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가족들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른 지방으로 이사가는 것도 아닌, 인도양 건너편인 아프리카로 가는 일이었다. 비행기를 타도 홍콩을 경유하기 때문에 15~17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이니 한번 가게되면 보고 싶어도 쉽게 볼 수 없을게 분명했으니까.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우리 아버지는 다섯 남매의 둘 있는 형제 중에서도 둘째였다는 것과, 나 역시 큰 형 다음으로 둘째라는 점이었다. 적어도 제사는 첫째가 지내지 않겠나. 물론 이러한 점도 은준이 한국을 떠나게 한 요소중 하나였지만 말이다. 둘째의 둘째에게 다섯 마지기 땅을 나눠봤자 몇 평이나 돌아올까?
그래도 가장 큰 아군은 의외로 아버지셨다.
"그래. 내가 볼때는 네가 스스로 뭘 하겠다고 스스로 나선게 처음인거 같은데,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어디 하고싶은대로 한번 해봐."
은준은 그 말에 속으로 '내가 그랬나?' 하고 기억을 더듬었다. 물론 대학을 회계학과로 간 것은 수능 성적 때문에 갈만한 곳을 찾다보니 그곳으로 간 거긴 했었다. 그래도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한것이 처음이라는 아버지 말씀엔 동의할 수 없었지만, 유일한 아군이고 가장 힘이 센 가장이 허락을 한다니 말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조목조목 따지기 보다는 당장 옆에서 반대를 하는 어머니를 설득하는일이 급했고, 힘든 일이 될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거기가 어디라고 거길 가. 대한민국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지 말고 이력서 하나 놓고 가면 엄마가 아는 사람 통해서 한 번 자리를 알아보마."
어머니 보시기에 난데 없이 2천만원만 들고 아프리카로 떠나겠다는 은준이 물가에 내 놓은 아기 같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은준의 결심은 바뀌지 않았다. 이미 대충이나마 그쪽 상황에 대해서도 정보를 모아놓기도 했고, 뉴-카파에 도착하면 약간의 도움을 줄 사람을 알아놓기까지 한 상태였다. 그에게 남은 것은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하는 것 뿐이었다.
형제들이야 찬성도 반대도 아니었다. 꼭 선택을 하자면 찬성에 가깝다고나 할까? 사이가 나쁜것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동생의 결정이고 오빠의 결정인데다가 반대를 해도 딱히 자신이 해줄수 있는 것이 없으니, 아프리카로 떠나겠다는 둘째를 잡을 명분이 없었다. 그저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라며 걱정해주는 것이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연로하신 할아버지 할머니께는 사실대로 말씀을 드렸지만, 잘 이해를 못하시는 것 같았다. 처음엔 멀리 간다니, 어디 다른 전남이나 경상도나 이런데를 간다는 것으로 이해하시다가 아예 한국을 떠난다니 여행을 다녀온다는줄 알고 잘 다녀오라며 만원자리 열장을 주머니에 넣어주시기까지 하셨다. 귀도 잘 안들리시는데다가 이해력도 많이 떨어진 두분에, 은준의 아버지는 그냥 이렇게 떠나라고 하셨다. 아마 자세한 설명을 하려면 몇 날을 붙잡고 설명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려. 어디 가서 굶지 말고, 이걸로 과일이라도 사먹고?"
직장을 그만 뒀다고 하니 굶고 다니는줄 아시는 은준의 할머니. 취직하고는 주지 않으시던 용돈까지 쥐어주시는걸 보면 둘째 손주가 안쓰러우셨나보다.
서울의 기반을 정리한 은준은 전세 보증금을 빼 아버지께 돌려드렸다. 대학을 졸업한 예비 사회인이 돈이 어디 있어서 서울에 정착했을까? 당연히 아버지의 지원이 있었다. 비록 작디 작은 방이었지만, 사표 내고 돌아선 은준이 돌아갈 수 있었던 곳은 바로 그 작은 방이었다. 은준의 아버지는 아무말 없이 그 돈을 받아두셨다.
