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카파로 가자-4화 (4/107)

4화

<비행기에서 내려 기차를 타고>

요하네스버그의 국제공항에서 내란 은준은 가이드를 찾았다. 요하네스버그는 제법 알려진 도시라 여행사를 통해 가이드를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은준의 목적지인 리소테 왕국의 뉴-카파라는 도시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찾는 곳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아쉽게도 가이드는 뉴-카파 까지 동행하는 것이 아닌, 공항에서 안전하게 기차역까지 안내하는 것으로 했다.

공항은 매우 더웠다. 17시간에 걸쳐 비행기를 타고 오기 전 한국의 날씨는 한겨울. 영하 10도의 날씨에서 갑자기 영상 26도의 날씨를 접하자 에어컨이 틀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땀이 날것만 같았다.

수화물을 찾아 게이트를 나선 은준은 헐렁한 셔츠에 반바지 그리고 슬리퍼 차림의 동양인을 찾아볼 수 있었다. 워낙에 주변 인간들이 죄다 흑인들이라 그 안에 섞여있는 동양인 한명은 너무나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상대편도 마찬가지인지 은준을 보자 들고 있던 종이를 들어 흔들었다. 거기엔 김은준 이란 세 글자가 굵은 매직으로 쓰여져 있었다.

"김은준씨?"

익숙한 한국말이었다.

"네."

"반갑습니다. 상록수 여행사에서 나왔습니다. 전 유병민 입니다."

"아 예, 저도 반갑습니다."

가이드로 나온 유병민이란 사내는 서른 초반 정도되는 얼굴이었는데 볼살이 통통한데다가 키는 170cm가 조금 안되는 정도다가 웃는 낯이라 그런지 인상이 매우 좋았다. 은준은 그제서야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아프리카에 처음 도착하는 도시인 요하네스버그에 대한 이야기중엔 날치기 같은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치안이 그리 좋지 않은 동네라는게 대다수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상대가 칼이나 총이라도 들이대면 가이드도 별 소용 없겠지만, 그래도 현지에서 생활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되었다. 적어도 엉뚱한 사기는 당하지 않을것 아닌가.

"피곤하시죠? 여기 오니까 날씨도 더울테고요."

"아, 괜찮습니다. 비행기에서 잤거든요."

"하하하. 그래도 자리가 넓어서 조금 편하셨을 겁니다. 보통 17시간쯤 비행기를 타고 오면 녹초가 되거든요."

가이드는 양 팔로 좁은 비행기 좌석을 표현했다. 다행히 은준은 비상구 옆 좌석을 예매했기 때문에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발도 쭉 뻗고 잘 수 있어 그런대로 어렵지 않은 여행이었다. 물론 17시간동안 비행기를 타는 것은 자리가 넓고 좁고를 떠나서 고역이었지만 말이다.

"이왕이면 제가 식사도 하고 요하네스버그 시내를 한바퀴 돌아드리고 싶지만, 김은준씨 말씀대로 가장 빠른 기차편을 구해놔서 바로 출발해야할 것 같습니다. 지금 바로 나갈건데 혹시 여기서 할 일이 있습니까?"

은준은 가이드의 말에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기로 했다. 기차에 타면 아무래도 화장실이 불편할 것 같기도 했고 짐도 가지고 있으니 자리 비우기가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일행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혼자 왔으니 화장실 갈때마다 그 짐들을 전부 지고 다닐 수 없었다. 만약 짐을 놓고 자리를 비운다면 화장실을 갔다 왔을때 그 뒤는 예상할 수 없었다.

은준은 조금 겁이 났지만, 화장실 밖에서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는다고도 했고, 외국인도 많은 국제공항에서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나기야 하겠냐는 생각으로 혼자 화장실에 들어갔다. 하지만 얼굴과 팔 다리가 온통 까만 사람들이 눈알만 희번덕 거리며 자신을 힐끔 쳐다보며 지나칠 때마다 잘 나오던 오줌줄기는 찔끔찔끔 줄었다 늘었다 하는 바람에 제법 시간을 잡아먹었다. 물론 은준이 생각하기에 희번덕이었지, 그들로서는 그냥 동양인이 있길래 저절로 눈이 갔었던것 뿐이었다.

한참후에야 볼일을 마친 은준이 밖으로 나오자 가이드가 재촉했다.

"곧 버스가 떠날겁니다. 편히 가려면 택시가 좋지만, 관광온게 아니라 정착하러 오셨다니 제가 있을때 버스를 한번 타보는게 좋을겁니다."

은준은 들은 풍월이 있어 찔끔하며 되물었다.

"버스요?"

"네. 이걸 놓치면 한시간도 더 기다려야 하니 서두릅시다."

재촉하는 가이드에게 은준은 이걸 물어봐야하나 잠시 고민하다 결국 입을 열었다.

"저기, 버스는 외국인한텐 막 위험하다고 하던데. 강도도 많고. 진짠가요?"

