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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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하는 찰진 소리가 아니라 

퍽. 하는 둔탁함이였다. 

이거 참.. 

제법 얼얼함이 느껴지는 왼쪽 뺨을 문지르면서 

당황해 어쩔줄 몰라하는 너를 쳐다보았다. 

뭐에 당황하는거지? 

생전 처음 해본 키스라는 것의 생소함에? 

아님, 남몰래 품어왔었던 첫키스의 환상이 깨져버린 허망함에? 

이도저도 아니면, 평생을 옆집 형으로 믿고 따라온 내가, 실은 이런걸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에? 

너는 손등으로 입술을 훔쳐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변태." 

너무 대놓고 그렇게 말하니까 

아무리 나라고해도 좀 쑥스러웠다. 

(칭찬이 아닌건 알지만, 그래도 쑥스러웠다. 창피한게 아니라) 

좀전까지 내 품안에서 침도 삼키지 못하고 

거의 정신을 잃다시피하면서 내게 모든걸 맡기고 있었던 사람의 대사치고는 

너무 야박한거 아닌가. 

아무리 내가 울고불던 사람 붙잡고 갑자기 덮친거라고는 해도, 

내가 온갖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내내 

너는 한번도 나를 밀어내거나, 반항하지 않았다. 

그래놓고 이제와서 퍽! 

에다가, 변태! 

라니. 

너무한거 아니냐, 김란우. 

완전히 열받아서 부들부들 떨고있는 너를 앞에두고 이러면 안되는줄은 알지만 

자꾸 웃음이 나려고 한다. 

아무리 잡아 끌어내리려고해도, 양쪽 입술끝이 슬그머니 기어 올라간다. 

아, 어떡하지. 

이러다가는 너한테 한 대 더 얻어맞을텐데. 

그래도 어쩌겠는가. 

좋아 죽겠는데. 

누구의 발길도 닿아본적 없는 순결하고 연약한 너의 핑크빛 세계. 

최초의 침입자를 피해서 이리저리 도망다니던 작은 너의 분신. 

겁에 질린 그것을 이 사이에 가볍게 머금고 나의 세계속으로 빨아들일 때의 저릿한 쾌감. 

허리께에서부터 척추를 타고 목을 지나 머리위로 펑! 펑! 펑! 

내 팔안에 꼼짝없이 결박되어 얼음처럼 굳어버린채 

미처 삼켜내지 못한 너의 타액은, 아 그건 뭐랄까.. 꿀이라는 흔한 표현으로는 모자란. 

빠알갛게 잘 익은 어느 이름모를 열대과일의 향긋한 과즙이랄까. 

난 그걸 모조리 삼켜버렸다. 

한방울도 흘려버리기 아깝다는 듯이, 모조리. 

너의 핑크빛 세계 어딘가에 남아있을 마지막 수분까지도 샅샅이 핥아낼 생각이였다. 

완전히 메말라 버리도록. 

그 건조함을 내가 다시 촉촉히 적셔줄 수 있도록. 

열일곱살의 김란우. 

그 첫키스를 내가 가졌다니. 

나 혼자서라도 그 공로를 치하하고, 샴페인으로 축하하고싶은 심정이다. 

"어디가!!" 

눈물이 아직 다 마르지도않은 두 눈으로 

씩씩대며 날 노려보던 네가, 순식간에 현관으로 내달렸다. 

문을 열려고하는 너를 가까스로 붙잡았다. 

"그 차림으로 어딜 가냐고!" 

손아귀에 붙잡힌 팔목에 기가 막혀온다. 

아니, 살이 붙지않는건 그렇다고 치고 

사내놈 뼈대가 이렇게 가늘어도 되는건가. 

"놔! 이 더러운 손, 못 놔?!" 

김란우. 

자꾸 그렇게 반항하지마. 

그럼 나도 똑같이, 짓누르고 싶어지니까. 

내 손아귀 안에서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가녀린 몸뚱이. 

아직 누구에게도 보여진적 없고, 바쳐진적 없는 수줍은 육체. 

아니, 육체라는 저속한 말에는 어울리지않는 그건 차라리 실체화된 영혼. 

그것이, 지금껏 나를 위해서 아껴져왔다는 사실에 

나는 추호도 의심이 없다. 

그 제물의 황홀한 맛을 조금 깨달은 '잠자던 욕망'은 

그 사나운 고개를 서서히 치켜들고 

그 가혹한 꼬리를 움틀거리며 

그 날카로운 발톱을 곧추세우는 것이다. 

고삐를 바짝 잡고 있는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자꾸 자극하면 곤란하다고. 

"더러워?" 

네 말도 안되게 가느다란 팔을 양손으로 꽉 붙잡았다. 

사정없이 고개를 흔들어 대면서 저항하는 너를 현관문에 바짝 붙여세웠다. 

쿵- 하는 소리를 내고서야 

너는 고개짓을 그만두었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아름다운 두 눈을 가려, 내 마음이 애가 탄다. 