마침내 비행기표를 예매한 날이 다가왔다. 평일 낮. 아버지는 출근을 해야 했고, 형제들도 각자 직장 생활이 있어 공항에 나오지 못했다. 아니, 월차 쓰고 나오려는 것을 그 전 주말에 모두 집에 모이는 것으로 대신 하고 아무도 나오지 못하게 은준이 말렸다. 끝까지 어머니만이 인천에 있는 공항까지 배웅하려 하셨지만, 길도 모르시는 어머니 돌아갈때가 걱정되어 꼭꼭 말렸다. 은준의 어머니는 당신도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 때고 부부동반 모임으로 비행기를 타보셨다고 걱정 말라고는 하셨지만, 대절 버스가 공항까지 대령하고 다시 집이 있는 지방까지 모셔다줬음을 아는 은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때문에 공항까지 배웅을 나온건 백수인 중승 한 명이었다.
"미친놈."
중승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은준을 쏘아봤다. 공항에 도착하고서도 벌써 몇 번째 하는 소린지 몰랐다.
"야. 원래 도전할 때 주변에선 미친놈으로 보이기 마련이야. 그러다 성공하면 내가 그럴줄 알았다고, 싹수가 보였다고 말 바꾸는거지."
은준은 자신도 속으론 심장이 두근거리고 걱정이 태산같았지만, 겉으론 대범한척, 아무렇지도 않은척 큰소리쳤다.
"미친놈. 그러다 실패하면?"
"실패하면? 뭐, 그냥 거기에 눌러앉는거지. 크크."
"어휴, 미친놈!"
"미치긴 뭘 미쳐! 내가 거기서 성공하면 한번 놀러와라. 그쪽이 사파리 하기에 좋다더라. 드라이브 시켜줄께, 사자랑."
"잡아 먹히진 않고? 쯧쯧."
"잡아먹히긴 왜 먹혀! 내가 잡아 먹을건데. 사자 고기가 맛있으려나? 어쨌든 실패해도 굶어죽지는 않을 거다."
은준은 호언장담했다. 물론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뉴-카파가 있는 남아공의 리소테 왕국은 다른 남아공과 마찬가지로 공산품의 가격이 비싼 대신 식료품의 가격은 무척 저렴했다. 예를 들면 고기는 저렴하지만 햄은 비싼, 그런 곳이 바로 남아공이었다. 햄을 만들 공장이 없어 대부분 수입을 해오기 때문이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전자제품의 가격도 한국에서보다 몇 배는 더 비싸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식료품은 몇 배로 싸 먹고 살기만 할 생각이라면 적어도 굶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은준의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가만히 그의 캐리어에 든 봉투를 떠올렸다. 그것을 준 사람은 다름아닌 아버지였다. 은준이 서울에서 내려오며 뺀 전세금. 은준의 아버지는 그것을 고스란히 달러로 바꿔 은준에게 돌려주었던 것이다. 고작 2천만원만 가지고 멀고 먼 아프리카로 떠나는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나 간다."
"그래, 가라."
중승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의 얼굴엔 은준을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친구의 결심을 되돌릴 수 없음을 아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밖에 없었다.
"잘 있어라. 꼭 취직하고!"
"그래. 너도 잘 가라. 죽지 말고."
은준과 중승은 티켓을 검사하는 곳 바로 앞까지 가는 도중에도 몇 번을 이같은 대화를 나눴다. 다른 말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은준이 비행기표를 보이고 문을 지나갈때 둘은 서로 손을 흔들며 말없이 헤어졌다. 중승은 문 너머로 들어간 은준이 보이지 않자 몸을 돌려 되돌아갔고, 은준은 화물로 넣지 않은 작은 가방과 소지품을 검사한 뒤 게이트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비행기가 활주로를 따라 달리고, 공중으로 떠오르자 은준은 창 밖으로 내다 보이는 공항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절대 죽지는 않을거다!"
은준은 스스로 말하고도 한차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프리카로 떠나기로 결정한 몸이지만, 그곳의 치안이 한국과 같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정보를 모을수록 더해갔다. 하지만 그는 결심을 되돌리진 않았다. 그리고 비행기를 탄 지금, 더이상 되돌릴 수도 없었다.
============================ 작품 후기 ============================
흙흐극ㅡㅜ 글 쓸때 용량이 몇이나 되는지 알게 해줬으면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