"아, 물론 그런것도 있습니다. 특히 관광객들은 따로 다니면 타깃이 되기 쉽죠. 근데 이건 걱정 마세요. 지금 타는 버스는 중앙터미널과 기차역 사이만 다니고 요하네스버그 밖으론 나가지 않는거라 그런일은 거의 없습니다. 아! 일단 타시죠.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버스가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못 본 2층 버스였는데, 은준이 생각하던것과 판이하게 달랐다. 은준은 아프리카라면 다른 나라에서 쓰던 중고 버스를 수입해 쓰거나 앞 유리가 없고 혹은 전조등이 깨져있는, 그런 버스를 생각했는데, 지금 탄 2층 버스는 깨진 유리도 없고 도장도 벗겨진데 없는 세련된 버스였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여긴 관광객이 가장 맞이 찾는 곳중 하나인 요하네스버그입니다. 게다가 지금 가는 기차를 타면 행정 수도인 프리토리아로 향하기 때문에 지난 남아공 월드컵때 아주 잘 단장을 해놨죠."

가이드는 기차역까지 가는 동안 창밖 도시를 가리키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여기 아주 살기 좋아요. 한국에선 못하지만, 여기선 200만원만 있으면 가정부까지 두고 좋은 저택에서 살 수 있죠. 좋은 동네는 인터넷도 쓸만하고. 무엇보다 생활비가 저렴해서 좋죠."

은준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시내의 모습을 살폈다.

"리소테로 가신다고요? 거긴 물가가 더 싸죠. 얼마를 가져오셨든 그 이상을 살 수 있을겁니다. 하하하하."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한 후로 가장 좋은 소식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오셨으니 살기가 조금 불편할지도 모르겠네요. 뉴-카파로 가신다고 들었는데, 거기서 사업을 하실 계획인가요? 그렇다면 조금 불편할지도 모르겠군요. 리소테도 남아공에 속해있기는 하지만, 큰 도시에 비하면 통신도, 전기도 부족합니다. 발전이 덜 되어서 여러모로 힘들죠. 그리고 ..."

리소테는 한국인에겐 생소한 왕국이었다. 프리토리아를 지나 좀 더 북동쪽으로 들어간 곳에 위치해있고, 짐바브웨나 모잠비크 쪽과도 인접해있는 곳인데 물론 아프리카 대륙이니 인접이라고 표현했지 한국이었다면 중간에 도가 하나 껴있는 그정도의 거리였기 때문에 은준은 그 국경이란 부분은 크게 중요히 생각하지 않았다.

"로보스 레일입니다. 앞으로도 이쪽으로 나올 일이 있으면 이걸 타세요. 솔직히 일반 아프리카 사람들이 타는 기차가 저렴하긴 하지만, 추천은 못하겠습니다."

"로보스 레일요? 이거 비싼거 아닌가요?"

은준도 아프리카에 대해 알아보면서 로보스 레일에 대해서도 들은게 있어 되물었다. 그가 알기로 로보스 레일은 고급스런 기차에 내부도 목재로 유럽풍으로 만들어져 있고 식사도 그렇게 나온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가 걱정하는건 기차삯이었다. 은준이 알고있는 로보스 레일 가격은 백만원이 넘었기 때문이었다.

"아, 이건 좀 다릅니다. 그건 서아프리카 쪽이나 케이프타운에서 아프리카를 쭉 둘러보며 관광하는 기차고, 지금 타는건 선시티에서 출발해 요하네스버그를 거쳐 프리토리아, 넬스프로이트, 팔라보르와까지만 가는 기차랍니다. 김은준씨 같은 경우는 거기서 내려 다시 차를 타고 서쪽으로 들어가야겠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이건 다른 로보스 레일하고는 달라서 한 반값 정도라고 보심 됩니다. 게다가 김은준씨는 노선도 짧아서 표값도 더 싸게 먹히죠. 이것도 원래는 더반까지 한바퀴 도는 기차거든요. 어쨌건 일반 관광객보다는 남아공 사람들이 더 많이 타는 기차긴 하지만 아예 저소득층이 타는 기차하고는 달라서 덜 위험합니다. 김은준씨는 관광객은 아니지만 이걸 타는게 좋을 겁니다."

김은준은 가이드의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는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고, 가이드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할 뿐이었다. 다만 어쩐지 여행사에서 보내온 견적서에 나와있는 기차표 값이 15만원쯤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마침내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가이드인 유병민이 김은준을 좌석까지 안내한 다음 기차가 출발하는 경적 소리가 들릴 때까지 옆에 앉아 설명해주고는 창 밖에서 기차가 출발하자 손을 흔들어주었다. 김은준은 기차 안에서 마주 손을 흔들어주며 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마침내 김은준은 아프리카에 와서 혼자가 되었다.

============================ 작품 후기 ============================

맨 앞에 공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가상의 나라고 가상의 도시입니다. 실제론 없는 곳이기 때문에 제 맘대로 짐바브웨와 프리토리아 사이에 있다고 설정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노선도, 기차값도 허구입니다. 원래 있는 노선에서 일부 차용하였고, 값은 대충 넣었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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