"김란우. 17년." 

눈물의 얼룩이 네 얼굴위에 수채화를 그려놓았다. 

그 붓이 지나간 자리를 하나하나 혀로 핥고 싶다, '욕망'은 입맛을 다신다. 

나는 고삐를 쥔 두 손에 더욱 강한 힘을 준다. 

하지만, 자신없어. 

"17년, 기다렸어. 

나 아직, 더 기다려야 돼?" 

이토록 솔직한 고백. 

좋아한다는 말이 뭐가 필요해, 사랑한다는 말이 뭐가 필요해? 

17년이, 26년이, 내 안에서도 복받쳐 올라온다. 

수많은 이야기, 많은 사연들 

이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됐어 

_서태지와 아이들, 너와 함께한 시간속에서 

우리가 고통속에 걸어왔던 모든 사연은 

너를 가진 나를 시샘한 신의 고약함이였을 뿐. 

후두둑 후두두둑- 

아침부터 잔뜩 흐리던 하늘이 결국 유리창을 때리며 비를 쏟아낸다. 

나에게는 신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이젠, 나의 완전한 승리다. 

시간조차도 더이상은 너를 끌어안고 있을수가 없어진 것이다. 

소년의 몸을 가진 너는 

이제 막 허물을 벗고 나온 나비처럼 눈이 부시다. 

미성숙하지만, 순결한. 가녀리지만, 한편 열렬한 도발. 

색깔로 말하자면, 아이보리. 

좋아한다는 말이 뭐가 필요해, 사랑한다는 말이 뭐가 필요해? 

나는 생각한다. 

그저 네가 나의 품에 뛰어들기만 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그럼 나는, 9 라는 숫자의 굽어진 손잡이를 붙잡고 

시원스럽게 두동강이를 내줄 것이다. 

비겁한 신의 불쏘시개로나 쓰라지. 

"네.. 네가.. 

네가 나한테 바랬던게.. 그런거야?" 

솔직히 말해서, 조금 섭섭했다. 

이렇게 잘못 알아들을 줄은 정말로 몰랐기 때문에. 

완성되지 못한 퍼즐의 마지막 두 조각 중 한조각을 내가 먼저 내밀면, 

그냥 너는 나머지 한조각을 내밀어 주기만 하면 된다고. 그렇게 믿었으니까. 

"후우-" 

좌절감에 고개를 꺾고 한숨을 내쉬어 버렸다. 

눈을 치켜뜨고, 너와 눈높이를 맞춘다. 

엉망으로 뒤엉켜버린 매혹적인 눈동자가 여전히 내게 의심을 던지고 있다. 

확, 그렇다고 말해버릴까보다. 

하는 마음이 들지않은 것도 아니지만 

내 마음이 더이상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시간싸움이다. 

이제까지는 너를 잃지않기위한 몸부림이였다고 합리화한다 해도 

말을 하면 알아들을 수 있는 너를 

설명없이 행동만으로 몰아붙여 간다는 것은 

상처를 주겠다고 작심한 것밖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너에게 준 상처는 그만하면 됐다. 

상처사이로 빛이 스며나와 가늘게 반짝반짝 거릴만큼. 딱 그만큼이면 됐다. 

지금 내가 감싸주면 된다. 

그럼 네 구김없던 웃음, 우리 다시 되찾을 수 있을테니까. 

"김란우 너, 진짜 몰라서 물어?" 

내 이런 눈, 처음 보겠지. 

늘 너에게만큼은 약한 사람이였으니까. 

무방비한 눈빛으로 부드럽게 다가갔던 사람이였으니까. 

내 이런 단호한 눈빛은 처음이겠지. 

아름답고 잔인한 너는 대답이 없다. 

"몰라서 묻는거야, 아니면 알면서 내숭떠는 거야?" 

어느 순간부터, 내가 너를 뒤에서 끌어안을 때 

네가 내 무릎에 앉아 티비를 볼 때 

네 머리카락위에 입맞추거나 어깨에 손을 올릴 때 

너와 나의 숨이 잠시 멎어버린다는 걸,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더 예전처럼 아무렇지않게 내게 엉킬 수 없어진 너라는 것도 

그렇게 자라버린 네 마음을 알고있는 나라는 것도 

우리 서로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모르는척, 서로의 역할을 충실히 연기해 왔을 뿐. 

시간이 흘렀고 

나는 이제 괜찮다고 생각해. 

"저질." 

너는 또 한번 파르르 눈망울을 떨면서 움틀거린다. 

내 언변이 다정하지 못한건 나도 알지만, 그러니까 너도 좀 

고분고분하게 나오면 좋지않은가. 

"하나만 묻자. 

그럼 너한테, 나는 뭐야?" 

네 눈빛이 흔들린다. 

파도에 휩쓸린 작은 돛단배처럼 애처롭게 흔들린다. 

