랐다. 적어도 밥을 해주고 빨래나 청소를 할 사람이 있었을 테니까.

마침내 앞마당에 도착한 둘은 차에서 내려 저택을 올려다보았다. 은준은 눈앞에 펼쳐진 모습에 실망스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면 그것은 저택이라기보다는 단독주택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멋진 집이군요!"

"아, 네. 정말 그렇네요."

호화롭지는 않았다. 분수도 없고 미로처럼 생긴 정원도 없었다. 하지만 현관 앞엔 테라스가 있었고, 기둥에는 덩쿨식물이 기둥을 다라 빙그르 돌며 타고 올라 지붕을 장식하고 있었다.

"아니 이런. 벌써 이렇게 덩쿨이!"

존이 집이 아깝다는듯 얼른 다가가 추물스럽게 달라붙은 덩쿨을 잡아 떼었다. 그제서야 하얀 기둥이 모습을 드러내자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은준은 말 없이 고개를 돌려 집을 살폈다. 안에 벽난로가 있는지 굴뚝도 보였다.

"다행히 창문은 깨진곳이 없는것 같네요.전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다음에 차를 가지고 오죠. 그럼 이만."

존은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며 서둘러 떠났다. 잠시후 자동차 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차가 멀어지자 은준은 적막함에 떨다가 애써 힘차게 문을 봉하기 위해 판자를 대고 못질한 것을 뽑아 떼어내곤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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