그리고는 바짝 말라버린 입술이 살짝 움직거린다. 

"그냥 형이라는 말은, 하지도마. 

그딴 말, 나한테는 안 통하니까." 

내가 이겼어. 

내가 이겨서 되찾아온 너야. 

이렇게 내 마음 홀려놓고, 그 많은 고통 다 참게 해놓고 

이제와서 너는 모른다고 해버리면.. 그럼 난 어떡해. 

신을 따돌리고, 나 자신을 괴롭히면서까지 

내 손으로 직접 너에게 상처를 새겨 넣으면서까지 

힘겹게 이어온 반태성과 김란우라는 두 이름의 연결고리. 

네가 끊고 날아가버리면, 그럼 난 안돼. 

널 붙잡아, 내것이기를 거부한 그 두 날개를 완전히 짓이겨 놓을거야. 

내것일 수 없는 김란우는, 그런건 세상에 없어. 

있을리가 없어. 

대답해. 

"......" 

갑자기 네가, 다시 울기 시작한다. 

위태롭게 일렁이던 바다가 돛단배를 덮치고 흘러넘친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당황해서 멈칫거리고 만다. 

"아!!" 

내가 잠깐 방심한 틈을 타서 

네가 내 정강이를 사정없이 걷어차기 시작했다. 

인정사정없는 발길질이다. 

"아!! 아!! 진짜 아퍼!! 왜그래?!" 

너는 현관문을 타고 주르륵 주저앉더니 그대로 목을 놓아 울어버린다. 

어릴때처럼 두 다리를 마구 구르면서 엉엉 소리를 낸다. 

교복 타이를 풀어 헤치고 겉멋만 잔뜩 부렸지, 아직도 어린애인 것이다. 

넌, 거칠고 터프한 거리의 소년들처럼은 절대로 될 수 없다. 

못말리는 어리광쟁이니까. 

"짜증나!! 짜증난다고!! 

왜 맨날 나한테 말하래!! 

나이를 아홉살이나 더 먹었으면, 나이값 좀 하란 말이야!! 

왜 맨날 나한테 다 미뤄버리냐고, 이 개새끼야!!" 

넌 이번에는 현관에 널려있던 신발들을 손에 잡히는대로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골키퍼가 골을 막듯이, 날아오는 신발들을 온 몸으로 받아내면서 

나는 너에게 싹싹 빌었다. 

발이 손이 되도록 빌었다. 

그건, 내가 겁쟁이니까. 

너무 예쁜 네가 내것이라는 사실에, 

손바닥에 땀이 배일 정도로 나는 바보니까. 

겉으로는 아닌척해도, 너를 인질로 잡고 모두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여도 

아니야, 사실은 난 너무 겁쟁이야. 

가장 비겁한 방법으로밖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나는 겁쟁이야. 

그래도 후회는 하지않는다고 하면, 독한놈이라고 할까? 

아무래도 좋아. 

누구라도 그랬을거라 생각해. 

나도 겨우 아홉살이였고, 내가 다 자랐을때는 네가 겨우 아홉살이였지. 

어쩔 수 없잖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잖아. 

그래서 나는, 말하지 않는 것에 길들여 졌나봐. 

겁쟁이가 되버렸지. 

너를 잃어버릴까봐 노심초사, 불안함에 떨어온 꼬박 17년. 

이제는 정말, 잠 좀 편하게 자고싶다. 

"잘 봐."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 네 앞에 나도 무릎을 꿇고 눈을 맞춘다. 

그리고 너의 오른손을 잡아, 천천히 

내 왼쪽 가슴으로 옮겨간다. 

살을 뚫고 나올 듯, 쿵쾅이는 심장에 너의 작은 손이 놓여진다. 

그건, 네가 훨씬 더 어렸던 시절 

우리 둘만의 암호. 

"이만큼. 이만큼..." 

마음만큼. 

가슴만큼. 

그 안에 꽉 찰만큼 많이, 

"사랑해." 

"사랑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완전하게 동시에 울리는 두 목소리. 

소름이 끼칠만큼 완벽하게 하나인 두 목소리. 두 영혼. 두 육체. 

완벽하게 하나의 선을 그리면서 이어온 두 시간. 

품에 달려든 너를 꼭 끌어안고 

그 귓가에 입을 맞추며 속삭인다. 

"너, 첫키스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죽어도 좋아. 

_20060304_김다윗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도 언제나 변함없이 흰 피부와 

어깨까지 늘어뜨린 검고 가느다란 머리카락 

야무지게 꼭 다문, 의지가 깃든 입술 

맨발로 땅을 박차는 야생의 생명력과 

속이 그대로 비칠 것 같은 투명하고 거침없는 눈빛 

주인이고 정복자인, 

굴욕따위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긍지의 눈빛 

"지키고싶은 것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른다, 데이비드." 

길들여지지않은 그대로의 

길들여지지않은 그대로의 마이스토리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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